진주성과 촉석루(矗石樓 05.19.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 (1983.07.20)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
도도히 흐르는 남강(南江)변 기암 암벽 위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남(嶺南) 제일의 누각이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촉석루(矗石樓)는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루는 고시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25년(영조 1) 목사 안극효(安克孝)에 의하여 여덟번째 마지막으로 중수되었다.
1948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에 불탄 것을 시민들의 힘을 모아 진주 고적 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복원하였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에 다락루의 형태를 하고 있다.
누각 밑의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하였고 목재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으며 루에는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촉석루 옆에는 논개의 의기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의기사가 있다.
촉석루 아래로는 조그만 통로에 계단을 만들어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의암(義巖)으로 내려갈 수 있게 해 놓았다.
- 2시쯤 진주 하연옥에서 진주냉면을 섭취(攝取)하고 촉석루(矗石樓)로 향했다.
주차비는 처음 30분에 500원, 이후 10분마다 200원이고, 진주성 입장료는 2,000원이다.
성내 공원은 깨끗하게 조성돼 있다.
사흘 뒤(22일)에 열리는 ‘진주논개제’를 준비하느라 촉석루 앞 의암과 남강주변이 약간 어수선하다.
날씨는 거의 여름이다.
- 다음지도
진주성 공북문(拱北門)으로 입장하였다.
이정표의 왼쪽 4군데는 다 돌아 보았으나 오른쪽 4군데는 가 보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와 보아야겠다.
충무공 김시민(忠武公 金時敏) 장군상
성내에서 찍은 공북문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天, 地, 玄)
김시민장군 전공비
호국종각(護國鐘閣)
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 (1987.12.완공)
진주성의 임진대첩과 계사순의때 순절한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제단
이 문은 정면에서 보질 않아 무슨 문인지 잘 모르겠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촉석문(矗石門)이라고 되어 있다.
촉석루 앞의 남강
아래 사진은 촉석루의 여러 모습
자기를 찍었으니 사진을 한장 빼 달라고 우기시는 할아버지...
ㅎㅎㅎㅎㅎ 땀 좀 뺏다.
(물론 씩 웃으시는 모습이 농담인 것 같았다.)
의기사(義妓祠)로 들어 가는 지수문(指水門)
의기사(義妓祠)는 경남 문화재자료 제7호(1983.07.20)로 의기 논개의 사당이다.
아....
이 해설사 영감님과 아주머니 세분 덕분에 열 많이 받았다.
의기사(義妓祠) 정면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정면을 가로막고 서서 설명을 하는데 비켜 주질 않는다.
약 10분 정도 카라멜을 들고 주위를 왔다갔다 해도 꿈쩍도 않아 결국 포기 했다.
등을 보이고 있는 흰옷 입은 아저씨도 폰을 들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정면 촬영을 포기한 분이다.
정말 대단한 의지의 한국인 이시다.
논개 영정(影幀)
이 조그만 건물은 비각(碑閣) 같은데 담 뒤에 있어 무슨 비각인지 잘 모르겠다.
남강변 의암으로 내려 가는 조그만 출입구
남강변 의암 옆에 있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 안에 있는 비
아래 사진은 의암(義巖) 주변의 여러 그림
사흘 후의 '논개제'를 준비하느라 주위가 약간 어수선하다.
손바닥 만한 그늘을 찾았다.
담벼락에 바짝 붙어라.....
진주성
3일 뒤에 있을 '논개제'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이다.
다시 공북문
바깥에서 본 진주성
안중식이 1913년에 그린 촉석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