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같은 연휴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전에 대끼리형이 갔다온
성삼재에서 올라가 노고단을 거쳐 반야봉을 돌아 내려오는 무박 산행 지리산 코스를 가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 바쁜 대끼리 형과 만나 코스의 대강을 듣는다는 핑계로 혜강도 불러 술도 한잔 했고...
어제 교회에 가서 그간 죄를 지은 것도 말끔히 회개도 했는데...
그만 오늘 저녁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던 모양이다...
무심코 마누라에게 이야기 했다가 머리 나쁜 것만 탄로나고...해서
이왕 산에 가려고 했던 것이라 오늘 삼각산에 올랐다.
대서문에서 백운대 정상을 밟고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을 거쳐
의상봉 코스를 잡고 내려올 때는 백화사든 다시 대서문이든 그냥 기분대로 하려 아침에 출발했다.
별로 힘든 코스도 아니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그런데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자알 올라 가다가 뭐에 씌였는지, 홀렸는지 그만 길없는 길로 가버린 것이다.
옹달샘에서 그냥 길따라 가면 아무 일이 없는 것을 옹달샘 왼쪽 위로 길을 잡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된다.
계속 오르니 길도 없고 암벽이 막아 선다.
같이 가는 사람도 없어 길은 조용한데....그러나 분명히 길은 있고...
우회한다고 왼쪽으로 두번 씩이나 돌아 오르락내리락 하며 땀을 빼 봤지만
하나는 바로 내려가는 길이 거의 확실했고, 다른 하나는 도저히 맨손으로는 오를 수 없는 절벽이다.
다시 첫 암벽으로 돌아가 밑에서 가만히 살펴 보니 옆으로 비스듬히 잡고 오르면 가능하게도 보인다.
제법 고민하다가 네 다리를 잘 활용해서 힘겹게 암벽을 올랐다...
아...그게 문제였다....삼각산 정도야 생각한 내가 문제였고...그눔의 오기가 문제였다.
그냥 포기하고 내려 갔으면 옹달샘까지 가서 다시 오르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바위에 바짝 붙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올랐는데...
위에서 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오르긴 올랐는데 내려가다가는....
어쩔 수 없다...그냥 올라 보자...어떻게 되겠지...
계속 올랐다...낙엽만 수북하게 쌓인 길을 헐떡이며 올랐다.
가다보니 큰 바위에 나무판이 붙었는데 나무는 다 썩어져 가고 '시발크럽'이라고 씌여 있다.
가보니 여전이 깎아지른 바위 덩어리만...절망이다...암벽등반 클럽인듯...
우회해서 길로 아닌 낙엽 위를 계속 올라가니 큰 굴만 덩그러니 두 개...
앞은 굴...양 옆은 절벽....뒤는 다시 내려 가는 길...(맞아 여우굴...들은 적 있다. 암벽 코스)
암담하다...절망적이다...누구 같이 올 걸....
왜 길따라 가지도 못하고 괜히 이리 왔는지 후회막급이다..
양 옆의 암벽은 장비가 없으면 전혀 오를 수 없는 바위 오름이다...
가만히 앉아 담배를 한대 물고 아무리 궁리를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다시 내려 가야지 뭐...그러나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내가 올라온 바위인데
아무래도 내려갈 자신이 없다...자신이 없으면 사고로 이어질 확률은 높다....
아...삼각산에서도 조난을 당하는구나...눈앞이 멍해지고 별별 생각이 다 난다...
터덜대며 내려 가다 보니 약간 길 같은 것이 바위 사이로 나 있다.
여지껏 경험으로 보아 산길이란 다 그렇지 않은가..길인듯 하다가도 끊어지고 아닌듯 하다가도 이어지고...
내려가다가 어렴풋이 보이는 왼쪽 길로 다시 올랐다. 역시 암벽이다...
그냥 아래로 벋어 내려간 미끈한, 정말 미끈한 바위에 겨우 발디딜만큼의 틈만 있다..
불안하게 바위에 기대서서 내려다 보니 정말 장관이다...앞이 탁 트였다...一望無際....
보이는 풍광은 좋지만 다리는 후들후들....밥이나 먹을까...마누라가 아침에 김밥 싸줬는데...
그러나 앉아 밥먹을 틈도 없다....날씨는 무쟈게 좋아 한강은 물론 멀리 방화대교도 다 보인다..
정말 進退兩難이다....핵교에서 애들한테 進退維谷, 좀 다른 것은 百尺竿頭, 風前燈火, 또 四面楚歌 등
차이점을 들어가며 열씨미 설명한기억도 갑자기 떠오른다...
그런데 하필 그런 순간에 왜 밥먹을 생각이 나느냔 말이다...으이그...또 담배 한대...
궁립공원인데도 사람이 없으니 맘대로 피워도 좋다...ㅎㅎㅎ
이판사판이다...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난데...내려가는 것보다는 오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90도로 된 절벽을 무슨 수로 오른단 말인가...
가보자....좁은 바위에 온몸을 찰싹 붙이고 조금씩 발을 움직였다.
고생고생하며 한 모퉁이를 돌아드니....아 이게 뭔일인가....그 깎아지른 절벽에....
정말 하늘에서 밧줄을 내려주셨나 보다...(이제 정말 속세 생활에서 벗어나 교회 열씨미 다녀야지...순간 다짐)
깎아지른 벼랑에 쇠줄이 가냘프게 죽 이어져 있다. 저거 너무 얇은 거 아냐?
한 20미터 정도? 이거면 됐지..이제 겁날 것 없다...그래도 오른쪽을 보니 오금이 저리고....
아무 생각없이 쇠줄을 잡고 벼랑 위를 걸었다...놓지만 않으면 떨어지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길다...보이는 것은 일부고 살짝 도니 계속 이어진다...
끝이겠지 하며 도니 또 이어진다....한 50미터는 족히 될 것 같다...아직도 모르겠다...
그때 내 판단이 정확하다고 나도 장담을 못하니까...한 30미터 되려나? 몰라...
온몸에 땀을 흘리며 쇠줄의 끝을 보고 나니 저절로 후우~~~하고 한숨이 나온다.
다시는 뒤도 돌아보고싶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는 어리벙벙한 상태....그렇다고 길다운 길도 보이지 않고....
쇠줄 코스를 지나서 위태위태하게 좁은 길을 잠깐 가니
그제야 제법 길처럼 생긴 것이 나온다...경험상 반드시 제대로 된 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배도 고팠다....마침 너른 바위도 있고 해서 털썩 주저앉아 김밥을 먹었다...
마누라가 싸준 정말 맛있는 일산표 원도우먼 김밥...역쉬 맛있다...(진짜 맛있다, 먹어 본 사람은 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잠시 쉬다가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일어나 한모퉁이를 돌아가니
저 아래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서 보니 나무 사이로 저 건너에 나무 난간이 보인다...
살았다...사람 소리가 이렇게 반갑게 들린 건 정말 처음이다...내가 원래 말없이 조용한 성격이자나...
조금 가니 위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약간 비스듬히 위쪽에서 내려오는 나를, 맞은 편에서 오던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보는 눈치다...
그 다음부터는 뭐 다 아는 탄탄대로...백운대 올라가는 길이야 뭐 다 알지않나...
날씨가 너무 좋다...사방이 탁 트여 그런 장관이 없었다.
남쪽으로는 사모바위, 비봉 등의 연봉이 보이고...북으로는 도봉, 오봉...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운대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있는데...(정말 기분 좋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헬리콥터 소리....바로 인수봉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헬기가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서 서더니 주황색의 비상 침구를 내려 놓는다.
그리고는 가는가 싶더니 한바퀴를 돌아 와서 다시 그 자리로 가 끌어 올리고는
재빨리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간다...
처음 헬기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 손을 마구 흔들었는데...손이 부끄러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충분히 저럴뻔한 하루였다...흐이유....
너무 힘들어서 원래 계획한 코스를 포기하고 바로 대서문으로 내려왔다...
날씨만큼은 정말 좋았다...사방이 막힌 것이 없었으니까...담에 날 좋은 날 우리 함 같이 보자구....
몇년 전 설악에서 열서너 시간 넘게 헤매다 캄캄한 밤에 내려올 때도 오늘처럼 힘들진 않았는데....
홀로 산행 할 때는 꼭 잘 가는 길로 가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