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쌍계사와 몽환적 절경 십리벗꽃길
1. 쌍계사는 지리산(지리산은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불림)의 장엄함과 섬진강의 평화스러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하여 옛부터 영산으로 숭배되어 왔다. 724년(신라 성덕왕23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三法)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진감혜소국사(眞鑑慧昭國師)가 지리산에 내려와 머물 곳을 찾던 중 범 몇 마리가 옛 삼법스님이 세운 절터로 인도하여 840년(신라 문성왕 2년) 이곳에 대가람을 중창하고 절 주위에는 중국에서 가져온 차를 심고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정강왕 때, 바위 사이를 흐르는 두 계곡물이 절 입구에서 만나므로 쌍계사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최치원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을 쓰게 하여 바위에 새겼다.
쌍계사는 도의국사와 동시대에 활약한 진감국사가 육조 혜능선사의 남종 돈오선을 신라에 최초로 전법한 도량이자 차의 발상지이며 해동범패(梵唄:불교음악)의 연원이다. 그러므로 쌍계사는 선(禪)ㆍ다(茶)ㆍ음(音)의 성지로 일컬어지며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제 13교구 본사이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中暹), 혜수(惠修)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벽암(碧巖), 소요(逍遙), 인계(印戒), 백암(栢庵), 법훈(法訓), 용담(龍潭)스님 등이 중창을 하였고, 1975년부터 고산스님에 의해 복원, 중수 중창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고 있다.
쌍계사는 진감선사에 의해 이루어진 금당영역과 임진왜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에 의해 중수된 대웅전 영역으로 금당은 남향을, 대웅전은 서향을 향하여 각을 이루는 파격적인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국사암과 불일암이 있고, 문화재로는 국보 1점(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보물 6종(20점), 지방문화재 12점, 문화재자료 5첨, 천연기념물 2곳 등을 보유하고 있다.
쌍계사 전경 안내도
구층석탑
국보47호 진감국사탑비
마애불상
2. 십리 벚꽃 길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 19번 국도. 그 길목에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며 번성했던 화개장터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예전의 북적대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4월이 되면 이곳 역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의 초입까지 이어지는 그 유명한 '십리벚꽃길'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화개천을 따라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길은 약 5km다. 길 양편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벚나무에 꽃이 만개하면 안개를 뿜어 올리듯 뽀얗게 피어난 꽃송이들이 하늘을 덮은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벚꽃 터널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로 천천히 걸으며 꽃구경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길은 특히 젊은 남녀들이 걸으며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경우가 많다 하여 '혼례 길목'으로도 불린다. 간혹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시기한 바람이 세차게 벚나무를 휘어잡으면 나뭇가지에 매달려 하늘거리던 벚꽃이 일제히 흩날리며 하얀 꽃비가 내리는 모습도 환상적이다.
화개꽃길 끄트머리에서 쌍계교를 넘으면 쌍계사로 이어진다. 쌍계사로 들어서기 전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이라 새겨진 두 개의 큰 바위가 눈에 띄는데 이는 최치원 선생이 지팡이 끝으로 쓴 글씨라는 전설이 있어 흥미롭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기 전까지 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돌계단을 올라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사찰 안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대웅전 옆길로 돌아 불일폭포로 가는 길목도 좋다.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2.5km가량 걸으면 불일폭포. 물의 양이 많을 때에는 높이 60m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협곡을 진동시키며 그 소리를 사방 1km 내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쌍계사를 둘러보고 해질 무렵 산자락에 울려 퍼지는 법고와 목어, 은은한 범종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쌍계사 가기 전 섬진강의 벗꽃 전경
※ 삼신산(三神山)은 한국에서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부르는 말이다.
또한 중국에서는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 · 방장산(方丈山) · 영주산(瀛洲山)을 가리켜 삼신산이라고 부르는데,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로장생의 명약을 구하기 위하여 이 곳으로 동남동녀 수천 명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이 삼신산이 해동에 있다는 설을 삼신재해동설(三神在海東說)이라고 한다
중국의 삼신산 전설에 등장하는 삼신산이 조선(朝鮮)에 있다고 믿는 신앙이 일찍부터 한국에 있었다. 조선은 3방(三方)이 모두 밑이 없는 깊은 바다이며 그 땅에 백두산(白頭山)의 천지(天池)가 있고 그 산정의 대(臺)가 넓다는 것이다. 또 그런 산이 셋 있는데 금강산이 봉래산, 지리산이 방장산, 한라산이 영주산이라는 것이다. 이 산들 위에는 때때로 신의 이적(異蹟)이 있다고 믿었다.
♣ 왜 삼신산 쌍계사일까를 스님들에게 문의하였으나, 위의 삼신산 관련 설명은 없고 쌍계사가 소재하는 산이 삼신산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