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인 94년 10월말.
나와 김철주 부장은 하얼빈에 막 도착하여 민족호텔에 짐을 풀었다. 민족호텔은 성공한 조선족 사업가 김수진씨가 세운것인데 그를 만난적은 없지만 듣기로는 북한과 구상무역 거래가 꽤 많다고 한다. 하얼빈에서도 몇 안 가는 깨끗 하면서도 고층건물이다. 호텔이름도 멋있다. 무슨 연유로 민족호텔이라 명명했는지는 모르지만 안중근의사의 거사지인 하얼빈에서 ‘민족’이란 두 글자는 아스라한 애정으로 가슴에 와 닫는다.
라리즈공사(來利知公司) 천쉐넨 사장을 찾아온것이다.
라리즈회사는 중미합작기업이다. 대표는 중국측의 천쉐넨으로 되어있다. 처음 칭다오에서 설립하여 미국투자회사와 상품교역을 주로 하였다. 천사장은 48세로 원래가 대학교수였다. 학술연구차 미국을 몇번 드나들다가 우연한 기회에 합작제의를 받고는 돈도 안되는 교수직을 던져버리고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당시 광범위하게 유행했던 전업 케이스다. 월급이 일반 노동자에게도 못미치는 수준이었기에 교수들로서는 기회만 있다면 사업가로 변신하길 갈망하던 때였다. 미국투자회사쪽에서도 중국정보가 깜깜하던 시절이라 믿을만한 사람만 있으면 합작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세미나차 미국출장을 자주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무궁무진했다.
천사장이 나와 인연을 맻기시작한 것은 당시 나와 거래가 있었던 중국공장 사장의 부친이 천사장의 하늘 같은 사부였으므로 우연한 기회에 소개를 받았던것이다. 제자중에 그만한 제자는 더물다고 했다. 성격이 온화하고, 미국물을 먹어서인지 합리적이며, 부인을 지극정성 모시는 현부양부 타입이다. 사업도 잘 되었다. 우리도 라리즈회사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몇가지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산 제품을 중국내에 판매해 보겠다는 제의를 받고 자동차용품 몇가지를 수입해다가 공급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리 물량은 많지를 않았으나 몇번 공급하기 시작하자 대금회수에서도 조금씩 여유를 주기 시작했다. 통상 공급후 한달내에 결제가 이루어졌다.
잘 나가던 그도 결국 한방을 맞았다. 자신이 거래하던 미국측 바이어와 무언가 삐끄득 한 모양이다. 어느날 사라져 버렸다. 내가 그들의 사무실에 갔을때는 수 많은 중국거래처가 법원직원을 동반하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약 30여명이 북적이던 사무실도 어수선했다. 사장,부사장,회계 모두 날라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실무자들만 들들 볶이고 있었다.
"우리도 법원에 접수를 할까요?'
나는 소용없다고 생각했다.모든서류와 계약서, 싸인이 된 물품인도 확인서가 그대로 있어, 법원에 신고를 하면 틀림없이 승소를 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의 판결문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사람을 잡는 방법밖에 없다.
한달정도 지난후, 그의 사부를 통해서 하얼빈에 있음을 알았다. 재주가 좋은지 사업도 꽤 크게 한다고 한다. 주로 러시아와 거래를 많이 한단다. 간도 크게 라리즈회사명을 그대로 쓰고있다. 장거리전화를 하니 화들짝 놀란다. 형편이 어려워서 지금 당장은 안 되겠고 시간을 좀 달라는 것이다. 중국인은 형편이 안되어 결제를 못하겠다라는 직설적 표현을 죽어도 쓰지 않는다. 돈이 있더라도 이리저리 꼬불쳐놓고는 반드시 나중에 갚겠다는 말은 한다. <못주겠다>해버리면 이미 범죄를 구성한다.<나중에 주겠다>는것은 그것이 일년후가 되던 십년후가 되던 범죄는 아니다.
능청스럽게 하얼빈에 놀러오면 꼭 찾아달란다. 한턱 찐하게 쏘겠단다. 사실 그와 평소에는 호형호제 해 감시로 인간적으로는 그만한 펑여우(朋友)도 드물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업이 여의치 않을시에는 형제도 친구도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다. 그사이 천사장은 부인과도 이혼을 했다. 아니 정확히는 부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자신은 부인을 버릴 인물이 못된다.
"하얼빈으로 가자."
몇 달후 모든서류를 챙겨서 김철주 부장과 같이 하얼빈으로 가기로 했다. 만나면 십중팔구는 교묘한 방법으로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것이란 것을 나도 잘 알고있다. 방법을 찾아야한다. ‘받기전에는 안 돌아온다’. 그와 같이 먹고자고 똥도 같이 누고, 지겨워서 학을 띄도록 해보자.그 돈이 어떤 돈인데,아주 독한 마음을 먹었다.
하얼빈은 확실히 춥다.
늦가을인데도 벌써 찬공기가 옷깃을 헤치고 들어온다. 라리즈회사는 하얼빈역과 스탈린공원 중간쯤에 있다. 2층사무실은 중후한 색상과 큼직큼직한 고가구로 들어차 있는데 러시아 통치시대의 잔영이 남아있는 하얼빈거리와 잘 어울린다. 10여명의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사이로 김철주 부장은 두리번거리며 천사장을 찾고있었다. 사무실을 돌아가며 여러 개의 방으로 되어있어 아마 어느방인가가 천사장 사무실인듯 싶다. 안내하는 여직원에게 물으니, 천사장방을 가리켜면서 지금은 없단다. 한달전에 허이허(黑河)지사로 업무차 출장중이라 한다. 난감했다. 일부러 전화를 하지않고 불쑥 찾아왔지만, 오면 바로 만날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출장을 떠났을 것이란 것은 미처 생각치 못했던것이다.
[什麻時候回來?(언제 돌아옵니까?)]
[對不起.不淸楚!(죄송합니다.잘 모르겠는데요)]
[--지기미!]
[什麻? (뭐 라고요?)]
[沒什麻.謝謝..(아무것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창밖으로 저어기 하얼빈역이 보인다.
저기서 안중근의사는 이등방문을 죽이고 잡혔으리라. 그러고보니 저 우중충한 골목골목으로 그 옛날 중절모를 깊숙히 눌러쓴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서둘러 숨어들어갔던 것이 아니던가. 그 후손인 내가 장사치를 따라서 죽일놈 살릴놈 하면서 이 거리를 지나는 것이 한편으로 서글퍼고 면목도 없다. 명분이 있으면 독립자금이 곳곳에서 들어오지만 명분없는 장사치야 남이 떼먹고 달아날까 항상 긴장하고 추스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국만리에서 선배들이 독립운동하던 코앞 마당에서 이 무슨 쪽 팔리는 족적을 남기고 있는지..허나,나도 역시 빼앗긴 국가이익을 한푼이라도 건지겠다고 올라 온 것이 아닌가,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밖에...
호텔계단을 내려와 좌측골목으로 들어가면 두번째 집이 조선족 식당이다.
홀에는 탁자가 많아야 대여섯개 뿐이고 세평정도되는 방이 서너개 있다. 벌써 따뜻하게 군불을 넣어놓았는가 보다. 21인치 TV가 한쪽 구석에 있고 그 밑에 투박한 마이크가 두개 가지런히 놓여져있다. 노래도 부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우리 두사람은 식탁을 마주보고 팽이다리로 앉았다.
"내일쉬고 모래 떠나자."
"청도로 돌아가는 겁니까?"
"아니. 허이허로 가자."
"..................!"
"허이허는 어디제?"
"최북단 도시로 러시아와 국경지역입니다."
김철주 부장은 허이허를 잘 알고있었다.
그는 칭다오로 내려오기 전에 한 2년정도 러시아와 중국을 드나들면서 장사를 한 경험이 있다. 중국산으로는 식품과 잡화를 갖고가서 러시아산 술과 짐승가죽등으로 바꾸어 왔던것이다. 제일 힘든 것이 열차내에서 러시아 범죄조직을 피하는것이란다. 러시아경찰도 깡패로 보고 피하는게 상책이다. 결국은 열차내에서 경찰들에게 화물을 몽땅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돌아와서 바로 칭다오로 내려온 그였다. 하얼빈에서는 천위안만 내면 러시아 입국비자를 발급해 준다고 한다.
그날밤 우리 둘은 앉은 자리에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다.
노래책을 가나다라 순으로 한곡도 빠지지 않고 돌아 가면서 불렀다. 새벽까지 약 백여곡은 족히 불렀으리라. 김철주 부장은 구수한 음성으로 우리의 80년대 이전의 노래는 모르는 것이 없다. 그래.허이허로 가자!! 케에스키.씨앙노무스키를 찾으러..
※ 재판에 이기기는 쉽다. 집행은 때로는 공권력보다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
민사사건에 대한 공권력은 다른 지역엔 잘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스프링/
첫댓글 흥미가 진진입니다... 진작 좀 쓰시지... 험험^^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완전 영화 같읍니다 농담아니라 제가아는 영화감독한테 농담반 진담반으로 함 물어봐야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