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모하는 자 (시 84:1-12)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아직 원인을 찾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연어의 회귀본능입니다. 연어는 강에서 산란하여 1년 동안 살다가 바다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3년을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나서 살던 곳을 찾아 돌아오는 회귀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회귀본능이 얼마나 치열하든지 그 거센 물줄기를 헤치고 필사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 장관이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을 기억했다가 다시 찾아오는가? 그리고 대체 무엇이 연어들로 하여금 그토록 강력한 회귀본능을 일으키게 하는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은 창조주 하나님만 아시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본능은 연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시편 84편의 고라자손들이 그렇습니다. 고라자손은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로서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하고 아울러 성전의 문지기와 각종 수종 드는 일을 담당한 사람들입니다.
레위지파는 여러 반열로 조직이 되며 평소에는 전국에 흩어져서 목회하며 백성들의 신앙을 돕다가 차례가 오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찬양하며 제사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는지 본 시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걸 알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여기 여호와의 궁정은 바로 성전을 말합니다.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나가 봉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기에 신약의 예배당 개념과는 다르지만 성전이 예배의 처소라는 점에서는 신약의 예배당 개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도 예배당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서 따로 구별한 처소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하는 사람은 성도들도 사랑하고 주의 일군들도 사랑하고 예배당도 사랑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그토록 사랑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천지만물도 사랑합니다. 모두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를 보세요.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인데 대적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을 해코자 합니다. 창조물에 대한 도전은 곧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꾸어놓고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이걸 모르고 사람들이 교회를 함부로 생각하고 우습게 보는데 그건 사탄적사고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택한 이 공동체를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인정하신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징이나 정당한 결정은 하늘에까지 통합니다.
어떤 사람이 상습적으로 교회를 핍박하는데 그 날 아침 심하게 교회를 욕하고 길을 가다가 자동차가 전복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때 그가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핍박하다가 이런 일을 만났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핍박하지 않으련다." 불신자도 깨닫는 건 빠르더군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 했던 것처럼 예수를 핍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출석 잘하시고 교회를 향한 의무도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사랑을 예배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3-4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고라자손이 왜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했을까요? 자신들은 잠시 머물다가 갈 수밖에 없는 가령 여행 비자를 가진 사명자지만 이 짐승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둥지를 틀며 사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짐승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주님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항상 주를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벧전2:9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다 신령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또 각인의 초소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반면 예배가 회복되면 모두 다 살아납니다. 예배 한 번만 잘 드려도 그 예배에 어떤 누가 변화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히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칠흑 같이 어둘지라도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자 한 밤중에 옥문이 열렸잖아요.
이처럼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만나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복을 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교회 정규예배 뿐 아니라 가정예배 개인기도시간을 정해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 사랑을 주일성수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5-7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루살렘에 도달하려면 지형상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인데 이 골짜기는 “바가의 골짜기”라 하여 시 23에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도 부르는데 유대광야의 험준한 골짜기를 말합니다.
이곳은 물이 없어 메마르고 골짜기는 험준하고 동서로 깊게 파여 한 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흑암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이 골짜기의 좌우 길목에는 동굴들이 많은데 그 안에는 한낮의 햇빛을 피하려는 맹수들이 득실거려 양들이 길을 잃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고라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갈망했습니다. 메마른 골짜기에 비를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맹수에게서 지켜 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힘을 간구했습니다. 용기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습관화가 되어 예배하는 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지만 일반인이 교회 출석하기란 마음 단단히 먹어야 가능합니다. 교회 한 번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한 번만 나오면 두 번째는 쉽습니다.
오늘 길에 맹수가 무엇입니까? 잠26:13에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을 이겨야 합니다. 형편도 이겨야 합니다. 상황도 이겨야 합니다. 불편함도 이겨야 합니다.
군에서 갖은 핍박 가운데서도 주일 지킨 이야기 들으셨을 것입니다. 너 이래도 교회 갈꺼냐? 하고 무릎 위에 무거운 다듬돌을 올려놓았는데 몇 시간 후에 마비가 되어 일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교회 가야겠다고 해서 대체 네가 믿는 예수가 어떤 예수인지 나도 믿어보자 해서 그 핍박자가 나중에 장로가 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신앙의 발걸음을 보시고 하늘의 상으로 갚아주십니다. 기적은 고난 속에 있습니다. 핍박과 고난과 눈물의 골짜기 통과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고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성령의 이른 비로 늦은 비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8-9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여기서 고라 자손들은 왕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여기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당시로서는 다윗 왕을 가리킵니다. 다윗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 끝까지 퍼져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다각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라자손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11절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주일성수 잘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와 정상을 다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