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峰山(자운봉 740m)夫婦山行(2008년 9월 22일)
도봉산 주릉(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북한산과 더불어 서울의 명산으로 알려진 도봉산은 화강암의 우람한
기암괴석들로 그 경관이 수려하다,
봉선사의 말사인 망월사(원도봉 계곡상단부)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8년(639년)에 해호스님이 여왕의 명에 의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당시 서라벌 月城을 향해 기원 하는뜻에서
望月寺라 하였고 이곳에서 예로부터 운수납자의 대 선사들이 많이 거쳐 갔는데
고려시대의 혜거 영노대사와 조선시대의 천봉, 영월, 도암등 많은 명승이 다녀갔고
큰 법당에서 남서쪽 언덕으로 들어가면 혜거국사 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2호)가 있다.
여성봉 정상의 바위들
바라보기가 민망스러운 여성봉(위에서 바라봄)
아래서 본 여성봉
가까이서 본 오봉
오봉정상의 건강한 소나무
맑았더라면 북한산과 상장봉의 모습이 좋았을 텐데....
포대정상을 다 오른 거북이
남해 금산에서도 이성계가 기도했는데 언제 또 이곳에서도 기도를 한 모양이네.......
천축사를 내려가는 중간쯤의 바위들
마당바위 (돌의 모양이 이상하다,)
신선대에서 천축사를 갔다 오는데 왕복 2시간걸렸다
많은 부처님이 비를 맞고 있어 보기가 그렇다,
신도들이 한분씩 모신 부처님이다,
풍경소리 약사전 뒷마당 산목련 하얗게 피고 지는데
전쟁에서 수만명을 이긴자 보다 나를 이긴자가 승리자라며
바람도 여기서는 큰스님 말씀에 잠이 드는데
어쩌자고 답답한 가슴 타는불길 누굴 이기겠다고 침을 했으며
누굴 이겼다고 즐거웠는지 꽃에게 묻고 바람에게 산새에게 묻는가.
약사전 불전함 옆 촛불에 묻고
멀리 돌아 바람처럼 연못아래 눕고
촛불처럼 아프게 스스로를 태우며
산목련 꽃잎으로 잠들어 나를 이긴자가 나 이기를
산목련 풍경소리에 꿈 꾸어도 되는지
김주대 큰스님 말씀중에
천축사
도봉산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이절은 깍아지른듯한 만장봉을 뒤로 배경삼아
소나무, 단풍나무. 유목등이 울창한 수목들에 안겨있어 조용하고 경관이 뛰어나 참선도량으로 이름난 곳이다.
673년(신라 문무왕 13년)의상(義湘)대사가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있어 玉泉庵이라는
암자를 세웠고 고려 명종때 寧國寺가 들어섰다,
1398년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 기도를 드린후 왕위에 올랐다하여 절을 새롭게 고치고 天竺寺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또 유명한것은 천축사 解憂所이다
해우소는 말 그대로 근심을 푸는 곳이며 그를 위해 사찰의 배려와 인식이 깊이 배여 있는곳이다,
단, 화장실이 아닌 해우소에서는
첫째, 머리를 숙여 아래를 보지 말아라 했고
둘째, 낙서 하거나 침을 밷지 말것이며 힘 쓰는 소리를 내어서도 안된다,
셋째, 외우고자 하는 게송이 있다면 외울것이고
넷째, 용변을 마친뒤에는 반드시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올 것이다,
다섯째. 손을 씻기 전에는 다른 물건을 만지지 말 것이며 천축사는 화장실이라고 되어있기는 하나 스스로 마음 가짐을
단정히 한다면 해우소가 따로 없을 것이다,
지난 20일 (토요일)산행은
도봉산 산행을 계획대로 마치지 못하고 사패산(552m)만 다녀오는 것으로 끝냈다.
그렇게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출발하기 전부터 만약 날씨가 안 좋으면 미련 없이 내려오기로 다짐하고 출발 했던 터라 우의도 준비안하고 점심과 간식만 간단히 준비해서 출발 했던 것이다. 우리는 나이도 있고 또한 포대능선 및 도봉의 주릉 은 바위 길로 위험하기에 스스로 자제를 했고 무엇보다도 손자들의 전화가 더 이상 진행을 못하게 하였다.
도봉산은 1983년 4월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변모를 가져왔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 “양주 남서쪽에 이르러 도봉이 되고 또 삼각산이 되니 경성의 진산이다”라고 하였으니 예로부터 도봉산은 북한산과 함께 서울의 진산이다,
하산을 하면서도 어찌 도봉의 산줄기와 오봉이 생각나지 않았겠는가.
이 보고 싶은 열정이 시들기 전에 다시 찾아보는 오늘의 도봉산이 내 마음속에서 요동을 한다,
오늘은 대신 송추골 입구에서 여성봉 쪽으로 먼저 오르기로 했다,
오른쪽 솔고개 에서 시작하는 상장능선(한북정맥)을 바라보며 오뚝한 상장봉(543m)과 그 마루금을 다시 눈여겨보면서 바위 길을 오르다 혼이 난 그 순간을 생각해보며 다시는 그런 산행은 안한다고 스스로 약속한바있는 지역이라 자꾸만 돌아 보이기도 한다,
여성봉!
그 누가 그렇게 이름 지었으며 조물주는 어쩌다 이 은밀한 곳에 이런 名物을 調練해 놓았을까. 제천 금성동산의 남성바위가 그렇게 잘 생겼더니 서로 궁합이나 맞는지 알아봄직도 하겠다.
신기하기도 해서 자세히 살펴보려니 같이 간 집사람보기가 민망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부부만의 산행 얘기로 話題를 바꾸며 우리는 오봉(660m)을 향해 올랐다.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바위 위에다 또 저렇게 얹어 놓을 수 있을까 ! 역시 서울(경기 일원)에 사는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사람만 사는 곳인가 본다,
이렇게 좋은 산을 눈만 뜨면 볼 수 있고 오르기만 하면 안길 수 있으니 福받지 않은 사람이 어찌 이런 행운을 누리겠는가,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도 복을 좀 받긴 받은 모양이다,
칼바위로 해서 관음암과 천축사(天竺寺)를 둘러보고 다시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포대능선을 거쳐 송추계곡으로 내려오는 지난번 하지 못한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파란 하늘에 깍 아 세운 만길 봉우리라는 도봉산은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아니하고 떠나간 구름도 다시 오지 않는다는 인적 끊긴 가을 산의 설악산처럼 아름다움이 있고 외로움도 있으며 아울러 낭만과 그리움이 함께하는 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는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오로지 빨리 장명산까지 가서 정맥종주를 마치기에만 열중했으니 중간의 아름다움과 절경에 곁눈질 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만 해도 남해에서 이곳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에는 정말 힘도 들었지만 경비 또한 무지하게 들었다. 그때는 비박도 몰랐고 오로지 여관이며 식당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여관비도 아깝고 식대도 절약하기위해 손수 지어 먹으며 외로운 산길을 찾다보니 배낭의 무게가 오히려 늘어나는 실정이다.
쉬운 길 하나 없는 도봉의 주릉 길은 그야말로 山高水淸하니 天高馬肥라한 모양이다,
바위위에 바위가 얹혀있는 모습은 장독대의 포개진 독을 보는 느낌이고 설악의 공룡능선같이 보이는 암벽 사이길이 바로 秘境이었다.
북한산(836,5m)보다는 아우격인 도봉산(740m)이지만 도봉산은 울대 고개에서 우이암까지 전부를 한북정맥에 올려놓고 있지만 북한산은 한쪽 곁가지인 상장능선만 걸쳐있다,
북한산은 삼각산과 보현봉의 솟음과 날카로운 암릉만을 자랑하지만 도봉은 주릉 5km이상을 기암과 노송의 아기자기함으로 그 자태를 과시한다.
산은 높아야만 계곡도 깊고 도회지에서 떨어져 있어야 호젓하다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도봉은 서울 경기사람의 도시공원이 되었어도 우리의 낭만을 꽃피울 꿈의 자리는 항상 비어 있는 것이다,
도봉의 주릉은 암봉으로 시작하여 암봉에서 끝이 난다.
뜀바위, 피바위. 칼바위, 기차바위, 오토바이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난이도는 높지 않아도 실수로 추락이라도 한다면 치명타를 입을 그런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지만 안전시설만 잘 이용하면 별 문제 삼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포대능선은 옛날 대공포대가 있었던 649봉에서 자운봉과 마주보는 신선대까지를 말하며 아직까지 군사시설의 흔적이 남아있다.
좋은 날씨로 충분하게 도봉을 즐기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북한산의 그림자도 실컷 담아가는 발길은 가볍기만 하다.
아름다운강산
기도하는 바위 (혹시 이성계 바위는 아닐까?)
우리 부부도 저곳에 갔다 왔답니다,
.사진을 그렇게 찍어서 그렇지 별 위험하지 않았답니다,
투구바위라고 이름 지어봅니다,
포대 정상의 삼각점
도봉산의 주봉인 紫雲峰(740m)에서 북쪽으로 뻗은 이 능선은
중간에 대공포 진지인 砲隊가 있었다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다,
이 능선의 길이는 1.4km이며 한북 정맥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