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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영혼을 찾아 | ||||||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열 지음) 실천문학사 | ||||||
인구의 80%가 혼혈인 중남미, 그러나 막상 그들의 성과 이름은 모두.. 그렇다 모두가 아니 100%가 백인들의 성과 이름이다. 그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중남미는 결코 백인들의 세상이 아니다. 어찌 된 일인가. 이유는 단순하다. 혼혈 1세대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병기했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어머니의 성을 버리게 되었으니 아버지의 성만 남게 된 것이다. 왜? 마음속으로 백인이기를 바랬거나 아니면 백인들에게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과연 뉘 탓인가. 우리도 한 때 창씨개명이 유행했던걸 어찌 잊으랴 만서도 말이다.
쿠바혁명 이후 카스트로와 함께 쥐고 있던 1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고스란히 쿠바 땅에 내려놓고 아니 민중에게 반환하고 혁명이 기다리는 새로운 땅 콩고로 떠난다. 그러나 한마디 더 다짐하듯 카스트로에게 남기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들이 먹고 교육 받고 살아가는데 ‘국가가 뒷바라지 할 것’이기에…”라는 말로 자신이 여전히 혁명동지인 피델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을 전제하고 새로운 혁명의 땅을 찾아 떠날 수 있음을 밝힌다. 그랬다. 참으로 멋있다. 자랑스럽다. 진정한 혁명가의 모습이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광과 영화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그가 새로운 혁명을 찾아 떠날 때 누군가 체 게바라를 향해 말했다.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 먹을 줄 모르는 바보……’라고. 체가 대답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 뿐더러…” 라면서 여기에 한마디 더 덫 붙인다.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들이 많다네!” 체 게바라가 그렇게 쿠바를 떠난 후 숱한 고난을 겪어 낸 끝에 1967년 10월 9일 13시 10분이었다. 한방의 총소리가 들렸다. 아! 이 위대한 혁명가 체 게바라, 그러나 그는 허무하게도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한 민중이 단지 몇 푼의 상금을 받기 위해 신고함으로써 마리오 테란이라는 사람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 때 체 게바라의 나이는 39세였다. 극히 짧았으나 세계가 그의 생애를 찬양했듯이 그는 우리 지구촌의 영원한 지평 위에 생애를 묻었다. 인류의 영원한 담론 혁명의 씨앗으로 흩뿌려 졌다. 그래서 일까. 오늘 세계의 젊은이들은 체 게바라를 생각의 품에 품고 있지 않았는가. 마치 무슨 예쁜 꽃씨처럼 말이다. 하여간, 체 게바라의 사살은 체가 그렇게 저주했던 제국주의 미국은 물론 세계의 경악 속에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홀쭉한 배낭에선 ‘색연필로 덧칠한 지도’와 ‘두 권의 비망록’과 그리고 ‘노트 한 권’이 발견되었는데 ‘두 권의 비망록’은 <체 게바라 일기>로 간행되었으나 어쩐 일인지 ‘노트 한 권’은 지난 40년 동안 베일에 싸인 채 우리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 이 책은 우리가 그렇게 잊었던 ‘한 권의 녹색 노트’에 빼곡히 적혀 있던 시 69편과 이 시들이 왜 체 게바라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시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체가 엄청난 독서광이었을 뿐만 아니라 체가 단지 이런 시편들을 읽고 감상한 것만이 아니고 시를 썼던 시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시들이 체 게바라의 생각을 생성해 나갔다는 것을 차곡차곡 밝혀 나가고 있다. 이 시들이야말로 그래서 체의 생각과 사상과 철학이 담긴 마음이며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에서 읽어 내야 할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제국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인종 문제다. 체 게바라가 죽음을 짊어지고 뛰어든 곳, 혁명의 전장은 바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현지의 인디오나 흑인종을 노예나 성노리개 또는 상품이나 청소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백인들의 반인간적인 제국주의적 인식의 바다였으며 인간을 단지 자연으로 보고 있는 인종의 숲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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