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훈록
성명 전태선
생존기간 미상 ~ 미상
출생지 평남 평양
운동계열 친일파제거
훈격(연도) 독립장 (63)
공적내용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09년 평양에서 목재상에 종사하고 있을 무렵, 이재명(李在明)의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계획에 적극 동조하여 동지를 규합하는데 앞장섰다.
1909년 11월 하순, 이재명·김정익(金貞益) 등 8명의 동지와 함께 암살대상을 이완용과 이용구로 우선 압축하여 그에 따른 준비를 논의하였으며 이어 1909년 12월 6일밤, 평양(平壤) 박태은(朴泰殷)의 집에서 동지들과 다시 모여 세부계획을 논의하여 이재명·이동수(李東秀)·김병록(金丙錄)은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을 처단하고, 김정익·조창호(趙昌鎬)는 일진회의 이용구(李容九)를 처단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오복원(吳復元)·박태은·이응삼(李應三) 등은 거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며, 조창호와 그는 권총과 단도 등을 구입, 서울로 운반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1909년 12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이재명은 명동성당을 나서는 이완용과 그 차부를 자살(刺殺)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그와 이재명 등 동지들은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그는 1910년 5월 18일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註·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253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5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15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475∼477·484·486·489·490·492∼494·499·502·503·515·520·21·524·529·554·555·561∼563·565·566·568면
출처: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