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8> 오뎅과 어묵(상) 일본 어묵, 네리모노를 만나다
말캉, 뽀득 어육에 따끈한 국물, 부산서도 일본서도 몸과 마음 덥히는 '소울푸드'
일본 오사카 히라노구(平野區) '이시바시 이자카야'의 오뎅. 어묵, 무, 스지, 삶은 계란 등속이 작은 대접에 소담하다
- 부산 대표음식 어묵의 원류인
- 일본의 '네리모노'는
- 찌는 가마보코, 굽는 치쿠와
- 튀기는 텐푸라로 나뉜다
- 오사카의 60년 된 상점에서
- 전통 방식의 네리모노를 맛봤다
2월 끝 무렵. 매화꽃 사이로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추적추적 오사카 거리를 적시고 있다. 비 내리는 오사카는 아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옷깃을 여미는 손등에 빗방울이 후드득 듣는다. 몸과 마음이 촉촉이 젖어드는 저물 무렵, 따끈한 '어묵탕' 한 그릇으로 몸을 지지고 싶다. 오사카 히라노구(平野區) '이시바시 이자카야'의 문을 연다.
이시바시 타츠히레(49) 씨 부부가 운영하는 이자카야다. 대여섯 평 실내에 다찌를 앞에 두고, 주인장과 나그네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한국에서 왔다 하니 모두 반갑다고 수인사를 한다. 사케와 정갈한 안주가 나오고, 몇 순배 사케가 돌았을 때 오뎅이 나온다. 어묵 무 스지 삶은 계란 등속이 작은 대접에 소담하다. 따끈한 오뎅 국물이 짜르르.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이 좋다. 무도 간이 잘 배였고 스지도 부드러우면서 식감이 괜찮다. 사케가 오뎅과 만나 몸을 편안히 데워준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사람도 따스할 즈음, 나그네가 대뜸 주인장에게 묻는다. "오뎅은 일본사람에게 어떤 음식입니까?" 주인장이 씨익 웃으며 답한다. "일본 그 자체지요." 하~! 우문현답이로고.
'부산어묵의 전성시대'다. 밥반찬이나 간식으로 활용되던 어묵, 노점에 서서 먹던 길거리 음식이 이제 카페형 공간에서 커피나 맥주와 함께 먹는 어엿한 독립된 음식으로 각광받는다. 특히 부산의 어묵회사가 주축이 되어 부산 발(發) '음식의 창조적 혁신' '어묵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더욱 그렇다.
일본 오사카 66년 전통 모리오카 상점의 각종 덴푸라
■오뎅, 간또, 가마보꼬, 덴푸라
우리나라 어묵 역사를 살펴보면 예나 지금이나 부산에서 시작하여 발전하고 전파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럼 이 어묵은 어디서 왔을까? 조선시대 문헌에 그 비슷한 음식의 기록들이 전해져 오는데, 일본과 다양한 인적 물적 교류로 접하게 된 음식이라는 데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조선통신사가 일본 사행(使行) 때 접대받은 음식 중 어묵의 원류가 있었다 하고, 초량왜관 시절 조선인에게도 꽤 인기 있었던 고급 음식 중 하나가 어묵요리였다는 점,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이후 대중화를 거쳐 우리네 식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기 시작한 점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물론 당시 이름은 어묵이 아니었다. 어묵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우리 국민이 우리식으로 바꿔 부른 이름 중 가장 보편화되어 정착된 이름이다. 그러면 그 시절 한국에서 불리던 어묵의 이름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아직 널리 쓰이는 '오뎅'이 대표적이다. 중년 이상 사람들은 들어봤음직 한 이름으로 '덴뿌라, 가마보꼬, 간또' 등이 있다.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이름이다. 그럼 왜 우리 어묵에 이렇게 다양한 일본식 이름이 붙었을까? 이를 알려면 여러 종류의 일본 어묵을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에서 어묵은 네리모노(練り物)로 통칭된다. 생선살을 으깨거나 갈아서 반죽을 만들고, 여러 식재료와 함께 다양한 모양으로 성형한 음식이 네리모노이다. 일본 어묵요리의 총체가 바로 네리모노다. 네리모노(練り物)는 일본 선사시대인 고훈(古墳, 3~7세기)시대 생선살을 나무막대기 등에 붙여 불에 구워 먹었던 것이 시작이다. 그 이후 제조방법에 따라 찌는 것을 가마보코(蒲鉾), 굽는 것을 치쿠와(竹輪), 튀기는 것을 텐푸라(天ぷら)로 대별하면서 지극히 일본적인 음식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가마보코는 헤이안(平安, 794-1192)시대 영주를 위한 잔칫상에 생선 으깬 살을 구워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갈아서 으깬 생선살을 대나무에 붙여 구운 것으로, 그 모양이 부들 꽃대와 비슷하다 하여 '가마보코'라 했다. 에도(江戶, 1603-1868)시대부터는 쪄서 조리하는 방식으로 정착했다. 반죽한 생선살을 반달 모양으로 쪄낸 한펜(半片)이 대표적이다.
에도시대 때 막대기에 생선살을 붙여 구운 후, 막대기를 뽑아내면 속이 빈 원통 모양 어묵이 되는 것을 마치 대나무 통처럼 생겼다 하여 치쿠와라 이름 붙였다. 텐푸라(天ぷら)는 에도시대 말 류큐국(현 오키나와)과 교류가 있던 사쓰마(가고시마)에서 기름으로 튀겨내는 요리법으로 가마보코를 만든 것이 시초다. 으깬 생선살(스리미, すり身)에 새우, 오징어, 연근, 톳 등 식재료로 덴푸라를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생선살과 전분만으로 튀겨낸 쟈코텐(雑魚天)이다.
츠미레(摘入れ)는 생선살 반죽으로 경단을 만들어 탕에 넣어 먹는 음식이고, 다테마키(だてまき)는 다진 생선살에 달걀을 풀어 두껍게 말아 부친 계란말이음식이다.
우리가 아직 어묵과 혼용하는 오뎅은 여러 가지 어묵을 무, 곤약, 토란뿌리, 삶은 달걀 등과 함께 국물에 푹 삶아낸 요리다. 무로마치(室町, 1338-1573)시대, 두부를 꼬치에 꽂아 된장을 발라 구워먹던 '덴가쿠(田樂)'라는 음식에서 시작됐다. 덴가쿠는 모내기 때 풍년을 기원하며 행하던 춤과 노래, 즉 들놀음이었다. 그때 야외에서 구워먹던 음식 또한 덴가쿠라 했다. 이후 에도시대에 상업이 발달하자 '편하고 빠르고 맛있는' 패스트푸드식 덴가쿠를 생각해 낸다. 덴가쿠를 다시마 국물과 진간장으로 간을 맞춰 따뜻한 탕으로 팔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오뎅이 된 것. 이를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關西) 사람들이 도쿄 지역인 칸토(關東)지방에서 먹는 음식이라 하여 '칸토다키(関東炊き)'라 불렀다. 우리가 어묵을 지칭하던 '간또'가 여기서 파생됐다.
이렇듯 우리는 일본의 다양한 어묵음식을 우리 편리에 따라 '어묵'으로 통칭하여 불러왔다. '부산어묵'은 한국전쟁 이후 자갈치 시장 주위 어묵 공장에서 주로 생산했는데, 생선살을 통째로 갈아 전분과 섞어 반죽한 후 기름에 튀겨냈다. 하여 지금까지도 부산 사람의 사랑을 받는 부산어묵은 거의 튀김어묵이니, 그나마 '덴푸라'가 그 의미로는 유사하다 볼 수 있겠다. 오뎅은 어묵과 함께 여러 식재료가 들어간 탕요리이므로, 식재료인 부산어묵과는 다른 음식이다.
지난달 말 일본 오사카 히가시 스미요시구(東住吉區) 고우마가와(駒川) 상점가의 모리오카(森岡)상점. 창업자 모리오카 부부가 네리모노를 판매하고 있다. 최원준 제공
■66년 전통 모리오카 상점에서
오사카 히가시 스미요시구(東住吉區) 고우마가와(駒川) 상점가의 모리오카(森岡)상점. 78세 창업주 모리오카 상과 사장인 아들(40)이 2대째 66년간 지켜온 네리모노 가게이다. 40여 종 네리모노를 생산하는데, 한때는 100여 가지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취재 차 왔다고 하니 "자랑할 만한 것도 없는데…"라며 쑥스러워 한다.
모리오카 상점은 아직도 40년 된 어육분쇄기로 연육(스리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기계의 나이가 2대 사장과 같다. 옛날에는 분쇄기의 절구가 돌이었고 절굿공이는 나무였단다. 지금은 스테인레스 절구에 강화플라스틱을 입힌 스텐레스 공이를 사용한다. 이들 부자는 공장 곳곳을 보여주며 각각의 네리모노 제조법과 가마보코 찜통, 치쿠와 굽는 기계 등을 친절하게 소개해 준다.
진열장에는 온갖 네리모노가 진열되어 있는데,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덴푸라 종류가 주로 눈에 들어온다. 야채볼, 오징어볼, 꽈리고추, 새우, 목이버섯, 톳, 감자, 고구마, 연근, 우엉…. 종류가 꽤 된다. 한펜 가마보코와 치쿠와도 보인다. 새우 덴푸라 하나 집어먹는다. 연육이 부드럽다. 사이사이 새우 살이 톡톡 터지며 혀끝을 희롱한다. 한 개만 맛보려 했는데,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로 직행한다. 담백하면서도 아삭한 연근 덴푸라, 매콤쌉싸레한 맛이 도는 꽈리고추 덴푸라, 상쾌한 해조류 풍미가 작렬하는 톳 덴푸라…. 흥겨운 주전부리를 오래도록 즐기고 또 즐긴다.
섬나라 일본의 소울 푸드, 네리모노. 사면이 바다여서 자연스럽게 먹게 된 일본의 향토음식은 이웃나라 한국의 어묵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돌고 돌며 상호작용하는 것이므로 지역 사람의 정체성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고 정착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회에는 부산의 제대로 된 향토음식 '부산어묵'의 문화사를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