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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 제노비스 사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키티 제노비스 사건(Murder of Kitty Genovese)은 1964년 3월 13일 뉴욕 주 퀸스에서 캐서린(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강간살해당한 사건으로, 방관자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사건의 전개[편집]1964년 3월 13일 금요일, 뉴욕 주 퀸스 지역에서 키티라고 불리던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28살의 여성이 지배인으로 일하던 술집에서 야간당번을 마치고 귀가하던 새벽 3시쯤 한 수상한 남성에 의해 자상을 입는다.[1] 제노비스는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구조 요청을 하였고, 아파트에 살던 동네 사람들은 불을 켜고 사건을 지켜보았다. 제노비스를 살해한 범인인 모즐리는 후에 법정 진술에서 집집마다 불이 켜졌지만 사람들이 사건 장소로 내려올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2] 갑자기 불을 켜고 지켜보던 사람 중 한 명이 사건 장소로 오지 않는 대신 "그 여자를 내버려 두시오."라고 소리를 질렀다.[2] 그러자 모즐리는 바로 도망을 쳤고, 제노비스는 난자당한 몸을 이끌고 어느 가게 앞으로 드러누웠다.[2] 그러자 모즐리는 다시 나타나 제노비스의 온몸을 난자했다. 제노비스는 계속 소리를 질렀고, 또다시 아파트 불이 켜지자, 모즐리는 또 도망을 갔다.[3] 제노비스는 힘겹게 자신의 집이 있는 아파트 건물 복도로 걸어갔다. 하지만 몇 분 후에 모즐리가 다시 나타나 제노비스를 강간했다.[3] 이 살인사건은 새벽 3시 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일어났다. 집에 불을 켜고 제노비스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총 38명이었고, 그들은 직접 사건 현장으로 내려가 제노비스를 구출하지 않았다.[4] 사건이 끝나고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으나, 그녀의 목숨은 이미 끊겨 있었다. 사건의 여파[편집]처음에 이 사건은 뉴욕 타임스지에 달랑 네 줄짜리 기사로 실렸다. 그러나 나중에 뉴욕 주의 섹션 담당 편집자 로젠탈이 그 사건을 목격하고도 도와주지 않은 38명의 방관자들이 있었음을 발견했다.[5] 로젠탈은 뉴욕 타임스지에 38명의 방관에 대하여 기사를 실었고, 미국 전역에 38명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되었다.[4] 뉴욕 타임스의 독자들은 38명의 방관자들을 맹비난 하였다.[4] 그러나 뉴욕 타임스의 보도는 사실과 매우 다르다. [6] 달리와 라테인은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이에 관련한 심리 실험을 실행했다(책임 분산). 방관자 효과[편집]![]() 방관자 효과 또는 제노비스 신드롬은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또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경우,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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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 신드롬 방관자 효과 왜 일어날까
제노비스 신드롬은 다른말로 방관자 효과라고 하며 대중들이 많은곳에서 도움을 청하면 서로 도우지 않고 가만히 있는것으로 이것이 도덕성의 타락이 아닌 서로의 책임전가로 인한 결과인것이 밝혀졌습니다. 제노비스는 뉴욕의 집에서 살해를 당하였는데 당시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 살해당하였고 가장 유명한 실험은 라테인의 실험이 있습니다. 대학생들을 위한 집단 토론명목하에 다른 사람과 전화로 통화하게하였고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뭔가 이상하다 라며 조용해졌으며 이것은 미리 각본이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때 단둘이 혹은 3명정도의 경우 즉각 보고가 들어갔지만 사람들이 많은경우는 남들이 알릴것으로 생각하여 서로에게 미루는 책임분산효과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여러사람마다 사람이 많은 수록 그 숫자 행동하는 수는 줄어들게 되고 불안하다고 하니 남들이 가만히 있길래 나도 가만히 있었다라는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제노비스 신드롬은 그래서 대중적 무관심 방관자 바이사이드 이펙트정도로 표현을 하고 있으며 비슷한 단어로 깨인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출처☞→▶ http://sergiojang.tistory.com/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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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 문제에 관심도 가져 보곤 하였습니다,,1
자칭 장로 이명박시대 ,,그리고 노무현
하지마는 결과는 ...어느쪽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역사를 통하여 봅니다,
한쪽은 친일파요 ,,한쪽은 애국심이 있어 보이나 ,,,
결국 반 성경적인 사회운동 내지는 동성애까지 갑니다,
또한 약자의 편에 서려 노력하여도 보았습니다,
하지마는 ,,그 약자가 힘이 생기어 강자위 위치에 섰을때는 ,,,
그 역시 약자를 괴롭히고 있음 너무나 흔하게 많이 보아 왔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쉬운 예가 군대가 됩니다,
졸병들을 구타하고 못살게 구는 고참이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도 졸병때는 힘들었으나 ,,,고참이 되었을때는 역시 똑 같은 일들을 합니다,
이러한 반복은 계속 됩니다
극히 개인적인 저의 생각 입니다마는
세상 일에는 될수 있는데로 방관자가 ,,,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의미는 선한 사마리안의 가르침을 벗어나서나기 까지
또는 야고보서의 올바른 종교행위의 일까지 벗어나는 생각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노비스(Genovese) 신드롬" 이
교회안에 있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포장까지 하여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 문제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쓸 것이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우선 씁니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되며는 쓰도록 합니다,
다만 한가지 ..!
대부분의 교인들 ..또는 구원받은 ,,성도들 조차도 ,,,,
본인의 구원과 본인의 신앙에만 관심을 가지지
하나님의 의와 공의와 자비에 대한 ..
즉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외면하여 버림을 봅니다,
가장 좋은 예가 ..
말씀에 대한 보존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무관심들 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점인 즉 육신 가운데 거하는 우리의 실상이겠지마는
문제는 이것을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으면서 ,,,적당히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포장 하는것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옆에서 보기가
참으로 화가나고 역겨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 입니다,
그리고 ...그런한 방관자들
그리고 ...포장된 방관자들 이들의 자세 때문에
한 사람 두사람 ,,,한교회 두교회
그리고 ,,,,이 나라 저나라가 ,,,미혹과 배교의 길에 들어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 기독교라는 범주에서 보이는
"삶아진 개구리 신드롬 (boiled frog syndrome)"
이것과 더불어
제노비스(Genovese) 신드롬.... 이것 역시
너무나 흔하게 기독교라는 범주안에서 ..보고 있는 현상 인 것 같습니다,
@모래시계 저도 그 목격자 중에 한 사람처럼 죽어가는 지체들을 보면서도 무감각하게 지나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요즘 사람들에게 그 골목으로 가면 강도 만나기 쉬운 곳이라고 아무리 일러주어도 들은 체도 안한다는 겁니다. ㅠㅠ~
@즐거움 맞네요..우리 언니들 다 교회 다닙니다...말 그대로 교회다녀요...모여도 통하는 구석이 없어요..관심도 없고..처음엔 제가 이단에 빠졌나 걱정하드라구요...
@거울맘 성경 말씀이 무오하고 하나님 말씀들이 보존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단이 되는군요 ㅠㅠ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할때는 필라델피아 교회시대였고
필라델피아 교회 는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했네요
^^
(계 3:10, 킹흠정)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인내의 말을 지킨다는걸 뼈져리게 실감합니다..
개역성경들 ( NIV, NASB, ESV, ASV.. ) 이런것들이 KJV 를 변개한 성경들입니다.
진화론을 믿고 마리아 숭배했던 웨스캇 호르트의 수정 그리스본문에 근거해 번역된것들이 개역성경들입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점차 방관자가 되어 가고 있는 제자신을 돌아봅니다.
올바른 성경, 방언, 예언,신사도운동, 바벨론 문화, 등등등....
그러나 들고 쉽지 않은 사람들은 끝까지 귀를 막으니
제가 점점 방관하는 자세를 갖게 되더군요.
고쳐져야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즐거움님 ,,거울맘님 ,,브니엘님
모두 절대로 방관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상처나고 ..파괴됨을 이야기하여도
오직 자신들의 일과 ,,,혹은 자신들의 믿음에만 관심 갖고 ...반응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정작 한량 없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게는 관심이 없는 자들
그들이 바로 그들이 방관자들 입니다,
즉 믿음은 있다 하면서 믿음의 근원인 하나님에 관하여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전 개인적으로 ..슬며시 이런 이약기를 던졌을때
그 들의 눈동자를 봅니다,,,,여전이 썩은 동태눈이며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 깨우치지 않습니다,,,,오히려 ..자신을 합리화 하기 위하여
반격을 가지고 굳게 문을 닫아 버립니다,
목마른 자에게는 어떻게든 ,,시냇가로 인도하여야 하지마
시냇가가 필요 없는 자에게 생수를 주려 하며는 ..뒷발에 채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알게 될수록 확실한 것은 내가 지독한 죄인이구나... 입니다.
진정 예수님 없이는 지옥은 따놓은 셈이지요. 남의 믿음과 분별력을 판단하다보니 나역시 오십보 백보이더이다.
주님앞에서 하릴없는 이 죄인에게 은혜를 구해봅니다.
썩어가는 성도들과 교회안에서 진정 빛과 소금역할을 감당했는지.
참담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나 역시 오십보 백보.....옳은 말씀입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일 때가 많거던요.
주님의 한 없으신 은혜와 긍휼히 여기심 아니고서는 똑같은 죄인일 뿐이지요.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무익함을 깨닫는 것이
주님과의 동행에서 가장 첫 걸음이라 생각 합니다,
우리들이 그들과 똑 같은 무익한 자라는 경험과 깨달음이 있어야
신앙에 관점이 자신에게서 떠나 ,,,하나님의 거룩하심 만을 바라 볼수가 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은혜를 찬송할 수 있다 생각 합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구원이 깨달아지고
오로지 ,,,십자가의 도를 이루신 ,,그 분만을 찬양케 되는 것이 아닐려는지요?
즉 이뜻은
아직도 구원위에 행위를 더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할수 없다는 자신의 무익함을 아직 경험치 못한
더 나가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히 있을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구원을 주신 그분의 은혜와 거룩하심을 생각하며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이루어가려는 것이 ..은혜로 구원받은자의 참된 일이며 행위이지
하나님의 은혜를 반쪽자리 초대권으로 여기며 구원위에 자기들의 업적을 더하는 자들이 지금 너무 많습니다,
@모래시계 감사합니다. 맞는 말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