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가라지 (마 13: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 시간에 “마음의 가라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에 우리의 최고의 맹방인 미국의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괴한에게 피습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여러 가지의 생각을 했습니다.
즉 민족주의자라고 해서 다 민족주의자가 아니고, 통일주의자라고 해서 통일주의자가 아니며, 독도 지킴이라 해서 다 순수한 독도 지킴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이름 뒤에 악한 세력이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깨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사탄이 뿌린 가라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라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씨앗을 뿌리시지만 사탄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온갖 불신앙과 죄악을 우리에게 덧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 마음에도 죄가 있습니다.
그럼 마음의 가라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1. 새 마음을 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24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여기 놓쳐서는 안 될 말씀이 있어요. 이미 좋은 씨를 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밭에 좋은 씨를 뿌려주셨습니다. 좋은 마음입니다. 그 씨는 바로 예수 믿는 자의 마음에 심어주신 영생의 씨요, 중생의 씨며, 하나님 자녀의 씨입니다.
신학적으로 중생이란 사람 안에 새 생명의 원소를 심고 영혼의 주관적 성향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행위로 주관적 성향의 재창조라고 했습니다. 고전1:30에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을 때 새 생명이 심겨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도 범죄하여 넘어지지만 이 생명 자체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범죄할 수도, 약할 수도, 부족할 수도 없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요일3:9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 씨는 보통 씨가 아닙니다. 좋은 씨입니다. 영생의 씨요, 하나님 자녀가 되는 씨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날 거룩한 씨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을 상속자의 씨요, 모든 악과 원수를 이기는 승리의 씨입니다.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이 생명을 주셨음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어야 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악과 싸우기 전에 이미 예수 안에서 새사람 되게 해주셨음을 믿는 의연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의롭고 승리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에 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염려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단 의연하게 당황치 않는 것이 믿음으로 누리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벧전3:6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에 서시기 바랍니다.
2. 신앙적으로 늘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 때 원수가 가라지는 덧뿌리기 때문입니다. 25-28절에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사람들이 잘 때” 이 말씀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잔다는 것은 육체의 잠이 아니고 신앙의 잠입니다. 즉 우리들이 신앙 안에서 근신하지 못할 때 사단이 가라지를 뿌립니다.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 보고 기도해야 하는데 순종하지 않았거나 순종함에 부족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사탄이 우리 마음에 악을 뿌리기 때문에 악이 나오고 죄가 나오고 절제하지 못하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래서 벧전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했고, 사탄으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합니다.
우리 믿음이 조금만 떨어져 보세요. 시험이 들고 시험이 찾아옵니다. 누구 탓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깨닫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 잘 섬겨야 합니다. 이런 경건한 삶이 없으면 모래 위의 집과 같고 나무나 풀로 지어놓은 공력 없는 집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의 잠을 자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가라지는 제거하되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28-30절에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여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했습니다.
본래 가라지는 뿌리가 무성한 잡초입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다가는 곡식까지 뽑히고 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는 그대로 두는 것이 당시 농경법이었습니다. 여기에 아주 귀한 의미가 있어요.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더욱 넘어지고 쓰러지고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는 일단 가만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뽑으려고 하다가는 더 넘어지고 더 쓰러지고 더 낙심하고 상처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경험했던 체험입니다. 바울은 롬7:19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고 하면서 무엇이라고 탄식합니까?
롬7:21-24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했습니다.
율법으로 죄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말이고, 스스로 이기려고 할 때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믿음이 게을렀음을 반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나오고 싶지만 끊지 못한 것이 많아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관계하지 말고 일단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성령의 은혜를 받다보면 자동으로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추수 때까지 두자고 하니까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두자고 말하면서 악과 악인에 대해서 체념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것 같아도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의 해결법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성경 어디에도 우리 마음의 죄를 방치하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오직 복음으로 오직 은혜로 해야 합니다.
30절에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여기 추수 때란 역사적 종말의 때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신약시대가 추수 때입니다. 왜냐하면 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믿고 은혜를 받으면 죄악 된 세상의 속성은 사라지면서 종말을 고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성령 충만 받을 때가 바로 추수의 때입니다.
그래서 눅3:16-17에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미 태우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요4:35에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후6:2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바로 지금이어야 합니다.
지금 죄를 해결하신 복음의 말씀과 죄를 소멸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들여 태워야 합니다. 이 때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어 제거됩니다. 그래서 첫 곡식을 드리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고 성령이 임하자 가라지와 같던 불신앙적이고 완악하던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재림 때만 태울 것이라고 말합니까? 이 좋은 때 다 놓치고 인생을 허송세월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태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죄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늘 하나님을 높이 경외하고 엎드려 감사하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죄인에게는 선지자적인 목소리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복음의 길을 제시하고 사랑으로 감싸면서 엎드려 기도해 주는 제사장적인 사역이 더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한국과 세계를 위하여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과 성령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반면 기도 없이 목소리만 높이다가는 도리어 낙심을 주거나 집단적 자괴감에 빠지고 악인들에게 이용되어 전도의 길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기도하면서 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의 추수하는 그 역사가 지금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가라지 같은 죄악에 고통 당하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우리 하나님이 처리해 주셔서 천국의 참 알곡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구원과 승리의 복음을 굳게 믿고 늘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의 악한 가리지를 뽑고 또 뽑아줄 수 있는 알곡 같은 참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