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차별과 경쟁을 조장하며 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짓밟는
일제고사 시행 즉각 중단하라!
지난 10월 8일, 전국의 초등 3학년을 대상으로 전국일제고사가 시행된 이후 이제 일제고사는 전 학년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일제고사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문항으로 치루는 시험으로, 이 결과는 2010년부터는 「교육정보 공개법」에 따라 학교별 성적이 모두 공개될 예정이다. 결국 전국의 모든 학교와 학생들은 1등부터 꼴등까지 그 순위가 매겨지게 된다.
일제고사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학업성취도 향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제고사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객관식위주의 시험이 될 수밖에 없으며, 문항자체도 다양할 수 없다. 결국 사교육을 통해 일제고사 출제경향을 사전에 파악하고, 관련한 문제풀이를 반복 훈련한 학생이 유리한 시험인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과정이야 어떻든 시험성적만 잘 받으면 그만이며 부모들은 막대한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벌이에만 집중하면 된다. 교사들은 정부가 정한 방침에 따라 천편일률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시험성적 향상을 위해 학생들을 열심히 쥐어짜는 일만 잘하면 될 것이다. 결국 일제고사에 맞춰 우리교육은 점차 황폐화될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육현장이 경쟁 속으로 내몰리면 내몰릴수록 통합교육현장의 장애학생들 또한 주변으로 내 몰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일제고사 시행과정에서 교과부는 일제고사 시행을 거부하며 현장학습을 떠나겠다는 교사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주문하면서도 해당 학교의 장애학생들이 일제고사를 볼 것인지의 여부는 해당 학교장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였다. 결국 자기학교의 평균점수가 낮아질 것을 우려한 일부지역의 학교장들은 일제고사 시행일에 장애학생들을 현장학습에 보내기도 했다. 이는 학교장의 눈에 장애학생이 학교성적을 갉아먹는 불필요한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일제고사가 전면화되어 학교평가가 곧 일제고사 성적으로 대체되는 시점에 이르게 되면, 장애학생은 비장애학생들의 눈에 시험공부에 도움이 안 되는 귀찮은 존재로, 교사들의 눈에 평균점수를 갉아먹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학부모들의 눈에 학교 이미지만 나쁘게 만드는 가치 없는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제 통합교육은 이상만 남고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난 4년간 전국 장애인교육주체들의 피눈물나는 투쟁을 통해 장애인교육의 문제는 차츰 진전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통합교육 현장은 어렵기만 하다. 현재 장애학생들과 장애인부모, 특수교사들이 통합교육의 어려움으로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인식의 문제이다. 장애학생을 비장애학생과는 다른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 가치 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이 여전히 학교현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에 자신도 모르게 비장애학생들은 장애학생들을 괴롭히고, 일반 교사들은 장애학생을 방치하고, 학교장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장애인 교육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 역시, 결국은 이와 같은 인식 의 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 현재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영어몰입교육, 우열반, 일제고사와 같은 학력신장교육에만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그들의 눈에 장애인 교육은 돈만 많이 들고 학업 능력 향상과는 별관계도 없는 불필요한 교육일 뿐이다. 덕분에 장애인 교육은 더욱 황폐화되어, 최근 시행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허울뿐인 법규로 전락하고 있다.
일제고사는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는 일제고사가 시험성적을 놓고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조장할 뿐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을 가치 없는 존재로 인식하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고사를 통해 학생들은 시험지에 답을 적는 능력은 향상될 수 있지만, 이 사회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은 향상될 수 없다.
이에 전국의 장애인교육주체들은 경쟁과 차별을 조장하며 통합교육 현장을 짓밟고 있는 일제고사 시행을 강력히 규탄하며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저항하는 모든 시민사회계와 함께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 특히 일제고사 시행에 반대하며 현장학습을 떠났다는 이유로,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시험보지 않을 권리를 고지했다는 이유로 해임당한 7명의 교사들이 현장에 다시 복직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 시행을 즉각 중단하고 해임된 교사를 원상 회복시키고, 장애학생들의 통합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한다.
2008년 12월 2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