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을 처음 만난 곳은 태백산이었다. 태백산 천제단을 지나 문수봉에 이르렀을 때다. 너덜지대로 이루어진 문수봉 주변의 나무에 희고 소담한 꽃이 피었다. 무엇인가 궁금하였으나 처음 보는 꽃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그 꽃이 마가목 꽃인 줄 알게 되었다.
마가목은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이다. 키는 10m 이내로 자라는 비교적 아담한 소교목이다. 그러나 산꼭대기에서 비바람에 시달리며 자라는 마가목은 4~5m의 작은 키로 자란다. 설악산 대청봉 북쪽 능선에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마가목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아래 지역의 숲속에 자라는 마가목은 주변의 나무들과 경쟁하며 크게 자란다. 가리왕산, 태백산 등에 자라는 마가목은 키가 훌쩍 크다.
마가목은 한반도 중부 이남에 자생한다. 제주도, 경상도, 전라도,강원도의 높은 산지에 자란다. 간혹 경기도와 충청도의 높은 산에서도 눈에 띈다.
마가목의 학명은 Sorbus commixta Hedl.이다. 5~6월에 흰 꽃을 피우는데 작은 꽃이 여러 개 무리지어 핀다. 열매는 10월에 붉게 익는다. 관상수로 많이 기르며 나무껍질과 열매를 약용으로 쓴다.
약용으로 쓰이는 나무 중에 헛개나무와 벌나무가 있다. 두 나무는 알콜 해독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나무다. TV방송에서 헛개나무차로 극성스럽게 선전하는 주인공이다. 그런 이유만으로 헛개나무와 벌나무는 깊은 산중에서 수없이 살해되었다. 산적들의 전기톱에 잘리거나 쇠도끼에 찍혀 도살되었다. 산비탈에 쓰러져 껍질이 벗겨지고 수천 개의 조각으로 토막이 났다. 알콜 중독에 쓰러질 사람들을 대신하여 무참히 쓰러져 죽었다.
어느 가을 날, 가리왕산을 등산할 때였다. 커다랗게 자란 나무에 붉은 열매가 가득 달렸다. 그런데 어쩐지 그 주변이 소란하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가목의 줄기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마가목의 붉은 열매를 채취하려고 가지를 잡아당겨 찢은 것이다. 이런 사태는 비단 가리왕산에서뿐만 일이 아니다. 화악산 중봉을 가는 산길에서도 무참히 쓰러진 마가목이 발견되었다. 겨우 몇 그루만 자생하는 마가목이 톱에 잘려 죽었다. 헛개나무와 벌나무에 이어 그 다음으로 희생되는 나무가 바로 마가목이다.
마가목의 줄기는 거칠어 보인다. 잎은 아카시나무 잎처럼 여러 장이 매달려 달린다. 초여름에 피는 마가목의 꽃은 커다란 꽃다발을 이룬다. 하나하나는 작은 꽃이지만 작고 귀여운 흰 꽃이 모여 작은 다발을 만들고 작은 다발이 모여 소담한 꽃다발을 만든다. 그 모습은 마치 화단에 가꾸는 수국을 연상시킨다.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을 상징하듯 초록빛 잎 새와 어우러진 흰 꽃은 시원스럽다.
그러나 마가목의 진면목은 가을에 익는 붉은 열매에 있다. 풍성한 꽃송이만큼이나 많은 열매가 줄기마다 가득 달리는 것이다. 송이송이 불꽃송이를 이루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마가목의 붉은 열매는 낙엽이 진 뒤에도 남아 있어 추운 겨울에 더욱 빛난다.
한때 마가목은 정원수로 인기 품목이었다. 신록의 계절에 피는 흰 꽃도 시원하지만 낙엽이 지는 계절에 붉게 남아 있는 열매가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교나 정원에 심어진 마가목은 거의 수입품이다. 서비스 트리라는 이름을 가진 유럽의 마가목이 있고 열매가 유난히 붉고 무더기로 달려 오래가는 미국 마가목이 있고 붉은 열매에 흰빛이 도는 중국 마가목도 있다.
우리나라의 것은 당마가목과 마가목의 두 종류로 구분한다. 대개 큰 잎에 달린 작은 잎의 수효로 구분한다. 작은 잎의 수가 열세 개 이상이고 잎의 뒷면에 흰 빛이 돌면 당가목이다. 작은 잎의 수가 아홉에서 열세 개이고 잎의 뒷면이 녹색이면 마가목이다.
마가목은 오래전부터 한방에서 약용으로 이용되었다. 붉은 열매를 마가자라고 하여 처방하는데 열매가 익으면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쓴다. 물레 달려 복용하는데 이뇨, 진해, 거담, 장장, 해갈 등에 효능이 있다. 신체 허약이나 기관지염, 폐결핵, 위염 등에 쓴다.
민간에서는 붉은 열매를 술에 담가 마가목주를 빚어 마신다. 보통 반년 이상 숙성시켰다가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마시면 피로 회복과 강정작용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마가목을 번식시키려면 종자를 따서 파종하는 방법이 좋다. 공해에도 강하고 이식도 잘 되고 토양도 가리지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도시 학교의 정원수로 많이 심어 가꾼다. 그러나 습한 곳을 싫어 하므로 배수가 잘 되는 땅이어야 한다.
마가목은 높은 산에 자란다. 그것도 산 정상의 언저리에 자란다. 산 꼭대기에서 하얗게 핀 마가목을 만나면 문득 떠오르는 동요가 있다.
산할버지 구름 모자 썼네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모자 벗겨오지
마가목은 신선처럼 자란다. 태백산 문수봉에 자라는 것도 그렇고 설악산 대청봉에 자라는 모습도 그렇다. 이렇게 보면 마가목은 산할버지로 불리는 산신의 모습이다. 그런 나무를 약에 쓰겠다고 가지를 찢고 줄기를 베는 인간들의 행위가 못내 얄밉다.
첫댓글 씁쓸한 이야깁니다.정말 인간은 자연을 소중히 아낍시다.
낙엽진후에 달려있는 마가목 열매는 자연의 진품명품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