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암벽에 ‘이순’을 새긴 한국판 워렌 하딩
글 이영준 기자\ 사진 조문경 기자
현대 거벽등반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 클라이머 워렌 하딩. 그는 1958년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엘캐피탄의 거벽에 매달린 끝에 이곳에 처음 열린 길인 노즈(Nose) 코스를 올랐다. 그런데 여기 또 한사람의 클라이머가 있다. 한국인 최초로 엘캡에 ‘세 마리 해마’라는 뜻의 ‘트리 시 호스(Tree sea horses·Ⅵ/5.9/A5)’ 루트를 개척한 곽효균(60)씨.
‘트리 시 호스’를 등반 중인 곽효균씨. 4월 15일 등반보고회를 갖는 곽씨는 요세미티 빅월등반 안내가이드도 준비 중이다.
그는 2003년 첫 발을 떼었던 그 길을 5년 동안이나 꾸준히 올라 2008년에야 그 끝에 닿았다. 엘캡 동남벽 이른바 ‘아메리칸 월’에 ‘퍼시픽오션 월’과 ‘시 오브 드림’ 루트 사이에 개척한 18피치의 ‘트리 시 호스’를 완성하기 위해 그동안 도합 350여 일간 요세미티 계곡을 찾아 벽에 매달렸고, 그중 절반가량은 단독으로 올랐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하딩이 노즈를 올랐을 때 서른 넷이었던 것에 비해 곽씨는 이제 이순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중학교 시절인 1965년부터 인왕산의 바위를 올랐던 곽씨는 1967년 숭실고산악반을 창립하며 본격적인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이후 비슷한 또래인 장봉완·고 전재운(거리회), 장경덕(마운틴빌라), 박일환(에코)씨 등과 어울리며 당시 북한산과 설악산의 주요 바윗길 개척에 참여했던 그는 인수봉의 알핀로제스길과 패시길, 설악산의 숱한 바윗길 등을 개척하기도 했다. 특히 패시길은 그가 1980년대 초반 만들었던 회사 ‘PASI(Professional Association Sport Instructors)’에서 따온 말로, 이곳은 암빙벽등반뿐 아니라 산악스키, 윈드서핑, 스킨스쿠버, 행글라이딩 등 각종 아웃도어스포츠를 가르치는 학교였다. 이후 1982년 곽효균씨는 ‘한국알파인가이드협회’ 창립에 참여해 1984년 봄 윤대표씨와 함께 네팔 샤르체(7459m)를 등정하기도 했다. 스키 또한 1970년대 말 국내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순전히 산과 바위와 스키가 좋아서 미국에 갔다”는 그가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건 1985년이다. 샤르체 등반 때 양쪽 발에 입은 동상으로 절단수술을 받은 후 고산등반보다 암벽과 스키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막막한 이국에서의 삶 속에서 젊은 날의 꿈이었던 거벽에서의 길은 그로부터 20여년이나 후에야 내디딜 수 있었다. “가정을 꾸리다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꿈을 실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엘캡에 단독으로 루트를 개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솔로’의 길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등반 첫날부터 정신을 잃을 정도의 큰 추락으로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당시 등반일기에 ‘지옥의 사자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고 적었을 만큼 충격이 컸지만 그로부터 135일 만에 다시 벽 앞에 선 그는 이후 두려움을 딛고 새로운 등반기술들을 독학으로 배워가며 다시 자벌레처럼 한땀 한땀 길을 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산악부 시절 히틀러에 빗대 ‘곽틀러’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후배들에게 엄격하게 안전을 강조해왔던 그는 또한 그렇기에 등반 중 일어나는 여러 난관들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천천히 안전하게 오르는 요세미티식 등반기술이 차츰 축적된 결과였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또 다른 데 있었다. 바로 고독이라는 벽이었다.
“며칠씩 혼자 벽에 매달려 있다 보니 외로움을 참기 힘들었다”는 그는 개척이 중반을 넘어가는 11피치부터는 후배 백성현씨, 현지 클라이머 스카리시와 함께 길을 뚫은 끝에 결국 마지막 피치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로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엘캐피탄의 거벽에 한국 클라이머의 루트를 남긴 것이다.
곽효균씨는 이번 등반을 국내 산악인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보고회를 열 예정이다. 보고회는 4월 15일 오후 6시부터 서울 강남구 청담동 킹콩빌딩 3층에서 열린다. 또 그는 이번 등반을 계기로 한국알파인가이드협회를 부활시켜 요세미티 빅월등반 안내가이드도 할 계획이다. “과거 20여 팀이 정보와 준비 부족 등으로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가이드의 필요를 느꼈다”는 그는 “요세미티를 찾는 등반대들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좋은 등반을 하고 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곽효균씨는 또한 지난 5년간의 등반일기를 국문과 영문으로 된 책으로 펴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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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 됩니다.
몸에 두른 장비만 봐도, 얼마나 힘든 코스인지 짐작이 되네요.
이분글 읽었는데,,,정말 대단하신분입니다,,현제 LA에서 등반 가이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자랑스러운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