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기(鄭重器) 1685(숙종 11)∼1757(영조 33). 영천(永川) 출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
호례(好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시심(時諶)이고, 아버지는 석달(碩達)이며, 어머니는 권돈(權墩)의 딸이다.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형제 및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이다. 경사에 통달하고 전고(典故)와 예제(禮制)에 밝았다.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1년 승정원주서가 되고, 이어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나가 이도(吏道)를 바로잡고 『여씨향약(呂氏鄕約)』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고, 뒤에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조정에서 영남인사를 정권에서 소외시키자 연명상소를 하여 그 시정을 진정한 바 있다. 저서로 『매산집』이 있고, 편저로는 『포은속집(圃隱續集)』·『가례집요(家禮輯要)』·『주서절요집해(朱書節要集解)』가 있다.
갈암집 별집 제3권
서(書)
정도옹(鄭道翁) 중기(重器) 에게 답함
봄에 먼 이곳까지 찾아와 주시어 뵙고 싶었던 바람이 충분히 보상되었고, 한두 번 접하는 사이에 뜻을 숭상하시는 어짊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일이 바쁘고 빈객이 많은 관계로 명리(名理)에 대해 차분히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지금 멀리서 보내주신 문안 편지를 받았는데 말씀하신 뜻이 정중하여 마치 다시 모습을 뵌 듯하니 그 기쁨을 무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현일은 성명이 대장(臺章)에 올라 있어 조만간에 귀양 가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노년의 정황이 이와 같으니 생각하면 처량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명(命)인 것이니 순순히 받아들일 따름입니다. 바라건대 현자께서는 대업(大業)에 뜻을 전일하게 기울이십시오. 천만 간절히 바랍니다.
答鄭道翁 重器
春間蒙遠訪之勤。足償旣見之願。一再相接。已知志尙之賢遠於人。第以忽撓。不得款叩名理爲恨。茲承遠惠訊帖。辭旨鄭重。怳若更接淸儀。喜復何言。玄逸姓名方挂臺章。早晩將有投竄之禍。殘年況味如此。念之愴然。然莫非命也。秪當順受耳。惟冀賢者得專意大業。千萬千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