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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강연
한국개천 9209년(서기2010) 2.7.일요일 상오 11시 백산소도 대법당
강사: 송호수 박사 |
강연 주제 : "단군 과 무당"
"무당은 엄연한 우리의 역사이며 신앙이다." "이제는 무당이 대접받는시대가 되어야..."
<송호수박사 소개> '단군신화(檀君神話)'라는 단어는 조선총독부가 1938년에 조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펴낸 조선사 38권에만 그 단어가 있지요. 총독부 이전에는 우리 역사 5000년사에 '단군신화'라는 기록은 어느 문헌에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역사 바로잡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는 개천대학장이자 단군봉찬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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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호수 박사님과 참역사동아리 삼태극과의 인연
송호수 박사님은 한국혼이 오롯이 살아있는 민족사학계의 거두이십니다. 우리의 위대한 뿌리역사연구에 한편생을 바쳐온 분으로써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에서는 이 분을 오래전부터 우리까페의 고문으로 사실상 모셔왔고 직접운영하시는 개천대학강의에 까페지기가 해마다 참여하여 많은 도움을 받은 바 있고 삼태극 개천절 축사에서도 송호수 박사님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여 삼태극 식구들께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던 단군상을 송호수 박사님이 이사장으로 계신 단군봉찬회 개천대학 강당에서 모셔져 있고 삼태극에서는 이 단군상이 조선당골시대의 것으로 거의 2천년이상된 역사적인 유물로 최종 확정하고 국보로 지정할 것을 건의 한바도 있습니다. 이처럼 삼태극과 인연이 깊으신 송호수 박사님의 '단군과 무당' 특별강연에 삼태극 식구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올립니다.
역사적인 강의에 꼭 참여하셔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하오에 진행하는 중천제 즉 '제천행사'를 참관하셔서 조선당골시대의 '무천' 행사의 흔적을 체험하시길 또한 권해 드립니다.
- 아래는 부루단군(당골) 석상에 대한 략사입니다.
'단군'이라는 용어는 원래 '당골=당굴' 로써 북방한겨레 '흉노=돌궐=훈=몽골=퉁구스=선비=타타르=카자흐=우즈벡=스키타이' 에서는 '텡그리=텡리'라고 부릅니다. 이 뜻은 '하늘=한'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언어적 역사추적을 통해서도 '당골조선'은 아시아를 2천년이 넘게 가장완벽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끈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유일무이한 한겨레 제국이었습니다(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주장=송호수 박사증언). 통치이념은 '홍익인간=당골네 문화' 였습니다. 또한 '당골네 문화'로 세계최초로 가장 완벽한 지방분권 자치를 시행한 제국이었습니다. 오늘 서양식 지방자치제도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우리의 체질에 맞지않아 온갖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지방자치를 폐지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 분분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제2세단군 부루 단군석상 략사:
제2세단군 부루석상- 부루단군께서 '개묘 삼년(서기전2238년) 조서를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아서 머리를 덮도록 하였다.' 는 기록이 단군세기에 보이는데 편발개수제도를 처음 만들어 온 생민에게 한겨레의 머리모양으로 삼은 것으로 본다. 규원사화에는 '編髮蓋首之制'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단군영정들은 모두 머리를 따서 두른 형상을 하고 있다. 위 단군석상은 흐릿하게 나마 이마부분에 딴 머리를 두른 흔적이 보이고, 위 단군석상이 제2세단군 부루때 창건하였다는 북한 구월산 삼신궁에 모셔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부루단군의 실물을 보고 조각한 것으로 추정한다. 부루단군으로 추정되는 이 단군석상은 언제인지는 모르나 북한 구월산의 삼신궁에 모셔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홍암 나철(나인영)대종사가 서기1916년 구월산 삼신궁에서 기도를 통하여 절식 순교하자, 일제의 경찰들이 들이닥쳐 독립운동을 하는 본거지라고 하여 삼신궁을 폐문해 버리면서 함께 땅에 묻히는 수난을 겪는다.
이 단군석상은 홍암나철대종사와 초창기 함께 하였던 정단제가 서기1925년 북한 구월산 삼신궁터에서 발굴하여 일제의 눈을 피해 남쪽으로 모셔왔다. 그리고 뜻있는 몇몇분과 서울 종로교당에 단군석상을 모셔놓고 부러진 국조단군을 되살리는 운동에 들어갔다. 종로에 위 단군석상을 모셔놓고 단군복원운동을 하던 중, 서기1926년 경기 시흥에 독지가의 지원으로 삼신궁을 짓고 거기로 모셔 갔다. 그러던중 서기1936년 일제는 다시 단군전은 조선족들의 구국운동의 본산이라고 하여 국조전을 강압 폐문시키니 국조상을 다시 모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일제경찰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땅 속에 묻었다(2차수난). 광복후 시흥의 삼신궁 국조전을 보수하고 다시 단군상을 모시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차에 걸치는 수난을 겪는동안 위 단군석상은 얼굴부분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정부에서는 하루속히 국보1호로 올리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북한 평양 강동군 대박산 단군을 사진- 이 단군릉은 러시아가 서기1947년 촬영한 것으로써 일제가 허물어 버린것을 복원한 직후의 모습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은 북한이 서기 1993년 부터 1년동안의 공사를 거쳐 새로 확장 조성한 단군릉이다.
북한 강동군 대박산 단군릉 - "5세단군구을 정축16년(서기전2084년)7월 단제께서 남쪽을 순수하사 풍류강을 건너 송양에 이르러 병을 얻으시사 곧 붕어하시니 대박산에 묻혔다." (단군세기).이 단군세기의 기록을 보면 다른곳의 지명이 대박산이라고 달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현재 북한 강동군의 대박산이 단군세기에 나오는 대박산으로 비정하여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혔다고 알려진 단군릉은 제5세단군 구을릉으로 추정한다.
북한 강동군 대박산 단군릉-사진 왼쪽에 단군조선의 상징 청동검조각상이 우뚝서있다. 도움주신분: 개천대학장 한터 송호수 박사님 참역사동아리 삼태극 삼신할미님
▶ 찾아오시는 길
개인차량을 이용하시는 분은
위 지도상의 42번 국도와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321-3( 백산소도)' 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일단 원주열차역까지 오셔서 구룡사방향으로 가는 41번 버스를 타신 후,
밤나무정 정거장 또는 '치악골가든' 앞에서 버스운전사께 내려달라고 하세요.
내리면 바로 맞은편에 '백산소도'라는 큰 기와집이 보입니다.
원주역에서 백산소도까지는 버스로 약20분 걸린답니다.
♣ 서울지역에서 출발하시는 분들은
청량리역에서 원주가는 열차가 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원주까지는 기차로 보통 2시간 정도 걸린답니다.
개천대제 행사가 상오 11시부터 시작하니까, 원주역에는 10시까지는 도착해야 하니,
청량리역에서 아침 7시나 8시 열차를 타시면 될 듯 합니다. 참고하세요. ^^
백산소도 연락처: 033-731-5536
첫댓글 참여요^^잘보았습니다.
내용 수정하였습니다. 다시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
네..석상이..나철선생님이..
아~급한일(아부지)이 있어 못가겠네요..강의 꼭 듣고싶은데,,다음 기회가 되면 꼭 참석하도록 할께요^^
좋은시간 되겠군요 배우고싶습니다
[카풀] 원주역 10시10분출발 5인승 선착순 카풀합니다 010-3930-8249 청암 문자.폰 연락바랍니다
근데 단군과 무당이 같은거였나여???
그리고 북한은 단군왕검님의 복원에 신경을 많이 쓰시네여...
우리나라 기독교인가 천주교인들은 단군동상의 목도 자르고 그런다는데....ㅠㅠ
한국이에게 고함이라는 책에서 봤습니다.
단군님과 무당이 동일한가? 때로는 동일한 역할도 하였다고 보여집니다. 신정정치 시대에 단군님은 신 그 자체로 인식되기도 하였고 때론 신의 대리인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에 고하는 천제 의식에서는 최고의 통치자인 단군님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고 때론 제사장(무당)을 거느린 대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사의 기록에 의하면 단군님께서 토굴에 들어가 기도를 하시며 상을 잡의시고.... 라는 글에서 '상' 이란 요즘으로 말하면 무속의식의 넋대를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신정일체 시대에는 동일인이었으나 신정 분리시대에는 역할이 나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말해 오늘의 무당의 기원은 결국 단군에서 나온 것이며, 무당이 단군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있는 신의 제자들이라고 표현하는게 옳을 듯 싶습니다.
우리민족의 가치는 단군에서 찾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