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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뜰-행원소구
 
 
 
카페 게시글
靈的分別力/書籍 作家(영적분별력/서적,작가) 이시대의 이단들
김유미 추천 0 조회 64 07.06.13 00:09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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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11.22 11:39

    첫댓글 이단이 성립되려면 정통이 확고한 위치에 있어야한다. 이말은 종교적인 정통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시대의 끝은 언제나 정통성이 또다른 정통성으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단이란 시기적으로는 과거의 산물이며, 힘의 논리로는 가지지 못한 힘없는 편이 떠앉을 현실임에는 분명하다. 결국 이단의 논리는 작금의 종교적 잣대에 반하는 논리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 좋은 증거가 예수님을 통하여 확인할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공생애기간동안 확인할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당시대의 이단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복음의 이끌림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힌채 고난의 삶을 살아왔음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이단이란 당대의 정통교파나 그들이 만들어낸 정통성이 규정할수 없는 종교적, 정치적 논리임을 인식할수 있다. 오늘날의 이단문제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정통의 잣대의 문제일 것이다. 정통이란 다분히 인간의 종교적, 정치적 용어임을 알수 있다. 정통이 존재해야 비정통을 낙인찍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 끝없는 정통과 이단논쟁은 또다른 세대에서도 되풀이 될것임을 분명하다, 그렇다면 종교가 아닌 신앙, 즉 말씀의 입장에서 이단이 규정되려면

  • 22.11.22 11:51

    오직 말씀의 잣대뿐일 것이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음을 간과하지 말자. 죄인이란 자신이 철저히 주님을 통하여 규정된 존재이다. 자기의 의지와 자기의 잣대로 살수없다는 것을 알게된 자이다. 그러하기에 그가 의지할수 있는 것은 당대의 힘과 종교적, 조직적 권력의 영향력이 아니라 오직 죄인을 구원하시려 오신 예수님뿐임을 알게 된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단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종교적, 조직적 담보로 스스로 높임받으려하는 자임은 분명하다 할것이다. 자기자신이 예수님을 이용해 복된자리를 선점하려는 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스스로 주님 앞에서 죄인이요, 이단임을 인정하는 자일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금의 모습을 본다. 정통이 말씀을 근간으로 서지 못하기에 스스로 이단의 길을 선택하며 걸어가고자 한다. 예수님의 존재성은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종교적 정통성에 의탁해 이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단에서 자유함을 입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통에서 벗어나자! 내가 바로 이단이다!라고 말할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 22.11.22 11:54

    계시를 말씀이아닌 세상과 종교적 현실에서 발견하려는 모든 자가 실질적으로는 바로 이단임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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