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은 키가 저보다 쪼금, 아주 쪼금 작고요, 나이도 두 살이나 적지요. 하지만 동그란 얼굴에 눈꼬리가 아래로 약간 처진 아주 순한 모습의 동화책에서나 봄 직한 그런 모습의 농부랍니다. 하지만 부지런한 농부는 못 되고 약 간은 게으른, 뒤로 한 걸음 물러선 그런 농사꾼이랍니다. 밭일을 하다가도 병든 나뭇잎을 보면 한참을 들여다봐 야 하고, 그걸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갖고 와서 다시금 들?다보고 연구를 해야 합니다.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자랐고 회색빛 콘크리트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저에게 흙과 나무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아니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 이랄까,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섞여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연애 시절에 들었던“,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 가 농사를 짓겠다”는 남?의 말을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설마, 진짜로 내려갈까?’그러고는 남편의 꿈은 잊어버 렸습니다.
그래서 주머니는 항상 나 뭇잎과 병든 나뭇가지, 그리고 이름 모를 벌레로 지저분합니다. 흙을 만지다가도 냄새를 맡아봐야 하고, 무당벌 레와 거미랑은 해충을 많이 잡아먹으라며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저는 그럴 시간에 풀이나 한 번 더 베어주라며 눈을 곱게 흘기곤 하지요. 하지만 그런 남편이 좋아서, 그 남편이 짓는 친환경 농사가 좋아서 저도 따라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모습이 남편과 저의 처음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예전 모습은‘ 나무꾼과 선녀’였습 니다. 나무를 좋아했던 남편은 임학을 공부했고, 화려한 옷을 좋아했던 저는 의상학을 공부했지요‘. 나무꾼과 선 녀’는 저희들의 어울리지 않았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자랐고 회색빛 콘크리트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저에게 흙과 나무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아니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 이랄까,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섞여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연애 시절에 들었던“,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 가 농사를 짓겠다”는 남?의 말을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설마, 진짜로 내려갈까?’그러고는 남편의 꿈은 잊어버 렸습니다.
3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한 뒤 남편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더 이상의 공부는 자기와 맞 지 않는다며 시골로 내려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꿈에서 라도 시골 생활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학창 시절에 들었던 남편의 꿈이 생각나 그이의 결정 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반곡리 산10-2번지.
시아버님께서 경북 상주에 작은 산 하나를 사놓으신 게 있었습니다. 실향민이셨던 당신이 고향에 갈 수 없는 걸 마음 아파하시면서 후손들에게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으셔서 장만하신 것이라고 합 니다. 아버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시자 남편은 임신한 저를 두고 상주로 내려가 산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3000평 땅에는 사과나무를 심었고, 과수원이 내려다보이는 꼭대기에는 저를 위하여 빨간 벽돌집을 지었습니다.
그사이 저는 서울에서 아들을 낳아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들 백일 무렵, 남편이 있 는 상주에 내려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시골 살림이 생각보다 어렵다며 한 번도 시골에 살아 보지 않은 저를 말리셨지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우리의 미래는 흙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 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가는 상주는 정말이지 멀었습니다. 울퉁?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지금도 어두우면 호랑이가 나타날 것만 같은, 높은 신의터재를 지나자 화동면 읍내가 나타났습니다. 꼭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시골 읍내의 모습이 었습니다. 조용한 거리와 오래된 간판, 낮은 건물들. 생전 처음으로 시골을 느끼며 낯설어하는 저에게 남편은 “우리가 살 집은 이곳에서도 더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차로 10분 정도 더 가자 산꼭대기에 빨간 벽돌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이웃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개간했다는 땅에는 회초리 같은 어린 사과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과수원이랑 너무도 달랐습 니다. 동요 속의 과수원처럼 아까시나무 꽃이 하얗게 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인 줄 알았는데 풀 한 포기 없이 붉은 속살을 드러낸 과수원은 황량한 불모지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막한 주변 상황들도 남편과 함 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
시아버님께서 경북 상주에 작은 산 하나를 사놓으신 게 있었습니다. 실향민이셨던 당신이 고향에 갈 수 없는 걸 마음 아파하시면서 후손들에게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으셔서 장만하신 것이라고 합 니다. 아버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시자 남편은 임신한 저를 두고 상주로 내려가 산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3000평 땅에는 사과나무를 심었고, 과수원이 내려다보이는 꼭대기에는 저를 위하여 빨간 벽돌집을 지었습니다.
그사이 저는 서울에서 아들을 낳아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들 백일 무렵, 남편이 있 는 상주에 내려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시골 살림이 생각보다 어렵다며 한 번도 시골에 살아 보지 않은 저를 말리셨지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우리의 미래는 흙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 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가는 상주는 정말이지 멀었습니다. 울퉁?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지금도 어두우면 호랑이가 나타날 것만 같은, 높은 신의터재를 지나자 화동면 읍내가 나타났습니다. 꼭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시골 읍내의 모습이 었습니다. 조용한 거리와 오래된 간판, 낮은 건물들. 생전 처음으로 시골을 느끼며 낯설어하는 저에게 남편은 “우리가 살 집은 이곳에서도 더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차로 10분 정도 더 가자 산꼭대기에 빨간 벽돌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이웃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개간했다는 땅에는 회초리 같은 어린 사과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과수원이랑 너무도 달랐습 니다. 동요 속의 과수원처럼 아까시나무 꽃이 하얗게 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인 줄 알았는데 풀 한 포기 없이 붉은 속살을 드러낸 과수원은 황량한 불모지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막한 주변 상황들도 남편과 함 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남편의 손을 잡고 뜰로 내려선 저는 그만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빈 곳 하나 없이 박혀 있는 그 수많은 별들이 내 어깨와 눈으로 쏟아 질 것만 같아서 눈을 뜨고 쳐다볼 ?가 없었습니다. 서울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런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서울의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
그날 이후로 시골 생활이 힘들어질 때마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그냥 볼 수 있겠냐, 별을 바라보는 값이라며 나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지요. 아이를 키우느라 밭일을 도울 수 없어 심심해하 는 저를 위해 남편은 나만의 작은 텃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곳에다 상추며 쑥갓, 고추를 심었습니다.
너무 예뻤습니다. 고랑을 룅고 넘실거리는 싱그러운 푸름은 서울에서는 꿈꾸어보지 못했던 그런 아름다움이 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농사 경력이 20년이 지난 지금은 5000평의 사과밭과 3000평의 포도밭으로 커졌 습니다. 푸른 봄날에 하얀 사과꽃을 솎아주는‘ 적화’작업, 뜨거운 여름 볕에 사과를 솎아주는‘ 적과’ 작업, 그리 고 따사로운 가을볕에 탐스럽게 열린 사과를 바구니에 가득 차게 담아내는 사과 따기. 흙이라고는 몰랐던 내 기 다란 손가락에 푸른 풀물이 들도록 열심히 일을 합니다.
물론 남편과 둘이 합니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함께하기에 웃으며 합니다. 남편은 친환경 농사법을 고집 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 합니다. 참 좋은 생각이지만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감내해야 합니다. 밭에 내려 가면 낙엽이 질 시기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나뭇잎은 떨어집니다.
너무 예뻤습니다. 고랑을 룅고 넘실거리는 싱그러운 푸름은 서울에서는 꿈꾸어보지 못했던 그런 아름다움이 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농사 경력이 20년이 지난 지금은 5000평의 사과밭과 3000평의 포도밭으로 커졌 습니다. 푸른 봄날에 하얀 사과꽃을 솎아주는‘ 적화’작업, 뜨거운 여름 볕에 사과를 솎아주는‘ 적과’ 작업, 그리 고 따사로운 가을볕에 탐스럽게 열린 사과를 바구니에 가득 차게 담아내는 사과 따기. 흙이라고는 몰랐던 내 기 다란 손가락에 푸른 풀물이 들도록 열심히 일을 합니다.
물론 남편과 둘이 합니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함께하기에 웃으며 합니다. 남편은 친환경 농사법을 고집 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 합니다. 참 좋은 생각이지만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감내해야 합니다. 밭에 내려 가면 낙엽이 질 시기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나뭇잎은 떨어집니다.
떨어진 나뭇잎과도 남편은 이야기를 해야 합니 다. 꿈틀거리고 올라오는 징그러운 지렁이를 밟을까봐 조심합니다. 약을 치지 않으니까 요사이 과수원에서 보기 힘든 면충이란 벌레가 ?이 생겼다가 천적인 좀벌이 생겨서 저절로 방제가 되기도 하니 참으로 신기한 자연의 섭 리를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꿎은 나무가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이 아프면 약을 먹고 병원 에 가는데, 우리 집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는 병에 걸려도 자기 스스로 나아서 맛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 니다.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돼서 저도 밭에 내려가면 나무들에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힘내라고, 많이 사랑한 다고…. 어느새 저도 남편을 닮아가나 봅니다.
남편은 암소 두 마리와 아주 예쁜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중 한 마리가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정일이 20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서 남편의 애를 태웁니다. 이 글을 다 썼을 때쯤에는 예쁜 송아지 를 낳았으면 좋겠습니다.
친환경 농업을 하려면 질 좋은 퇴비가 필요합니다. 항생제가 들어 있지 않은 먹이를 먹은 소의 똥이라야 꿀기 농 밭에 뿌려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유기농 축산을 합니다. 포도밭과 사과밭에 질 좋은 퇴비를 주고 싶어 서입니다. 과수원에 푸른 풀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봄부터 가을까지 풀을 베서 먹이로 줍니다. 과수원 일이 바쁠 때는 무척 힘들지만 한 번도 사료를 먹인 적이 없습니다.
남편은 또‘ 소의 복지’를 위해 널따란 운동장도 만들어주었습니다. 소의 복지란 말도 처음 들어봤지만, 남편 의 설명을 듣고 보니 복지란 것이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게도 최소한의 복지는 꼭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운동장 가운데 있었던 감나무와 아까시나무가, 소가 껍질을 벗겨 먹어 하얗게 말라 죽은 모습을 보 며 저와 아이들은 아프리카의 사파리를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지만 농사는 저희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습니다. 올해도 고온 현상과 많은 비로 나뭇 잎들이 일찍 떨어져서 힘든 한 해였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실망하지 않고 또 내년을 기다립니다. 농부는 항? 내 년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올 농사가 잘 안 됐어도 이 겨울이 빨리 지나 다시 찾아올 싱그러 운 푸름과 충실한 열매를 꿈꿉니다. 추운 겨울에도 열심히 나무들에게 퇴비를 주고, 또 따사로운 햇빛을 많이 받 으라고 눈 속에서도 가지치기를 합니다.
예정일이 20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서 남편의 애를 태웁니다. 이 글을 다 썼을 때쯤에는 예쁜 송아지 를 낳았으면 좋겠습니다.
친환경 농업을 하려면 질 좋은 퇴비가 필요합니다. 항생제가 들어 있지 않은 먹이를 먹은 소의 똥이라야 꿀기 농 밭에 뿌려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유기농 축산을 합니다. 포도밭과 사과밭에 질 좋은 퇴비를 주고 싶어 서입니다. 과수원에 푸른 풀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봄부터 가을까지 풀을 베서 먹이로 줍니다. 과수원 일이 바쁠 때는 무척 힘들지만 한 번도 사료를 먹인 적이 없습니다.
제초제를 치지 않은 밭에서 나온 풀과 정미소에서 사온 보릿겨를 먹입니다. 풀이 없는 겨울에는 이웃집 형님의 유기농 논에서 나오는 볏짚을 얻어다 먹입니다. 참 고마 운 형님입니다. 이렇게 좋은 풀과 볏짚을 먹고 자란 우리 집 소 외양간에서는 고약한 쇠똥 냄새가 나지 않고 구수 한 풀 냄새가 납니다. 저희 집에 오시는 많은 분들이 아주 신기해합니다.
남편은 또‘ 소의 복지’를 위해 널따란 운동장도 만들어주었습니다. 소의 복지란 말도 처음 들어봤지만, 남편 의 설명을 듣고 보니 복지란 것이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게도 최소한의 복지는 꼭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운동장 가운데 있었던 감나무와 아까시나무가, 소가 껍질을 벗겨 먹어 하얗게 말라 죽은 모습을 보 며 저와 아이들은 아프리카의 사파리를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외양간에는 왕겨와 톱밥을 뿌려 뽀송뽀송한 잠자 리를 만들어줍니다. 그 위를 소가 밟고 지나가면 쇠똥과 섞여서 질 좋은 퇴비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쇠 똥 퇴비는 발효시킨 후 과수원에 골고루 뿌려줍니다. 제가 운반차를 운전하고 남편은 한 삽씩 떠서 포도나무와 사과나무에게 줍니다. 잘 자라라는 당부와 함께 말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지만 농사는 저희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습니다. 올해도 고온 현상과 많은 비로 나뭇 잎들이 일찍 떨어져서 힘든 한 해였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실망하지 않고 또 내년을 기다립니다. 농부는 항? 내 년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올 농사가 잘 안 됐어도 이 겨울이 빨리 지나 다시 찾아올 싱그러 운 푸름과 충실한 열매를 꿈꿉니다. 추운 겨울에도 열심히 나무들에게 퇴비를 주고, 또 따사로운 햇빛을 많이 받 으라고 눈 속에서도 가지치기를 합니다.
이렇게 농사짓고 사는 중에 상주 토박이 작은아들도 생겼습니다. 백일에 서울에서 데리고 내려왔던 갓난쟁이 큰 아들은 농협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면접을 볼 때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해보라는 질문을 받은 아들이“ 저는 농사꾼의 아들입니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기뻤습니다. 자랑스럽기도 했고요.
귀농한 지 23년째입니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농사를 잘 짓지 못합니다. 할수록 어려운 것이 농사인 것 같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저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지은, 분신 같은 농작물들은 전부 친환 경 제품을 판매하는 한살림으로 출하합니다. 한살림을 알기 전에는 정말이지 판매하기 어려웠습니다. 약을 안 치 고 농사를 지으니 없던 병들이 생기고 이름도 모르는 온갖 벌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베어주어야 하는 제초 작업은 농사일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여름에 비가 한 번씩 오고 나면 풀들 은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로 자라납니다. 한 귀퉁이의 풀을 베고 돌아보면 다른 쪽에서 풀들이 다시 또 올라오고….
미처 풀을 깎지 못해 길게 자라면 지나가시던 동네 어르신들은 폐농을 했다며 걱정과 질타를 하시곤 합니다.
병과 벌레의 괴롭힘을 당한 나무들은 예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동화 속의 백설공주가 먹었던 탐스럽고 예 쁜 사과 열매를 기다렸지만, 가을에 수확한 열매는 작고 시커먼 흠집투성이 사과였습니다. 팔 곳이 없어 서울 친 정집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상품성이 없는 사과를 보고 친정어머니가 가슴 아파하실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농사를 짓는 것이 소문이 나자 동네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계셨던 어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함 께 환경을 살리는 농사를 지어보자”며 제의를 하셨고, 저희는 고맙다며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처 음에는 다섯 가구가 모여 시작한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열네 가구가 되었고, 이웃 마을에도 함께하는 분들 이 여럿 생겼습니다.
농부인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 하지 않아서 말?니다. 작은아들도 올해 대학 시험을 봅니다. 저희 내외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풀과 나무 그리고 바람이 아이들을 여물게 키운 것 같습니다. 자연을 닮고 자연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길 기 도합니다. 농촌을 사랑하는, 손마디가 투박하고 웃음이 푸근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귀농한 지 23년째입니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농사를 잘 짓지 못합니다. 할수록 어려운 것이 농사인 것 같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저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지은, 분신 같은 농작물들은 전부 친환 경 제품을 판매하는 한살림으로 출하합니다. 한살림을 알기 전에는 정말이지 판매하기 어려웠습니다. 약을 안 치 고 농사를 지으니 없던 병들이 생기고 이름도 모르는 온갖 벌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베어주어야 하는 제초 작업은 농사일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여름에 비가 한 번씩 오고 나면 풀들 은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로 자라납니다. 한 귀퉁이의 풀을 베고 돌아보면 다른 쪽에서 풀들이 다시 또 올라오고….
미처 풀을 깎지 못해 길게 자라면 지나가시던 동네 어르신들은 폐농을 했다며 걱정과 질타를 하시곤 합니다.
병과 벌레의 괴롭힘을 당한 나무들은 예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동화 속의 백설공주가 먹었던 탐스럽고 예 쁜 사과 열매를 기다렸지만, 가을에 수확한 열매는 작고 시커먼 흠집투성이 사과였습니다. 팔 곳이 없어 서울 친 정집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상품성이 없는 사과를 보고 친정어머니가 가슴 아파하실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먹어보신 분들이 옛날 사과 맛이라며 맛있게 드시고 사가셨습니다. 그렇게 팔고 남 은 사과로는 사과술을 만들었습니다. 옛 어른들이 쓰셨던 커다란 옹기 항아리를 구해 설탕을 얼마나 넣어야 되 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항아리 한가득 술을 담갔습니다. 다음 해 겨울에 열어본 항아리에는 향기로운 사과 냄새 와 함께 노란 빛깔의 사과주가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만 팔기에는 약간 싱거운 것 같아 고마 운 분들에게 한 병씩 드리고, 남은 것은 겨우내 저희들이 다 마셔버렸습니다. 사과술 때문에 남편과의 사랑은 더 욱 향기로워졌지만 빈약한 주머니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농사를 짓는 것이 소문이 나자 동네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계셨던 어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함 께 환경을 살리는 농사를 지어보자”며 제의를 하셨고, 저희는 고맙다며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처 음에는 다섯 가구가 모여 시작한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열네 가구가 되었고, 이웃 마을에도 함께하는 분들 이 여럿 생겼습니다.
회원 분이 무상으로 빌려준 넓은 땅 위에 흙과 나무로 쉼터를 지었습니다. 회원들의 투박한 솜씨로 지은 고래등 같 은 기와집입니다. 군데군데 회원들의 웃음과 땀방울이 배어 있어 자랑스럽고 정겹습니다.
참, 정월 대보름 행사도 도시 소비자들과 함께합니다. 화동초등학교 마당을 빌려서 커다랗게 짚불도 만들고 깡 통으로 쥐불놀이도 합니다. 신명 나게 풍물도 치고요. 운동장 한편에서는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놓고 고소한 부침개를 부칩니다. 우리가 기른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맛있게 나누어 먹습니다. 오랜 세월 농사를 짓느라 허리 한 번 펼 날이 없었던 형님들과 까만 얼굴에 굵게 팬 이마의 주름살이 날로 늘어가는 아저씨들도 시름을 뒤로한 채 신명 나게 노십니다. 이런 행사들이 늘어갈수록 농촌에서의 삶은 풍요로워지겠지요.
귀농을 하고 싶어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저희 쉼터를 찾아옵니다. 큰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반갑게 맞아주려고 합니다. 23년 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릴 때도 있지만, 그 사람들도 우리 내외처럼 많은 것을 겪은 뒤에는 웃을 수 있겠지요. 지금은 벌레 먹은 사과를 들고 친정집으로 가지도 않고, 사과술도 더 이상 만들지 않습 니다. 친환경 농사법이 많이 개발되고 환경을 생각하는 여러 모임과 단체들도 많이 생겨 이제는 벌레 먹은 사과 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땅과 물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난 23년 농촌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도시에서 잊고 살았던 봄 냄새랑 따사로운 태양 빛, 풍요로운 가을, 추운 겨울의 온돌방,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들…. 이 모든 것들과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는 농사꾼의 아내라서 저는 행복합니다.
아! 외양간에서 남편의 기쁜 목소리가 들립니다. 소가 예쁜 암송아지를 낳았답니다. 빨리 나가봐야겠습니다.
저는 행복한 농사꾼의 아내입니다.
상주 시장님과 마을 어르 신들을 모시고 테이프 커팅도 했습니다. 이 쉼터를 중심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날지 기대해봅니다. 지금 도 도시의 한살림 소비?들을 어린 자녀들과 함께 초청해 이 쉼터에서 일손 돕기와 포도 및 사과 따기 체험 행사를 벌입니다. 어릴 적부터 자연과 교감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농촌과 더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서지요.
참, 정월 대보름 행사도 도시 소비자들과 함께합니다. 화동초등학교 마당을 빌려서 커다랗게 짚불도 만들고 깡 통으로 쥐불놀이도 합니다. 신명 나게 풍물도 치고요. 운동장 한편에서는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놓고 고소한 부침개를 부칩니다. 우리가 기른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맛있게 나누어 먹습니다. 오랜 세월 농사를 짓느라 허리 한 번 펼 날이 없었던 형님들과 까만 얼굴에 굵게 팬 이마의 주름살이 날로 늘어가는 아저씨들도 시름을 뒤로한 채 신명 나게 노십니다. 이런 행사들이 늘어갈수록 농촌에서의 삶은 풍요로워지겠지요.
귀농을 하고 싶어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저희 쉼터를 찾아옵니다. 큰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반갑게 맞아주려고 합니다. 23년 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릴 때도 있지만, 그 사람들도 우리 내외처럼 많은 것을 겪은 뒤에는 웃을 수 있겠지요. 지금은 벌레 먹은 사과를 들고 친정집으로 가지도 않고, 사과술도 더 이상 만들지 않습 니다. 친환경 농사법이 많이 개발되고 환경을 생각하는 여러 모임과 단체들도 많이 생겨 이제는 벌레 먹은 사과 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땅과 물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난 23년 농촌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도시에서 잊고 살았던 봄 냄새랑 따사로운 태양 빛, 풍요로운 가을, 추운 겨울의 온돌방,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들…. 이 모든 것들과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는 농사꾼의 아내라서 저는 행복합니다.
아! 외양간에서 남편의 기쁜 목소리가 들립니다. 소가 예쁜 암송아지를 낳았답니다. 빨리 나가봐야겠습니다.
저는 행복한 농사꾼의 아내입니다.
기쁩니다. 솔직하게 뛸 듯이 기쁩니다.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괜스레 코끝도 아려옵니다. 정말로 내가 맞나? 자고 일어나면 사라 지는 꿈은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또 부끄럽기도 합니다. 농사도 잘 짓지 못하면 서 괜스레 너스레만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 까?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것이지요. 많이 좋아하렵니다.
지난해 농사는 정말이지 힘이 들었습니다. 잎이 다 빠져버린 채 빨간 사과만 주렁주렁 달 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나보다 더 힘들 남편 생각에 투정도 부리지 못하고 내년에 다시 잘 짓 자고 남편을 위로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준 작은 위로보다 더 큰 기쁨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해 10월 말에 제대를 하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큰아들과 수능을 치르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작은아들에게, 열심히 살아 온 아빠와 엄마의 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남들은 다 서울에서 살려고 서울로 가는데 아빠와 엄마는 왜 시골로 내려왔냐”고 물었을 때,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웃음으로 답해주던 일이 생각납니다‘. 전원생활’의 이 글을 읽으면 좋은 대답이 되겠지요.
올해는 기쁜 소식들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밭으로 가는 발걸음도 가볍고요. 입가에는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옵니다. 친정 어머니는 늘“ 좋은 일 있어도 너무 많이 좋아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농사일로 지쳐 허덕이던 저에게는 단비와 같은 기 쁨입니다. 저희 집 소가 건강한 암송아지를 낳았습니다. 구제역이 걱정스럽지만 예쁘게 자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따사로운 겨울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괜스레 코끝도 아려옵니다. 정말로 내가 맞나? 자고 일어나면 사라 지는 꿈은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또 부끄럽기도 합니다. 농사도 잘 짓지 못하면 서 괜스레 너스레만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 까?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것이지요. 많이 좋아하렵니다.
지난해 농사는 정말이지 힘이 들었습니다. 잎이 다 빠져버린 채 빨간 사과만 주렁주렁 달 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나보다 더 힘들 남편 생각에 투정도 부리지 못하고 내년에 다시 잘 짓 자고 남편을 위로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준 작은 위로보다 더 큰 기쁨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해 10월 말에 제대를 하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큰아들과 수능을 치르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작은아들에게, 열심히 살아 온 아빠와 엄마의 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남들은 다 서울에서 살려고 서울로 가는데 아빠와 엄마는 왜 시골로 내려왔냐”고 물었을 때,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웃음으로 답해주던 일이 생각납니다‘. 전원생활’의 이 글을 읽으면 좋은 대답이 되겠지요.
올해는 기쁜 소식들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밭으로 가는 발걸음도 가볍고요. 입가에는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옵니다. 친정 어머니는 늘“ 좋은 일 있어도 너무 많이 좋아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농사일로 지쳐 허덕이던 저에게는 단비와 같은 기 쁨입니다. 저희 집 소가 건강한 암송아지를 낳았습니다. 구제역이 걱정스럽지만 예쁘게 자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따사로운 겨울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전원생활’이 실시한 제12회 전원생활 수기‘ 생활 속의 이야기’ 공모가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좋은 작품 들 가운데 당선작 1편, 우수작 2편, 가작 8편, 특별상 1편을 골랐습니다. 뽑히신 분들께 축하드리며,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입상작 12편은 2011년 한 해 동안‘ 전원생활’ 지면에 소개됩니다.
올해 전원생활 수기 공모작품 심사를 하면서 새삼 확인한 것은 생명산업의 고귀함과 세태가 변해도 농심의 진정성은 살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30편 중에서 총 12편(당선작 1편, 우수작 2편, 가작 8편, 특별상 1편) 을 가리는 작업은 응모자들의 농촌사랑과 심층을 맛보는 기쁨이 있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김영숙(경북 상주)의‘ 나무꾼과 선녀가 키워낸 사과 이야기?는 단연 돋보였다. 농대 임학과 출신의 남편과 의상학과 출신의 아내가 결혼 후 경북 상주로 귀농하여 23년째 친환경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겪은 인간 승리의 소중한 기록 들이다.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는 글솜씨로 엮어낸 수기의 행간마다 주인공 부부의 성실한 인간성과 농촌사랑의 행복함이 절 절히 배어 있어 좋았다.
우수작인 신향숙(강원 정선)의‘ 대추를 털며’역시 글솜씨나 내용이 훌륭하다. 25년쯤 잘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귀농한 남편과 함께 고집스럽게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며 겪는 에피소드들이다. 때로 폐농도 하? 이웃의 웃음거리도 되었지만 대추 를 털며 농촌 이웃들과 부대끼는 푸근한 인정과 주인공들의 바보철학이 오히려 감동을 준다. 또 다른 우수작인 김수희(충북 충주)의‘ 100만 원의 희망’은 처녀 적 농사짓는 사람이나 장남과는 결혼 않겠다는 다짐과 달리 26세에 운명적으로 만난 신 랑과 함께 농촌인 친정집으로 내려와 1남 2녀를 낳고 과수 농사 지으며 겪는 진솔한 이야기들이다. 서투른 농사일과 넉넉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용기와 행복을 잃지 않는 점이 훌륭했다.
지면 관계상 언급치 못한 가작들도 절절한 사연과 농심의 진정성은 공통적이었다. 주제에서 벗어나 제외된 응모작 중에는 전문 작가 못지않은 구성력과 글솜씨를 가진 분도 있었음을 덧붙인다. 새해에도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유승우(시인·문학박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손해일(시인·문학박사·전 시문학회장 ) •당선작‘: 나무꾼과 선녀’가 키워낸 사과 이야기- 김영숙(경북 상주시 화동면) •우수작 : 대추를 털며 - 신향숙(강원 정선군 임계면) 100만 원의 희망 - 김수희(충북 충주시 가금면) •특별상 : 한국 주부로 변신하다 - 에바 포티안(강원 영월군 영월읍) •가 작 : 우정의 선물 - 송심순(대전 서구 월평동) 4대 가족 농부집 - 김준식(경기 여주군 능서면) 인생의 2막을 살아가며 - 손찬주(경기 안양시 동안구) 한 울타리 안에 피는 꽃 - 박덕래(인천 강화군 길상면) 바보 농원의 무릉도원 - 홍원주(경기 양평군 용문면) 내 일생을 바꿔놓은 맞선과 농협 - 이하자(경기 수원시 고색동) 전원일기 접고 전원생활 하고 싶어요 - 현미화(충북 청원군 부용면) 서울 쥐, 시골 쥐 되다 - 정경자(충남 태안군 근흥면)
당선작으로 뽑힌 김영숙(경북 상주)의‘ 나무꾼과 선녀가 키워낸 사과 이야기?는 단연 돋보였다. 농대 임학과 출신의 남편과 의상학과 출신의 아내가 결혼 후 경북 상주로 귀농하여 23년째 친환경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겪은 인간 승리의 소중한 기록 들이다.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는 글솜씨로 엮어낸 수기의 행간마다 주인공 부부의 성실한 인간성과 농촌사랑의 행복함이 절 절히 배어 있어 좋았다.
우수작인 신향숙(강원 정선)의‘ 대추를 털며’역시 글솜씨나 내용이 훌륭하다. 25년쯤 잘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귀농한 남편과 함께 고집스럽게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며 겪는 에피소드들이다. 때로 폐농도 하? 이웃의 웃음거리도 되었지만 대추 를 털며 농촌 이웃들과 부대끼는 푸근한 인정과 주인공들의 바보철학이 오히려 감동을 준다. 또 다른 우수작인 김수희(충북 충주)의‘ 100만 원의 희망’은 처녀 적 농사짓는 사람이나 장남과는 결혼 않겠다는 다짐과 달리 26세에 운명적으로 만난 신 랑과 함께 농촌인 친정집으로 내려와 1남 2녀를 낳고 과수 농사 지으며 겪는 진솔한 이야기들이다. 서투른 농사일과 넉넉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용기와 행복을 잃지 않는 점이 훌륭했다.
지면 관계상 언급치 못한 가작들도 절절한 사연과 농심의 진정성은 공통적이었다. 주제에서 벗어나 제외된 응모작 중에는 전문 작가 못지않은 구성력과 글솜씨를 가진 분도 있었음을 덧붙인다. 새해에도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유승우(시인·문학박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손해일(시인·문학박사·전 시문학회장 ) •당선작‘: 나무꾼과 선녀’가 키워낸 사과 이야기- 김영숙(경북 상주시 화동면) •우수작 : 대추를 털며 - 신향숙(강원 정선군 임계면) 100만 원의 희망 - 김수희(충북 충주시 가금면) •특별상 : 한국 주부로 변신하다 - 에바 포티안(강원 영월군 영월읍) •가 작 : 우정의 선물 - 송심순(대전 서구 월평동) 4대 가족 농부집 - 김준식(경기 여주군 능서면) 인생의 2막을 살아가며 - 손찬주(경기 안양시 동안구) 한 울타리 안에 피는 꽃 - 박덕래(인천 강화군 길상면) 바보 농원의 무릉도원 - 홍원주(경기 양평군 용문면) 내 일생을 바꿔놓은 맞선과 농협 - 이하자(경기 수원시 고색동) 전원일기 접고 전원생활 하고 싶어요 - 현미화(충북 청원군 부용면) 서울 쥐, 시골 쥐 되다 - 정경자(충남 태안군 근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