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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로 충만한 법정스님 입적
평생을 무소유와 청렴의 삶을 살다 간 법정 스님이 머물었던 전남 순천시
불일암이 11일`텅 빈 충만'으로 가득차 있다.
법정 스님은 1975년 10월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해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펴냈으며, 찾아오는 이가 많아지자 1992년 초심으로 절을 떠났다.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그의 유언에 따라 13일 영결식 없이
다비식만 조촐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2010.3.11
법정스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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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 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 올련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련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결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 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걸 남길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 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된 이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할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일로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덕 문덕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 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만약 넉살좋고 건장한 엿장수 이었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신의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 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게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대신
어느 여름날 좋아 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걸 남겨 이웃을 구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싶지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 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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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4일 오전 10시께 전남 순천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 언덕에 마련된 전통다비장에서 진행된 습골(뼈를 수거하는 의식) 의식을 마치고 수습된 법정 스님의 유골은 2시간여가 지난 이날 정오께 송광사 지장전에 마련된 분향소에 안치됐다.>
다비식이 끝나고 난 오늘,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있네요.
스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들을 통해, 오늘 유서라는 이름의 글을 통해
다시 그분의 맑은 마음을 엿보는 듯합니다. 부디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간간이 찾아와보는 카페, 한적하지만 음악도 흐르고, 그림,사진도 구경하고 아름다운 시들도 감상하도록 많은 준비를 해 놓았군요. 따스한 봄빛이 찾아오면 많은 소님들이 찾아올것이외다. 내용이 충분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소.그분이 가시고난 다음날부터 마누리 잃어버린 것보다도 더 슬프고 허전했지요. 이 세상에 기댈만한 정신적인 지주가 사라져서 그런가보오. 오늘오후에는 10키로의 강둑을, 2시간 내내 그분과 함께 대화하면서 걸었지요. 저녁미사에 그분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그분이 만든 "맑은 향기"회에는 많은 천주교신자들이 참여하고있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가" 항상 생각하며 살라합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