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살림집에 대한 소고(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
집의 형태와 구조는 자연과 사회,문화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우리나라도 살펴보면 지역마다 집의 형태와 구조가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것은 바로 자연과 사회 문화적 환경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차이는 대개는 영,호남 또는 충청권처럼 광역의 개념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강원도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미시적인 지역차이에서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몇 차례 강원도를 답사하면서 지역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여름 답사를 다녀오면서 나름대로 그 이유를 느끼게 되었다.
우선 강원도의 집 구조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가 완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태백산맥이라는 자연구조가 문화의 흐름을 차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태백산맥 서쪽의 집은 홑집구조를 하고 있는 반면 태백산맥 동쪽은 겹집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서쪽은 경기도와 충청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쪽은 함경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의 구조가 함경도 지역의 집과 유사하다는 것은 이 지역의 토착민이 주로 함경도 지역에서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집을 만들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집의 구조도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집짓는 기술 역시 새로운 형태를 창안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대개의 경우 원래 자신이 살아왔던 집을 이주한 곳에서도 예전에 살던 집을 그대로 짓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영월 원용성가옥
이러한 것을 전제로 본다면 강원도 동부의 집이 함경도의 겹집을 닮았다는 것은 이 곳의 원주민이 대부분 함경도에서 남하하여 정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원도 동해안이 함경도 보다 훨씬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연평균 11.9도이고 연교차도 23.9도로 같은 위도상의 중부지방보다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한국의 건축문화재/33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경도의 겹집이 자리 잡았다는 것은 강원도 동해안지역은 일찍부터 함경도 주민의 이주가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경도민이 쉽게 동해안을 따라 이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는 한국전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쟁시 많은 함경도 사람들이 피난처로 강원도 동북부 지역을 선택하였던 것처럼 함경도에서 해안선을 따라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주는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함경도지역의 사람이 이주로 집의 구조도 같이 옮겨왔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이동이 집 구조를 결정하는 예는 울릉도와 만주의 간도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울릉도는 조선말까지 섬에서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는 금도정책禁島政策으로 사람 상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말 이러한 정책의 해제로 사람이 이주해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 이주한 대부분의 사람이 강원도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강원도 사람의 대규모 이주는 집 구조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금 울릉도에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전통가옥은 이주민에 의해 지어졌는데 집 구조가 강원도와 같은 구조인 겹집 구조를 하고 있다. 간도지방의 집도 함경도지역의 집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이렇게 집 구조가 유사한 것은 함경도지방 사람이 간도로 이주하면서 집구조도 같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곳이 오래 전부터 신라의 영토였음에도 불구하고 집 구조는 북방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흥왕의 정복사업으로 이미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남방문화인 신라의 문화가 1400년 넘게 이곳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의 구조는 함경도의 영향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진흥왕 이후 이 지역을 지배한 상층민은 남방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하층민들은 대부분 북방계였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동해안에 남아 있는 거의 대부분의 상류층 집들과 강릉 칠사당(강원도 유형문화재 7호) 등과 같은 관아건물도 겹집구조를 하고 있을 보면 상층부 사람들도 지역의 건축문화에 동화되어 갔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하여는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해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강원도에서 집 구조의 지역적 편차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태백산맥 산중 집의 재료와 구조를 보면 일반 상식으로 알고 있는 한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신리 너와집, 대이리 너와집이 대표적인 예로서 집을 구성하는 대부분 재료가 목재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은 굴참나무껍질(굴피집으로 불림)이나 참나무를 쪼개서 만든 나무기와인 너와(너와집으로 불림)로 덮여 있고 집의 벽체도 많은 부분이 널빤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집이 완벽하게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이들 집은 철저하게 주변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짓고 자연환경에 대한 철저한 적응하고 있다.

삼척 신리 강봉문 가옥 및 김진호 가옥
또한 해안가라고 해도 고성에서부터 강원도 남부까지의 집구조도 지역적 차이를 완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의 집을 다시 구분한다면 고성과 속초가 같은 형태를 보이고 양양지역은 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강릉과 그 이하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속초, 고성지역의 집은 대부분 ㄱ자형 집을 하고 있다. 속초, 고성지역의 집에서 ㄱ자로 튀어나오는 부분은 부엌과 외양간으로 구성되는데 외양간 부분이 한 칸 튀어나와 ㄱ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곳의 집들은 후면에 마당을 가지는데 마당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부엌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짐승의 피해로부터 뒷마당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집의 규모가 크지 않아 ㅁ자 집처럼 집을 둘러쳐 안마당을 보호하는 구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담으로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출입도 부엌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속초 김근수 가옥
속초보다는 조금 남쪽에 있는 양양의 집 구조는 삼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속초, 고성지방의 ㄱ자 형태의 집을 보이고 있지만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반집은 ㄱ자 형태를 보여주고 있지만 와가 정도가 되면 규모가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ㄱ자 형태가 뒤로 확장되어 ㅏ자형을 보인다든지 ㅐ자형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튼 ㅁ자형태의 집도 나오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양반집과 같은 형태의 집을 볼수 있다. 특히 조규승 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80호)의 경우 홑집의 구조를 하고 있어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하고 있다. 양양 지역의 이러한 변화는 강릉과 가까워지면서 강릉지역 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양양 조규승 가옥
강릉 지역의 집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안채는 겹집의 구조를 보이지만 사랑채는 완벽하게 독립된 형태로 나타나고 튼 ㅁ자 형태의 집이 많이 보이고 있다. 안채가 겹집구조라는 점만을 제외하면 다른 지역의 집과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이다. 서울 또는 다른 지역의 양반집과 별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선교장(중요민속자료 5호)이나 김남익 가옥(강원도 문화재 자료 58호)에서 보듯이 집의 규모도 대단히 커서 다른 지역 양반집의 규모 이상의 수준이다. 이러한 것은 이곳 강릉이 도호부가 위치하였던 지방정치의 중심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와의 밀접한 교류로 인하여 서울 지역의 문화가 많이 유입되어 집의 구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집은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이 명확하고 사랑채는 대부분 홑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ㅁ자 형태를 하고 있다. 결국 강릉 지역의 집들은 서울과 밀접한 교류로 서울의 주거문화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강릉 김남익 가옥
강릉 이남에 위치한 삼척과 동해의 집은 강릉의 집과 비슷한 ㅁ자 구조를 보여준다. 이 지역은 강릉과 인접하여 강릉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까치구멍을 가진 겹집 구조는 기층민중의 집이긴 하지만 경북영덕지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북방계 건축이 동해안을 따라 경북지역까지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척 김영우 가옥
강원도가 이렇게 다양한 집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은 일차적으로 태백산맥이라는 자연적 장애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태백산맥이라는 자연적 환경 때문에 다양한 식생과 기후 그리고 사람의 이동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태백산맥이라는 자연적 장애물이 동서의 문화차이를 확연하게 구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간지역의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집의 구조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도면 출처 : 한국의 건축문화재 3 강원편/박경립/기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