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濟) 중국동해안의 ‘해안선 변화’
■ 서 언
사서를 해석하고 지리적 관점에서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라는 판단은
사서에 나오는 내용이
현대방법론적 시각에서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수도 있겟지만
사건이 일어났던 시대의 기후및 식생을 자연과학사적인 관점에서 참고하고
그 내용을 재해석하는 시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발해만 지역에 대택(大澤)이 어딘가 하는 물음에
사서를 해석하는 사람의 기준이 판단의 척도를 가늠하겠지만
현대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관념적 오류의 예를 들어 보면
요동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이다 라던가,
변화해 보았자 얼마나 변화했겠느냐 하는 주관적인 판단이
지리해석과 전쟁당시의 상황, 사서해석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 입니다.
■ 구체적 사례
예를 든다면,
지금으로부터 최고12,000년 전에 간빙기가 시작 (최후빙하기 종료)되어
8,000년전부터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해
서해의 해안선이 육지방향으로 후퇴하고
산동반도 太山 주위의 고지대만 남고 나머지는 수심 몇 미터내로 침하되었다는 이론들..
게다가
산동지역이 연결되기 시작된것은 황하의 지류는 <산개형 천정천>이라서
물길이 여기저기로 퍼져 휩쓸려 내려온 황토가 급속히 쌓이면서
태산지역 주위로 황토가 섬을 육지로 연결시켰다는 지리과학자들의 이론입니다.
황하의 이런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는것이지만
황하의 황사퇴적 속도가 장강(양자강)보다 빨라 장강유역보다 넓게 퇴적지형이 형성되었다는 이론.
이런 자연사적인 이론들은
왜 동이족의 북방 홍산문화나 한반도 북방고문화가
지나의 황하, 대문구, 마가빈, 앙소보다 이른시기에 형성되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줍니다.
■ 기타 참고 가능한 사례들
이밖에도 예는 많아서
대나무의 현대 위도 분포는 지나대륙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대략 북위 35도 이남지역 이지만
3,000년전만 하더라도
산서,섬서지역에 군락지역이었다는것은
소위 서역지방의 竹簡이 발달하게된 이론들을 뒷받침해 줍니다.
하남성 은허나 앙소문화유적지에서
코끼리뼈,물소뼈등이 발굴되는것을 보면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코끼리나 물소의 식생한계선이
당시에는 현대보다 훨씬 북쪽까지 올라갔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초원지대로 남아있는 호륜패이 평원이
3000년전 만 하더라도 송백이 우거진 침엽수림 이었다는 증거가 과학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기온과 이에따른 식생의 변화가 수천년 주기로 변했던것이 아니라
짧게는 200년,크게는 1,000년 주기로 변화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결 론
따라서
산해경,수경주나,구주산천우공도,正史 원전등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들도 이런 관점에 의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심제
첫댓글 좋은 정보내요.스크랩 할께요.이렇게 수고하시는데욕하는 놈들은 정신이 어떻게 된건지....
위의 그림을 보면,
현금의 산동성 지역을
단군세기에 나오는 三島倭의 지역으로 보아 합리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