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마을8경의제7경'석천서당'
영양석천서당은 경북도문화재자료79호(1985.8.5.지정)로
석계 이시명(1590~1674) 선생이 1640년(조선 인조 18년) 영해부에서 석보촌으로
이주하여 두들마을 중대위에 띠집'초당'을 지어 유생과 아들들을 강도한 곳이다.
영조 46년(1771)중수하고 석천서당이라 하였으며, 그 후 고종28년(1891)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당에는 대산 이상정이 쓴 석천서당기를 비롯하여 석계기,갈암 이현일 및 남곡
권해의 차운,운악대훈, 좌해 이수영의 중수기 등 기판과 시판이 있다.
또한 안릉세전,석계선생문집,정부인안동장씨실기.정묵재집,항재문집,냉천집 등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석천서당이 있는 이 곳은 1640년(인조18년)에 영해에서 석보로 온,
석계 이시명(1590-1674) 이 중대위에 터를 잡아 석계초당을 지어 14년간 살던 곳이다.
석계가 20년간을 일월산 동쪽마을 수비면 신원리 수양산에서 은거하다 1674년 안동에서
운명하자 1676년에 상을 마친 넷째 아들 항재 숭일이 돌아와 선업을 이어 오다가 석계가
강학하던 유적지를 그대로 둘 수 없다하여 1762년에 석천서당을 창건하게 되었으며
1771년 8월에 준공하였다.
서당은 두들 뒷산인 광려산을 배산한 경사진 대지에 남서향하여 자리잡고 있다.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는데 우측 담장 사이에는 3칸 규모의 대문채를 세웠으며 대문채의
전면 우측에는 4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 주사를 배치하였다.
서당은 정면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연접 시켰으며 배면을 제외한 3면에는 평난간을 세운 헌함을 둘렀다.
가구는 오량가의 초익공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출처:영양문화재대관/영양군발행
*문화관광해설사 박원양 올림.
영양문화재대관 석천서당 관련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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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 내용 중에 잘못된 부분 및 이해에 혼돈을 줄 우려가 있는 점에 대한 보완 글입니다.
석천서당은 저의집과 거의 향이 비슷해서 남동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글내용을 읽어보면 항재선생이 석보로 돌아와서 석천서당을 중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후손 이 만와 이인훈의 주도로 자손들과 일부유림의 도움으로
항재선생 사후 70여년 후인 1770년에 기공하여 1771년에 준공한 것으로 되 있습니다.
석천서당 명칭도 석계할배의 호를 피하여 석천서당으로 하였다고 대산 이상정 기문에 나옵니다.
제가 이런 지적이 혹 주제넘는 우려는 됩니다만 정확한 내용을 알자는 것 뿐입니다.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장희 배상(2015.1.7.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