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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배코 (2004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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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화순 도암출생 박용수ㅡ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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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아, 넙죽 절은 못할망정, 괄시 허냐, 요것 읎었으면 지금 너희들도 읎어!" 우리에게 분필만큼이나 당신께는 이 쟁기가 전부였다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반 강제로 끌고 나왔다. 매 번 이런 저런 일로 다투기만 했던 형과 동생도 이의가 없었다. 읍내 결혼식장을 제외하고 처음 아버지와의 도회지 동반이다. 애초부터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신 분이었다. 동물원과 작은아버지가 살고 계신 곳도 다녀왔다. 저녁엔 생고기를 대접해 드렸다. 원기를 회복하시라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입만 다시고 만다. 탁자 위에 젓가락만 아버지처럼 가볍다. 아버지는 이미 당신 혼자 추스르기조차 힘든 함지박 만한 배를 움켜잡고 계셨다. 복수(腹水)는 하루가 다르게 차 올랐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물론 당신도 알고 있었다. 어쩜 당신보다 우리들이 더 받아들이기 두려운 현실인지도 몰랐다. 지금은 허름해졌지만 그 등을 언덕 삼아 근근히 살아오며 끈을 잇고 있는 형제들 아닌가. 그것이 뿔뿔이 흩어진 형제를 한군데로 모이게 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은 참으로 멋들어졌다. 모처럼 숨김없는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학창시절 각자 살았던 곳에 시선을 박고서 한 여름밤의 시원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도 낯선 야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필경 화려한 광채 어디에도 당신의 흔적이 없을 터였건만 아버지는 좀체 시선을 놓지 않으셨다. "여기가 마음에 드는구나, 여기서 깎자!" 무슨 말씀인지 다들 알아듣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이발하기에 적당치 않다는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했다. 사실 이발을 해 달라는 전화가 왔었다. 내심 이발을 핑계로 아버지의 위험을 알리는 어머니의 조심스런 배려로만 알았다. 아버지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머니의 완곡한 부탁에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차에 실려있는 가위와 여동생의 머리 빗을 이용하기로 했다. 전역 직전 심심풀이로 배웠던 이발 기술이었다. 아버지의 많지 않은 머리숱은 메마른 두피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것이 여간 가위질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녕 그런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기꺼이 나에게 부탁했을 터였다. '아버지! 조용히 불러보았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없으셨다. 나무등걸 같은 등을 돌리고서 전방만을 주시하셨다. 아버지! 빨리 원기회복 하세요. 그리고 옛날처럼 우리들에게 배코를 쳐주세요? 쟁기 대신에 경운기로 논밭을 갈 듯, 요즘은 가위와 전기면도기만으로도 이발을 한답니다. 이발사가 머리를 만져주면 포록포록 잠이 오다가도, 아버지의 시퍼런 배코가 생각나 화들짝 깨지요. 그 때처럼 아버지가 무서운 적은 지금까지도 없었지요.'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버지는 휑한 눈으로 무연하게 도심의 불빛을 따라 힘에 겹게 의식을 붙잡고 계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올 한 올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그 것이 나를 옛날로 돌아가게 했다. 아버지는 농사 이외에 별다른 재주가 없으셨다. 평생을 소와 함께 소처럼 사셨다. 그래서인지 쟁기질에 막걸리 한잔 걸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기셨다. 말재주가 없는 탓에 입보다는 귀에 더 의존하셨고, 술값과 조의금 지출이 씀씀이 전부였다. 그리고 빠듯한 농촌 살림에 자식들 학비 늦추지 않는 것을 당신의 소임으로 여기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손수 우리에게 해 주신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당신의 쟁기질 버금가는 기술 '배코 치기'였다. 아버지 쟁기질로 근근히 살아가는 우리 집 살림에 비해 우리 삼형제의 머리카락은 너무도 잘 자랐던 모양이다. 우리들의 머리카락이 밤톨 모양새가 되면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쟁기질할 때 들판을 울리듯이 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자신감이었으리라. 분명 아버지 쟁기 솜씨에 이의를 단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배코를 치자는 아버지의 분부에 순종한 우리들도 없었다. 숫돌에 배코 칼을 갈 때면, 금강석에 금속성 부딪치는 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그러면 우리들은 혼을 놓은 채 아버지를 피해, 뒤란이고 외양간이고 심지어는 대밭까지 허우적허우적 도망치기 바빴다. 당신에게서는 자랑스러운 기술이었겠지만, 우리들에게 신뢰를 주지는 못했다. 태생부터 기계치였던 데다 우리 형제들에게만 달포 남짓만에 발휘하는 특혜인지라 아버지의 배코 솜씨는 좀체 나아지질 않았다. 더구나 우리들의 머리는 족보 같은 가난 탓에 온갖 버즘과 곰발이 무성한, 말 그대로 피폐한 식민지였다. 우리들은 그 점령군을 물리치고자 한시도 빠짐없이 이름도 알 수 없는 당시 최고로 독한 약을 머리에 허옇게 뒤집어써야 했다. 그리고 결국 제일 힘이 약한 동생부터 멍석 위에 꿇려졌다. 동생은 배코 치기가 끝날 때까지 내내 울었다. 그것이 다음을 기다리는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그렇게 내 차례도 오고 말았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아버지를 믿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시퍼런 배코 칼날이 내 머리 위를 지날 때면 칼을 의심하기보다 아버지를 의심했다. '하느님 아버님. 심부름도 잘하고, 깔도 가득 베어오겠습니다. 제발 내 머리만 베지 말아주십시오' 예리한 칼날이 쓱쓱 모공을 스칠 때마다 두 눈이 질근질근 감기고 오금이 저렸다. 아버지는 필경 산비탈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마치 쟁기로 땅을 갈듯 내 머리도 그렇게 배코를 치셨다.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될 배코 치기를 마치 능숙한 쟁기질처럼 하셨다. 그리고 그 거친 땅을 파헤치는 보습 같은 배코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목덜미에 힘을 뺄 즈음이었다. 칼날이 내 두피를 자르는 차가운 감촉과 함께 이내 선홍빛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펄쩍펄쩍 뛰고 멍석을 차면서 동생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아버지는 다급하게 신문지를 가져다 댔지만, 지혈은커녕, 그 틈새로 비눗물까지 파고들었다. 그러면 나는 준비한 연극을 하듯, 두 손으로 머리를 싸잡고 고무공처럼 팔짝팔짝 뛰며 울음을 쏟아냈다. 그리고 원망이 가득 담긴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면, 그 때마다 매번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흔쾌한지 환하게 너털웃음을 짓고서 되려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렇게 반들반들 머리를 깎고 나면 말 그대로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미끈미끈 빛났다. 죽을상을 언제 했냐는 듯, 서로의 머리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거리는 동자승과 진배없었다.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그 짜릿함과 개운함이란...... 쓱싹 쓱싹 내가 움직이는 가위 소리도 연연하지 않고 아버지는 불빛만을 직시하고 계셨다. 지금 죽기엔 너무 억울하니 제발 살려달라는 내 소망이 어찌 아버지의 가슴을 찌르지 않았으랴! 탯줄조차 믿지 못하고 1분 1초의 삶에 연연했던 그 자식의 가위질을 아버지는 묵묵히 받아들이셨다. 나는 이미 아버지와의 만남이 지극히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그 때처럼' 잠시나마 환하게 웃는 모습이 몸서리치도록 그리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표정이 없으셨다. 여전히 흐릿한 당신의 눈빛은 황홀한 도시를 응시하셨다. 내 가위질 소리를 장단 삼아 도도한 불빛을 따라 용궁을 흐르기도 하다가 도리천에서 몸을 씻기도 하셨으리라. 어쩜 저 하찮은 자동차의 불빛일지라도 그 유영 속에 몸을 맡긴 채 당신이 다른 세계로 가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낯선 세계를 향한 초행길을 준비하고 계셨을 것이다. 아버지를 뒷산 언덕에 모시고 유품을 정리했다. 주고만 살아온 당신이라서 간직한 것도 없었다. 당신이 제일 소중하게 여긴 쟁기는 사랑채 벽에 그대로 걸어두기로 했다. 한동안이나마 아버지를 놓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배코 칼을 챙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이루 표현할 수 있으랴.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나침반과 같은 세심한 사랑이다. 이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은 존재 자체로서 언덕이 되고 힘이 되는 어두운 폭풍우 속에 등대 같은 사랑이다. 희끗희끗해진 자분치를 바라보며, 그 배코 치기처럼 무딘, 그러나 그 배코 날처럼 예리한 아버지의 사랑이 새삼 그리워진다. 註 : 배코(를) 치다 : 면도하듯이 머리를 빡빡 깎다. 박용수 : 화순도암출생 화순도암중학교 6회 전남대 국문과 卒(82학번) 광주동신고 교사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모아미래도 아파트 103-1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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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2004년 신춘문예 접수를 마감한 결과 시^단편소설^희곡^동화^수필 등 5개 부문에서 총 482명이 응모했다. 전남일보는 15일자 소인이 찍힌 우편물을 고려해 지난 18일 신춘문예 접수를 최종 마감했으며, 이 결과 시 201명, 단편소설 75명, 희곡 76명, 동화 45명, 수필 85명 등 모두 482명이 응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새로 모집한 동화와 수필 부문의 경우 전국에서 응모자들이 참여,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전남일보는 응모작들을 대상으로 예심과 본심을 거쳐 내년 1월1일자 신년호에 최종 당선자와 당선작을 발표한다. / 김만선 기자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