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골든 허브 ‘카자흐스탄’ 에 관한 지식의 보고(寶庫)서
카자흐 국립대학 한국학 파견교수 주은성
“책은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 수단이요, 만남의 열린 공간이며 늘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지식확장 수단의 하나이다.”
본인은 운이 좋게도 아시아나 국적기를 타고 날아온『유라시아 골든 허브 - 유목, 결핍, 자원으로 본 카자흐스탄이야기-』라는 책을 인쇄된 먹물이 채 식기도 전에 받아보는 영광을 누렸다. 큼지막한 서류봉투를 개봉하는 순간 사막스텝을 상징하는 황토색 유라시아대륙 지도가 펼쳐지고, 그 속에 카자흐스탄이 마치 ‘하늘을 비추는 열린 창’처럼 그려진 표지의 단행본이 나온다. 황토 모래를 연상시키는 중앙아시아 지도의 깨어진 틈 속에 놓인 카자흐스탄! 책 표지디자인을 유심히 보면서 ‘석유시추기의 역동적인 모습이 흰 구름을 머금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긍정적인 행간의 뜻’을 읽는다. 석유시추기는 카자흐의 자원개발사업과 역동적 경제발전을 상징한다. 이 지역의 밝은 미래는 창공이라는 푸른색 이미지로 전이되었다.
하지만, 창공을 배경으로 서있는 석유시추대가 우주 생명체 감지를 위해 외계로 신호를 보내는 송신기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책 디자인이 조금은 기묘하게 느껴진다. 징기스 아아트마토프의 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의 주인공 예지게이가 상상으로 입 밖에 떠올리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선 발사 기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표지 좌측 상단에 나침반이 놓였는데. 하필이면 나침반이 망원경의 신호발사방향에 있으면서 이러한 부조리한 생각을 증폭시키는 기능을 한다.
여하간 이 책은 카자흐스탄에 관한 심화 개설서로, 좀 긴 제목을 가졌다. 『유라시아 골든 허브 - 유목, 결핍, 자원으로 본 카자흐스탄이야기-』 무려 스물다섯 글자다. 윤영호, 양용호, 김상옥 이렇게 세 사람이 대표 필자다. 카자흐스탄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말해주는 글쟁이가 없다. 세 사람 다 전업 작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직업상 글쓰기를 가까이 하는 터라 글발이 살아있다. 그리고 글발에서 대표필자에게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탁월한 12인이 공동저자로 가세했다. 집필자 수로 보면 벌떼 공격에 밀집수비를 즐기는 네덜란드 축구팀을 닮았다. 집단지성이 20세기말의 지식산업 키워드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렇게 고급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한 책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책 뒷표지에 하용출교수, 최유리 상원의원, 고동현 동일 하이빌 사장께서 찬사를 더한 것과 저자들의 캐리커처를 그린 카스케예바의 솜씨도 이 책의 가치와 권위를 더하는 요소다. 이 책은 카자흐스탄 정보에 목마른 분들에게 더 없이 좋은 종합선물세트다.
2000년대 초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카자흐스탄이란 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 나라인지, 아니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연방 국가의 일원이었고 중앙아시아의 한 유목국가였다가 원유, 가스, 광물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중앙아시아의 맹주나 부자나라로 성장한 국가, 1937년 스탈린의 이민족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그다지 우리들에게 친숙하지도 않았고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은 나라이다.
카자흐스탄은 북쪽과 북동쪽으로는 러시아, 동으로는 중국, 동남쪽에 키르기스스탄, 남으로 우즈베키스탄 및 남서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하여 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면서도 원유, 가스, 광물 등 풍부한 천연 자원을 기반으로 중국, 미국, EU 등과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다. 실제 2010년 1월1일부터 정식 발효된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3개 나라로 이뤄진 관세동맹을 맺은 사례나 2010년 OSCE(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유럽안보협력기구)회의 의장국으로 선출된 사례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한국은 1991년 12월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뒤 가장 먼저 투자 진출에 나선 나라 중 하나이다. 이는 아마도 자원 부국으로서 카자흐스탄의 경제적 잠재력, 우리 민족의 시원으로 알려진 알타이 지역에 대한 관심, 10만이 넘는 고려인의 존재가 우리 기업인들에게 새로운 전략적 투자지로서의 가치를 자극한 결과인 듯싶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그 경제적•전략적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면서 주요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진출을 모색하는 나라가 됐고, 우리에게도 단순한 접근보다는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협력 방향을 찾아가야 할 전략적 동반자로 떠오르고 있고 이에 발맞추어 대한민국 정부도 카자흐스탄과의 외교관계를 단순한 우호•친선관계를 넘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특히 올해가 대한민국이 정한 <카자흐스탄의 해>이고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하여 이러한 책이 출간되어 더욱 뜻 깊다. 이 책은 중앙아시아의 중심국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문화, 경제, 산업 등을 깊이 있게 소개한 개설서로 카자흐스탄과 여러 부문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사업을 도모하는 기업이나 단체,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카자흐스탄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해를 돕기 위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유목문화의 계승자, 카자흐 이해하기’에서 손영훈 교수는 유목문화가 현재의 카자흐스탄 민족 정체성의 주된 구성 요소로 보는 치밀한 글쓰기를 하였다. 이에 유목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사타르 마지토프의 ‘유목민사(遊牧民史)’와, 윤영호의 ‘유목민의 기질과 디지털유목민으로 대변되는 신유목민(新遊牧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CIS와 관련해서 모르는 것이 없는 진정한 CIS박사’인 견익승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경험이 현재의 CIS 전체의 시장경제에 미친 영향을 ‘결핍의 경제학’으로 풀어냈다. 이 글은 내가 90년대 초중반 모스크바에서 지냈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려주는 탁월한 보고서다. 비록 논저가 아니지만 어떤 학술서보다 정밀하다. 예술 산문이 아니면서 어떤 수필보다 마음에 와 닿는다. 누구나 짐작은 하였지만 딱히 글로 표현하지 못하던 바를 썼다. 그리고 비단길의 의미, 다민족 국가적 특성에 대한 글이 이어진다. 마지막은 한국인들이 카자흐스탄에 진출할 때, 가교 역할을 해주는 고려인의 정체성에 관한 글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누구인가?’의 김병학 시인의 글은 현재시제로 되었지만, 나에게는 과거형으로 읽힌다. 시인이 20년 전 중앙아시아에 와서 오늘까지 살면서 느낀 고려인에 대한 감정복합을 시간을 아우르며 통시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카자흐에 진출한 한국 사람들의 애증의 대상이며 한국인 자신의 거울과 같은 존재인 고려인에 대해 시인이 말하는 3개의 페르소나는 독자들의 명쾌한 이해를 돕는다. 유목문화, 소비에트 결핍의 경험, 고려인의 정체성에 관한 글은 이 책의 요지를 표현하는 중요한 글들이다.
2부는 카자흐스탄 경제와 산업 전반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를 하고 있다. ‘유목문화’가 20세기 이전의 카자흐스탄을 특징짓는다면 20세기는 ‘소연방으로서의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로 특징된다. 그리고 소련붕괴와 동시에 독립한 카자흐스탄을 특징짓는 것은 ‘유라시아의 허브’, ‘천연자원’이다. 즉 유라시아의 허브인 카자흐스탄은 유목의 시대를 지나, 사회주의 결핍의 시대를 넘어 풍부한 자원부국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유목국가라는 변방에서 자원부국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결핍이라는 사회주의 경험을 떨치고, 풍요와 번영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산업자원 전반에 관한 글을 필두로, 에너지 자원 찾기와 수송로 전략, 광업, 농업에 관한 글이 이어진다. 그리고 2007년부터 카자흐스탄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는 금융업과, 한국 기업의 건설경험을 토대로 한 건설업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3부는 카자흐스탄 파워 엘리트를 소개하고, 카자흐스탄의 대외정책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 카자흐스탄 관계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틀에서 조망하면서 한국기업의 진출 현황 및 유망 진출 분야,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다양한 분쟁사례와 예방, 한국의 카자흐스탄 투자사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저술에 참여한 저자는 윤영호, 양용호, 김상욱을 비롯한 총 15명으로 구성이나 경력면에서 매우 다채롭다. 마지토프, 라우물린, 자우레는 카자흐인으로서 각각 역사, 국제정치, 자원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김상욱, 김병학은 15년 이상 카자흐스탄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으로 카자흐스탄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양용호와 견익승은 모스크바에서, 손영훈은 알마티에서 오랫동안 공부했고 현재는 최고의 CIS 및 중앙아시아 전문가이다. 류상수, 김진실, 윤영호는 카자흐스탄의 자원, 건설, 금융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비즈니스맨으로 현실감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적임자이다. 이양구, 정용권은 외교관과 산업협력관으로 정부 차원에서, 이유신과 양우석은 투자가의 입장에서 카자흐스탄을 바라보았다.
보통 여러 명이 함께 저술한 책은 일관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유라시아 골든 허브로서의 카자흐스탄’을 가장 잘 특징짓는 내용으로 일관되게 구성•편집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카자흐스탄의 문화와 경제, 산업에 대해 쉽게 이해하도록 배려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질적인 면에서도 기존의 어떠한 개설서보다 수준 높은 내용과 글쓰기로 완성된, 살아 숨 쉬고 있는 카자흐스탄에 대한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 찬 보고(寶庫)라 부르고 싶다.
한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