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5절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그림자.
창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내일은 크리스마스여서 오늘은 예수님의 관한 부분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신이 나를 위해 대신 죽으려고 오셨다는 사실이 사실은 그렇게 쉽게 믿어지는 부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의 신을 우리의 육안으로 본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그동안 무수히 들어 온 정보와 지식으로 인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증명할수 있는 것은 교회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무거운 짐인지, 아니면 그 예배를 기다리는지 내면을 들여다 보면 분별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보통 원시 복음이라 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의 능력이 되고 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창3장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에덴에 두시면서 법을 하나 정하여 주셨습니다. 바로 선과 악을 가진 지식의 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흙으로 만든 사람이 아니고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고급 사람이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세상에는 죄악이 들어 오고 죄를 범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각각 형벌을 주셨는데 그중에서 15절은 후손의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4장에 가면 1절에서 가인을 낳았는데 하와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그리고 이어 2절에서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가인'의 이름은 '세우다, 건립하다, 획득하다'등의 의미로 '세운 자, 얻은 자'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가인을 낳고 '에트 여호와'라고 했을까요? '에트'는 '말미암아' 말고 '~을' 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두번째 번역으로 하와는 가인을 낳고 여호와로 알았다는 고백이 됩니다. 왜 이런 고백이 나왔을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3:15절에서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
그 이야기를 사탄이 들었습니다.
사탄은 자기의 머리를 밟을 메시야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가인을 충동질해서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사탄은 통쾌하게 웃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겼다고 절대로 내 머리는 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세월이 흘러 하나님은 그림자로서 한 면씩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모델이 아브라함과 이삭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100세에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시고 청소년이 되었을 때 나에게 바치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밤새도록 잠못자고 번민했습니다. 차라리 이 목숨을 달라 하시지요, 아마도 밤새도록 그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새벽이 밝아 오자 사라에게 말하지 않고 이삭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 제사 지내러 가자, 삼일길을 걸으면서 아브라함은 이미 아들을 가슴에 장사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나다, 내가 내 아들 십자가에 놓을 때 나도 고통스러워서 하늘이 울었다고... 이삭을 잡아 단위에 올릴 때, 이삭은 나다, 내가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지 않았다. 할수도 있었는데 온전히 아버지의 명령을 준행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야곱의 아들들을 통해 그림자를 보여 주셨습니다. 꿈꾸는 동생을 시기하여 장사꾼들에게 요셉을 팔게 됩니다. 창37:28절"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
야곱은 죽기 전에 유언과 함께 축복도 했습니다.
야곱은 창49:22-26절까지 요셉에게 축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불러 축복을 하였는데 두 아들을 양자로 삼아 한지파로서 기업을 얻게하고 요셉에게는 22절에서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왜 두 몫일까요? 대상5:1-2절을 보면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다시 창세기로 가서 창49:24절"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이번역이 개역 개정이고 직역 성경을 보면 "그의 활은 견고하며 그의 팔들은 민첩하니 야아콥의 전능자의 손에 의해서 - 거기서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목자가 나왔다" 그리고 26절에 중반에 가면 "그 복들이 요셒의 머리에 있으며 그의 형제 중에 성별된 자의 정수리에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시킨후에 법전을 주시고 구별시켜 주셨습니다.
그 법전 중, 레25:25절"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7절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이 말씀이 룻기에서 실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기업을 무를자 '고엘'의 제도인데, 히 '고엘'은
'되찾다' '무르다' '구속하다'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른다는 것은 판매했던 것을 대금을 주고 되찾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토지가 아닌 사람일 때는 속량, 혹은 구속이란 단어로 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룻기서는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을 떠나면서 두 며느리에게 너희는 여기서 새롭게 시집가서 살라 하지만 룻은 끝까지 시 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룻이란 며느리를 통해 보아스에게 시집 보내고 보아스를 통해 나오미의 토지를 되찾아 주는, 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사건을 통해 보아스가 바로 예수님의 또다른 모형임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아담의 죄를 그대로 물려 받아 그것을 원죄라 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죽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요8:4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좀 어려운데 새번역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역 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는 사망의 늪에서 벗어 날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대신 우리를 구속할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망의 늪에서 건져 줄 그 누구말이죠? 그분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가 기업 무를자이고 고엘입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은 진정한 기업 무를 자 이셨습니다. 죽었던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고 십자가를 지시므로 이제 그를 믿는 자들을 죄의 삯인 사망에서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진정한 기업 무를 자이십니다.
이제 끝 마치려 합니다.
이 시대에도 '기업 무를 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힘들고 지쳐 절망하고 있는 많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약자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처럼 '기업무를 자'로 섬겨야 할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그 십자가 사랑을 모르는 많은 믿지 불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기업 무를 자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
첫댓글 감사
새해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하시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