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황주홍이 본인 정치소신 제1호로 "정치 쇄신 제1호, 국회의원 뱃지 패용 금지"라는 소박한 뜻을 표했다. 뱃지 패용은 자유다. 황주홍은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의 벼슬아치일 수 없고, 이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현하 시대정신이다. 아직도 일군의 국회의원들이 ‘금뱃지’를 달고 있는 일, 시대정신을 그리도 독해(讀解)해내지 못하는, 참 딱한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태도와 선거 결과 당선이 된 이후의 태도는 완전 상반된 경우가 허다하다. 또 국회의원 떨어지면 머리 수그리고 다니는 장면 등이 참 초라해 보였다.
뱃지를 패용해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여 그의 얼굴이 뱃지가 되는 국회의원들이 많이 탄생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안철수가 주장하는 정치쇄신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했다. 대 국민 신뢰 회복 후 국민들이 금뱃지를 존경하게 될 때 패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러면 안되지만 금뱃지를 변뱃지라고도 하지 않는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그의 황주홍의 글이다.
초선 일지
2012년 11월 11일
황 주 홍(민주당, 전남 장흥강진영암)
오늘 아침 어떤 장면을 상상하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일이 있다.
국회의원이 여러 무리들 중에 유독 혼자만 의원 뱃지를 달고 자리를 함께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정말 쑥스럽고 겸연쩍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제 저녁 강남의 한 호텔에서 대학 친구 딸 결혼식이 있었다. 동기들 10여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저녁을 함께 하였다. 나는 고향 지역에서 군수 일을 한 10 여년 하느라고 아무래도 서울과는 거리가 생길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내게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반갑고 따뜻한 자리였다.
아침에 이촌동 집에 혼자 있다가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보았던 거다. 어제 온 친구들 그 누구도 옷깃에 배지를 달았던 사람이 없었다. 친구들 중엔 대학 교수들도 있었고, 대기업 사장도 있었고, 부사장도 있었고, 주요 일간지 논설위원도 있었고, 자기 회사의 CEO들도 있었다. 물론 한 두어 명은 현역에서 퇴임해 있기도 했다. 어쨌든 어제 뱃지를 단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 만약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버젓이(그리고 개념없이) 뱃지를 달고 나타났더라면 뭐가 되었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런 유치한 부조화라니??????. 어떻게 그런 좋은 옛 친구들의 정겨운 자리에 얼굴 두껍게 자기 신분 계급장을 떠억 패용하고 나타나서 분위기를 일순 수직화하며, 기분 좋은 일을 기대하며 나왔을 좋은 이들의 선한 마음 속에 미묘한 신분질서적 파문을 일으킬 저속한 용의를 가질 수 있더란 말인가? 하도 미천해서 상상이 안 가는 것이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한 요즈음이어서 나도 친구들도 다 검정색 계열의 짙은 양복 차림들이었다. 계절에 적응해서 잘 이루어진 하객(賀客)들다운 진지한 색상은 늦가을의 저녁 실내와 잘 어울렸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색상조차 불그죽죽해서 촌스러운데가, 또 나라 국(國)자라는 것은 어찌 그리도 경우없이 크고 위압적이어서 별스럽기 짝이 없는 그 국회의원 뱃지를 이 보란 듯이 차고 나타났더라면 얼마나 튀는 장면이었을 것이며, 얼마나 을씨년스런 꼴불견이었을 것인가?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것이었다. 부족한 나야 아예 뱃지 자체를 착용하는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같은 상상으로 내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것은, 실은 내가 그러했을 경우에 대한 상상으로 인한 화끈거림이었다기 보다는, 이제껏 여야 국회의원들께서 이런 저런 자리에 그 촌티나는 뱃지를 달고 나타나 도란도란했을 그 숱한 아름다운 모임들을 권위주의적 회식으로 변질시키며 분위기를 망가뜨려놓은 일들이 무릇 기하이었겠느뇨, 하는 반성적 상상에서 오히려 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오오, 신이시여, 제 동료들로 하여금 저 망극한 시대착오적 행장의 분별없음을 분별케 하소서!〕
나는 언제 다시 이 문제를 제대로 한번 더 쓸 것이지만, 국회의원들의 자기 신분 인정 촉구성 뱃지 패용은 근거도 명분도 효용도 전무한, 오직 반민주적, 반시민적, 반통합적 구태 그 자체일 뿐이다.
국회의원이 그 뱃지를 착용하는 순간, 그(녀)의 입과 머리에서 겸허와 봉사와 형평(또는 공정)이라는 생각은 불가능해진다. 지체높은 이가 신분증을 번들거리며 희생과 헌신과 우국을 운위하는 건 아주 단순히 위선이다.
국회의원 뱃지 패용이라는 형식에 구애되는 순간, 국회의원들의 입과 머리에 담긴 내용(물)은 하찮을 정도로 빤히 계급적이고 군림적이고 분열적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진다. 형식과 내용은 늘 상호 규정적이다.
정치 쇄신 제1호, 국회의원 뱃지 패용 금지. 이것이 부족한 내 정치 소신 제1호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의 벼슬아치일 수 없고, 이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현하 시대정신이다.
아직도 일군의 국회의원들이 ‘금뱃지’를 달고 있는 일, 시대정신을 그리도 독해(讀解)해내지 못하는, 참 딱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