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원에서도 아담한 회양목은 자주 눈에 띈다. 둥근 모양으로 다듬은 회양목이 화단의 가장자리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또 도로의 가장자리에 줄 지어 심어 생생한 울타리로 삼는다. 그러나 이 회양목이 우리 산에 자생하는 나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회양목은 시멘트가 생산되는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석회암지대에 많이 자생한다. 회양목이 석회암石灰巖으로 이루어진 토양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회양목灰楊木이다.
봄 3월 28일,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동강 백운산을 찾았다. 산 굽이굽이 돌아 찾아간 동강은 푸른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태백산맥에 겨우내 쌓였던 눈 녹아 흐르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산악회 버스는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점재나루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점재나루에 놓인 잠수교를 건넜다. 예전에는 나룻배가 마을 사람들을 건넸지만 지금은 잠수교가 대신한다. 산의 어귀에는 빨간 모자를 눌러 쓴 마을 아재가 산불조심을 알린다. 산악회 대장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산불감시 장부에 적고 산행에 나섰다.
해발 880m의 정선 백운산 산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70도~80도를 넘나드는 경사도의 산길이다. 비탈길은 잿빛 바위와 붉은 황토로 질척하다. 뼝대로 불리는 석회암지대의 특징이 뚜렷하다. 뼝대는 병풍을 세워 놓은 것처럼 깎아지른 절벽의 준말로 보인다.
제1전망대에 올랐다. 동강 백운산을 휘돌아 나가는 물줄기가 용틀임을 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다. 석회암지대로 이루어진 뼝대 여기저기에는 검회색의 속살이 들어난다. 그곳에 붉은 색을 띈 푸른 회양목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회양목은 회양목과에 속하는 상록성 관목이다. 늘 푸른 나무로 우리나라 석회암지대의 뼝대에 붙어 잘 자란다. 손톱보다 작고 둥근 회양목의 잎은 추운 겨울에 붉은 빛을 띤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회양목도 내륙 지방의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힘겹다. 그러다가 따뜻한 봄이 되면 푸른빛을 다시 찾는다. 이어 좁쌀 크기의 작은 꽃을 다닥다닥 피운다.
회양목의 노란 꽃에서는 꿀 향기가 짙게 난다. 새 봄을 맞은 꿀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밀원이다. 회양목의 가장 큰 쓰임은 관상용이다. 조경수 또는 분재로 기르기에 아주 적합하다. 전지가위로 전정을 하면 그 모양을 유지하며 알뜰하게 살아간다. 때로는 어린 회양목을 밀식하여 도시의 이름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회양목은 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되었다. 미국인 윌슨이 1917년에 관악산에서 채집하여 개량한 회양목은 윈터 그린(Winter green)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1989년에 단양에서 채집하여 개량한 것은 윈터 뷰티(Winter beauty)가 되었다. 이 두 종류의 회양목은 새로운 품종으로 해외시장에서 판매된다고 한다.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에는 천연기념물 제264호로 지정된 회양목이 있다. 이 나무는 높이는 5m를 넘지 못한다. 줄기의 지름도 20cm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나무의 나이는 300년 이상이라고 한다. 회양목은 그만큼 더디게 자라는 나무이다.
용주사 회양목은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세우고 원찰인 용주사를 세우면서 심은 나무로 전해진다. 이를 근거로 이 나무의 나이를 300년 정도로 추정하는 것이다.
백운산 능선에는 회양목 외에도 굴참나무 숲이 주종을 이룬다. 코르크 성분의 껍질을 가진 굴참나무도 석회암 지대에를 선호하는 식물이다.
백운산 절매 나루터 부근에 백룡동굴이 있다. 석회암지대에만 나타나는 대표적인 석회암 동굴이다. 백룡동굴의 이름은 최초 이 동굴을 발견한 지역주민 형제의 이름을 땄다. 그 부근에는 또 동강할미꽃 자생지가 있다. 이곳의 동강할미꽃은 3월 하순이면 서둘러 꽃을 피운다. 산봉우리에는 아직 허연 눈을 이고 있는데 솜털에 쌓인 동강할미꽃은 보송보송한 얼굴을 내민다. 동강할미꽃과 회양목을 카메라에 담고 발길을 되돌렸다. 내 년 봄에 다시 오리라.
동강 제2전망대에 이르렀다. 이곳에서의 전망이 천하의 절경이다. 백운산을 용처럼 휘돌아 나가는 강줄기를 능덕암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엄마야 누나야’의 노래가 저절로 떠오르는 풍경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는 한국인의 정서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대다수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입으로 흥얼거리기에 좋다.
그런데 오늘은 새乙자로 구비치는 강물에 비오리가 보이지 않는다
. 먼빛으로도 보고 싶은 비오리가 눈에 뜨지 않는다. 등산객이 많은 일요일인데다가 확성기로 떠드는 노랫소리 때문이다.
발발발 오리발, 동강 오리발
찬 물에 발갛다.
비비비 비오리, 동강 비오리
강물에 물수제비 뜬다.
동강에 사는 비오리는 겨울철새이다. 기러기처럼 가을에 북쪽에서 날아왔다가 새봄에 날아가는 철새이다. 그런데 일부의 비오리는 동강에 머물러 텃새가 되었다. 맑고 아름다운 동강을 떠나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동강을 귀로 느끼려면 강물소리를 들어야 한다. 시원한 여름에 힘차게 흐르는 여울물소리를 하루 종일 들으면 좋다. 잔잔한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물소리를 듣는 것은 여성에게 더 좋다. 내 귀에 캔디는 여성의 본능이라지 않는가!
동강을 눈으로 느끼려면 돌밭을 걸어야 한다. 두 발에 느껴지는 강돌을 수없이 밟고 만져 보면 좋다. 둥근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강돌을 보는 것은 남성에게 더 좋다. 제 눈에 들보도 보지 못하는 게 남자의 본능이라지 않는가!
동강을 온몸으로 맛보려면 백운산에 올라야 한다. 두 발로 힘들게 뼝대를 걸어 오르며 회양목, 굴참나무, 향나무 향기를 맡으면 좋다. 그러면 저마다 향내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향기를 맡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좋다. 풀꽃향기는 현대인에게 잊혀 진 원시 본능을 일깨운다.
동강에 자주 와야겠다. 봄에는 동강할미꽃과 회양목을 보러 오고 여름에는 금모래와 여울물에 발 담그러 와야겠다. 가을에는 돌밭에 이는 갈잎의 노래를 듣고 겨울에는 강물을 차고 나는 비오리를 보러 와야겠다.
첫댓글 동강의 회돌아가는 강물 보니 하회마을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