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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4:14-16
1.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
구약에서는 기름부어 세운 3 직임이 있었다.
제사장, 선지자, 왕이었다.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통치를 하였고,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말씀을 선포하였고,
제사장은 사람을 대리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세워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삼중직을 다 감당하셨다.
삼중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임을 예표한 것이었고, 성취되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대리인이다.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것은 대제사장의 손을 거쳐서 바쳐질 수 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어떤 은총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는 큰 대제사장이시다.
그는 아론보다 훨씬 크신 대제사장이시고, 훨씬 위대하시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희미한 예표와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그의 승천하심을 통해 그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셨다.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차례만 성전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지성소였고, 하나님의 보좌와 임재를 상징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단번에 영원히 천국(보좌)에 들어가셨다.
그의 승천은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고,
그의 백성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의 백성을 위해 변호하고 중보해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셨다.
승천하신 이는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시다.
그는 구세주이시고,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고,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스도는 은혜로우신 대제사장이시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에게 자비로우시고 연민을 보이시고, 동정을 베푸신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15)
그리스도는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들과 시험들을 몸소 겪으시고 이기셨다.
이 고난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속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를 동정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대제사장이시다.
아론과 대제사장들은 자기의 죄를 위하여 먼저 제물을 드리고 죄사함을 받아야 했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죄를 물려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셨다.
그리스도는 신성으로 나실 때 어머니가 없었고, 인성으로 나실 때 아버지가 없으셨다.
동정녀 탄생이 무너지면, 죄 있는 인간이 구세주가 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동정녀 탄생을 가볍게 여기는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학은 성경을 믿지 않는 반신학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무너질 때도,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실 수가 없게 된다.
신성의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죄 있는 인간은 골백번 십자가에 달려 죽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
기독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서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참 사람,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고,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다.
오직 복 주는 하나님으로만 섬긴다든지,
오직 뛰어난 한 인간으로만 여긴다든지, 하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지 않고 사람의 글로 보는데서 나오는 똑 같은 망발들이다.
십자가 없는 축복(구원), 고난 없는 영광은 성경에 없다.
그런 축복 영광은 오직 미신으로, 기복신앙으로, 믿는 자들의 탐욕일 뿐이다.
축복과 영광만을 노래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미혹의 영들에 속지 말라.
2.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할 믿음의 도리는 성경에 계시된 교훈(교리)들이다.
인간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교묘하게 섞은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을 조심해야 한다(고전5:8).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구하고 찾는 이리들과 연약한 성도들이 거기에 빠져든다.
순전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곳에는 그렇게 사랍들이 많이 몰릴 수가 없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은 육신을 가진 인간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썩은 생선에 파리떼가 많이 몰려든다.
하나님은 오직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만 받으신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노략질한 돈으로 커다란 건물을 짓고 화려한 의식으로 예배한다고 받지 않으신다.
그 예배하는 곳에 성령이 운행하지 않으시고 순전한 말씀의 진리가 선포되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들의 잔치일 뿐이고,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
사사시대 3백년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제사를 드렸다.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망할 때까지도 제사는 열심히 드렸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 때에도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중세 천년의 암흑시대에도 교회들은 끊임없이 예배를 드렸다.
이교도들도 제사와 예배는 얼마나 정성스럽게 드리는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그 도리에 맞게 예배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일생 동안 예배 잘 드렸는데, 가는 곳이 지옥이라면 그처럼 허망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믿는 도리, 성경의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격려와 위로도 진리의 말씀 안에서 받아야 한다.
기도도 진리의 말씀 안에서 말씀으로 살면서 드려야 한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
하나님은 진리의 율법을 세우신 분이요 그 진리로 다스리시는 분이시요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33:22)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그 진리로 살아야 축복하신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33:15-16)
높은 곳에 거한다는 것은 천국에 거하는 것이고, 이 땅에서도 천국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믿음의 도리로 굳게 붙든 견고한 바위(진리)가 그의 요새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양식을 공급해주시고, 물이 끊이지 않게 해주실 것이다.
토색한 재물, 뇌물, 피흘리려는 꾀, 악행들이 양식과 물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공의를 행하고 정직히 말하고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공급은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 있는 자는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와는 거리가 먼 자이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셨다(갈6:8).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셨다.
믿는 도리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가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지은 자이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7:24-25)
성경이 완성된 후에도 많은 이단과 철학의 잘못된 가르침들이 교회에 몰려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회의를 열어 믿는 도리들을 신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경건서적들을 저술하여 믿음의 도리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헌신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목사를 양성하는 대교단들의 신학교들은 이들을 거의 가르치지 않고,
현대신학이라고 불리는 것들, 인간의 지혜와 철학들로 혼잡한 신학들만을 주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배운 목사들이 교회에서 어떤 설교와 가르침들을 전할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
믿는 도리를 굳게 붙들려면, 다시 종교개혁을 하여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사시대, 왕정시대, 카톨릭시대의 교인들이 되지 않을려면,
믿는 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하고, 베뢰아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야 한다.
여호와의 율법, 성경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지켜 행해야 한다.
우리의 생활 방식, 사고방식, 가치관과 습관들을 성경 중심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만이,
우리의 광야생활의 고난과 연단을 마치는 길이다.
요단이 갈라지고 가나안에 이르는 길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것도,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들려다가 연약한 것을 동정하시는 것이지,
세상과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다가 받는 고난을 동정하시는 것이 아니다.
3.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하나님은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시103:19)
보좌는 권위를 말하고 두려움과 존경을 나타낸다.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의 덮게를 시은좌라 한다.
은혜를 베푸시는 보좌란 뜻이다.
그룹이 있는 그 보좌에서 하나님은 속죄의 피를 가지고 온 대제사장을 일 년에 한 번 만나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린 후에는
굳게 닫혀 있던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지고 보좌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15:37-38)
휘장 가운데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이제 그곳에 승천하신 큰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10:19-23)
우리는 마음에 피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다.
우리 몸은 주님이 주시는 생수의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다.
그러니 구원받은 자들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구원과 영화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시다.
언약을 지키시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할 일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믿는 도리의 끝에는 소망이 있고 축복과 영광이 있다.
그 소망을 약속하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보좌 우편에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계신 것이다.
그 보좌는 은혜의 보좌요, 긍휼하심과 은혜를 주시는 보좌이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과 중보를 힘입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고,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도, 선한 싸움을 싸울 수도, 달려갈 길을 마칠 수도 없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며,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감사함으로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믿는 자들은 한 손에는 믿는 도리의 성경과 경건 서적을 붙들고,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높이 들고,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가 거룩해진다는 말씀을 기억하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우리가 믿는 도리를 성경을 통해 굳게 붙들어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우리 마음 중심에 기반의 터와 삶의 기둥으로 삼아야 한다.
이 진리를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큰 대제사장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이 진리를 확실히 알고 붙들어야, 그분이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신 것을 알 수 있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확신할 수 있고, 은혜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믿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은 진리가 내 안에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믿는 도리)으로 말미암는다(롬10:17).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 기도하자.
첫댓글 아멘.감사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