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광개明光鎧라는 갑옷이 삼국시대에 있었다. 갑옷에 금빛 찬란한 황칠黃漆을 하여 적의 사기를 꺾었다는 갑옷이다. 황칠갑옷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 많았는데 당나라에서 특히 황칠 갑옷을 부러워하였다고 한다.
중국 북송시대에 편찬된 ‘책부원구(冊府元龜)’에는 그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당 태종(이세민)이 백제 의자왕에게 사신을 보내 의전용 갑옷 산문갑에 입힐 금칠(황칠)을 요청했다.’
이 시기의 전후에 백제는 당과 황칠을 교역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1월 12일, 공주대박물관장은 공산성 저수시설 마무리 조사에서 '정관 19년'(貞觀十九年)이라는 글자가 적힌 비늘 모양 갑옷 1령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 갑옷은 저수시설 바닥에서 출토됐다. 갑옷에는 '○○行貞觀十九年四月二十一日' '王武監' '大口典' '○○緖' '李○銀○' 등의 붉은색 글씨가 적혀 있다.
발굴조사단은 貞觀十九年이라는 명문에 주목했다. 당 태종 정관 19년은 서기 645년으로 정확한 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관은 당 태종의 연호이며 서기 645년은 백제 의자왕 재위 5년이다. 대략 어림하면 백제 의자왕이 당태종에게 선물로 보내기 위해 만든 갑옷 중의 하나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옻칠 천년 황칠 만년이란 말이 있다. 황칠은 수 십 년 묵은 체증도 녹이며 한번 막을 형성하면 만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는 말이다. 실제로 고대 고분의 유물에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희귀성과 정제 방법이 어려워 실제로 체험해 보기는 어렵다.
남쪽의 바닷가에는 한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활엽수가 많다.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호랑가시나무, 황칠나무 등이 그것이다. 황칠나무를 처음 보면 갈라진 잎의 모양이 음나무 잎 같기도 하여 어리둥절해 진다. 그러나 지금은 노지에서 많이 재배하여 산보다는 농원에서 자주 만난다.
황칠나무는 줄기의 상처에서 황색의 수액이 나옴으로 얻어진 이름이다. 나무줄기에서 노란 물이 나온다 하여 노란옻나무라고 부른다. 잎의 생김새가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여 압각목(鴨脚木), 압각판(鴨脚板)이라고도 한다.
황칠나무는 상록성 교목이다. 어린 가지는 연두색을 띈다. 잎의 모양은 오리발 모양의 타원형으로 두텁고 매끄럽다. 보통은 삼각으로 뚜렷하게 갈라졌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6월에 연한 황록색으로 핀다. 양성화이며 산형꽃차례로 원 꽃줄기에 여러 개의 작은 꽃줄기 끝에 꽃을 매단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꽃잎과 수술은 5개씩이다. 암술머리는 5개로 갈라지고, 열매는 핵과(核果)로 둥글면서도 약간 길쭉하게 10월에 검게 익는다.
황칠나무는 우리나라의 난대성 수종으로 남해안의 완도, 보길도, 제주도 등 서남해안 지역에서 자생한다. 동쪽으로는 거제도에 딸린 갈곳도, 서쪽으로는 신안군 소흑산도, 북쪽으로는 보령군의 외연도이다. 황칠나무가 경제수종으로 각광을 받는 지금은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기른다.
황칠은 어떤 물건에 색을 칠하거나 표면을 아름답게 꾸밀 때 이용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황칠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금속이나 가죽의 도료(塗料)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황칠은 갑옷이나 귀중한 가구에 칠하는 귀한 물품이었다. 황칠나무 자생지가 주로 외딴 섬인 것은 남획의 결과이다. 황칠나무는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무차별로 수난을 당하였다. 황칠나무 수액은 중국으로 조공 또는 수출 품목으로 수없이 팔려 나갔다.
나무에서 진액을 채취하여 이용하던 수종이 몇 종류가 있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입춘을 전후해서 물을 받았고, 소나무의 송진, 옻나무의 옻칠, 황칠나무의 황칠은 수액유동이 왕성한 여름에 수액을 받았다. 황칠의 귀중함과 수난사는 다산 정약용의「詩文集」에도 들어 있다.
조선시대 궁복산에 가득한 황칠나무를 그대 보지 않았던가. 깨끗한 금빛 액체 반짝반짝 윤이 나지. 껍질 벗기고 즙 받기를 옻칠 받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래야 겨우 한잔 넘친다. 상자에다 칠을 하면 옻칠 정도가 아니어서 잘 익은 치자로는 어림도 없다하네. 글씨 쓰는 경황으로는 더더욱 좋아서 납지나 양각이나 그 앞에선 쪽도 못 쓴다네. 그 나무 명성이 온 천하에 알려지니 박물군자도 왕왕 그 이름을 기억하지….
그러나 황칠나무가 조공품으로 수탈되면서 농민들은 괴로움을 겪는다. 공물 수탈에 지친 나머지 황칠나무를 악목(惡木)으로 여기고 도끼로 찍어 죽였다.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 가고〔貢苞年年輸匠作〕
징구하는 아전들 농간도 막을 길 없어〔胥吏徵求奸莫防〕
지방민들은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고〔土人指樹爲惡木〕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每夜村斧潛來〕
황칠나무는 최근 약용자원으로 각광을 받는다. 인삼 및 가시오가피와 같은 파낙스(Panax) 계열의 수종으로 나무인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황칠은 간 기능을 보호하고 간 지방 제거에 뛰어나며 피로와 술독을 풀어주는 뛰어난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최근 경희대 약대, 한국과학기술원 및 유럽생명과학연구소 등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황칠나무는 자생지보다 훨씬 위쪽인 천리포수목원에서도 자란다. 이로 보면 동백나무처럼 중부지방에서도 푸른 잎을 달고 겨울을 날 수 있겠다. 겨울에 거치로 나무를 싸주면 바람막이가 잘 된 정원에서는 월동을 할 수 있겠다. 한겨울에 얼었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하겠지만 중부지방에서는 살아갈 수 있겠다.
첫댓글 옻칠보다 훨씬 좋은 황칠이네요.
황칠나무 넣고 푹 끓인 오리백숙이 참 좋더군요.
옻닭이 아니라 황칠닭이로군요. 옻닭 메뉴에 황칠닭도 추가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