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단동에서 열린 2015 대중테니스회의
중국 단동에서 열린 2015 대중테니스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단동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2015년 9월 11일 오후 4시. 인천 제1부두에서 출발하는 이 배는 11,000톤급 동방명주. 15시간 배를 타고 가는 첫 경험이라는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두려움은 파장이 컸던 세월호 사건의 영향이리라.
단동으로 가는 여러가 지 방법 중 배를 선택한 이유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심양이나 북경을 거쳐 다시 이동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배를 타고 내리는 수속을 밟는데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단동은 북한으로 가는 창이기도 하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북한에 닿기 때문에 한국인 누구라도 호기심과 설렘을 가지고 가는 곳.

밖은 비가 내리고, 칠흑 같은 바다 위를 표표히 떠가는 선상의 밤은 길었다. 다음날 아침 9시, 배에서 내린 곳은 단동 시에서 30여 킬로 떨어진 동항항구. 검문검색의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철저했다. 동항항구는 일반 교통이 통제된 곳으로 허용된 셔틀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더 가서야 픽업하러 온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분은 조선족 2세로 중국어와 한국어가 유창했다. 북한과의 무역만 25년간 했다는 그 분께 북한에 대한 질문을 폭포처럼 쏟았으나 대답은 매우 절제되고 조심스러웠다.
두 대로 나눠 탄 일행은 30여 분만에 만달호텔의 회의장에 도착. 회의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100여명의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환영의 인사를 대신했다. 중국의 대중테니스를 위한 이러한 회의는 이미 6년 전, 연변에서 시작하여 명파와 계림, 소주, 성도등을 거쳐 단동에서 열리게 되었다. 중국의 프로 테니스는 그랜드 슬램 우승자인 리나나 US오픈 4강에 오른 펑솨이등의 활약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반면, 아마추어 테니스는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매 년 이러한 회의가 열릴 때마다 한국의 아마추어 테니스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관련자들을 초청해 오고 있다.

대중 테니스의 발전을 위한 이 행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테니스협회 유지위 특별 부회장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중요한 내빈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중국테니스협회 이유림 부회장과 고심일 중국테니스협회 부회장, 모곤홍 상하이테니스협회장, 양시영 베이징테니스협회장을 비롯해 소주, 천진, 강소성, 심천, 길림성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니스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또 중국과 호주와의 테니스 교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진평 여사도 참석하였으며 특히 회의 개최지인 단동테니스협회 이건조 명예회장을 비롯해 요녕성 테니스 협회 우건동 회장의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중국테니스 협회 유지위 부회장은 “올해로 이러한 회의가 여섯 번째다. 각 지역의 테니스 대표자들이 모여 토론을 한 내용들은 지역테니스 발전을 위한 중요한 자료들이 될 것이다”며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생활체육으로 테니스가 정착되기 위해서 한국의 시스템을 배우는 것이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유림 중국협회 부회장은 “매 년 문제점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하면서 진일보된 미래의 테니스 세상을 엿볼 수 있다”며 “각 지역과 지역 그리고 국제적인 테니스 교류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고 전했다.
기자는 2015 대중테니스회의 주제인 ‘여성들의 테니스 참여’에 맞게 한국 여성 동호인들의 실태를 50페이지의 PPT 파일로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먼저 여성 동호인들의 모임의 종류와 실력을 키우기 위해 참가하는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들이 실력별로 그레이드를 나누어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음을 소개했다.

화곡어머니클럽 같이 역사가 40년이나 된 명문 클럽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지역별, 실력별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모임은 같은 나이끼리 부담 없이 모이는 ‘띠’ 모임이라는 것을 소개했다.


기자의 발표가 끝나자 중국의 CCTV에서 테니스 해설을 하고 있는 오문승 해설위원은 오랜 시간 열정적인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조선족의 통역에 의하면 중국의 대중테니스 발전이 왜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한국과 비교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아마추어 테니스 모임은 남녀노소 구분도 없을 뿐더러 실력별로 세분화해서 대회를 주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했다. 또 테니스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고 도전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국처럼 실력별로 그레이드를 나누는 것이 가장 필요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한광호 소양강배 준비 위원장은 동영상을 준비하여 발표했다. 춘천의 송암코트에서 소양강배에 참석한 각계각층의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을 담은 내용이었다. 여성들은 여성대로, 어르신들은 어르신대로 경기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중국의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90세가 넘는 어르신들 여럿이서 참가한 모습을 보고서는 더욱 충격을 받은 듯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광호 위원장은 “일본에 비해 한국은 상금 위주로 너무 과열된 경향이 있다”며 “소양강배를 통해 오로지 취미가 같은 분들이 어울려 경기를 즐기는 새로운 테니스 문화 정착에 힘을 쏟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또 “내년 90세가 넘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할 생각이다”고 했다.

한광호 위원장의 동영상을 지켜보던 심양 체육대학교 강호생 교수는 “한국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훨씬 체계적으로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중국의 대중테니스 발전을 위해서는 꼭 배워야 할 부분이다”고 했다. 또 “테니스 보급을 위해 매 년 각 지역을 순회하며 강의를 하지만 생각만큼 활발하게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점심시간에 단동테니스협회 이건조 회장과 단동의 여성 테니스 임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 임원들은 서구적으로 밝고 활달했다. 한국 아마추어 테니스에 대한 짙은 관심을 표명하던 이건조 단동시테니스협회 명예회장은 “단동 여성테니스 발전을 위해서 단 며칠이라도 좋으니 시간을 내서 머물러 주면 감사하겠다”며 “한국의 여성 클럽과의 교류전을 희망하고 있으며 단동시 여성테니스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전했다.
조선족 2세의 능숙한 한국말을 통해 단동시의 테니스 현황을 알 수가 있었다. 단동시에 테니스 협회가 생긴 것은 15년 전. 현재 실내코트 15면과 실외 30면으로 총 45면이 있으며 20개의 구락부(클럽)가 형성되어 있단다. 이 동호인들은 대부분 리나의 영향으로 라켓을 잡기 시작한 7~8년 구력의 동호인 수가 약 300여명. 또 단동시내의 테니스 클럽 연 회비는 중국 돈 5천 위엔으로 일 년에 일인 당 한국 돈으로 약 100만 원 정도의 경비가 필요하단다. 부인과 아들까지 테니스를 즐긴다는 어떤 분은 “조선족 중에서는 테니스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테니스를 통해 건강은 물론이고 고위직 당원들과의 네크워크등 일석 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회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각 지역의 테니스관계자들의 발표가 돌아가면서 이어졌고 유지위 회장은 중간 중간 마이크를 잡고 부연 설명을 했다. 단 한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오랜 시간 이어진 회의를 지켜보면서 중국의 외교용어로 자주 등장하는 ‘굴기’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테니스 굴기’를 위한 회의는 매우 진지했다.
모든 회의를 마친 일행들은 북한 음식점 ‘평양 고려관’으로 향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불야성 같은 단동과 칠흑 같은 어둠의 신의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인형 같은 북한 아가씨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춤을 추고 노래를 했으나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발랄하면서도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 주던 단동의 여성 동호인들과 북한의 아가씨들이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