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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약 3:13-18
1. 세상의 지혜는 땅 위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이다
세상에도 많은 지혜와 학문이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혜는 땅 위의 지혜이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들도 다 세상의 교육제도 하에서 배우게 하신다.
그러나 주의 은혜로 구원받는 순간 우리는 이 지혜에 있어서도 거듭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땅 위의 것이요 인간의 정욕을 위한 것이요 귀신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거슬러 올라가면 에덴 동산이요 더 올라가면 사탄이 최초로 하나님을 거역한 때이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가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14:12-15)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한 뱀은 자기의 전철을 사람들로 밟게 하였다.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이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시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을 지라”(창3:3-5)
하와가 먹은 열매를 선악과라고 하지만, 원문은 선악에 대한 지식나무이다.
생명나무가 있고 지식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 지식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될려고 하는 선악지식이었다.
눈이 밝아져 본 것은 자기들의 벗은 거였고, 나뭇잎으로 가렸고,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
이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지식나무 열매를 사람들은 좋아하며
문명과 문화를 세워온 것이다.
하나님과 동등되며 하나님만큼 높아지려는 의도에서 바벨탑을 쌓았고 지금도 그 탑을 쌓고 있다.
땅으로 떨어진 사탄이 주는 지혜이기에 오직 땅 위의 것을 추구하는 지혜요,
인간의 정욕을 자극해서 정욕대로 살게 하는 지혜요, 그 뿌리가 사탄에 박혀 있어서 귀신의 것이다.
현대의 모든 학문과 지식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세상의 초등학문들이요 사람의 전통일 뿐이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악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하려 하느냐”(갈4:9)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골2:20)
성경을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신 바 된 때로부터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전통과 규례들에 순종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말할 것 없고 종교권력을 쥔 제도권 종교지도자들은 항상 초등학문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초등학문이 아니라 오직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만 받으신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8-9)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세상의 지혜, 초등학문으로 예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서도 사탄의 화신 바알을 더 섬겼다.
유대 지도자들은 사탄의 지혜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예수님을 보았기에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중세 천년 동안 카톨릭도 그 화려한 건물과 의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지만,
그들이 드리는 세상의 지혜와 사탄의 지혜와 정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종교개혁과 청교도 운동은 이 모든 것을 원점으로 성경으로 돌이키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러나 오늘날 다시 교회는 카톨릭화 되고 구약 이스라엘화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현대 교회들은 자기들이 이미 변질된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모를 뿐이다.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면서도 모르고 초등학문들에 안주하고 안심하고 있다.
세상의 지혜는 사탄에게서 뿌리를 두고 나온 것이기에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을 낳는다(14)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헤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 수가 없다(13).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할 뿐이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요 교육과 학문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가 전달되지만, 그들은 정욕과 욕심에 이끌리어 그 진리를 살지 않는다.
배울수록 더 악해지고 도둑질을 더 잘한다.
독성물질로 치부하고, 법률지식으로 치부하다, 쇠고랑들을 차고 있다.
사탄의 지혜는 정욕의 것이고 땅 위의 지혜인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은 출세의 도구요, 남을 압제하는 수단이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모으는 도구일 뿐이다.
종교도 항상 이런 지혜와 야합하고 뒷받침하며 함께 권세를 부리며 타락하고 부패하였다.
참된 진리만이, 참된 종교만이, 이러한 정욕의 지혜에서 자유케 할 수 있다.
진리만이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땅에서 정욕에서 귀신에서 자유케 할 수 있다.
그것이 구원이고 영생을 보장해 준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10)
2.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이요 다음에 화평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가 성결하다. 거룩하다.
성결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으면 그 지혜는 절대로 위로부터 난 것이 아니다.
성결과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사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다.
회개하고 천국 복음을 믿으라 하신다.
통체로 회개한 적이 없고 거룩한 변화가 없는 사람은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결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회심해야 한다.
위로부터 난 지혜로 새로워져야 한다.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지 않고 진리에로 향해야 한다.
탐욕이 우선은 성취를 이루는 것 같지만 오래 가지 않아서 멸망을 낳고 만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과 성결이 오직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가져올 수 있다.
광야의 연단생활을 거치게 해서 거룩하게 만든 연후에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것이다.
위로부터 난 지혜의 특징은 성결 다음에 화평이다.
성결과 화평은 항상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결 없는 화평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가정의 행복과 평화도 성결한 가운데 화평이어야 한다.
진리의 성결이 없는 가운데 화평은 패거리 문화를 이루고 편을 가르게 된다.
교회 연합도 성결이 먼저가 아니면, 그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이고, 힘을 합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영적인 연합, 순전한 교리의 연합, 성결의 연합이 먼저이어야 한다.
진리가 다른데, 교리가 다른데, 지역을 합치고 종교를 합치고 민족을 합쳐 누구의 밥이 되려는 것인가?
힘이 정의이기에 힘을 만들어 힘 한번 뽄데나게 써보겠다는 것인가?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힘의 길, 권세로 가는 길이 아니다.
교회는 그런 세상 지혜로부터 오는 유혹과 부패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 주님도 구약 4천년 섬겨온 유대인들과 화평부터 하셨다면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을 것이다.
기독교는 주님의 자취를 따라 본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부활과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티나 주름잡힌 것도 없는 거룩의 길이 먼저이다.
다음에 성결로 화평으로, 성결을 화평에 적용하는 것이다.
성결을 위한 연합이요 성결을 이루기 위한 화평이어야 한다.
성결을 앞세우며 독재하고 교만에 빠지는 것은 위선이요 패악일 뿐이다.
겉만 성결이요 모양만 성결인 외식에 조심해야 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리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5-27)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을 추구하기에 거기에는 많은 열매가 뒤따른다.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다.
성결한 지혜이기에 거기에는 편견과 거짓이 없다.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게 된다.
성결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의 진리를 사는 것이기에 열매가 아름답다.
참된 기독교는 성결로 화평을 이루고 관용하고 편벽됨과 거짓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열매들은 기독교인이라면 평생을 거쳐 이루고 맺어야 할 열매들로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은 성결과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성경을 떠나서 기독교의 진리는 없다.
성경을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해석하고 혼잡하는 것은 불순한 동기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순전한 해석과 적용을 연구하고 분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작업은 목사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한다.
청교도들이 큰 역사를 영국에서 일으키고 선한 영향력을 역사를 통해 행해 오는 것은,
목사나 평신도들이 다같이 경건서적들을 탐독하고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고, 미혹의 영들에게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모르면 당하고, 맹인 지도자와 함께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미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영들을 경고하셨다.
성도들도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 말씀이 그러한가 하여 매일 상고하여야 한다.
그 수고만이 이 땅에서의 축복을 보장하고 저 곳에서 영생과 상과 면류관을 보장하는 길이다.
진리를 알고 살기 위해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와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그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그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 ---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사9:14-17)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시는 것도 한도가 있다.
심판의 날은 오게 되어 있다.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현대 교회들) 중에서 머리와 꼬리를,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끊으실 것이다.
그 머리가 누구라구요? 장로와 존귀한 자들이다. 종려나무 가지들이다.
그 꼬리가 누구라구요?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이다. 갈대들이다.
백성(교인들)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끝나지 않고, 그분의 진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진리를 가르치는 머리가 되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권력에 기승하여 꼬리노릇을 하고 있다.
떡과 국물을 얻어 누릴려고 말이다.
먼저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고 회개하고 거룩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성결한 나무가 되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결한 나무가 화평의 열매를 맺고 관용과 양순과 긍휼과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편벽됨과 거짓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의는 화평으로 심어 그 열매를 맺는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
화평의 열매는 의의 열매여야 한다.
화평의 열매가 세력이나 바벨탑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평을 노래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힘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교회도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낳아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축복과 사랑을 노래 불러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악의 열매를 맺고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큰문 넓은 길, 화평의 길로 가서 멸망에 이르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지만 좁은 문, 협착한 길, 의의 열매를 맺는 생명의 길로 가야 한다.
내 속에 진리가 없으면 우리는 성결해질 수 없고 화평할 수 없고 의의 열매도 맺을 수 없다.
내 인생의 모든 것 중심에 성경의 진리가 있어야 하고 그 진리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한다.
복 있는 사람도, 하는 일이 다 형통하는 길도, 오직 하나.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다 지켜 행하는 것이다.
종교를 개혁한 것처럼 우리 자신을 개혁하기 위해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경건서적을 읽으며 성경을 사랑하는 길을 갑시다.
우리에게 덧씌어진 땅 위의 지혜, 정욕의 지혜, 귀신의 지혜를 청소하자.
떡만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자.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자.
거룩한 진리로 내 인생의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우자.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자.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시119:1-3)
첫댓글 아멘.
은혜와 평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