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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 84:1-7
주의 장막은 본문에서 여호와의 궁정, 주의 제단, 주의 집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에는 주님의 성전은 장막으로 있어 왔다.
주님이 계신 성전은 만왕의 왕이 거하시는 여호와의 궁정(임금이 사는 집)이다.
이 땅에 있는 주의 성전은 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주의 제단이기도 하다.
주의 장막은 주님이 사시는 주의 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교회는, 주의 집이요 주의 장막이요 주의 제단이요 여호와의 궁정이다.
오늘 우리는 화서 제단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는 주님이 친히 세우셨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교회를 대적하고 없엘려는 시도가 역사적으로 많이 있어 왔지만 교회는 없어지지 않는다.
다른 조직과 단체는 다 없어질지라도, 교회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존속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성전으로 옮겨져 영원히 주님과 우리가 함께 사는 영원한 성전이 될 것이다.
1. 주의 장막은 사랑스럽고 모든 이들의 안식처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시84:1-3)
나의 마음과 애정이 깃든 곳은 사랑스럽다.
마음도 애정도 가지 않는 데 그곳이 사랑스러울 리가 없다.
주의 장막을 사랑스러워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불러온다.
지금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쫓겨가고 있다.
그는 쫓겨 가면서도 자기가 살던 궁궐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고 있다.
그 궁정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그의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이다.
그의 마음과 육체가 사모하는 것은 오직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다.
보잘 것 없는 장막이었지만, 그곳은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곳이었고, 은혜를 부어주시는 곳이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여호와의 전, 교회를 사모하는 것은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교통하고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식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교회를 소홀히 하거나 떠나는 사람들은 얼마 안가서 하나님을 떠나가게 된다.
그 영혼은 피폐하게 되고 어둠과 혼돈과 공허 속으로 떨어져 나간다.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따로 떨어질 수가 없다.
나는 교회는 싫어해도 하나님은 사랑해요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 드린 성전은 그야말로 장막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는 조금도 손상을 받지 않았다.
외적인 환경이 열악하다고 하여 예배가 열악해지는 것은 아니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영광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만을 기뻐 받으신다.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순전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자기들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헛된 것이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
(가르침이 잘못 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여! 라고 하나님을 부른다.
만군의 여호와는 천군천사의 호위와 찬송을 받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 하나님이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인 것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 입술에서도 이런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기도에 힘쓰자.
누구도, 그 무엇도, 내 생활과 마음에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는가?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하신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이 호칭이 우리 입술에도 친숙한 호칭이 되게 하자.
2.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84:3-4)
하나님의 제단을 사모하는 마음을 놀라울 정도로 고상하게 잘 표현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전 근처에 보금자리를 갖고 있는 새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하나님의 궁정에 둥지를 튼 새들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이 그의 안식처, 그의 보금자리가 되어 살기를 원한다.
새들은 제단 가까이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 새끼를 두고 있다.
우리 자녀들도 주의 제단 가까이서 보금자리를 얻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의 집에 사는 사는 자들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원래,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말한다.
주의 전을 거처로 삼고 거기에서 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소를 수종들어야 하는 사역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세상의 가장 위대한 왕들보다도 그들을 더 부러워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탐욕스런 자들을 복이 있다고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항상 주를 찬송하기 때문이다.
계시록에 보면, 하늘에서 천사들과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과 더불어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그들은 절로 찬송이 나올 것이다.
이 모든 복락을 허락하시고 영원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어찌 찬송이 끊어질 수 있겠는가?
“그들이 항상 찬송하리이다”
찬송한다는 것이 복이고, 항상 찬송하니까 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을 좋아하고 부르며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자.
주의 전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주의 백성들도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이고 복이 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일 년에 3번 큰 절기에 하나님의 전에 와서 하나님을 뵈어야 했다.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16:16-1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이 있다.
나의 영적 성장과 축복을 위해서 택하여 주신 곳이 있다.
내 마음대로 내 편한 대로 내 유리한 데로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없다면, 예물을 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신 복이 있다면, 큰 절기에 여호와를 뵈오러 올 때 빈 손으로 뵈옵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예물을 드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 중심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집, 하나님의 집에 사는 마음으로 살아야 복이 있다.
다른 세상의 관심사가 우리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은혜와 은총과 도움과 긍휼 없이도 살 수 있다면 하나님의 복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숨쉬는 것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3.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은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84:5-7)
여러분은 어디서 힘을 얻는가?
돈에서, 가족에게서, 일에서, 친구에게서, 좋아하는 오락에서?
다 얻어도, 하나님께 힘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허무한 것으로 끝이 나고 만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조금만 일이 생겨도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은 소망을 세상에 두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두려울 것이 없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견고한 망대 같이 안전하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그분이 나타나셔서 도와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
우리 성전을 이곳으로 옮기시기까지 정말 하나님은 나타나서 도와 주셨다.
하나님의 도움은 경험한 자만이 알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자만이 안다.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는 힘을 얻기 위해, 고난을 이길 힘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장막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간절히 노래하고 있다.
거룩한 예배를 사모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시온은 하나님이 영광이 거하시는 도성, 산, 보좌를 다 가리킨다.
그 시온을 향해 내 마음에 대로(고속도로)가 뚫려 있어야 한다.
세상의 염려와 근심, 불안과 낙심, 불편한 마음들이
걸림돌이 되거나 장애물로 여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님은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대로를 막는다고 하셨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게 할려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이 내 자신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로 이끄는 모든 길들은, 그것이 고난이든 역경이든,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힘으로 삼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곳을 항상 생각하고 그 길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눈물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많은 샘이 있을 것이다.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줄 것이다.
절기 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매마른 모래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목말라서 죽을 수도 있다.
작은 웅덩이를 파서 빗물을 받아 그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웅덩이를 파면. 하늘은 그것들을 채워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만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한 일은 없을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공급은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믿음이 없을 뿐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다.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의 부족함이 없는 공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떡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다.
이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은 확신으로 성장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악천후나 길이 나쁜 것을 핑계 삼아서 집에 머무는 자들도 있다.
풍세만 살펴 보는 자는 결국 파종하지 못할 것이다.
겪게 되는 어려움들은 우리의 결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지만,
그 여정에서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위로들은 눈물 골짜기조차도 샘이 되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께 힘을 얻는 자는 더 힘을 얻게 된다.
힘을 다른 데서 구하는 자는 있는 힘마저도 빼앗기고 만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사40:31)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여정을 다 통과하여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 하나님을 뵈옵게 될 것이다.
상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마침내 영광 중에 온전하게 될 것이다.
부족함이 없이 푸른 초장에 눕게 되고, 쉴만한 물가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첫댓글 아멘.
한결같은 아멘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