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에게 42.195km는 대한민국 장애인을 향한 희망의 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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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9-10-26 이지선의 희망바이러스 여덟번째 이야기>
2006년 봄. 미국 유학 첫해를 마칠 즈음의 어느 휴일. 늦잠을 자고 짐을 챙겨 도서관으로 가려는데 어디선가 환호와
응원의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집 뒤길로 보스톤 마라톤의 레이스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 이제 파이널 지점이 얼마 남겨놓지
않은 마라토너들의 거친 숨소리와 40km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의 노력과 땀과 열정이 느껴져 나는 그 레이스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었다. 공부에,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최선을 다해 이겨내고 있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은 나 역시 힘들어도 꼭 나의 결승지점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해주었다.
어스름 저녁때가 되어갈 때는 오랜 시간 달려와 지쳤지만 포기하지 않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모습과 휠체어를 뒤를 향하게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오른 쪽 다리로만 밀면서 완주를 향해 가는 모습에 감동되어 또 울었다. 그렇게 3년간 보스톤 마라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었는데, 이번에 내가 홍보대사로 있는 ‘푸르메재단’에서
뉴욕시민마라톤에 참가한다는 소식에 마라톤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맨하탄 제일 남쪽인 월스트리트 근처에서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면 나타나는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시작해서 브루클린,
퀸즈, 브롱스, 할렘을 지나 맨하탄 중심에 자리한 센트럴파크에서 42.195km의 레이스를 마치게 된다. 올해 40회를 맞는
뉴욕시민 마라톤은 매년 3만 오천명이 참가하고 우승자에겐 미화 13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기도 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시민
마라톤이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각종 자선단체들이 참여해서 작년까지 5천만 달러의 기부가 이어졌다고 하는데, 올해는 총
참가자중 6천명이 2천 백만 달러 모금을 목표로 달린다. 수퍼맨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 매튜 리브가 120만의 미국
척추장애인을 위해 달릴 것이고, 영화 프라이멀피어로 유명한 영화배우 애드워드 노튼은 아프리카 마사이 야생 보호 재단을 위해 달릴
것이다.
그리고 나 이지선은 민간 재활병원 설립을 목표로 하는 푸르메 재단과 6명의 장애인 마라토너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200만
장애인을 위해 달릴 것이다. 그 여섯명의 마라토너들은 청각 또는 시각장애를 가진 분도 있고 휠체어 마라톤에 참가하시는 분도
있다. 그리고 9년 전 나와 중환자실에서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었던 ‘김황태’씨도 있다. 언제나 누워만 있는 상황인지라 얼굴을
제대로 본적도 없지만, 목소리가 작은 나 대신 큰소리로 간호사님을 불러주었던 내겐 ‘전우戰友’와 같은 분이다. 전기감전 사고로
양팔을 모두 잃었지만 마라톤으로 새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몇 년전 광고에 나와서 엄마와 내가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이제 6일 후면 오랜만에 그분을 만나는 감격과 함께 내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이 시작될 것이다. 얼마나 잘 달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4년 전 한발로 휠체어를 밀고 가던 어느 장애인을 떠올리면서 걸어서라도 끝까지 완주를 해보려고 한다.
2009년11월 1일, 내 발로 밟게 될 42.195km는 대한민국의 모든 장애인을 위한 희망의 응원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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