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객사(客舍) 풍패지관(豊沛之館)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3가1 에 있는 전주(全州) 객사(客舍)로서 보물 제583호이다.
객사(客舍)는 나그네를 치거나 묵게 하는 집으로 지금의 여관과 같은 역할인데 고려·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여 외국 사신이나 다른 곳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던 주로 관청의 숙소이다.
전주(全州) 객사(客舍)는 전주서고(全州書庫)를 지은 뒤 남은 재료로 조선 성종 2년(1471)에 서의헌을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객사에는 신주를 모셔두는 방에는 궐(闕)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국왕에 대하여 예를 행하기도 하였고(망궐례), 조정에서 사신이 오면 이곳에 묵으면서 임금의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전주객사의 본관에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현판(懸板)이 있는데 이 현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판은 크기가 외경이 가로 4m 850cm 세로 1m970cm이고 초서로 글자의 크기가 가로1m70cm 세로 1m580cm 깊이는 약 2mm로 음각(陰刻)한 것이다. 이렇게 큰 현판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것이다.
풍패지관 현판은 1604년경 중국인 주지번(朱之蕃)이 명나라에서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정을 맺은 송영국(宋英菊) 선생을 찾기 위해 전라도를 방문하여 전주객사에 머무르면서 객사의 현판(懸板)을 썼는데 이 문구가 풍패지관(豊沛之館)이다. 풍패(豊沛)는 원래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고향이름으로 이 고장 전주가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의 고향임을 은유(隱喩)한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풍패지관(豊沛之館)의 현판(懸板)을 대하고 보면 우선 장중한 글씨에 압도당하면서 그저 감탄사(感歎詞)만 나올 뿐이고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글씨에 매료(魅了)되고 있다. 문화재를 답사하는 즐거움을 이런 곳에서 느낄수 있는 것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