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그분을 처음 본건 12년 전이다. 교도소 사역을 처음 시작한 12년 전에도 그분은 푸른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깡마른 몸매에 날카로운 눈빛, 이마엔 굵은 주름이 몇 개씩 있던 그분은 그 당시만 해도 반평생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냈다고 하셨다. 가족도 있다고 하셨는데 가족과는 이미 인연이 끊긴 듯 했다. 내가 교도소 사역을 하고 있는 12년 동안 세 번을 출소하셨다가 다시 교도소로 입소를 하셨고 여전히 교도소에 계신다. 성경 암송대회나 찬양대회 등, 영치금이 상으로 주어진 행사 때는 어김없이 무대로 나와서 자신의 역량을 뽐내던 분이셨다.
이번 교화행사 때도 여전히 그분은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교도소 밖과 교도소 안과의 체감 온도는 5도 정도 나는 것 같다. 교도소 안은 언제나 춥다. 11월의 첫 추위가 매섭던 날, 그날 우리는 교화 행사를 갔었다. 방문자들은 추위를 느끼며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데 재소자들은 이미 교도소 기온에 익숙해져 있는 듯 했다. 교화 행사가 시작되어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설교가 시작되었지만, 그분은 무언가 노리고 있는 맹수마냥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설교가 끝나고 2부 행사가 시작되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었을 때, 그분은 무언가 들고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교도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이다. 박목사님과 내게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신다. 무언가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얼굴이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녹였을 때 나타나는 검은 색,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녹여서 섬세하게 만든 가시관 쓰신 예수님의 옆얼굴이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이분은 무엇 때문에 교도관들의 감시를 피하며 가시관 쓰신 예수님의 옆얼굴을 만드셨을까. 우리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만드셨을까? 아니면 어떤 큰 은혜를 받아서 행동으로 옮기셨던 것일까….
재소자들 중에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분들이 많다. 무엇을 만드는 일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분들도 많다. 그 재능을 사회에서 잘 활용했더라면 푸른 죄수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분들도 많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그분은 죄수복만 입고 50여년을 살아 오셨단다. 플라스틱을 녹이며 뜨거운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가시관 쓰신 예수님의 옆얼굴을 만드셨을 그분, 손가락에는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뜨거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을 만드시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뜨거움을 가슴으로 체험했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은 그분을 위한 기도를 하게 한다. 우리들의 탁자에 차려진 떡과 과일 과자 등을 가져다 드리니 얼른 비닐봉지와 주머니에 넣으신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분을 보며 한없이 서글퍼지는 마음 한쪽이 진하게 서럽다. 아직은 체력이 버텨주니 교화행사에도 참석하여 떡이라도 먹으며 잠시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더 연로하셔서 체력도 버텨주지 못하면 저분의 삶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한두 번 독배를 마시고 한두 번 재소자가 될 수도 있지만 저렇게 반평생 이상을 재소자로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일까. 그들에게 희망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은 진짜로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방법인데, 물가로 이끌어 가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물을 마시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속상할 때가 많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면 무언가 할 수 있고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출소가 두렵고 세상이 두려운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니….
“교도소에서 겨울을 지내려고 들어왔어요.” 라는 어느 재소자의 그 말이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듯하다.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던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