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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수필기교론 / 권대근
일찍이 작가 에드가 알란 포우는 단편작법의 요령으로써 ‘단일의 사실’, ‘개인적인 것으로 감명을 줄 수 있는 것’ ‘효과 인상 등의 통일’, ‘제시부에서 결말까지 일직선으로 진행’ 되어져야 한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이는 매우 일리 있는 견해로서 수필에도 적용되어진다고 여겨진다. 한편의 글을 짓는 요령이 하나로 집약되어 있어서이다. 이를 좀더 구체화하여 일본의 무라지로는 그의『문장표현법강설』에서 문장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즉 사실 경험(1단계) 자료수집(2단계) 자료 고찰(3단계) 주제 설정(4단계) 재료 선택(5단계) 서술 순서 결정(6단계) 문장으로서의 정립(7단계)가 그것이다.
수필은 다른 문학처럼 일정한 룰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가볍게 보아 넘길 수가 있다. 그러나 룰이 없기 때문에 그 작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법이라하지 않고 수법이라했다. 수법이란 작법이 일정하지 않은 대신 얼마든지 개발 내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작가마다 독특한 수법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수필 창작의 어려움이 있고 또한 쉽게 덤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 수필의 수법
여기서 말하는 수법이라는 말은 수필의 구성과는 의미가 다르다. 수필의 단위 즉 구조나 구성이 단락의 성격이나 주제문의 위치에 따라 삼단 구성, 사단구성 그리고 두괄식, 미괄식 등으로 불리어진다면, 수법은 수필의 내용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따른 구성법이라 할 수 있겠다.
① 열기식 수법
서로 다른 내용들을 열거해서 한 편의 수필을 완성시키는 방법이다. 이러한 수법은 소설이나 시 또는 희곡에서는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오직 수필에서만 가능한 수법이다.
② 질서식 수법
비교적 초보자들이 쓰기에 편리한 수법이다. 시간적 순서에 따른 구성은 일기나 여행수필에 많이 쓰이고 공간적 질서는 소설에서 비교적 많이 사용하고 있다. 수필의 묘는 이렇게 시간적인 구성과 공간적인 구성이 적절히 혼합될 때 참신한 맛을 준다.
③ 소설식 수법
이야기의 내용을 사건 중심으로 긴박감있게 소설식 수법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수필에 다양성과 변화감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오직 수필만이 갖는 장점이다.
④ 예화식 수법
하나의 예화를 들고 그 예화에 맞는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방법이다. 비교적 쓰기 쉬운 타입이나 교훈적으로 흐를 약점이 있다. 그렇게 되면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자극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권태감을 주기 쉽다. 그러나 기술의 요지를 살리면 충만한 정서를 불러 일으켜 생명력이 넘치는 수필이 될 수 있다.
⑤ 호흡식 수법
문맥을 끊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이어 가는 수법이다. 말이 끝나는가 했는데 다음 말을 이어 지는 방법이다. 이러한 수법은 문장에 달의를 얻지 못하고는 쓸 수 없는 수법이다. 문장이 난잡하지 않고 긴박감과 호기심 속에 계속 새로운 내용으로 이어 wl는 수법이다. 독자들에게 흥미를 주고 문장의 우아한 맛을 주는 수법이다. 격동적이고 격정적인 수필이 이에 해당한다.
⑥ 기술식 수법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수법이다. 모든 수필들이 이에 해당한다. 평범한 문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묘사해 가는 수법이다. 문장의 배치에 따라 글의 맛이 달라진다. 묘사와 작가의 생각을 함께 잘 구사하면서 침착하게 우회적으로 써 나가면 그대로 하나의 수필이 된다. 음미의 여지를 주면 우아한 맛도 있다.
⑦ 시적 수법
한편의 멋진 시인가 하면 수필이고 수필인가 하면 산뜻한 시인 그러한 수필은 필요없는 말이 제거된 면면한 정서가 고아한 품위를 이루고 있는 글이라 하겠다. 심증에 있을 때 뜻이 되고 말로 표현되는 것이 글이라면 수필은 곧 마음 속에 품은 뜻이다. 그 뜻이 남발하지 않는 언어로 정제되어 간결하면서도 유창한 언어로 표현된 글이 시적 수필이다.
⑧ 논리적 수법
사물의 이치를 공평하게 서술한 글이라 할 것이다. 즉 논설적인 이러한 글은 잘못하면 자기의 감정에 빠지거나 편벽된 주장에 빠져 진리에 이르지 못할 염려가 없지 않다.
⑨ 서정적 수법
인간의 정이 움직이면 언어로 표현되고 그 이지가 발달하여 문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정이 겉으로 드러나면 문장이 유치해지고 정이 허술해지면 내용이 허전해진다. 정으로 가득 채우면 문장에 해가 미치기 쉽고 듬성듬성 서술하면 내용이 헷갈리게 된다. 서정수필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⑩ 서사적 수법
모든 수필에 생기를 전하고 사물을 묘사하는 데는 사물을 따라 정서도 함께 울먹이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은 서정을 떠나서 쓰여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서사 수필 역시 서정을 완전히 초월한 수필이란 의미가 아니요 주로 소설적 수법을 취하는 글이라 하겠다.
2. 수필의 기법
수필의 생명은 감동에 있다. 감동은 설득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울림이다. 어떻게 독자를 설득하여 감동을 불러 일으킬 것인가가 수필작법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 요소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설득의 방법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하나의 공감으로의 설득이요, 하나는 논리로의 설득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수필창작에 적용될 수 있는 여섯 가지를 소개하겠다.
(1) 인간적 공감에 의한 설득
휴머니티의 감동은 설득의 지름길이다. 가슴 찡한 감동은 표현 이전에 벌써 설득의 씨앗을 잉태해 있다.
(2) 수사법에 의한 설득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수사법의 끗발을 여지없이 표현한 게 속담이다. 수사법 중에서도 비유에 의한 설득은 큰 보람을 거둔다. 비유는 이미지 전달의 첨병이다.
(3) 쉬운 문장에 의한 설득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시를 짓고선 밭일하는 농부나 거리에서 노는 사람에게 보였다고 한다. 어렵다면 고치기 위해서 였다. 플레슈는 ‘쉬운 문장’의 조건을 둘로 못박았다. ‘예사로울 것’과 ‘재미로울 것’ 읽기 쉬운 문장이 반드시 쓰기 쉬운 문장만은 아닌 것이다.
<쉬운 문장의 요령>
1> 독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2> 집필의 목적을 뚜렷이 한다.
3> 치밀한 설계를 짜서 쓴다.
4> 독자의 읽는 수고를 거든다.
5> 군더더기 깍기
6> 강조를 위한 배열
(4) 재미로움으로의 설득
남의 집 불 구경 안 하는 군자는 없다고 했다. ‘재미’는 사람 끌기의 첫째 조건이다. 재미가 있으면 읽지 말라고 해도 읽는다. 재미에도 여러 내용이 있은 즉 품위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다.
(5) 구체적 보기에 의한 설득
‘사실’은 가장 강한 설득의 자료다. 추상적인 말보다 구체적인 실례를 보인다면 더없는 실효를 거둔다. 쉬운 문장도 된다.
(6) 적나라한 고백으로의 설득
숨김없는 고백은 전달의 효과가 빠르다. 거리감이 없음도 그 이유려니와 다짜고짜 필자의 마음의 안방으로 안내되기 때문이다.
3. 수필의 문장
문장은 문(sentence)을 전제로 한다. 작가의 문장 정립에 따른 사상과 감정의 표현은 곧 문장으로써 총결산되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나 감정(정서)이나 상상을 가졌다 할지라도 문장표현이 서투르면 생각했던 바의 충분한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보다 정밀하고 바르게, 즉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문장의 생명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문장의 정확이란 표현된 문장의 의미가 정밀함을 말하거니와 독자로 하여금 문장의 뜻을 애매모호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즉 바르게 받아들이게 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만일 작자가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또 표현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전혀 각도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우려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A를 전달하려던 것이 결국 엉뚱하게 B를 전달하고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경우 그것은 글을 쓰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그러므로 문장 표현의 목적은 자기의 마음을 독자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데 있다. 그 때문에 무엇보다도 오독될 여지를 주지 않도록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급적 쉬운 문장을 쓰는 것이 그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즉 난해한 표현을 피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문장의 난해는 올바른 이해 전달을 불가능케 하는 큰 요인이 됨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함에 유의해야 할 점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작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가 쓰고자 하는 말(특히 낱말)의 뜻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언어의 의미 내용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문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② 작가 자신이 명확하게 알지도 못한 사실을 멋대로 추측,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 막연한 생각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실의 진실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보지도 않는 설악산을 마치 본 것처럼 독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문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③ 낱말과 낱말, 문장과 문장과의 연결(연락)관계는 분명해야 한다. 낱말과 닡말 그리고 문장과 문장의 호응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문맥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문법적 문장이 되어 전달력이 떨어진다. 특히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에 주의하여 비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겠다.
④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띄어쓰기는 문필가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다. 적당히 써 내면 편집자측에서 알아서 해 주겠지하면서 띄어쓰기를 소홀히 하는 문인들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좋은 글을 쓰기 이전에 띄어쓰기 규칙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⑤ 문장의 중심부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이 말은 자기의 사상이나 감정을 남김없이 표현하였다 하더라도 문장의 핵심부(중심부)가 틀려지면 본래의 의도와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만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를 다시 정리하면, 좋은 문장, 즉 깊이 있고 유익한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그리고 의미 내용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이 쓴 수필을 많이 읽는 일이 첩경이 된다. 여기에 수필문장 쓰기 요령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문장은 알기 쉽게 써야 한다.
수필은 논설문과는 다르다. 구태여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알기 쉽게 그리고 부드럽게 써 가면 된다. 당황하지 말고 조용한 마음으로 굳이 말한다면 한 잔의 차를 아무 부담없이 마시는 듯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마치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듯이 차근차근 알기 쉽고 어법에 맞는 글을 써 가면 된다. 즉 담담한 심정 바로 그 경지에서 써 갈 일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쓴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글은 대화와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여러 사람이 대화하는데 서로 알지 못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에게는 의미없는 소음으로 들릴 것이다. 글을 알기쉬운 문장으로 써라는 말은 자신이 이해하는 내용과 용어를 써야 한다는 뜻도 된다. 자신이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내용을 쓰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있다. 또한 빈약한 글을 겉치레로 포장하기 위해서 현학적인 용어를 쓰게 되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을 가리키는 경우가 되어 멸시를 받기 쉽다. 글을 평이하게 써야 한다는 말은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 허황된 미사여구는 쓰지 말아야 한다.
수필은 미사여구를 나열하는 문장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면 된다. 미사 여구만을 노리다 보면 사실과 상치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즉 현실감이 상실 내지는 감소되고 만다. 어느 의미에서 수필은 머리로 써 가는 글이라기보다는 마음으로 써 가는 글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글임에 사실성에 충실하고, 그 사실을 바르게 전달하는 문장이 되어야 한다.
3) 자기 색깔이 있는 개성적인 문장을 써야 한다.
사람에게는 각각의 개성이라는 게 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 유난히 코가 큰 사람, 깔끔한 걸 좋아하는 사람..... 용모, 성격, 습관, 의식 등등의 모든 면에서 똑같은 사람이 단 하나도 이 세상에 없으니 이게 바로 개성이다. 글에도 분명히 개성이 있다. 있어도 아주 많고 다양하다. 문체의 개성, 어휘의 개성, 표현의 개성, 주제의 개성, 구성의 개성, 형식의 개성.... 글에 있어서도 개성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필은 자신의 개성적인 인격의 반영이요 사상의 표현이기 때문에 남의 문장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개성이 있는(자기 나름대로 특색이 있는)문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업의 하나이다.
4) 품위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수필은 품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품위란 인간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로서 스스로 존경을 요구하는 특질을 뜻한다. 외면 보살 내면 야차라는 말이 있듯이 표리 부동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품위를 저락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은 자기의 박식을 선전한는 글도 아니요, 허황된 과장이 있거나 지나치게 아는 체 하면서 자기를 선전하는 일 따위는 더더구나 아니다.
5) 대상이나 정서, 주제를 형상화시켜야 한다.
글이라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자신의 전하고자 하는 바를 남에게 읽혀 공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글은 글쓴이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경험이나 인식이 논리적으로 쓰여져 설득력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구체성이 결여된 글은 얼핏 읽어서는 많은 것을 포괄적으로 광범위하게 전달하는 것 같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막연하고 모호한 글은 독자의 공감을 받을 수 없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문장을 통해 사상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져야 한다. 문학적인 형상화를 기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필어’다. 휠 라이트가 말하는 열린 단어가 바로 수필어다. 수필어로 된 문장이란 1) 추상어보다는 구체어로 표현된다. 감감적 대상을 가리키는 특수어,구체어들은 정서적, 환기적 언어로서 심상을 떠오르게 하여 상상을 풍부하게 자극하고 생동감을 준다. 2) 설명적이기보다는 묘사적으로 표현된다. 다의어를 활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정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문학의 기초다. 예술은 ‘보는 것’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 만큼 수필도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언어에 의해서 사물을 보는 상태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시각어로 문장을 회화화함으로써 상투적이고 진부한 즉 눈에 익은 표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는 동사를 회화화 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묘사적 문장은 가치판단적 사고의 배제나 탈피에서 가능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수필어는 상징, 암시적인 어휘나 함축적인 문구를 요구한다. 즉 상징적 표현에 의해 정서를 암시 내지는 함축시킨다. 이는 주제의 효과적인 의미전달을 위한 것이다. 수필작품은 수필어로서 문학적 형상화를 이룰 수 없다면 수필로서의 묘미를 잃고 만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하여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글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좋겠지만 반면에 은은한 향취를 풍겨주는 것도 수필로서의 묘미이다. 이 묘미는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을 때 비로소 수필다운 맛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6) 구체적이어야 한다.
서술이나 묘사에 있어서 표현이 모호하거나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수필의 문장은 작가와 독자 간의 격의 없는 ‘정감의 교류’다. 때문에 문장은 길든 짧든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경희야, 10월인데도 지금 삼촌네 집 뜰에는 해바라기가 뜨겁게 타고 있다.” 같은 문장이다. 이는 단문인데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경희는 조카고, 작가는 그의 삼촌인 관계까지도 알 수 있다.
7) 정서를 지성화 해야 한다.
정서의 지성화란 정서를 객관화함으로써 가능한 자기 감정의 순화요, 자기 이해다. 그 지성화의 작업이 여의치 못할 때는 흔히 자기 몰입이나 흥분에 사로 잡혀 문장의 관념이나 추상에 붙들리고 만다. 넋두리가 되고, 감상 일변도의 잡문이 되는 이유가 정서를 과장되게 처리하는 추상성에 있다. 이를테면, “청춘! 아,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소리 같은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동하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쩍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같은 문장이다.
지성화의 문장은 어디까지나 정서를 집약, 구체화하여 객관성을 유지하는 입장에서 서술해야 한다. 또한 지성화의 문장은 예시적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조합되어 일단의 분위기를 형성해야 되고, 주제의식 또한 맥을 같이 하는 그들 문장 속에 충분히 희석되어 유현하게 나타나야 한다.
8) 지성을 정서화 해야 한다.
수필은 대우성의 문학이다. 다시 말하면 명제는 작가의 것이로되 결론은 혼자만의 것일 수 없다. 즉 독자와 공감이 유지되어야 한다. 지성이 독주하면 명제는 빛나고 주제의식은 분명해질지 모르나, 독자와의 대우적 관계를 유지해 주는 정서의 흐름은 막히고 끊길 위험이 있다. 결국 지성의 정서화는 문학의 교시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신은 나 같은 인생이 자살할 것을 두려워서 여러 가지 방책을 쓴다. 첫째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리라’는 희망을 내 정신 속에 심어둠이다. 이것은 진실로 생명수다. 이것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내일이다. 내일이다.......’하고 상한 가슴과 피곤한 다리를 끌고 허덕허덕 인생의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다.
이광수의 수필 “인생의 향기” 중의 한 문단으로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리라’에서의 지성을 밑줄 친 부분의 문장으로 정서화하고 있다.
9) 사상과 감정이 동화되어야 한다.
동화란 물아일체의 동질화 현상이다. 이는 내가 물이 되고, 물이 내가 되는 물심일여의 상태로서, 철저하게 나를 먼저 제재 앞에 비움으로써만 가능하다. 그 진실 하나를 얻기 위해 수필가는 헐벗은 산이 되고, 고독한 나무가 되고, 때로는 이끼낀 바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무를 통해 삶을 말하든, 바위를 통해 영원을 말하든 그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수필가라 할지라도 사상과 정서의 동화 없이는 결코 그 진실을 주제의식으로 구체화시킬 수 없다. 다음은 이양하의 <나무>의 한 대목으로 밑줄 친 부분은 사상과 감정이 동화된 문장이다.
“불교의 소위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는다.”
10) 상징, 비유, 암시적이어야 한다.
주제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문장의 상상화가 필요하다. 단형의 문학인 수필에 있어서 한 개의 문장은 때로 소설에서의 한 사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제 전달이란 큰 몫을 다하기도 한다. 신변사나 생활에서의 깨달음이나 견해들이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되는 수필이라면, 내밀한 경험이나 고백을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상징, 비유, 암시적인 문장 표현은 불가피하다. 교시적인 기능을 문예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기법이 문장의 상상화다.
“ 아이, 그 놈의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이 와야지, 그래서 만주로 가는 길이야.”
<땅>이란 수필의 한 대목인데,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의 농지탈취로 더 이상 제 땅에서는 살 수가 없어 만주로 쫓겨 가는 한 농부의 익살이다. 발붙일 곳이 없어 유랑이 길을 떠나면서도 가는 이유가 어이없게도 ‘개구리 우는 소리 때문’이라니, 주제의식을 상상 처리하는 자조, 자탄의 극치라 할 수 있다.
“ 서양인은 13의 수를 싫어하여 여관이나 선실에도 12 다음에는 14h가 된다 하며, 전화에도 13번은 싫어한다. 하기는, 우리 조선도 13도로 가르더니 별로 좋지를 못하였다.”
이광수의 수필 <담편>의 일부이다. 역시 일제 하의 참상을 풍자하는 주제를 상상 처리하는 비유의 문장이다.
11) 사상의 의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미화란 사상을 비유나 상상을 통하여 문예적으로 나타내는 작가의 개성적인 시각이요, 마음이다. 사상의 의미화는 수필의 문예화를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표현 형식 중의 하나다.
“ 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 어린이의 생각으론 잘못이 아닌데 그것이 잘못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꾸중을 듣고 있는 어린이들에게서 나는 슬픔을 느낀 다. 이 슬픔은 우리 어른들이 갈아먹어야 할 돌가루 같은 약이다. 어린이날은 어른이 약을 먹어야 하는 날이다.”
위의 예문은 김소운의 <목근통신>에서, 유강환의 <어른의 아버지>에서 발췌한 사상을 의미화 한 문장의 예다.
수필가 김진섭은 수필은 “다만 자기를 말하는 문장”임을 강조한다. 또 감광섭은 “평정한 마음에서 마치 먼 곳의 그리운 동무에게 심정을 말하려는 듯한, 그러한 한가로운 듯한 붓을 움직여서 무의식한 가운데서의 단성으로 한 편의 문장”을 써 가야한다는 작자의 “마음가짐‘을 당부한다. 이에 백철은 수필이란 ”산문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어 ”의견표시이며 대화적이며 교훈적인 글“이어야 함을 피력한다. 문장으로서의 그런 글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로부터의 개성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개성 없는 문장은 마치 그 나름의 맛을 잃은 음식물과 같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를 전제한다면 수필『외투』는 그것들을 갖춘 견본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감동에의 수필이 아닌가.
다음은 문장암에 걸리지 않는 비결 40조다. 문장암의 5대 증상이 보이는 글은 첫째 어렵고 까다로운 글, 둘째 딱딱하고 건조로운 글, 셋째 문맥이 어지러운 글이다. 혈맥의 막힘은 건강의 적신호요, 문맥의 막힘은 의사소통의 적신호다. 넷째 장문이다. 문장암의 제1호는 장문일 것이다. 표현,전달의 효과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 이 장문이다. 다섯째 간결하지 않은 글이다. 간결체는 모든 문장의 최대공약수요, 현대 문장의 제1조다. 문장의 경제학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어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특히 조심할 사항 40조를 열거해 보겠다.
1) 단락의 조직면에서
(1)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쉽고 빠르게 묻어가게끔 단락을 짠다.
(2) 독자의 편에서 구상하고, 그 구상을 좇아 단락을 짠다.
(3) 긴 문에선 결론단락을 앞에 놓아 쉬운 문장을 꾀한다.
(4) 큰 문맥의 전개는 가급적 쉽고 단순하게 한다.
(5) 긴 문에서는 소제목을 붙인다.
(6) 단락의 길이가 너무 길지 않게 한다.
(7) 단락의 이음새는 가급적 분명히 하며, 때로는 이음말을 써서 문맥 전개의 유형을 나타내 어 준다.
(8) 읽기의 시각적 효과를 노려, 읽는 싫증을 가시게끔 배려한다.
2) 문의 내부에서
(9) 문장의 이음에 지나친 이음말은 삼간다. 긴 단락은 많아야 한두 개 정도가 적당하다.
(10) 긴 문장은 적당히 자른다. 60자가 넘으면 다시 생각해 보라.
(11) 한 문장 안에 두 가지 내용을 곱쳐 넣지 않는다.
(12) 복잡한 내용을 나타낼 때는 대등절로 끊거나, 주종절로 끊어 읽으며 헷갈리지 않게 한 다.
(13) 수식어가 길어질 때는 따로 문장을 세운다.
(14) 긴 수식어를 앞에 놓고, 짧은 수식어를 뒤에 놓는다.
(15) 꾸미는 말은 가급적 꾸미어지는 말 앞에 놓는다.
(16) 주어 서술어 사이를 가급적 가까이 한다.
(17) 문장의 중간에서 주어가 바뀔 때는 그 주어를 생략하지 않는다.
(18) 병치문맥의 안정감을 헐지 않게끔 맞맞이 표현을 점검한다.
(19) 부사의 조응을 확인한다.
(20) 같은 꼴의 조사는 그 문장 안에서 가급적 되쓰지 않는다.
3) 서술 표현면에서
(21) 오해를 살 수 있거나 불쾌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은 삼간다.
(22)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표현이나 명령조의 표현은 삼간다.
(23) 지나친 과장 표현은 삼간다.
(24) 귀걸이도 되고 코걸이도 되는 표현은 삼간다.
(25) 비유법 사용이 적절한가를 점검한다.
(26) 멀리 에둘린 표현은 특수한 경우 외에는 아니한다.
(27) 비문법의 표현은 고친다.
(28) 남의 의견, 남의 글은 자기의 것과 섞지 않는다.
(29) 서두와 결구는 문장의 효과를 위하여 특단의 배려를 기울인다.
(30) 독자가 읽으며 싫증을 느끼거나 식상할 문미는 바꾼다.
4) 어휘면에서
(31) 군더더기 말, 애매한 말은 피한다.
(32) 자기만이 아는 말이나 신조어, 전문어는 피한다.
(33) 사전을 찾으며 읽어야 할 어휘는 딴 말로 바꾼다.
(34) 뜻이 섞갈릴 말은 괄호를 쳐 주를 달고, 어휘 때문에 못 읽는 경우가 없게끔 한다.
(35) 지나친 준말은 삼간다.
(36) 왜어와 외국어는 섞어쓰지 않는다.
5) 문장부호면에서
(37) 휴식과 문법 - 그 두 어름에는 쉼표를 생략하지 않는다.
(38) 해석의 혼란을 자아낼 간접수식의 경우나 생략의 경우엔 반드시 쉼표를 생략하지 않는 다.
(39) 문맥 전환의 경우엔 읽기에 지장을 주지 않게끔 줄표(-)를 치어, 문장의 시각화를 꾀한 다.
(40) 책이름엔 << >>, 작품이름, 논문이름엔 < >, 직접대화엔 “ ”, 드러냄표엔 ‘ ’ 등을 치고, 드러냄표 따위를 크게 묶는 데는 등을 써서 시각적 효과를 높이도록 한다.
4. 수필의 서두
1) 서두의 중요성
“첫 센텐스, 그것은 내 창작에 있어 거의 전부다.” 인생파 작가 계용묵 씨의 말이다. 샴페인도 마개가 잘 뽑히면 술맛이 좋다. 선보일 때도 첫인상이 좋으면 거의 성공한다. 출발은 종말을 예언하기 때문일까, 시작은 모든 일의 반이기 때문일까? 우리 나라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또한 수필에도 해당되는 적절한 말이라고 여겨진다. 왜냐 하면 서두는 바로 독자를 이끄는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서두는 발단에 해당되어진다. 이 서두가 잘 풀리면 그 수필은 시종여일하게 잘 풀려나간다. 이는 실제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체험하게 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기실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이 서두를 끄집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험했음이 아닌가.
서두는 도입 단락에 해당한다. 도입단락은 전체 글의 첫머리에 놓이는 단락이다. 전체 글의 문을 여는 구실을 하므로 본격적으로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전개에 들어가기 전에 읽는 이의 관심을 끌거나 전체 글에 대한 예비적인 서술을 하게 된다. 이런 예비적, 입문적 구실을 하는 것이 도입 단락이다. 글에 따라서는 도입 단락이 없이 바로 일반 단락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글에서라도 대개 한두 문장 정도 글의 문을 여는 구실을 하는 문장이 있기 마련이다.
서두 즉 도입 단락의 기능은 두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글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글의 내용을 개관하는 것이다. 전자는 주로 수필에서 많이 쓰는 것으로 글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읽는 이의 궁금증을 자극하여 글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후자는 설명적 에세이에서 전체 글의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구실이다. 전체 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포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원하는 내용인가를 쉽게 파악하도록 돕는 기능을 수행한다.
윤오영은 이 서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글은 ‘시작이 중요하다. 첫머리 한 마디가 전편을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고 전제하고 ‘서두에 설명이나 서론을 늘어놓지 말 일이다. 그것은 극히 문장의 정서를 죽이고 청신한 기분’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될 수 있는 대로 긴 허두를 붙이지 말고 간명하게 시작하되 전편에 대한 암시적인 기틀이 되도록 유의하고 이론적인 말을 피해야 한다. 한 마디로 해서 느낀 대로, 직접 써 나가면 된다. 이러저리 만들어 보려는 데서 잡치는 것이다.
결국 서두는 느낀 대로 암시적인 기틀이 되도록 함이 무리 없는 시작이 됨을 제시한다. 그럼에 서두는 수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함도 그 소이가 여기에 있게 된다. 어떤 글이든 서두가 있고, 독자는 서두에서부터 읽어 들어간다. 서두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첫 번째 관문이다. 신문 칼럼을 읽는 사람 중에는, 서두와 중간과 끝 부분만 읽는다는 사람도 있다. 전문을 이해하는 데에 서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두는 작품을 좌우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소재를 만난 사람의 머리 속에는 쓰고자 하는 말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다.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써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아무 데서나 시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서두가 독자를 끌어들이게 할 것인가에, 서두의 중요성이 있다. 이 중요성을 땅을 비집고 솟는 싹의 떡잎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한 속담을 인용한 말이다. 나그네의 갈림길 같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갈림길에 들여놓은 발길의 향방에 인생길이 달라지듯, 수필의 서두도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2) 서두의 요령
서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는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취향과 개성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하나의 나무를 보고 쓴다고 하자. 이때의 서두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나무를 보게 된 동기에서 시작할 수 있고, 나무가 서 있는 입지적 조건이나 나무의 모양, 또는 주위 환경 상황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서두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의 한 부분이다. 동기부터 쓸 수도 있고 결론부터 말할 수도 있다. 대상을 순서적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중심부분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수필은 서두의 제시 방법에 따라 작품의 성공이 좌우된다. 제시 방법이란 표현 방법을 뜻한다. 말하자면 신선미가 없이 진부한 설명적 표현이거나, 걸러지지 않은 감정의 노출이거나, 독자에게 강박감을 주거나 하는 따위이다. 서두는 차분한 말로 정적 분위기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체나 형식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경수필의 경우는, 서두의 목소리가 높아서는 아니된다. 요구하거나 교훈적이거나 설교적이어서도 성공적인 것이 못 된다.
서두의 표현에는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불분명한 인상을 주지 않는 일이다. 이를 테면 첫 구절 시작이 지시대명사 - ‘그’니 ‘어느’로 시작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대명사의 시작은 막연한 상황을 말하는 격이므로, 사실 개념과 떨어져 실감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효과적이 아니다. 다음은 1인칭 대명사 - ‘나’로 시작하는 경우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서두에 붙는 ‘나’는 군더더기일 경우가 있다. 수필은 문장 주체가 이미 ‘나’이다. 그러므로 ‘나’가 붙는 것은 서두에서나 내용에서나 군더더기일 때가 많다. 다만 예외인 경우는 작자 자신을 강조해야 할 때다.
‘그’라던가 ‘어느’ 따위로 시작되는 것은 수필의 본질에서도 벗어난다. 작자가 주체가 되지 않는 형식 - 이를 테면 논설체 같은 경우가 아니면, 수필에도 육하 원칙 같은 것이 요구된다. 작자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따위다. 막연히 지시대명사 - ‘그’로 시작하는 것은 처음부터 원칙에서 벗어난다.
개성적 매력의 들머리에 표현기교를 모으는 게 예술문이라면, 내용전달에 초점을 두는 일반 문장에선 본론으로의 효과적 유도가 더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어쨌든 서두에서 흥미와 주의를 일으켜 놓고 중간에서, 그 흥미와 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케 하고 마무리에서, 운치롭고 인상적으로 마치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수필문에 붙여지는 주의사항이다.
해외문학파의 한 사람이고 만연체 문장의 수필가인 김진섭 씨는 “문장은 발단의 예술이다”고 했고, 희곡 <<벗꽃동산>>으로 유명한, 러시아 비판적 리얼리즘 최후의 작가 체홉은 “대부분의 작가가 작품에서 실패하는 것은 처음과 끝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였다.
(1) 그 글에서의 서두는 그 한 문장뿐이다.
그 한 문장을 찾을 일이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의 주장이 수필의 서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명수필의 작가에게서 듣는 ‘서두 한 줄을 찾는 데 피나는 산고의 아픔을 겪었다’는 고백을 자주 듣는다. 한흑구는 <나무>라는 수필을 쓰는 데 5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며,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는 서두글을 찾았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플로베르의 말대로 거기에 꼭 알맞은 한 마디를 그는 5년 만에 찾았던 것이다.
(2) 중심사상을 보다 구체화한다.
중심사상이란 그 글의 주제의식으로서 몸에 배태한 생명체와도 같은 것이다. 몸에 밴 생명도 열 달이 차야 산기를 느끼는 것처럼, 그 산기와도 같은 글의 서두도 의식의 구체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짐으로써만 가능하다. 안병욱의 수필 <인생은 예술처럼>에서의 “사랑은 하나다.”라든가, 피천득의 수필 <순례>에서의 “문학은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경험의 표현이다.”라는 문장들은 모두 중심사상의 핵을 앞세운 예의 서두다.
(3) 비유, 암시적인 문장이 효과적이다.
수필은 대우적인 문학이면서도 직접성을 피하여 완곡하게 우회하는 은근성을 체질로 한다. 이것은 보다 효과적으로 독자의 이해와 공감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단순구성의 수필에서는 대개 완만하거나 겸손한 문장으로 출발하여 말미에 가서 그 주제의 핵을 일반화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시간적 순서를 밟지 않고 전개하는 병렬식 구성의 수필에서는 글의 서두에 예민한 신경을 쓰게 된다. 즉 직유나 은유의 문장으로 거의가 서두부에 주제의 핵을 상상처리하는 두괄식의 문장이 오게 된다.
(4)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문장은 피하는게 좋다.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외래어나 시문의 구절들, 또는 전문적인 용어들을 앞세우는 경우가 있다. 피할 일이다. 호기심이나 기대감의 유발보다는 오히려 이질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르켜 독자를 밀어내는 결과가 된다. 추상적인 문장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념이나 관념이 글머리에 설 때, 대개는 친화감을 잃게 되어 호소력과 설득력을 잃게 된다. 때문에 수필의 서두는 ‘첫인상’으로서의 ‘선명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예보적 기능’으로서의 ‘암시성’을 생명으로 해야 한다.
3) 서두의 유형
처음과 끝은, 문장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알파요, 오메가인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을 잘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주의할 점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첫머리를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첫인상이 중요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 서두의 기법은 학자에 따라 각양 각색이다. 이 책에서는 20가지로 나누어 둔다. 오직 중요한 것은, 읽힐 문장의 서두는 재미, 새로움, 감명 중 그 한 가지는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재미’는 호기심의 사촌이다. 담 너머 사과가 가장 달다고 했다. 재미가 있을 문장인가 아닌가를 첫 석 줄에서 판단하려고 한다.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가 없다는 것은, 도덕보다는 흥미에 더 많이 지배당한다는 인간 속성을 꿰찌른 말이다. ‘재미’ 그것은 가장 확실한 유도책이다. ‘새로움’도 ‘감명’도 ‘재미’의 별명에 불과하다. 첫머리를 시작하는 요령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 20가지 기법을 소개한다.
1) 시간으로 시작한다. 흔히 시처형으로 불리는 기법인데, 시간이나 장소로 서두를 잡는 것이다.
내가 커피와 처음으로 만난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다닐 무렵인 것 같다. 공휴일이나 비오는 날이면, 친구집에서 소일거리로 장기나 바둑을 두기도 하고, 월남에서 찍은 친구 형님의 수많은 사진을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보곤 했던 그때, 그 짙은 다갈색의 커피를 난생 처음 맛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권대근 졸작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대학을 졸업하던 해의 일이다. 그해 가을, 나는 3학년 때 입대휴학으로 떠났던 교정 그리고 복학으로 다시 밟았던 화랑도의 얼과 기상이 살아 숨쉬는 황량한 압량벌을 등지게 된다. 도저히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미래는 삶의 회의마저 느끼게 했다. 결국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선다는 것이 고교 시절의 추억이 서린 부산에의 정착이었다.
권대근 졸작 <신들린 무녀처럼 춤을 추다가>
2) 장소로 시작하기
나의 서재에는『상선 약수』(上善若水)란 주녹(注鹿) 선생님의 친필 족자가 걸려 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그 뜻을 가슴에 깊이 담고 있으면, 이기심이 누그러지고, 모든 번추(煩醜)가 사라지는 듯하여, 나는 자주 상선 약수가 주는 교훈적 의미를 따갑게 되내이곤 한다.
권대근 졸작 <물이 주는 교훈>
대한 팔경의 하나로서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해운대의 산중턱을 쳐다보면, 여러 개의 현대식 건물들이 산허리를 따라 가지런히 앉아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크고 작은 탑과 아취가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꽤나 정겹게 비치기도 하고, 정원을 따라 곳곳에 서있는 철골 구조물의 앙상한 체구가 뭇사람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권대근 졸작 <휴일 없는 학교 이야기>
3) 주인공의 소개나 사람의 행동으로 시작한다. “나는”형으로 필자 자신이나 주인공을 내세우는 기법이다.
현비는 우리 딸아이의 이름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 이름을 불러 본다. 아직 말을 전혀 못하는 태어난 지 3개월이 좀 지난 신생아지만 현비는 내게 최초로 ‘아빠’라는 칭호를 부여해 준 감사한 신의 선물이다. 젖먹이 아이여서 글을 읽을 능력이 없지만 먼 훗날 나의 마음을 헤아려 줌직도 해서 서둘러 마음의 정을 글로 써 본다.
권대근 졸작 <딸에게 띄우는 엽신(1)>
찰스램은 <사랑은 흰 것과 검은 것의 만남>이라고 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내가 검은 색이라면, 아내는 흰색이다. 아내는 나의 흑색 지갑을 좋아하고, 나는 아내의 백색 투피스를 좋아한다.
아내와 나는 상대적이다.
내가 아주 좋아 하는 사람을 아내가 지독히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사람 그 자체를 보고 판단하지만, 아내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애증의 판단을 내린다.
권대근 졸작 <원앙별곡>
4) 대화글로 시작한다. 회화형으로 불린다. 형식이 회화로 시작된다고 해서 붙혀지는 것이다.
“자기, 빨리 일어나서 기름 넣고 오세요”
자정을 기해 유류가(油類價)가 인상된다는 뉴스를 듣고, 아내가 깊은 잠에 빠진 나를 깨운다. ‘유가 증폭 인상’이란 정부 발표는 중고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는 나를 슬프게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기름값이 최소한 생수값 정도는 돼야 한다고 강변하는 당국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으나, 몇 푼 아끼려는 아내의 열화 같은 성화는 더욱 나를 슬프게 한다.
권대근 졸작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니 엄마가 널 어떻게 해서 대학에 보냈는지 아느냐? 니가 대학 가겠다고 했을 때, 난 처음에 반대했다. 너도 알다시피 당시 우리집 사정이 얼마나 어려웠나. 그런데도 니 엄마는 반대 안 했다. 없는 돈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 고생 했는지 니가 알기는 아나. 이 놈의 자슥아, 니는 니 엄마하고 내가 태양이 방 문을 박 차고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낳은 아이다. 너는 꼭 큰 인물이 되어 돈 많이 벌어 효도하리라 믿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
이 날도 아버지는 장남인 나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숨김없이 토로하시며 목이 메이는 눈물을 왈칵 쏟으셨다.
권대근 졸작 <불효자의 변>
5) 의성어로 시작한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에게 온 전화다. 누굴까?
“권 선생님, 전화 받으세요.”
“어이구, 감사합니다.” 전화가 오면, 늘 하던 대로 수화기를 건네주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수화기를 넘겨 받았다. 아내였다.
“여보 화 안 내죠. 이번에 마산 엄마하고 장사 한 번 해 보려고 하는데 ..... 사실, 엄마 혼자 계시게 놔 주니까 마음이 아프고, 우리 생활도 너무 쪼달리고 해서, 제가 먼저 장사하자고 졸랐어요. 엄마는 자기가 허락해 주면 오케이라고 하던데 .......”
일단 허락을 하였다. 그러나 갖 가지 상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내는 나의 허락에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고생길을 잘 알면서 저렇게 기뻐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직장에 나가고 싶다는 아내의 호소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돈을 벌어 가계에 일비 지력(一臂之力)이나마 보탬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런 아내에게 나는 항상 ‘초가 삼간에 살더라도 이렇게 행복하면 되지’하면서 위로하곤 했다.
6) 속담이나 격언으로 시작한다. 인용형으로 불린다. 명구, 명언, 유명인의 말을 첫머리에 인용함으로써 들어가는 기법 이다.
‘눈물 젖은 고구마를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경구가 있다. 나는 이 경구를 읊조리며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 온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교직에 몸을 담고 있다 보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 때가 많이 생긴다. 바로 이 때를 대비해서 나는 내 나름의 인생 철학을 정리해 놓고 있다. 요컨데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 인생관이다. ‘no pain, no gain'이란 영어로 된 격언을 자주 인용하는 것도 나의 인생관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권대근 졸작 <눈물젖은 고구마>
우리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과의 이해관계, 즉 혈연, 지연 학연 등에 따라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는 경우를 두고 흔히 쓰이는 격언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고 보면,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매사(每事)를 정관(正觀)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어떤 문제가 자신과 연(緣)이 닿아 있는 사람과 관계된 일일 때에는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 주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정실이 개입되면 판단이 흐려지게 마련인 것이다.
권대근 졸작 <관용의 한계에 대하여>
7) 어떤 사건으로 시작한다.
구체적인 사건을 예시하는 것도 읽는이의 호기심을 일으켜 글에 끌어 들이는 좋은 방법이다. 예시는 읽는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 사건의 진행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읽는이를 글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87년 6월 어느날 신세계백화점 앞 광장에서 전경 1개 소대가 학생 시위대에 포위돼 있고 마침내는 무장해제됐지만 학생들은 아무도 전경들을 두들겨 패지 않았다. 학생들은 다만 전경들의 장비를 팽개치며 울분을 터뜨렸고, 더러는 울었다. 전경들도 울었다. 시민들도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함께 울었다.
유순하 <한총련, 당신들은 잘못하고 있다>
특히 위 예문처럼 시사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경우 비교할만한 이전의 사건을 제시하는 것은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이런 도입 단락은 어떤 주장보다도 주제에 공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적절한 예시는 독자를 집중시킬 뿐만 아니라 딱딱한 설명이나 주장보다도 주제에 공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건 예시는 부담없이 글을 읽게 하여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월남 난민들이 자신들을 공해상으로 추방하려는 데 항의 배에 불을 지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다가 우리 해경에 의해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가 며칠 전 신문에 실렸다. 월남전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공해상을 헤메며 갈 곳을 찾고 있는 보트피플이 있다니 이해가 잘 안 간다. 휴머니즘이 실종된 이 시대의 비극을 보는 듯해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권대근 졸작 <고향의 의미>
직장을 얻어 교직에 첫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내가 속한 교무과 동료들이 신입교사 환영회를 열어 주었다. 으레 주연이 끝나갈 즈음이면 노래가 나오는 게 순서다. 때마침 한 분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자는 제의를 했다. 재미있게, 기분좋게 놀다가도 노래 애기가 나오면, 그 순간부터 긴장되는 나는 내 차례가 되면 어쩌지 하는 대책을 세우느라 남의 노래를 듣지 못한다.
권대근 졸작 <너무합니다>
8) 주장이나 결론으로 시작한다. 선형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곧 뼈대 즉 틀을 짜는 것을 말한다. 틀매김을 제시하고 들어가는 기법이다.
하루밤 친구와 나눈 이야기가 10년 동안 독서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흉금을 터 놓고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삶에 유익한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이라 생각된다. 다음 날이 부담 없는 금요일 밤이면 어떨까, 별 할 일 없는 토요일 밤이면 더욱 좋으리라. 꼭 친구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면 남녀노소가 무슨 상관있으랴.
권대근 졸작 <대화부재유감>
노후에 믿을 수 있는 것이 셋 - ‘늙은 아내, 늙은 개 한 마리, 그리고 예금통장’
김소운 , 명작 <맨발 벗은 걔>
문학은 인간학이다. 문학이란 삶과 우주관에 대한 철저한 고민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면서 자신과 만나는 모든 것을 변화시켜 준다. 고통스런 삶의 질곡 속에서 속절없이 유랑하던 내 인생의 좌표를 제시해 준 것도 문학이었으며,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우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권대근 졸작 <문학에 대하여>
9) 설명으로 시작한다. 해설형이라고도 한다. 제목의 뜻, 집필 동기, 말의 풀이로 시작하는 기법이다.
변강쇠 또는 변강수(卞江洙)는 음남(淫男)을 뜻하는 말이다. 변강쇠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 쯤은 이제 국민 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기계 문명의 메카니즘 속에 성장한 환락과 유희적 서비스 산업의 번창으로 인해 성(性)의 상품화가 영상매체를 통해 쉽게 가정으로 흘러 들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권대근 졸작 <별명애가(II)>
개성이 강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별명을 가지고 있다. 남이 불러주는 별명은 자기를 잘 드러내는 색깔이며, 자신만이 갖는 개성의 집적(集積)이다. 그것은 이름보다도 더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별명은 한 사람의 여러 가지 측면 즉 성격이나 생김새, 버릇, 장단점 등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대인 관계에 있어서 원활한 유대를 형성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뚜렷한 개성은 상대방으로부터 이해를 얻어낼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닌다.
권대근 졸작 <별명애가(I)>
10) 기상의 변화로 시작한다.
장마구름이 걷힌 칠월의 미칠 듯한 불볕 더위를 안은 여름 해가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 황산 선생님과 인터뷰 약속한 시간이 점점 가까워 온다. 지하철의 종창역인 서대신동에 내렸다. 에어컨의 시원한 숨결을 멀리한 내 몸은 아스팔트 보도 위에서 뿜어 내는 지열과 싸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권대근 졸작 <황산 선생님을 찾아서>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요즘은 이상 기후가 세상 인심을 대변이라도 하듯 변덕을 심하게 부리는 것 같다. 비 바람이 무섭게 불어와 창문의 시퍼런 따귀를 후려친다.
권대근 졸작 <분만실 앞에서>
11)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시작한다.
누가 내게 취미라 뭐냐 물으면, 나는 독서라고 말해 준다. 뭐라고 꼭 집어 즐겨 하는 것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말이 ‘독서’다. 등산이나 낚시도 자주 가는 편이 아니고 그렇다고 규칙적으로 하는 운동도 없다. 퇴근하면 그저 신문보고 9시 뉴스 듣고, 다음 날의 교재 연구 좀 하다 골아 떨어지는 게 나의 하루 싸이클이다.
강물이 흐르는 것에 미쳐 늘상 흘러만 가듯 교사는 가르치는 것에만 매달려 자칫 교육학적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이 현금 우리 교단의 실정이라면 지나친 나의 속단일까? 내 자신부터 우선 그랬으니 ......
권대근 졸작 <지금은 독서 중>
12) 가정적 설문으로 시작한다.
우리 글의 띄어쓰기에 대해 자신을 가지는 사람이 국민 중에 몇 사람이나 될까? 사실 띄어쓰기는 모든 이들이 가장 곤란을 겪는 문제이기 때문에,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다수가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한다기보다는 대층 앞뒤를 잘 뜯어 맞춰서 알아 보도록 하는 편이다. 다시 말해 띄어쓰기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우니까 맞춤법대로 정확하게 자기가 띄어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띄어쓰기 공포증 내지는 불감증에 걸렸다고나 할까?
권대근 졸작 <띄어쓰기고>
인간이 풀어야 할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절실한 물음이 있다면 “인생이 무엇이냐”라는 의문일 것이다. 이 초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권대근 졸작 <계단을 오르면서>
13) 배경이나 장면의 묘사로 시작한다. 묘사형이라 불린다. 시인, 소설가 들의 글에 많이 보인다. 자연 형용사가 많이 끼이고, 수식구가 잦아진다.
남해를 여행할라치면 곳곳에 큰 숲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숲은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에 있는데, 대부분의 숲이 방풍 구실을 하고 있는 상록수림이다. 이런 숲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마음이라도 한두 그루 정도의 정자 나무는 마을 어귀나 한 켠에 호젓이 앉아 있기 마련이다.
권대근 졸작 <여름과 숲>
목탄으로 그린 앙상한 나목이 겨울을 이겨낸 기쁨으로 새 생명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초록의 싱그러운 내음은 춘풍의 올에 실려 교정의 여기 저기에 너울대고 있다. 이렇게 화사한 삼월의 새 아침에, 너희들과 내가 이 아름다운 구월산하, 배움의 전당에서 만나게 된 것을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으랴!
대근 졸작 <너를 만나고 여기에>
14) 유명한 말이나 명언 등을 인용하여 시작한다.
인용은 읽는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방법이다. 인용된 말이 무슨 뜻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읽는이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작용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남양의 어느 지방에 속담 비슷하게 “삼분의 일은 물에 흘려라. 삼분의 일은 대지에 돌려라. 삼분의 일은 적에게 주어라”라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고 한다. 곧, 남자는 버는 돈의 삼분의 일은 술을 마시는 데에 쓰고 삼분의 일은 미래를 위해 예금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바치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처럼 남자의 생활에세 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하겠다.
이종욱 <쌀먹거리-싱거운 것말고도>
위 글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말을 인용함으로써 읽는이의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인용된 말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독자는 그 뒷부분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말을 인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말은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할 때, 흔히 인용되는 금언(金言)이다.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유산을 중시하겠다는 각오나 무장없이 문학의 길로 쉽게 들어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 경험상 일단 부정 쪽이다.
권대근 졸작 <어느 날의 상념>
‘교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한 자연주의 교육사상가인 루소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이 금언은 교직의 신성함을 가장 잘 표현한 말로서 작금의 우리 교육계에 퍽이나 고무적인 암시를 주는 것 같다.
권대근 졸작 <어설픈 자화상>
15) 제목의 결론적인 의의 또는 중심사상을 우선 문장 첫머리에 제시하고 거기에서 시작한다. 글은 그 논지가 명백할수록 좋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글의 맨 앞에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처음부터 명백한 생각을 갖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다.
“인사유명 호사유피”라는 말이 있다. 인간사적으로 봐서, 자신이 죽은 후에 이름 석자를 인명 사전에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쾌사(快事)임에 틀림 없다. 어차피 인간은 한 번 죽기 마련이어서 누구나 흔적없이 사라지려고는 하지 않는다. 악명으로도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 천인공노할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보면 인간에게 있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의 의의는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권대근 졸작 <수상(受賞)이후>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행복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적인 요소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어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품위있는 말이요, 인간 관계에 있어 가장 강한 결속력을 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 흔히들 사랑을 일러 조물주가 인간을 위해 배려한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 사랑으로 탱자를 보면 유자처럼 커 보이고 그것으로 모과를 보면, 사과처럼 고와 보인다. 이처럼 신비한 마력을 가진 사랑은 미(美)의 화신으로서 모든 청춘 남녀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대근 졸작 <사랑, 그 내면의 미>
16) 본론에 앞선 작가의 느낌이나 현재의 심경으로 시작한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가슴에 아름답게 남는다고 합니다. 첫사랑을 마지막 사랑으로 장식하겠다던 당신의 첫사랑은 어떤 빛깔의 무늬로 새겨질지 궁금합니다. 사랑의 가치는 영원불변하므로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람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권대근 졸작 <바람에 띄우는 엽신(I)>
교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갑게 맞아주던 너희들이 졸업을 하게 되니, 유수 같은 세월의 황망(荒忙)을 절감할 뿐이란다. 내가 교단에 선 지 만 2년. 너희들은 내가 처음으로 내보내는 졸업생이기에 보내는 아쉬움이 더욱 크거니와 가르친 보람 또한 크구나. 막상 이별의 정점에 와서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빨리 종례해 달라고 조르던 너희들의 성화 때문에 대부분의 종례 시간을 전달 및 지시 사항만으로 짧게 끝냈던 게 끝내 후회스럽구나.
권대근 졸작 <나와 나의 만남이 큰 빛으로 남아>
17) 유명한 시나 시조의 인용으로 시작한다.
“생명의 줄이 끊어질 때
너도 그 한 가닥이라면
울리는 조종(弔鐘)은 너를 위해서도 울리나니
묻지를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를 .....”
반백의 중반을 훨씬 넘어선 어머님을 지척에 두고도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저는 이웃한 교외의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훼밍웨이의 소설『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나오는 존 던의 시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그립니다.
권대근 졸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죽은 여인보다도
더 불행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이 시를 접하게 된 때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해운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층 교실의 베란다에 서면, 누구나 생각하는 로뎅의 흉내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권대근 졸작 <개, 죽음 그리고 인간>
18) 문제 제기로 시작하는 방법
읽는이의 관심을 끄는 또 한 방법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글을 시작하는 것이다. 문제가 제기되면 독자는 저절로 그것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끔 TV 드라마나 주위를 보면 매맞는 아내, 바람 피는 남편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까짓껏 이혼해 버리지”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다수의 피해자들이 그들의 결혼 생활을 지속하려 한다고 한다.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일들을 참고 사는 것일까?
권대근 , 졸작 <여성상의 시대의 음지>
위 글은 매맞는 아내들이 이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참고 사는 것일까”란 질문은 독자에게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라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유도함으로써 글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독자의 관심을 좀더 끌고 글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질문을 앞에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외에도 서너 가지 방법이 더 있다.
.19) 널리 알려져 있는 영화나 극의 한 장면을 사용하는 방법.
20) 진기한 숫자나 통계 자료를 제시하는 방법.
다음은 바람직하지 못한 서두의 여러 가지 형태다.
① 쓰려고 하는 글에 대한 장황한 배경 설명이나 불평은 옳은 글의 시작이라 할 수 없다.
② 글의 첫머리에 개인적인 변명을 증언 부언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③ 새롭지 않은 진부한 내용이나 사상 등을 제시하는 것도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서두다. ④ 사전적 정의를 인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⑤ 끝머리가 예상되는 서두도 좋은 글의 시작이라 할 수 없다.
기타 ① 내용의 요약 ② 진기한 사실이나 흥미있는 사건 ③ 에피소드나 일화 등을 서두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뭔가 일깨움을 주는 좋은 수필은 타성과 선입견을 거부하고 새로운 인식 세계로 뛰어드는 반항에서 나온다. 따라서 한 편의 잘 쓴 수필은 비수보다 날카롭고 표범의 발톱보다도 매섭게 우리의 안이함과 무감각을 질타하는 채찍과 같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 수필가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도 쓸만한 서두, 평범하고 고리타분한 시작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참신한 수필을 써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자신만의 독창적인 수필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첫댓글 수고 많으십니다 좋은 자료들 잘 배우겠습니다
좋은자료 잘 보고 갑니다..
좋은 자료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자료 읽어보고 한번에 다 알수 없드시 수시로 찾아 읽고 공부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