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2015-01-10)
<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을 찾아서 >
- 文霞 鄭永仁 -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참사로 숨진 서울 교대생 이승연 양의 일기장에는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 14가지’를 남겼다. 이즈음 흔히 말하는 버킷 리스트처럼…….
그런데 그 승연 양의 어머니가 14가지 딸의 소원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 딸에 그 어머니다.
그 승연 양의 어머니는 이즈음 우즈베키스탄에서 6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그녀의 유일한 남동생은 아이들 둘을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월호 유족에게 “ 새해에는 원망이나 슬픔에 빠져 있지 마시라.” 하면서 “누나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이 땅에 열매를 맺고 있는 것처럼…….”
‘죽어서도 죽지 않는 것은 뭘까?’
육신, 돈, 명예, 명예, 그러지 않으면 갑질일까?
인간은 죽어서 물질적, 육신적인 것 뭣 하나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 절대적인 진리 중에 하나다. 죽는다, 가져갈 수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진리처럼 말이다.
아마 죽어서도 죽지 않는 것은 마음일 게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남겨 놓는 것이 그리움이 아닐까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는 하지만, 그 이름도 마음이다. 고호는 자기 마음을 그림으로 남겼을 뿐이다. 미운 마음, 악에 바친 마음, 분노 등이 아니라 그리움·고마움·감사함·애틋함 등일 이다. 故 장영희 교수는 죽어서도 잊지 않으면 죽은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또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두 분의 어머니가 항상 그립다. 한 분은 나를 낳아주신 엄마, 다른 한분은 키워주신 어머니다. 이즘 끝난 아침 드라마에 두 엄마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바로 낳은 정, 키운 정 갈림길에서……. 그래도 그 딸은 비록 자기를 유괴했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키워준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핏줄은 땡긴다고 하지만……. 나도 사실 낳아준 어머니 보다는 키워준 어머니를 더 그리워한다.
아마 그런 것들이 죽어서도 죽지 않는 마음의 열매가 아닐까 한다.
죽으면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수많은 물질적 재산은 담고 갈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또 낳을 때 입는 배냇저고리에도 호주머니가 없다. 기껏해야 염(殮)을 잡수실 때 입에는 쌀알 몇 톨, 손에는 동전 몇 닙이 황천길 노잣돈으로 쥐어줄 뿐이다.
누가 그랬다. 종이에다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다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고…….그리움은 고마움과 감사함으로 수묵화 먹물처럼 물과 함께 담담하게 퍼진다. 마음의 여백 속으로 퍼진다. 그리움은 총천연색이 아닌 수묵화나 수묵담채와 같을 거다. 말갛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모든 예절의 근본은 고마움과 감사함이다. 감사함은 내가 받은 은혜를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인 마음 자세의 씨앗이다. 결국 내가 가진 것들은 사람과 자연의 덕분에 얻을 것들이다. 당연히 잠깐 빌려 썼으니 감사함으로 되돌려주는 것뿐이다. 하찮은 나뭇잎 하나도 자기를 있게 해준 뿌리에게 낙엽이 되어 껴 안으면 그리움이 생긴다.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이라도 그 나름대로의 격(格)이 있다. 그 참된 격은 물건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인격(人格)이고 심격(心格)이다. 몸에는 체격, 물건에는 품격이 있으나 돈격, 권세격, 명예격이라는 말은 듣도 못했다.
모든 것이 돈과 권력과 소유가 최우선 되는 이즈음 사회에서 그래도 진정한 삶의 품격은 그나마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찾는 일이 아닌가 한다.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소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있다.” 라곤 했지만, 10억을 주면 1년쯤 감옥에 가도 괜찮겠다는 현세에 세태가 코웃음 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 삶의 어느 구석엔가는 돈으로 안 되는 일도 있을 테고, 죽어서도 죽지 않는 일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