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3. 화
노태인 : 6세
노강인 : 4세 (41개월)
노시인 : 2세 (21개월)
자유
동네아이들이 우리집에서 함께 어울려 놀면서 얻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들이다.
그것은 배려심, 인내력, 창의력, 사회성, 협동력 등 교육의
핵심들이다.
그럼에도 부모들이 관심이 없고 하찮게 여기니 그것이
나는 더 놀라울 따름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그리고 우리집에서 거의 날마다
아이들을 놀게 하면서 체험한 것이다.
그런데 숲학교도 나처럼 놀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라니
나의 교육관과 같아서 반가웠다.
하지만 우리나라 숲유치원을 알아보니 거의 일반유치원과 비슷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나의 교육관은 틀 안에서의 자유이다.
정확한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유와 사랑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여 급속히 변화된다.
그리고 자신 속에 있는 최고의 것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부모가 그렇게도 갈망하는 창의력이다.
부모가 자녀의 창의력을 죽이고,
학교가 학생의 창의력을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자유와 사랑이 없는 것이다.
자유와 사랑은 하나다.
사랑하면 자유롭게 한다.
자유롭게 하면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그 아이는 변화 될 수 밖에 없고
창의력이 나오게 된다.
숲학교에 대해 알았을 때 나의 교육관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자유다.
자유롭게 노는 것이다.
정확한 틀 안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이다.
시간도 장소도 도구도 제한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제한하는 울타리는 매우 정확하고 엄격하다.
그 울타리는 감사하기, 미안해하기, 위계질서 지키기, 아름다운 언어생활,
좋은 식습관, 식사기도, 인사, 양보, 청결, 정리정돈 등이다.
이것 중 어떤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을 때는 반드시 제제하고
그래도 듣지 않을 경우엔 벌을 준다.
정리정돈을 하지 않고 아이가 집에 가버릴 경우
다음날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없게 한다.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비속어를 쓸 경우엔 제제을 하고
그래도 듣지 않은 경우엔 집에 가게 한다.
손을 잘 씻지 않을 경우엔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가 지켜봐 준다.
먹고 난 후엔 자신이 먹은 그릇은 씽크대에 넣게 한다.
먹을 거리가 있으면 제일 나이 많은 아이부터 준다.
약간의 다툼이 일어날 경우 언니 말 잘들어라고 한마디만 해 준다.
아기에겐 무조건 양보하게 한다.
나는 내 아이들과 놀이터, 시장, 도서관으로
돌아다니며 보통 4-6시간을 밖에서 논다.
유모차에는 미술가방, 도시락가방, 축구공, 줄넘기 등을 줄줄이 걸고 다닌다.
요즘은 셋째 시인이가 자동차를 타고 싶어해서 위험한 동네 길을 타고 다니게 한다.
그러다 시인이가 지치면 자동차까지 유모차에 억지로 걸고 다닌다.
그러니 우리 유모차는 그야말로 짐수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안방처럼 눕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고
재주넘기도 한다.
신발 벗고 노는 걸 좋아해서 놀이터에 오면 신발을 벗는다.
인천으로 이사 온 후 알게 된 4학년누나, 6학년형이
우리를 찾아 처음으로 반디도서관에 오더니
너무 멀고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더 힘든 길을 날마다 다녔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안했다.
오히려 다 큰 아이가 힘든다는 말을 하니 이상하다.
한 번은 4학년 누나가 우리 따라 자전거를 반디도서관에 끌고 왔다.
네 살 된 강인이가 자전거를 끌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멀고 힘든데 어떻게 자전거를 끌고 왔냐며 놀랜다.
넓디 넓은 오봉산공원에서 몇 분 놀더니 4학년누나가 낚시터에 가자고 한다.
늦어서 공원에서만 1시간 놀다 집에 가야겠다고 하니
여기서 지루하게 어떻게 1시간을 노냐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더 놀라서 우리는 여기서만 하루종일도 논다고 했다.
그리고는 거기서 2시간이 넘게 더 놀다 집에 들어갔다.
이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집중력과 창의력이다.
한 곳에서 계속 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컴퓨터, 텔레비전, 헨드폰 등의 매체의 영향도 클 것 같고
과다한 장난감 등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자의 방이 있으니 어울려 놀 필요가 없고
학교, 학원에 바쁘니 실컷 놀 시간이 없어서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조그마한 놀이터에서도 몇 시간을 논다.
거의 움직일 수 없는 방 하나에서도 몇 시간을 논다.
그런데 이렇게 넓은 공원에서 1시간을 못 놀다니 신기한 일이다.
마음껏 노는 것.
그것이 내가 하는 교육이다.
마음껏 놀아야 집중력이 생기고 창의력도 생긴다.
마음껏 노는 것이 교육의 거의 전부이다.
그런데 부모는 그것을 못하게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학원 가야하니 못놀고 시험기간이라 못놀고
밥먹어야 하니 못놀고 학습지 시간이라 못논다.
밥준비 해야하니 아이 재촉해서 빨리 집에 가야하고
빨래 널어야 하니 놀다가 아이 다그쳐서 집에 가야한다.
아이들에게서 끊임없이 느낀 것은
마음껏 놀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마들이여, 아이는 놀아야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놀게 해 주세요.
한 두 시간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만큼 해가 지고
달이 뜨도록 놀게 해 주세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면 완전한 자유를 주세요.
아이 때 자유하면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완전한 자유를 가진 아이들이 사회를 이끌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것은 마음껏 놀게 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학원에 학습지에 과외로 돌릴 때 바로 모든 것은 소멸되어집니다.
저는 아이들의 모든 능력이 소멸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얻은 아이들의 모든 능력이 살아나는 소리도 듣습니다.
나는 들립니다.
엄마들이여, 들으소서.
아이들의 능력이 살아나는 소리를 들으소서.
그때 아이들은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무한대로 능력이 발산되기 때문입니다.
마음껏 놀 시간과 공간을 주세요.
여러 가지 환경을 제공해 주세요.
그것은 학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들판입니다.
그것은 산입니다.
그것은 땅입니다.
프로그램이나 도구를 주지 말고 자연속에 아이들이 있게 해 주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20년을 하루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살면서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껏 노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 버렸다면 저와 함께 놀아요.
놀면서 노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배워가요.
노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쫓겨 삽니다.
이제 멈추세요.
멈추면 자유로워집니다.
쫓기면 모든 것이 지치고 병듭니다.
멈추는 법을 배웁시다.
산에서 들에서 멈추어 섭시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면서 멈춥시다.
나무를 줍고 흙을 파면서 멈춥시다.
멈추면 보입니다.
쫓기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지금 멈추십시오.
그러면 들립니다.
멈추는 것은 변화입니다.
멈추는 것은 능력입니다.
멈추는 것은 헌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