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방광면에서 산동으로 가는 길은 안개에 쌓여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시야를 가린 안개가 방광면에 도착한 아침 9시 40분 여전히 사위를 가리고 있다.
먼저 내려온 청춘님을 만나 길을 떠날 때에도 안개는 지리산 자락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지리산자락을 따라 동에서 서로 흐르다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서시천을 따라 거슬러 오르다 고개를 드니
안개 위로 산이 드러나 있다.
머리만을 드러낸 산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더욱 신령스럽다.
갈대로 덮힌 서시천에 앉아 있던 오리떼가 인기척에 놀라 일제히 떠 오른다.
서시천을 건너 구만제를 가는데 절벽에 정자가 일행을 맞는댜.
세심정-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뜻의 정자가 서있는 절벽 밑으로 길쭉한 바위들이 물고기떼처럼 늘어서 있다.
아침 햇살을 반사해 거울같이 빛나는 고요한 강물에 드러난 하얀 바위를 보고 있자니 일본의 카레산스이라는 양식의 정원이 떠오른다.
바라만 볼 수 없어 뛰어 내려가니 잡초와 태양이 바위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구만제를 지나가는 길가에 가지가 찢어질듯 달린 대봉감나무가 일행을 반긴다.
몇 십분 걷지도 않았는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과 풀을 만난다.
산부추, 여뀌바늘, 여뀌, 산초, 쑥부쟁이, 결명자, 마삭, 수리딸기,참방동사니
도꼬마리, 도깨비바늘, 연꼭두서니, 애기나팔꽃, 수크렁, 개망초, 억새, 갈대,
개망초, 코스모스, 개똥쑥, 갈퀴나물
우리밀체험관을 지나며 두레생협을 하면서 알게된 분을 떠올리며 잘 익은 홍시를 두 개 땃다.
너무 달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할 말이 있으면 떳떳하다.
지리산 자락을 향하야 간다.
길가에 보이는 풍경은 쑥부쟁이와 잘 어우러진 감나무와 산수유다.
두 개의 감으로 스무명이 나누기엔 감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크다.
그러나 꾹 참고 간다. 아무런 연고도 없기에..........
온동 저수지에 비친 가을은 아직 저 멀리 있다.
저수지를 돌아 온동 마을로 들어간다.
옛날 온수가 나왔다고 해서 온수동이었는데 가운데 수자를 빼고 온동이 되었다.
마을 어귀에 감을 털고 있는 부부가 보인다.
얼마나 참았나 감의 유혹을 이제는 대놓고 들이댈 때가 왔다.
감을 따는 곁을 지나면 혹시 감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까이 간다.
물론 겉으로는 마을을 지나야 진짜 둘레길을 걷는 것이라는 명분을 들이대고.
아니나 다를까 어디서 왔냐는 질문과 동시에 드시고 싶은만큼 맘껏 드시란다.
역시 구례의 인심이 대단하다.
두런두런 하나 둘씩 모여들어 감을 들어 바로 먹는데 단감의 단맛이 황홀하다.
그냥 먹기에 미안하여 돈을 지불하려고 해도 받지를 않는다.
밖에서 이는 소란에 어르신이 담장 너머로 한소리 하신다.
'아범은 왜 오늘 같은 날 감을 따느라고 그려"
이 때다 싶어 할머니 맛난 것 사드시라고 용돈을 건네고 간식으로 준비한 단 것을 건넨다.
조그마한 것을 주고 받아도 마음은 부자다.
이게 오늘의 사단이다.
이 기분에 온동에서 난동으로 가야하는 길을 내처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마을은 기대보다 더 예뻐 돌담길이 제주도를 연상케 한다.
감 과수원에서 일을 하시는 어르신에게 길을 물었다.
산동을 가려한다.
산동을 가려면 이렇게 가라
산동을 가는 길은 여럿이 있는데 우리는 산동을 가는 길을 묻고
주민은 산동을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산동은 같으나 산동을 가는 길은 여럿이었다.
우리는 산동을 갔으나
우리가 원하던 산동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와 다시 산동가는 길을 찾아보니
온동으로 들어선 것도 온동으로 오기까지의 길도 처음에 예정했던 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길도 좋았다.
난동에서 생태체험숲 조성지를 오른쪽으로 돌아서 길을 잡았어야 하는데
우리는 난동은 가지도 않았으며 온동에서 나와 생태체험숲 왼쪽으로 돌았다.
산 불이 난 지역을 생태숲으로 조성하는 중이라 어수선했지만
아직 조성중인 생태공원의 관리사무소 발코니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시 길 떠나기 전 건물안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으니 세콤 차가 온다.
건물 안 동작감지기가 작동하여 세콤이 출동한 상황이다.
덕분에 세콤 경비원은 한가한 일요일 드라이브를 즐기고 우리는 세콤의 호위를 받으며 일을 치뤘다.
포장도로를 지나 산 허리를 돌아드니
감국과 산국 구절처가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가 진동하고 등에가 이쁜이나비와 더불어 꿀을 빨고 있다.
이때 까지도 누구도 길을 잘못들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너무 빨리 온 것이 문제였다.
산동면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더 가야하는데
둘레길 난이도 상이라는 코스가 고개 마루 잠깐 넘고 끝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 생각없이 따라 나선 길이지만
첨단 무기인 휴대폰을 켜고 지도를 살피니 가기는 가겠지만 예정된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
아스팔트 길을 피하고 최대한 산동면에 가까이 가겠다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임도도 곧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길도 없다 방향만 잡고 발자취를 찾아 눈을 부릅뜬다.
둘레길을 왔더니 빨치산 길을 가고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다행인 것은 잡풀과 관목이 없어 그런대로 숲을 헤치고 나갈만하다.
우리가 내려설 길가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마음에 여유를 준다.
(지친 몸을 달래며 구찌뽕나무 열매를 먹고 있다.)
몇 개의 무덤을 지나 능선길을 찾아 마을로 내려간다.
헛개나무와 구찌뽕나무가 가장 먼저 반긴다.
구례는 역사를 자랑하듯 마을마다 최소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동네어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내려선 내온마을도 400여년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네 그루가 서있다.
여기서 산동마을은 불과 1킬로 남짓 원래 가고자 했던 길과 거리는 비슷하지만
고개를 넘어서는 수고를 덜해 쉽게 왔다.
어렵게 가려고 했던 길을 수월하게 왔으니 다행인 사람도 있고 불만인 사람도 있다.
가지 못한 길은 아직 가지 못한 길로 남았다.
그 길은 다시 가면 된다.
우리네 인생 한 번 간 길을 되돌릴 수 없지만 오늘 나의 삶을 평가함으로
지나온 길의 정당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늘 지리산 둘레길을 함께 걸은 사람은
함께 걸을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잘 살아왔다.
그 지난 날 갈래 길의 선택에서 잘못 들었다고 생각되었다 할지라도.
길을 잘못 들어 예정된 시간이 남아
예정에 없던 호사를 누린다.
산동면을 가로지르는 서시천변 산수유를 지붕삼아 서 있는 정자에서
새우깡을 안주삼아 막걸리도 한 잔 하고
버스로 이동한 상위마을에서 해 저무는 산자락에 드리운 그림자를 감상하고
덕위마을 홍준경 시인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산수유꽃담길을 걷기도 하고
하나를 못하고 몇 개를 얻은 하루였다.
결산합니다.
참가인원
21명X30,000= 630,000
수입총액 630,000
참가자명단
청한 청춘 빨강츄리닝 메타, 박용철, 고진감래 모퉁아리 이영자외 1인, 이영미외1인 김산 몽치, 김복순, 손선화 민들레, 곽숙경, 이미화, 함인숙, 유씨자매(죄송 수첩에 이름이 있어서)
지출
버스비 800,000원
간식 30,000원
지출총액 830,000
차액 -200,000원
전월이월액 917,000원
금월차액-200,000 현재액 717,000원
첫댓글 둘레길을 갔었으되 이글을 보며 두번 다녀오는 느낌을 갖습니다
사진과 글 참 좋습니다~
날씨가 넘 좋아서 갈걸 그랬다고 아침에 후회했었는데 안가길 다행이네요. ^^;;; 길 잘못들었다고 타박에 구박을 하며 투덜댔을테니까.....
진짜 가고 싶었는데, 하필 벼를 베는 날이었어요. 마늘도 심어야 하고, 콩도 털어야 하고, 벼도 베야 하고... 곧 서리는 온다하지, 더 추워지면 안된다 하지...정말 농사꾼에게는 허벌나게 바쁜 날이었네요. 몸이 열 두개면 좋겠어요. 반가운 얼굴들 뵈니 좋네요. 모두들 건강하시죠?
김산과 왕영창은 동일인인데 그럼 누가 빠진 것이지 21명이라고 해서 21명에 맞췄는데
내려갈 때 19명 세었는데 가서는 청춘님 합류하고 걷다보니 21명이라 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누락된 분 찾아주세요 박용철이 빠졌네요 왕영창 삭제하고 박용철로 바꿨습니다.
아주머님이 주신 단감 진짜 맛있었어요~
밤도 맛있었고~
수고하셨습니다...^^
휴~ 이 안도의 한숨은 뭔가... 정말 대단한 중년이다. ㅎㅎ
지팡이 잃어먹고 정신없이 걷지를 않나........ 배낭 내팽겨치고 맨몸으로 걷다 되돌아가지를 않나. . . . 불한당 따라다니면 깜박증 심해지나봐요.
청진기 귀에 안꽂고 진찰하는것 보단 낫지여 뭐.....ㅎㅎ
이제사 이글을 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