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교내 시화전에 내었었던 한 편의 시가 아직도 내 방 벽에 걸려 있다. 마음의 참모습을 찿아야만이 참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난 그랬다. 고졸 후 출가하여 도를 이루고 꼭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더불어 살겠노라고 홀로 다짐 다짐했다.
허나 지금은 내 인연의 타래가 어찌 된 것인지 훤히 알지만 그때 당시는 출가를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아팠고 차라리 종교를 바꾸라는 주변 사람들 말처럼 개종을 해 볼까 하다가 ‘이건 종교 문제가 아니다' 싶어 일단 한 눈에 들어 온 능엄주 백일기도를 시작으로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삶을 살았다.
고졸 후 곧바로 집과는 멀리 떨어지고 그곳 마을에서도 5리나 더 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중 암자에서 79세 노스님과 백일기도와 함께 혹독한 절 생활을 톡톡히 해 내었다.
이를 계기로 절집이 어떻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나는 다시는 절에 가지 않겠다 결심하던 찰라 이상하게도 계속 조계종 큰스님들을 비롯한 스님들과 인연이 되어 그 이후로 큰 사찰과 인연이 되어 늘 언제 가더라도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난 그렇게 공부했다.
학문에 욕심은 많았는데 머리가 따라 주지 않아 늘 꼴찌를 했고 경전을 접해도 너무 긴 내용이 싫어 마음의 골수를 드러낸 것 같은 금강경과 육조단경, 선서들 그리고 역대 큰스님들의 구도소설을 즐겨 읽었다.
책을 참 좋아한 나로선 지금까지 읽은 책이 몇 권 안되는 게 사실이고 초 2때부터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다스려 온 게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밑받침이 되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데 난 작년까지 십여 년을 기도 참선 등 끊이지 않게 해 온 것 같고 모두 마음 내지 않고 흐르는 인연에 맡겨 두며 줄기차게 정진하다 보니 내 참 스승과 공부와 도반이 일상에 있었고 내 전생과 미래도 일상에서 모두 밝혀졌음을 확인한다.
난 노력만 하지 내 의지를 내어 함부로 인연을 짓지 않고 흐르는 인연을 세세히 살피며 항상 뒤늦게 그 인연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곤 했다.
나의 마음공부 방법은 이게 다다.
수행 정진 중 수많은 신묘한 현상들이 나타났으나 모두 덮어 두고 끝까지 정진만 계속하였다. 이 공부는 특별해지면 이미 도의 길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불보살님들의 화현은 중생을 고해에서 건져내기 위한 한 수단에 불과하다. 수행 중 한 때 자신에게 끈이 되기도 하나 진정 정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는 모두 놓아야 한다. 그렇기에 옛 조사들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한 것이다.
불법은 마음공부이고 마음공부는 현실을 떠나선 절대 이룰 수 없다. 또 이 공부의 끝은 평범함이다. 지극히 텅 비고 평범하여 그 무엇에고 걸림 없이 자유자재 함을 누리는 것이다.
수행자는 오직 자등명 법등명하여 정진에만 힘 쓸 일이요, 형상을 쫓아가서는 안된다. 이렇기에 요즘 시대 인터넷상의 마음공부는 우리의 큰 복밭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복이 있는 자는 한 구절만 보아도 곧바로 행으로 옮기며 마음공부의 씨앗을 제대로 심기 때문이다.
난 요즘 이곳에서 머물면서 알게 모르게 깊은 공부를 하고 있다. 많은 글들과 법우님들의 꼬릿글을 보면서 또는 달면서 어찌하면 모든 경계에 둥글 수 있을까 ...... 어찌하면 세상 탓, 남 말 하지 않고 모든 삿된 경계 감싸며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이 법을 바로 펼칠 수 있을까?
아직은 한없이 부족한 ‘나’이나 흐르는 물이 되어 산도 절도 스승님도 모두 다 잊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수행을 계속 하고 있음이다.
그렇게 텅 빈 채 흐르다 보면 모두 다 드러나리라고 난 믿고 있다 그냥 물처럼 흐르다 보면.........
첫댓글 텅 빈 채 흐르다 보면 모두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