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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2 주일설교
본문: 에베소서 2:20-22
제목: 모퉁잇돌 되신 그리스도
오늘 본문에서 교회 곧 성전은 지어져가는 건물로 비유되고 있다.
교회는 구약의 성막 또는 성전이 그 모형이다.
솔로몬이 화려한 성전을 짓기 전 성막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친히 그 자세한 건축방법을 주셨다.
그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도, 그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도, 하나님은 영광으로 충만케 하셨다.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보았더라”(출40:33-38)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왕상6:38,8:6,10-11)
그러나 우리 주님이 오셔서 이 성전 건물은 헐라고 하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친히 성전이 되셨다.
건물 성전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이다.
이제 교회 건물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예배당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진다.
진짜 성전은 예수님 자신이다.
그 예수를 믿고 그와 연합한 신자들의 연합이 성전이요
그리고 개별 신자들이 그 안에 성령이 계심으로 성전이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를 이렇게 말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1:2)
개별 신자들이 성전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런 의식이 없으면, 불신자들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함부로 쓰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면 멸하신다고, 망하고 멸망으로 끝이 난다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성전으로 만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희생하게 하셨다.
주님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이다.
그런즉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라는 것이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없으면, 진정한 그리스인인지, 거듭난 생명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오늘날, 교회 건물에 많은 돈을 들여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게 짓고 치장하는 것은
건물을 우상화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헐은 성전을 다시 짓는 대적 행위가 될 것이다.
천년 동안의 암흑시대를 만든 카톨릭을 닮아가는 악습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값으로 사신 우리 자신의 성전을 거룩하고 깨끗이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거늘,
건물 크게 짓다가 부도가 나고, 횡령들을 하고, 온갖 부정한 짓들을 범하고 있다.
건물 보고, 사람의 모양과 크기를 보고, 몰려드는 가라지들도 함께 문제이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협착한 길, 찾는 자가 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데도,
어찌하여 사람들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로만 갈려고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화려한 성전과 함께 멸망할려고 할까요?
말구유에 나신 예수님, 나사렛에서 30년 동안 목수생활하신 예수님.
갈릴리에서 어부들과 세리들을 제자로 삼으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죽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은 오간데 없고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성공한 인생 사는데 혈안이 되어서 일 것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성전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일깨워주고 있다.
1. 성전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야 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2:20)
우리 자신의 성전과 그 연합인 교회가 서야 할 터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선언하고 명령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그 위에 서야 할 터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신약 구약 성경인 것이다.
성경을 멀리하고 순전한 말씀을 들을 수 없다면 그 터는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 날이 이미 이른지 오래이다.
여호와의 순전한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교회들에, 교인들에 임한지 오래이다.
교회에 말씀의 기근이 들었으니 교인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들겠지요.
하나님이 타락하고 오염된 교회에 기근을 보내신 것이다.
세상의 온갖 지혜들이 말씀을 이루고 가르침을 이루고 있다.
당장에 해결해 준다는 비법과 처방들이 프로그램으로, 설교의 중심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하고 기록된 성경의 순전한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인 것을 믿지 않는다.
청교도들은 성경이 진리의 보고(寶庫)요 성령의 서재(書齋)인 것을 감동스럽게 선포하고 있는데
현대의 목사들과 신학교수들은 어째서 세상의 철학과 사상들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할까요?
성경은 그것들이 세상의 초등학문들이고 초등교사라 하고 악하고 천박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저들에게는 그것들이, 성경 위에, 고등학문들이고, 고등교사가, 되고 있을까요?
성경은 저들에게 성령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성령이 없는 육에 속한 자들이 유명 신학교를 차지하고 유명 교단들과 유명 교회들을 지배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인 줄 모르고 몰려들어 함께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구약 예레미야 이사야 시대와 똑같은 모습들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카톨릭 성당에는 성경이 없었나요? 있었지요. 문제는 그 해석이요 적용이다.
이단들도 다 성경이 있고 성경대로 산다고 하지요. 문제는 그 해석과 적용이다.
구원파의 박옥수도, 신천지도,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저 성경 가르친다고 하고 있다.
성경은 성령으로 해석하고 성령으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하고 성경을 기록하였다.
바울 사도의 말이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기독교는 이 성경을 성령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은 경건서적들을 쌓아왔다.
성령으로 해석한다고 하면서 자기 철학으로 하는 자들의 잘못과 오류를 잡아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들이 있지만, 복음 진리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 스승은 적다고 하였다.
우리의 믿음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고는, 곁길로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터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본인만 모르고 야곱처럼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면서 안심할 수 있다.
성경과 함께 검증된 경건서적들을 같이 읽고 온전한 믿음의 길, 형통한 길을 가시기 바란다.
복 있는 사람은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지켜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우리의 믿음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굳게 서시기 바란다.
2. 성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셔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2:20)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선 터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3:11)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가 이차적이라 할 수 있고, 그 일차적인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터에 없다면 사도들도 선지자들도 그리스도인들도 헛 것에 지나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 죄를 사함 받을 수도 없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도 없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것도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교회는 잘못되고 타락되어 “그리스도 없는 교회”가 되고, “세상의 포로”가 되고 있다.
기도로는, 신비주의 명상과 기도법이 들어오고, 지혜로는, 세상의 철학과 초등학문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교회는 현대인에게 실용적인 것을 가지고 아부하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과 진리를 전하는 곳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것이고, 그 진리와 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건물에 없어서는 건물이 설 수 없는 모퉁잇돌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모퉁잇돌이 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마21:42-44)
유대인 성전 건축자들은 이 모퉁잇돌을 십자가에 버렸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전 건물의 모퉁잇돌이 친히 되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는다고 하신다.
그 “너희가” 이스라엘일 뿐 아니라, 현대의 교인들도 함께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되지 못하면 멸망한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 모퉁잇돌이 없는 자들은, 이 돌 위에 떨어져 깨지고, 이 돌이 그 위에 떨어져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모퉁잇돌로 세우지 않는 성전들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고 사탄이 그들을 포로로 삼는다.
돈과 성공의 노예가 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노예가 되고 만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그 터와 기둥으로 삼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대로 그 교회는 이미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여야 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내 성전의 모퉁잇돌이 되고 있는지, 내 성전의 터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재물과 성공과 축복이 모퉁잇돌이 되고 터가 되고 있다면,
하루 속히 이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갈아 입음으로, 엘벧엘의 성전으로 재건축해야 할 것이다.
3. 성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고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1-22)
터가 되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고, 모퉁잇돌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된 참 교회는
결국 머릿돌이 되시는 그분 안에서 영화롭게 될 것이다.
그 영화로운 영광을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1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터와 모퉁잇돌로 하여,
사랑 안에서 참된 삶을 살아,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한다.
그분이 하나뿐인 참교회의 머리이시다.
그 머리로부터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으면서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한다.
연결되고 결합될려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르치는 자의 도움, 경건서적의 아버지 스승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한다.(13:7)
그들로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각 신자는 마디의 도움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서는,
또한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 몸을 자라게 하고 사랑 안에서 전체 건물을 세워가야 한다.
참된 신자는 누구나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된다.
그리고 그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져 간다.
성령이 신자 안에 함께 계시는 것은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에 대한 보증이다.
참된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인 것을 항상 기억하자.
그러나 참된 신자들은 많지 않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연합과 결합의 중요성을 항상 기억하면서 주님의 말씀대로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자.
19세기 영국의 아버지 스승, 존 라일은 말했다.
“참 교회 회원들은 작은 양떼 즉 세상의 아들들과 비교해 볼 때에 그 수가 매우 적은 무리이다.
여기에 하나둘, 저기에 두셋, 또 이 지역에 조금, 저 지역에 조금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 나라의 생명의 피이며, 그들이 속한 나라의 방패이자 방어물
그리고 버팀목의 지주가 된다”(‘오직 한 길’에서)
첫댓글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