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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의 유행가?
당신은 자유합니까? -여는 말-
CCM 그게 뭔데? -정의 기원 발전-
이것도 찬양이야? -미국의 CCM
난 이런 노래를 좋아합니다. -우리 나라의 CCM-
이렇게 합시다. -맺는말-
당신은 자유합니까? - 여는 말 -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대학부에 처음 와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함께 부르는 찬양 시간이었다고들 한다. 이미 찬양과 경배는 크리스챤에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고-두란노 목요 경배와 찬양 모임 이후 ‘찬양’,‘경배’라는 단어들의 개념이 정립되는 등 물밀듯이 번진 찬양 운동의 도움으로-, 많은 크리스챤들이 한 두 곡의 ‘좋아하는’ 찬양을 가지고 있다. 찬양의 음악적 형태도 다양해져서 4성부 구성의 찬송가만을 부르던 것에서 훨씬 편하고 보편적인 노래들도 보급되어 그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10년 전을 돌이켜 보면- 많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악마적인’ 악기로 배척되던 기타와 드럼, 각종 전자 악기들이 지금은 찬양의 반주로 큰 부담없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TV와 라디오를 통해 또는 학교 친구들과 노래 책들을 통해서 많은 또 ‘다른’ 노래들을 접한다. 많은 대학부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 대중가요와 민중 가요를 부르고, 또 상당수의 형제 자매들이 POP MUSIC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이 나쁜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노래들은 교회에서 반강제적으로-대학부 사람들 각각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찬양팀이 고른 곡들을 부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불려지는 찬양의 가사보다 우리의 실제 생활에 더 가깝게 느껴지고,따라서 그러한 노래들이 우리의 보다 따듯한 친구로 자리잡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크리스챤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피조된 인간으로서 분위기 잡히는 유행가 가락을 불러제끼고 나면 왠지 하나님께 미안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아름다운 POP MUSIC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던 기억은 없는가? 물론 이 문제에 자유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발전적인 대안을 내놓고자 한다. 최근에 많은 젊은이들에 의해 펼쳐지고 있는, ‘예수문화운동’의 일환인 「CCM 보급운동」이 그것이다.
CCM이라는 말 자체가 외국어이고 이를 직역하면 ‘크리스챤의 유행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겐 거부감부터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NEW AGE MUSIC이나 퇴폐적인 노래들로부터 크리스챤들을 보호해 줄 유일무이한 방패로서의 CCM을 인식한다면 비판을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세 번 동안 전해질 짧은 글이 음악에 자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에선 먼저 CCM이라는 말의 정의와 그 생성과 발전, 미국에서의 CCM문화와 한국의 CCM에 대하여 다룬 뒤, CCM의 필요성, CCM의 문제점과 비판,앞으로의 전망 및 ‘예수문화’의 실현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알아보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CCM? 그게 뭔데? - 정의,기원,발전 -
‘CCM’이란 말을 쓰면 모두들 “CCM? 그게 뭔데?” 하고 물어 보곤 한다. 이 글에서는 CCM의 뜻과 그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대학부에서 많이 부르는 찬양들, 기독교 서점에서 파는 찬양 TAPE의 노래들이 모두 넓은 의미의 CCM에 포함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크리스챤을 권면하는 곡들과 함께 크리스챤으로서 사는 삶을 노래하는 곡들이 모두 CCM으로 불리운다. 물론 주로 이야기될 부분은 전에 접하지 못하던 미국의 CCM이므로 우리의 문화에 쉽게 적용되지는 못한다. 이것을 소개하며 바라는 것은 단지 전에 GOSPEL이라는 생소한 음악 문화를 우리의 찬양 문화로 적용시켰듯이 한국의 크리스챤에게 알맞은 ‘우리의 CCM’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CCM의 역사는 찬양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구약 시대 다윗왕의 “Make a joyful noise unto the Lord!”라는 외침을 CCM의 시작이라고 본다. 다윗왕의 다양한 모습의 찬양은 자기를 기만하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고통,즐거움을 솔직한 말로 담아 냈다.
카톨릭의 승려들이 ACAPPELLA(원래 ‘교회의 음악’이란 뜻이다. 그런데, 처음 카톨릭에서는 악기 사용을 금지시 했으므로 승려들이 무반주로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지금은 남성무반주곡을 뜻하게 됐다.)를 부르던 것에서 서양 음악의 발전을 따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양한 음악들이 유수의 작곡가에 의해 나오게 됐다. 17,18세기의 많은 찬송가와 성가들은 랄프 카마이클(Ralph Carmichael)과 빌 게이더(Bill Gaither) 같은 현대 작곡가들에 의해 편곡되어 CCM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CCM이라고 부르는 음악의 시작은 남북전쟁 말기 흑인 교회의 성장으로 본다. 이 흑인 교회에서는 억눌린 그들의 감정과 한을 ‘흑인영가’라는 뚜렷한 형태의 음악이 생겨났다. 토마스 A.도르시(Thomas A.Dorsey)목사는 이 음악을 ‘GOSPEL SONG'이라고 불렀다.-이것이 가스펠 송의 원래 정의이다.- 이러한 GOSPEL SONG은 1950년대에는 독자적인 음반회사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를 지나면서 GOSPEL SONG에서 ‘소울’이 파생됐다. 샘 쿸(Sam Cooke),레이 찰스(Ray Charles) 등의 가스펠 싱어들이 GOSPEL SONG의 강렬한 가락에 세속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아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이런 흑인 가스펠에 상대해서 백인들은 주로 4성부의 곡을 부르는 4중창팀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들의 음악을 ‘SOUTHERN GOSPEL’이라고 부른다. 80년대 초까지 우리 나라에는 위의 두 가지 형태(다양한 형태로부터 번역된 곡들이지만 부르는 형태에서만은 이러한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만이 존재했고 이를 통틀어 ‘복음성가’라고 불렀다.
1950년대에 매주 블랙 가스펠 교회에 가서 들은 음악을 발전시켜 멤피스의 시골뜨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록큰롤을 만들게 된다. 록큰롤은 문화 전반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음악은 클래식 찬송을 주로하던 백인 교회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른바 ‘새로운’음악들은 60년대 <GOOD NEWS>라는 청소년 뮤지컬과 그 뒤를 이어 계속적으로 나온 초교파 뮤지컬 등이 나오기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뮤지컬에서는 랄프 카마이클과 커트 카이저(Kurt Kaiser)가 작곡한 곡들이 많이 쓰여졌는데 지금 들으면 단순하고 고전적으로 불릴 그들의 곡들이 당시에는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969년 래리 노먼(Larry Norman)이 캐피틀 레코드에서 <UPON THIS ROCK>을 내면서 현대적인 CCM이 등장하게 됐다. 그는 성가대나 중창단이 아니라도 성경 말씀을 표현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래리 노만의 성공에 힘입어 다른 아티스트들도 각자의 음악 형태로 찬양을 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담아 내기 시작했다. 마일런 르페브르(Mylon LeFevre)와 죤 피셔(John Fischer)등의 유명한 아티스트가 69년 자신들의 첫 음반을 내놓았다.
70년대 이른바 ‘예수 운동’이 미국 전역을 휩쓸 때, 60년대의 反文化로부터 도피하려던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자 자신들이 아는 유일한 음악 형태인 록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코스타 메사의 갈보리 교회는 이들을 지원하여 러브송(LOVE SONG),칠드런 오브 더 데이(CHILDREN OF THE DAY),웨이(THE WAY)등의 록 그룹이 탄생했다. 이와 함께 마라나타(MARANATHA)와 같은 독특한 그룹도 등장하여 또 다른 ‘새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72년 워드(WORD)레코드에서 머(MYRRH)레이블을 세워 CCM제작을 시작하고, 머레이블의 빌리 레이 헌(Billy Ray Hurn)이 1976년 스패로우(Sparrow)레코드사를 설립해 독립한 이후 미국 도처에서 CCM 레코드사와 그룹들이 생겨나면서 지금과 같은 CCM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CCM의 선구자 크리스 크리스챤(Chris Christian)은 이렇게 말한다.
“CCM이 이렇게 자라왔다면 그 장래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나 다윗 시대의 수금이 오늘날 다시 크리스챤 음악에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아마 다윗도 이 사실을 좋아할 것이다.”
이것도 찬양이야? -미국의 CCM
CCM」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면 ‘가스펠 송’이 시작되었고, ‘찬양과 경배’를 개척했으며, CCM이란 말을 탄생시킨 미국의 CCM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뜬 구름 잡듯 던져진 CCM이라는 음악의 분류를 살펴보며 미국의 CCM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CCM이란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라고 하면 나는 ‘찬양’이라고 옮기고 싶다. 이 ‘찬양’의 갈래를 나누어 보면-‘나눈다’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형태인 ꡔ찬양과 경배ꡕ가 있다. 이것은 대부분 개인적인 신앙 고백과 관련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기쁨의 표현과 그를 경외하고 낮아짐등을 나타낸다.(더 자세한 설명은 뜨인돌 무크지 ‘새하늘의 찬양 새땅의 노래’ 中 <가슴앓이>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두 번 째는 성도를 향한 노래로, 서로 권고하며 아픔을 달래고 주님 안에 평안을 누리도록 인도하는 곡 들이 있다. 이러한 곡들 중에서 컨템퍼러리한 음악들은 사회적인 문제나 도덕적인 문제등도 다룬다.
세 번 째는 단순히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건전한 즐거움을 주고 우리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음악이 있다. 이러한 노래의 가사에서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직접 나타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노래는 ‘성도의 노래’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노래가 ‘찬양’으로 분류되어질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할 수 있다. 그들은 “이런 노래가 찬양일 수 있는가?”라고 강력하게 반박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래리 D.켈리」목사의 ‘CHRISTIANS IN "SECULAR"MUSIC : Is Nothing Sacred Anymore?’를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찌됐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위의 세 가지 찬양이 모두 시편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시편은 위의 세가지 모양을 담고 있으면서도 각각이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최고의 ‘찬양’임이 분명하다.
이제 CCM의 형식적 분류를 살펴보면 먼저 가장 오래된 ꡔ가스펠 송ꡕ이 있다. 이 형태는 현대에 와서 POP과 INSPIRATIONAL SONG등에 융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사실상 이 구분의 유일한 방법은 “흑인이 부르는 흑인 풍의 노래”라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알 그린,「TAKE 6」등이 이 부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ꡔ가스펠ꡕ과 경쟁하던 ꡔSOUTHERN GOSPELꡕ이 있는데 이 ꡔSOUTHERN GOSPELꡕ은 지금 쇠퇴 일로에 있다. HOLY CITY와 같이 아직도 호응을 받는 그룹도 있지만 이미 그 기반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역시 ꡔPOPꡕ 부분이다. 70년대를 이끌던 랄프 카마이클,키쓰 그린 등의 노력에 힘입어 80년대 절정을 달린 POP분야는 마이클 카드,리치 뮬린스,트와일라 파리스,마이클 W.스미스의 이른바 ‘4인방’을 통해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이 외에도 스티븐 커티스 채프맨,NEW SONG,FIRST CALL,애미 그랜트,웨인 왓슨,찰리 피콬,브라이언 던컨,스티브 캠프,마이클 잉글리쉬,스캇 웨슬리 브라운 등이 아름다운 음악들을 선보였다.
한 편 POP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ꡔINSPIRATIONAL SONGꡕ이 있는데, 이 부문에 독보적인 샌디 패티와 함께 스티브 그린,카맨,애니 허링,에비,브루스 캐롤 등의 음악이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ꡔROCKꡕ과 ꡔMETALꡕ 음악이다. PETRA,WHITE HEART,WHITE CROSS,NEWS BOYS,DA 등의 ROCK그룹과 맄 엘리아스,맄 쿠아,켄 템플린 등의 ROCK 가수들이 활기차게 뛰고 있다. 이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PETRA인데 이들은 그들의 앨범 <BEYOND BELIEF>와 같은 제목의 뮤직 비디오를 통하여 방송을 통해 수많은 청소년들이 회심하고 하나님께로 나아 오게 해 베드로의 설교와 같은 기적을 재현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의 앨범 <ON FIRE>,<PETRA PRAISE>,<UNSEEN POWER>등에서는 수동적인 크리스챤들을 비판하면서 믿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찬양이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자랑스럽게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실제로 행동하지 않을 찬양은 부르지 말라고 선언한다.
마지막으로 살필 것은 ꡔPRAISE & WORSHIPꡕ부문이다. 대중집회 형식의 INTEGRITY'S HOSANNA와 연주 형식의 MARANATHA SINGERS 등이 이러한 음악 분야2를 개척해 놓았는데 이들의 음악적 형태는 한국 교회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METAL,ACAPPELLA,ALTANATIVE,MUSICAL등의 분야는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이제 이런 다양한 음악 형식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명 ‘찬양’을 아무 그릇에나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래된 노래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부르면 그것이 새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다.”-물론 맞는 말이지만-라는 핑계로 현재의 음악적 틀 속에 안주하려는 사람들만큼이라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결코 “클래식 음악은 좋은 것이고, 전자 음악은 나쁜 것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아무도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전제하지만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고정관념은 무시할 수 없다.) 적어도 다음의 크리스 크리스챤의 말은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4중창 가스펠에서 메탈까지 크리스챤 음악인은 각 종류의 음악으로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스타일이 기독교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듯이 스타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음악 스타일이 어떻든 그 쓰임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판단하는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모든 크리스챤 아티스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난 이런 노래를 좋아합니다.
-우리 나라의 CCM
지금까지 생소하고 어색한 얘기가 계속되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찬양에 관심이 있다면 귀에 익었을 법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 나라에도 CCM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분명 대답은 “그렇다.”이다. 물론 우리의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와 다른 만큼 CCM의 모습도 다른 것은 사실이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CCM의 모습을 살펴보자.
우리 나라에서 정확한 CCM의 기원을 찾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흑인 영가가 일제 시대부터 전해지고 있었고,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 흑인 가스펠은 한국적인 창법과 편곡에 의해 “복음 성가”라는 새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 70년대 대중가요 가수들이 이 부문을 맡았고, 일부 변질된 형태로나마 가요 순위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대학가에서 기독교 운동에 의해 <오 자유>, <가라 모세>등이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의 입에서도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 후 SING-ALONG이라는 역시 변질된 형태의 찬양이 전파되었고, 일부 복음성가는 “유행”의 대열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곡들을 반복하여 당시 시대를 이끌던 통기타 반주에 부르곤 하였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난 이 찬양이 좋아!”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 중에도 진정한 찬양은 있었겠지만 “왜곡된” 모습임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 찬양이 70년대 말,80년대 초의 혼란과 더불어 거듭나게 된다. 많은 인식 변화가 있었고, 우리의 찬양과 ‘선교’의 노래들이 조금씩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70년대와 80년대를 넘으면서 불리웠던 <실로암>,<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흔들어 봐요> 등의 노래에선 감추어진 감정들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80년대 찬양은 거듭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계속한다. 이 노력에는 몇몇 ‘깨인’, 그리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의 헌신과 기성세대의 상상을 뛰어넘는 극동 방송의 “전국복음성가경연대회”개최 등이 있었다. 80년대 초 ‘찬송가’에 대한 맹신과 ‘복음성가’의 거부가 주류였던 한국 교회에 “전국복음성가경연대회”의 출현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특히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성가경연대회 등에 활력을 주었으며 각개 전투를 하던 찬양 가수들의 성장 발판이된 이 대회는 초기 한국CCM의 산파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81년 첫 대회 금상 수상팀인 <주찬양 선교단>은 1986년 첫 앨범 ꡔ그 이름ꡕ을 내놓아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다. 좁은 의미의 한국CCM의 시작이었다. 혁신적인 구성과 악보 보급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술렁이게 한 그들은 <다윗과 요나단>,<예수전도단>등과 함께 새 바람을 일으켰고,87년 2월 ꡔ알렐루야ꡕ와 ꡔ오! 기쁘도다ꡕ를 내놓아 기존 ‘복음성가’에 결정타를 날린다. 뒤이어 역시 복음성가 경연 대회 출신의 박종호,최인혁,손영진,조호선,조호영,유지연,노래하는 어부 둘 등이 앨범을 내놓으면서 갑작스런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음악적 형태에서 별반 성장을 이루지 못하던 우리의 CCM은 박종호의 첫 독집앨범 ꡔ살아계신 하나님ꡕ으로 질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이 후, 역시 복음성가경연대회 출신의 옹기장이,송정미,김지현.김기석,새롬싱어즈(새롬중창단),이성균(피터 폴 앤 마리) 등이 각각의 모습대로 발전적인 찬양들을 부르게 되었다.
또, 임마누엘(폐회송-‘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는 그들의 2집 앨범 수록곡)과 에클레시아,코이노니아 등 중창단들도 신선한 모습을 갖추었고, 강민 프로덕션은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 ꡔ가스펠 콘서트ꡕ시리즈를 내놓아 새 찬양 발굴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한 편, 80년대 후반 미국의 INTEGRITY'S HOSANNA와 깊은 관계를 갖는 “두란노 목요 찬양 모임”이 생기면서 각 교회에 「경배와 찬양」의 선풍을 일으킨다. 이 후 찬양 사역자들의 모임을 주관하여 각 ARTIST의 신앙적인 면 등 내용성 부분에도 충실을 기하게 하고,“경배와 찬양 학교”를 열기도 하며, 집회 실황을 ꡔ전하세 예수ꡕ시리즈로 내놓아 CCM계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CCM은 그 음악성 면에서 대중 음악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많은 좋은 찬양들을 선보였다. 채한성,ICM,HIS,드림선교단 등이 우수한 앨범들을 내놓고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이상 간략하게 살펴본 우리의 CCM은 아직은 어색한 면을 많이 갖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CONTEMPORARY라는 말이 붙어야 하는지, 과연 이런 노래에 CCM이란 말이 붙어도 되는 것인지 불확실한 것이 많다. 실제적으로 우리의 찬양에 CONTEMPORARY라는 말은 ‘옥에 티’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CCM에 대한 바른 이해와 벽을 쌓지 않는 찬양 사역자들의 헌신이 기대되는 것이다. 아무 것이나 찬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드릴 것을 드릴 수 있는 찬양이 되는 것이 CCM이 목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갖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다음의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잘못 된 점 고쳐야 할 점 등을 참 잘 찾아낸다. 그러나 정작 문제를 발견한 그 사람은 그것을 고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크리스챤의 유행가?
이렇게 합시다. -맺는말
지금까지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CCM이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찬양을 대체하자는 것도 아니고, 전부 CCM음악계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로 우리의 찬양과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찬양을 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CCM은 필수적인 것이다.”라는 것이다.
글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세상의 음악에 자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CCM이 해 줄 수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제 제시하고자 하는 또다른 CCM의 역할은 ‘선교’에의 적용이다. 단순히 세상 음악과 타협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따져 볼 때, 이른바 ‘기존의 찬양’은 불신자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음을 시인하고 그들의 마음에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을 CCM에서 찾자는 것이다. 3부에서 언급된 PETRA의 성공 사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데, 이들의 음악이 복음을 변질시킨 것이라고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예를 브루스 올슨의 ‘밀림 속의 십자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토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로 들리워 주어야 만했던 복음은 마치 어쩌면 세속적인 음악 형식에 담겨 전해져야하는 복음과 비슷한 ‘토착화’의 길을 걷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런 이유만으로 CCM을 모두에게 권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분명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주님을 찬양하는 데에 어떤 악기와 어떤 화음,편곡을 쓸까가 정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쌓여진 ‘찬양의 한계’를 극복하고 참된 찬양을 찾아 가는 길의 한 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남의 찬양’을 불러왔다. 자신의 진실된 모습이 배제된 대중 속에 문힌 개인으로 찬양에 임해 왔다.-이것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부 집회에서 알맞는 찬양 형태가 있듯-지금의 형태가 알맞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도 알맞는 형태가 각자에게 주어져 있다.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장 미국의 CCM을 사서 들어보라는 이야기인가? 물론 그것도 방법은 될 수 있겠지만 권하고 싶지않은 방법이다. 영어로 된 찬양으로는 우리의 진실을 노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번역된 찬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사와 가락이 유기적인 찬양이 번역되면서 파괴되어 ‘완전한 찬양’이 되지못함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특정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에게 솔직할 수 있는 그런 찬양 말이다. 「CONTEMPORARY」에 깨어 있는 사람이 바로 지금 필요한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아무 그릇에나 우리의 찬양이 담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예로 CCM METAL의 곡을 보면 직접적인 찬양의 노래에 DISTORTION 페달을 밟지 않는 노력들이 보인다. 음악적 완성도에 필요하더라도 조화로운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에게 주어진 찬양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를 기억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기쁨 없는 찬양은 무의미한 몸짓임을 기억한다. 다윗왕이 오죽 난리를 치며 좋아 날뛰었으면 미갈이 흉을 보았겠는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그런 기뻐하는 모습을 ‘불경건’이라는 올무에 걸어 넘어뜨리지는 않았는지...
몇 년 전부터 몇 교회에서 일어난 CCM감상회 등은 좋은 기대를 갖게 해 준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성을 동반하고 있기에 조심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자극’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ROCK ARTIST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넘어지기 쉬운 최 전선에 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전통적인’ 찬양이라는 이유로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여지는 기존의 노래들이다. 기도가 없이는 개인적인 찬양은 물론 어떤 형태로 출반되는 찬양도 온전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일을 했으면 한다. 먼저 CONTEMPORARY한 음악의 특성상 많이 구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크리스챤 음악 전문 레코드사들과 찬양 가수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좋은 찬양’을 사서 듣도록 해야 한다. 꼭 필요한 경우 외국(특히 미국)의 CCM을 들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잘 아는 사람에게 상의하고 구입하도록 해야 한다. 음반을 껍데기와 들리는 소문만으로 구입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이제 간단하게 살펴본 CCM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픈 것은 CCM을 통하여 ‘세상의’ 노래들을 버리는 것이다. 삶의 모든 구석에 특히 우리의 입술에서 하나님을 떠나 보내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이 주께 열납되기를...
첫댓글 CCM에 대해서 잘 배웠습니다. 저의 세대는 간증 유행가가 좋았고 지금도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