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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주일설교
제목: 영원한 영광
본문: 딤후 2: 10-13
1. 구원은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아야 한다.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딤후2:1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이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있다.
하나님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 예수가 중심이 아닌 자들에겐 구원이 없다.
“하나님이 보우하사”를 아무리 불러도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도 다 이에 해당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내가 진리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영이 진리의 영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셔야 진리를 알고 진리를 살 수 있다.
그 진리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고, 인생이 가야 할 길이고, 그 진리는 생명이다.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고는 진리를 살 수 없다.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구원이 있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처리하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희생하셨기 때문이다.
아들이 희생제물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율법의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그분이 우리의 죄의 형벌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대속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고 원리이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생명의 피로써만 죄의 삯인 사망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구원은 죄 사함과 화목으로 끝이 아니고 전부가 아니다.
영원한 영광을 함께 받는 것이 끝이고 구원의 최종 목적이다.
영광은 영화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우리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영광이나 영화는 일시적인 것이요 썩을 것이요 없어질 것들이다.
그러니 이 땅에서 살면서 그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그런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영광이 예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구원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만 받는다.
바울은 택함 받은 자들 위하여 모든 것을 참는다고 하였다.
이들에게만 영원한 영광이 주어진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이 구원의 특권과 영광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의무를 다할 줄 알아야 한다.
특권과 영광을 잘 모르니까 의무 또한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결과 우리는 신분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고, 그리스도가 머리인 교회의 지체가 되어 연합되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주님 오시면,
우리의 몸은 주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고, 영광스러운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과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은 원대한 계획과 섭리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인도해가고 계신다.
세상의 눈과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도무지 판단하여 알 수가 없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받은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그리스도와 함께 받게 될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특권과 영광을 알고 새기고 오늘 여기서 주어진 현실을 잘 살아야 한다.
세상 눈으로 세상 가치관으로 세상 지혜로 현실을 보아서는 낙심과 불안과 포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말씀을 잊지 말라.
2. 참으면 함께 왕 노릇한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12)
바울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참는다고 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그의 유언과 같은 이 디모데후서 편지를 쓰고 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9절)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문제를 성경을 통하여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하면,
처음 구원 받은 그 이상의 성숙이나 성화도 기대할 수 없다.
고난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 우리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고 소망하기에 참고 견딜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2-4)
하나님의 영광, 우리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야고보 사도는 시련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다.
그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온전히 이루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고난을 인내해야 하는가? 연단을 이루기 때문이다.
연단은 금강석을 용광로에 넣어 끓여서 순금을 뽑아내는 과정을 말한다.(욥23:10)
그것이 우리 속에 있는 옛 사람의 성품을 뽑아내고 새 사람의 성품을 입게 하고
우리 주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기업을 약속하시고
광야에서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연단의 훈련을 하시는 것을 보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서는 광야의 훈련과 연단을 받는 것이다.
그래야 가나안에 이를 수 있고,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약속을 자기 기업으로 받을려면,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아야 한다.(히6:12)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그리스도와 함께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함이고 그 영광은 고난에 비할 수 없다고 하신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고 시편73편은 고백한다.(24절)
주신 고난을 참으면 주와 함께 왕 노릇할 날이 온다.
이 땅에서 그 영광의 작은 부분을 맛보고 가는 사람도 있고, 순교로 더 큰 영광에 이른 사람도 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11-12절)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미쁘신 말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다.
우리는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살아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분이다.
광야의 고난과 연단을 잘 참고 견디면 주와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과 연단을 견디지 못하고 주를 부인하면, 주도 부인하시리라는 것도 신실한 약속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주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21)
고난이 견디고 힘들 때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하고 위로를 받고 평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고난은 칭찬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데 오는 고난은 받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고난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를 위해서 부름받았다고 하신다.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심같이 그 본을 따라 그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이 올 때마다 원망하고 불평하였다.
기적을 행하시고 축복해주시면 입이 벌어져서 찬양을 하고 감사를 하다가
연단의 고난을 주시면 모세와 하나님을 싸잡아 대적하였고, 심지어는 가나안 다 가서
철옹성과 거인족들이 있다는 정탐보고를 받고는 밤새 울고 애굽으로 돌아갈려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미쁘신 분인 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한다고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3. 주는 항상 미쁘시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리라”(13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주셨지만 미쁨이 없다.
우리는 믿음직하지 못하고 신실하지 못하다.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서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야 조금 미쁨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살아야 한다.
은혜와 믿음의 선물, 성령의 내재와 능력의 공급이 없으면,
우리는 옛 사람의 행태를 분출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매일 말씀과 기도로 경건 생활에 힘쓰면서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한다.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이고 원수일 때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갈6:14)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우리 생각과 생활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세상과 우상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지배하게 된다.
하나님은 항상 미쁘시기 때문에, 곧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미쁘신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전적인 의탁이 없이는 영원한 영광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에 미쁘신 자기를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은 미쁘지 않기 때문에 수시로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고 변덕이 심하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5-7)
미쁘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서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와 연합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지금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우리는 영원한 영광을 향해 가고 있음음 신뢰해야 한다.
어리석은 내 명철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적 인도를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들의 생애를 보면서 내 생애를 조명하고 소망을 가지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였다.
그가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비천에도 처할 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생활에서 배워가야 한다.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할 줄 알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없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갈 수 없다.
미쁘신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없이는 이 비결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모세는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쳤지만 끝까지 상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고난과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보았다고 성경을 말한다.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고 하였다.
미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긴 고난, 험악한 고난을, 능히 이겨내게 하였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지만 주는 항상 미쁘심을 확신하고 있다.
욥에게서도 우리는 미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배워야 한다.
하루 아침에 열 아들과 그 많은 재산을 잃고서도 하는 말이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믿음 생활을 통해 이 욥의 믿음을 본받고 성숙하기를 원하신다.
모세와 욥의 고난과 연단과 축복을 기억하고 믿음과 인내로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받는 축복은 우리가 후에 받을 영원한 영광의 맛배기일 뿐이다.
여호와의 미쁘심과 성실하심을 조금 맛보아 아는 것일 뿐이다.
첫댓글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