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요(夫天地者, 萬物之逆旅)
시간은 긴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라(光陰者, 百代之過客)
부평초 같은 인생 꿈 같은데 즐긴다 한들 얼마나 되리(而浮生若夢, 爲歡幾何)
옛사람이 촛불 켜고 밤에 노닌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음이로다(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
하물며 따뜻한 봄날이 아련한 경치로 나를 부르고(況陽春, 召我以煙景)
천지가 나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빌려주었음이랴(大塊假我以文章)
복숭아꽃 오얏꽃 핀 향기로운 뜰에 모여(會桃李之芳園)
천륜의 즐거운 일을 펴니(序天倫之樂事)
여러 아우들의 글 솜씨가 빼어나 모두 사련이거늘(群季俊秀, 皆爲惠連)
내가 읊은 시만이 강락에게 부끄러워서 되겠는가(吾人詠歌, 獨康樂)
그윽한 감상이 아직 끝나지 않고 격조 있는 담론이 점점 맑아지네(幽賞未已, 高談轉淸)
화려한 잔치를 벌여 꽃 사이에 앉고 새 모양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 아래 취하니(開瓊筵以坐花, 飛羽觴而醉月)
아름다운 글이 없으면 어찌 고아한 심정을 드러낼 수 있으랴(不有佳作, 何伸雅懷)
만약 시를 짓지 못하면 금곡의 벌주 수에 따르리라(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
첫댓글 인화극락(人和極樂)의 세상이 눈앞에 선합니다.
" 지난 100여 년의 증산신앙의 역사는 후천선경을 기대하며 자신의 삶의 일정부분을 희생해 그간의 희생을 결과적으로 보상받겠다는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과정적 완성도보다는 때가 오면 나에게 돌아올 결과적 보상에 촛점이 맞춰진 신앙이었습니다." - 깊이 공감합니다. 이제는 증산신앙의 관점을 과정적 완성도에 촛점을 맞춰야 합니다. 후천은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뜻맞는 도반과 영혼 깊숙한 교류를 통해 상생의 기운을 주변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속에서 점차 현실화되어나간다는 것이 태을도의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