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바르게 알려면 현재 결과에 대한 과정.. 특히 원인을 바르게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
어디서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처음으로 주장했는가?..
두말할 필요없이 禪을 가르치는 선종에서 나온다.
왜 그들은 그것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때 뿐 아니라 지금도 북방에서 대중불교의 주류는 대승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종이지 선종이 아니다.
그러니 간단히 말하면 선종이 불교의 으뜸[宗]이지 교종이 아님을 선점하기 위해 나온 일종의 배너라 할 수 있다.
저와 같은 선전은 선종을 대중화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틀림없겠으나.. 그 속에 불교를 해하는 독소를 품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게 그들의 독존(獨存)이다. 선 수행 깊이는 교학과 달라 증명이 어렵다.
그러니 선을 했다는 자들은 자긍이 아닌 자만에 빠져 독선적으로 언행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선을 좀 했다는 자들의 글을 보면.. 지가 부처님이요, 지가 법이요, 지가 승가다.
댁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합니까? 하고 물으면.. 내가 해봤거든!
지가 경험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이해로 넘어갈 수 있을 지언정.. 세간에서 보면 빈깡통이 요란하듯.. 눈쌀을 찌푸리게 할 뿐이다.
선종이 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이유가 된다.
선을 닦는 이들끼리는 존중하는 것 같은데.. 교학을 공부한다거나 남방불교를 공부했다고 하면.. 무시 또는 비방으로 대한다. 하여 불교 토론장에 들어오면 토론 주제는 팽개치고.. 상대를 능멸하는 언사로 도배한다.
하여 애초 화합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것은 독선이 몸에 배어서 나오는 행동[독존]일 뿐이다.
선종이란 선을 닦는 수행자에게는 가장 수승한 길이 틀림없으나..
일반 대중이나 불자들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수행법이기에
소수만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실천하는 수행법이다.
그럼 실천이 어렵다고 선종을 놓아버려야 할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선종의 길보다 더 빨리 깨침[覺]을 성취할 수 있는 수승한 방법이 없을 지경인데..
그러기에..
선 수행은 소수를 위한 수행법이 틀림없지만.. 그 길은 어렵고 험하기에 선 수행자들은 모든 불자에게 존경과 외호를 받으면서,
선종은 지키고 발전 계승해야만 하는 우리 선배님들이 발견한 우리 전통이요, 정통 수행법이다.
단지 소수를 위한 정법은 그대로 대중화 할 수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여 보더 더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선종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선지식들이 있다.
누가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가르쳤는가?
당시 주류 불교인 교종을 비판하고, 교종 대신 주류에 오르기 위한 선 수행자들이 만든 선전 4구게가 아닐 수 없다.
불교란 무엇인가?..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하다 관하라.
이렇게 관하는 게 바른 관[正觀]이다.
當觀色無常。
如是觀者,則為正觀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 감각)·상(想, 표상)·행(行, 의지)·식(識, 인식판단)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이라 하느니라. <잡. 1-1. 무상경>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