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방학이 끝났지만 안양교도소는 여전히 추웠다. 교화행사 때 재소자들과 나눠먹을 떡과 과일 비스킷, 커피를 차에서 내려 달라고 부탁을 드리니, 무궁화 한 개를 달고 있는 교도관이 나와서 짐을 내려 준다. 짐을 내려놓고 교화행사를 하러 왔음을 보고하고 교정위원실로 들어갔다. 아직 다른 일행은 도착하지 않았다. 온풍기를 틀어 놓고 잠시 기다렸다. 천주교 교화행사 팀이 들어오시더니 바로 나가신다. 잠시 후 목사님들이 들어오신다. 박목사님과 고목사님이 들어오신다. 지전도사가 시각장애인인 고목사님을 부축해 들어오신다. 이목사님께서 색소폰을 어깨에 메고 들어오시고, 강목사님도 뒤 따라 들어오신다. 백집사님만 도착하면 모두 도착이다. 두 달 만에 만나는 사이라 반가운 인사가 오간다. 서로 기도 부탁도 하면서 잠시 담소를 나눈다. 백집사님이 찬양악보를 인쇄하여 들어오신다. 신분증을 걷어서 준비해 놓고 인솔해줄 교도관을 기다린다. 설교와 기도와 찬양 등, 각자의 순서를 정해 드린다. 항상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라 어떤 상황이 와도 그 임무를 충실하게 감당해 주신다. 감사하다. 교도관이 도착하여 신분증을 미리 가져가신다. 미리 신분을 조회하기 위함이다.
출입증을 교부 받고 작은 출입문을 통하여 들어간다. 참 이상하다. 어찌하여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온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금방 추위를 느낀다. 14년 전 처음 교화행사를 하려 들어 왔을 때 수많은 철문을 통과할 때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는데, 이제는 농담도 나누며 통과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춥다.
넓은 예배당 앞부분에 원탁을 놓고 그 주위로 의자에 앉아서 찬양을 부르고 있는 재소자 형제들이 눈에 들어온다. 몇 명의 형제들은 반가운 눈인사를 보낸다. 그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해 준다. 조금 친해졌다고 교도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내게 다가오던 형제가 교도관의 한마디에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달에 출소하는데 나를 찾아뵙겠다는 내용이었다. 성경필사를 하지 않은 형제들은 절대로 찾아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하니 그래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단다.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해 줬다. 반주하던 형제가 출소를 하고 나니 다른 형제가 키보드 반주를 하는데 많이 서툴다. 찬양을 인도하는 백집사님 반주에 맞춰 인도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그 형제도 조금 더 연습하면 콧노래 부르며 반주를 할 수 있으리라.
박목사님의 기도는 언제나 뜨겁다. 기도가 끝나자 시각장애가 있는 복음가수 고목사님이 지전도사 부축을 받아 앞으로 나가 찬양을 부르신다. 한 곡 한곡 부를 때마다 재소자 형제들은 박수를 치며 아멘을 연호한다. 이목사님의 색소폰 연주가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 준다. 매주 토요일이면 안양역에서 색소폰을 부르시며 전도하는 이목사님, 재소자 형제들에게 인기가 좋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 10:7]. 본문으로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시는 강목사님, 깊이가 있고 은혜가 넘치는 말씀이다. 축도까지 해 주시라 부탁을 드렸다.
축도를 마치고 백집사님께 나가서 간식을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그 순간 교도관이 비닐 봉투에 무엇을 가득 넣어 들고 오신다. 초콜릿이다. 보안과 검열에서 초콜릿은 안 된다고 했단다. 안 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초콜릿을 담고 있는 포장지 안쪽이 은박지였다. 은박지는 전선으로 이용할 수 있기에 안 되는 것이었다. 내일이 발렌타이데이라고 한 개씩 드리려고 일부러 구입해 왔는데 안 된단다. 순간 포장을 뜯어서 알맹이만 나눠 주자고 했다. 통과다. 푸짐한 간식에 추워도 행복한 모습이다. 재소자 형제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찬양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마이크를 잡고 어김없이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 성경필사를 권면한다. 교도소에서 성경 66권 필사를 마치고 나면, 법전처럼 멋지게 합본까지 해 드리고 영치금도 넣어 드린다고 했다. 지금까지 14년째 그렇게 해 오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가서라도 필사를 마치면 교정위원 자격으로 장소이동접견까지 해서 직접 받아 오고 영치금까지 넣어 줄 것이며, 필사를 하다가 출소를 하면 출소해서라도 모두 마치면 직접 찾아가 받아와서 합본을 해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성경 필사를 마친 재소자들이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를 직접 지켜봤기 때문에 더 간절하게 권면을 드린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몇 명의 형제들이 성경필사에 도전해 보겠다고 손을 든다. 감사했다. 그들이 변하면 다시는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그만큼 범죄는 줄어들 것이고, 그 결과는 우리들이 받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보다 더 간절한 것은 성경을 쓰면서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 거듭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감사한 것은 내가 전하는 메시지를 진정으로 받아들여 준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형제들이 성경필사에 도전하기를 기도한다.
출소자를 위한 기도를 박목사님께 부탁을 드렸다. 두 명의 형제들이 출소를 한단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지 재소자가 더 늘었다는데…. 그들을 다시는 교도소에서 만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교화행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성경필사 용지가 떨어졌다는 교도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백집사님을 돌아본다. 백집사님은 안 그래도 인쇄해 놓고 싣고 오지 못했다고 바로 보내드리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멋지고 근사하게 쓰임 받고 있는 백집사님께 박수를 보낸다. 근데… 주 5일 근무로 인해 월요일에 시간 빼기가 힘들겠다고 하신다. 기도하라는 주님의 메시지다. 교도소 건물을 벗어나니 추위가 가신다. 정말이지 왜 교도소 안은 더 추울까?
2012년 2월
자오쉼터에서 양미동(나눔)
첫댓글 마음을 닫고 살아서 그럴까요?
높은 담이 가로막고 있어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