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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주일설교
본문: 눅 21:34-36
제목: 그 날이 덫과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다시 오시는 날은 세상이 끝나는 날이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다 심판을 받는 날이다.
다시 오시기에 재림이라고 한다.
초림때는 우리 주님은 고난주로 오셨다.
그러나 재림 때는 만왕의 왕으로, 영광의 주로, 심판주로 오신다.
1.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동물은 몰래 쳐 놓은 덫에 걸리면 치명적이다.
덫이 무서운 것은 동물이 방심하는 사이에 걸려드는 함정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 날이 덫과 같이 임한다는 것이다.
언제 임할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의 다른 표현이 도둑과 같이 임한다는 것이다.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벧후3:9)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살전5:2)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계16:5)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승천하실 당시에 천사가 말하였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바울도 말하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다”(살전4:16-17)
주님이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하신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서는 영원히 영원히 주와 함께 항상 있게 될 것이다.
주님도 큰 나팔 소리와 함께 구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신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0-31)
인자는 주님이 자신을 즐겨 부르신 호칭이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때 땅의 모든 족속들은 놀람과 두려움으로 통곡한다고 하신다.
계시록은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이 다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그 진노를 감당치 못하여 바위와 산더러 우리 위에 떨어져 가려달라고 한다고 기록하였다.(6:15-16)
그러나 택하신 자들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신다고 하신다.
예수님 가신 지 2천년이 지나도 안 오시는데 언제 온다는 말이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드로의 대답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8-10)
주의 약속의 성취가 더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주께서 오래 참으사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천 년도 하루 같고 하루도 천 년 같을 뿐이다.
그러나 주의 재림 날이 도둑 같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 주님도 친히 말씀하셨다.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36-41)
우리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오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두 번째 말씀은 이렇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계22:20)
2. 스스로 조심하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34)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생활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술취하고 방탕한다는 것은 주의 날이 임한다는 의식과 기대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신다.(엡5:18)
세상에 취하고 일에 취하고 돈에 취하면 방탕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살면 방탕이 생활이 되고 만다.
바리새인의 특징은 바로 탐욕과 방탕이었다.
주님의 재림을 잊어먹고 살게 하는 또 다른 요소가 바로 생활의 염려이다.
우리는 살면서 온갖 생활의 염려로 하루 하루를 가득 채우곤 한다.
그렇게 하면서 마음은 둔해지고 소망을 잊어버린다.
참된 성도들은 항상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았다.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1-2)
주의 재림은 성경의 7 기본 골격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론, 신론, 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재림론(종말론)이 그것이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하고 믿음과 인내로 살아야 하지만,
주님이 언제 오셔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세상 모든 일은 그 날을 위한 준비일 때만이 의미를 갖는다.
우리 주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하셨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바울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말씀을 받아도 열매를 못맺게 하는 가시떨기가 바로 염려라고 하셨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13:23)
염려와 믿음은 맞지 않는 짝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염려가 많은 것은 믿음에 뭔가 허점이 많은 것이다.
염려가 많은 자들에게 예수님의 책망은 “믿음의 작은 자들아” 이셨다.
하지 말아야 할 염려는 쓸데 없이 마음만 산란하게 만드는 오만 가지 염려와 걱정을 말한다.
미리미리 꼭 대비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지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염려가 생길 때마다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주께 고하고 맡기고서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란다.
3.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36)
주님의 재림 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을 때에 임할 것이다.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는 예루살렘의 멸망 직전이나 그 후에 일어날 일들을 피하기 위함이고,
‘인자 앞에 서도록’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멸망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시1:5)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독립선언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 없이도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바울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딤전2:8)
스데반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성령을 거스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할례 받았다면,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써야 할 것이다.
왜 성령 안에서 기도하여야 하느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오직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을 주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영으로 기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쌍이다.
말씀 없는 기도는 다분히 육적인 기도로만 치우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항상 드리는 번제’처럼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자.
제단의 불이 늘 꺼지지 않게 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의 불도 꺼지지 않게 하자.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가지는 특권이면서 의무인 것을 기억하자.
기도하고서는 당장 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주님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를 들면서까지 그 원한을 속히 풀어주신다고 하셨다.
응답이 늦어지는 것은 원수들에게도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과부가 집요하고 끈질기게 간청하니까 불의한 재판장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낙심하지 않고 간청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안들어주겠느냐고 하셨다.
기도는 어디로 없어지거나 하지 않고 하늘에 그대로 쌓인다는 것을 믿으라.
고넬료의 기도과 구제는 쌓여서 상달되었다고 하셨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있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1-14)
거룩한 행실은 믿음과 말씀으로 행하는 깨끗한 삶이다.
주를 향하여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이 한다고 하였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도록 힘써야 한다.
성결한 마음과 삶만이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가져온다.
경건함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경건함을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수단이 말씀과 기도이다.
또한 주일예배를 꼭 하나님께 드리며 마음 속에 우상이 자리잡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경건은 유익이 많다고 하셨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항상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힘쓰는 것이 경건의 연단이다.
연단은 쇠를 불에 달구어 두드리는 것을 말한다.
성품의 연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성품을 제거하고 버리는 훈련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경건한 성품과 삶은 범사에 유익하다.
금생에서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내생에서도 축복과 영광의 약속이 있다.
세상에서도 경건한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도 어떠한 사람을 이 땅에서도 축복하시겠는가?
하나님의 사람 치고 고난으로 경건의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세상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경건으로 연단된 사람이다.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 도둑 같이 임할 것이다.
그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버지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이단들처럼 자기들이 그 날을 아는 것처럼 날뛰고 악을 행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날과 때를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언제 오시더라도 놀라지 않고 주님을 반가이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의 경건 생활과 경건의 연단에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