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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주일설교
본문: 요 4:34
제목: 나의 양식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1. 주님의 양식은 곧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주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 곧 양식을 사러 동네에 갔다가 왔을 때 하신 말씀이다.
찾는 양식이 이렇게 다르다.
우리 육체도 양식을 먹지 못하면 쇠약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양식을 먹지 못하면 쇠약해진다.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요 영혼의 호흡은 기도이다.
영혼은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니까 배고프고 쇠약해지고 다 죽어가는지를 모르기 십상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 어디 있는가?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보내신 이, 곧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10:5-9, 시40:6이하))
주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기 전 이미 시편 40편에 이 일이 기록되어 있다.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구약시대에 말씀대로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다.
짐승을 잡아 그 피로 드리는 번제와 속죄제 등 제사들은 주님이 오실 것을 예표한 것이었다.
황소와 염소의 피 즉 짐승의 피로는 죄를 없이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첫째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되었다.(히10:10)
단 한번으로 드리는 제사였지만, 그것은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영원한 제사’였다.
주님은 구약 제사로 없이하지 못하는 죄를 없애고 사람을 구원하려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이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구세주로 예수님은 오신 것이다.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잉태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인 것은 그분이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음 주일은 우리가 성탄절로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 뜻을 알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아버지의 뜻, 곧 죄에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그분의 몸을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대속제물로 그리고 화목제물로 드리기 위해 오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다 이루셨기에
주님은 숨을 거두기 직전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이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
주님은 주님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신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양식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양식이기도 하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보내신 뜻이 있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영혼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임을 알아야 하고, 그 특권과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4-6)
‘함께’ ‘함께’에 강조점이 있다. 연합이 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것이 구원이다.
함께 일으켜 부활하였다.
그리고 보좌 우편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우리의 위치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각 지체요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세우는 사명이 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16)
교회의 ‘머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시다.
‘마디’는 교회 안에 있는 참된 목자들, 지도자들도 되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아버지 스승들이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참교회의 지체로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한다.
지체들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마디를 통해 전체 몸에 연합될 사명이 있다.
지체들은 자기의 믿음의 분량대로 일해야 한다.
지체들이 분량대로 자기의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그 몸은 세워지고 자라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참교회이다.
바울은 자기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 온전히 이루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주님처럼 자기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2. 썩을 양식을 위해서만 일하지 말라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요6:27)
주님은 시험 받으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하셨다.
떡이 필요 없다거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떡을 벌기 위해 하는 일들을 다 무시하고 버리라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다른 말씀들과 균형 있게 해석해야 한다.
한 구절 한 말씀 가지고 교리를 만들고 율법을 만들어 사람을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다른 곳에서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 하셨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셨다.
썩을 양식을 위해서만 일하지 말라는 것이다.
떡만으로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돈과 권력이면 다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되고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결국 썩어질 것들이다.
땅의 것만 찾지 말고 위의 것을 구할 줄 알아야 한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4-5)
성경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이루며 살아야 영생을 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통 세상과 세상 일에만 매몰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도 새겨두고 삶의 목적을 점검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성령을 심는다는 것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온전히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3.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6:27)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마4:4)
그것이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다.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인자로 말씀하셨다.
이 인자는 하나님이 인치신 분이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17:5,변화산)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세례시)
하나님의 말씀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인 것을 믿고 말씀에 헌신하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말씀인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 사람도 성경을 사랑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모든 것을 더해 받는 하나님의 순서이고 방식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면 모든 것을 더해 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정말로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분의 의를 이루는 일에 둔다면,
모든 것을 더해 받는 경험을 하고 간증하는 입술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실을 맛보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우리 삶의 경험을 통하여 일상생활에서 맛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연단 중에서도 이 경험의 맛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맛을 전혀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에 움켜쥔 것과 야망만으로 살다가 사그라져가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순서를 바꾸고, ‘이 모든 것을’ 먼저 구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주시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게요 하는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육체를 위해서만 구하다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들을 거두고 만다.
이 세상에서, 출세를 위해. 성공을 위해, 달음박질을 잘 한다고,
야망의 탐욕을 부린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잠시 일시적으로 이룰 수는 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과 순서가 아니기에, 금새 멸망과 파멸에 이르고 만다.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믿지 않고 의롭게 살면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로움만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세상의 역사도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공안통치로 부와 권력을 쥔 것 같았던 정권이, 채 4년도 안되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내 왕국, 내 의만으로 세상을 쥘려고 하지만, 손아귀에서 물빠지듯이 빠지고 만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맞게 살아야 한다.
그분의 법도와 진리에 맞는 의로움을 기준과 원칙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이 신앙과 생활의 기준과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축복도 형통도,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고, 그의 의를 구하는 곳에, 있음을 꼭 믿으라.
먼저 구한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바쳐, 그것을 최우선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는 것, 세상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다.(롬14:17)
의로움과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천국이다.
의로움은 하나님의 법으로 말씀으로 진리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는 말씀을 통해 성령이 주시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 육신의 정욕만으로는 이러한 것을 맛볼 수 없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셨다.
그러나 생명(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다.
여러분은 어느 문, 어느 길로 가시려는가?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의 영생과 멸망이 갈리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그분을 닮고 그분의 의로 살기를 바란다.
세상과 벗됨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기억하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
첫댓글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