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조작
양해열
수퇘지는 새끼 때 불알을 떼버린다지. 그래야 고린내가 사라진다고. (나도 가끔 당신 몰래 토란 두 알의 안부를 주무르곤 해.) 아예 묵은 김치 맛과 녹차향이 나는 삼겹살을 잔뜩 매단 퓨전돼지를 사육하면 되겠네 뭐. 유전자 섞기 놀음으로 떼돈을 벌어봐? 밀과 옥수수에 선인장의 갈증해소법을 넣으면 사막에서도 잘 자랄거야. 딸기에 포도 줄기의 자유분방함을 섞으면 딸기도 치렁치렁 열릴 테고. 닭에 개를 버물리면 어떨까. 닭다리는 네 게, 개 껍질은 술안주, 애들이랑 눈치보거나 싸울 일 없어 좋겠네. 개보다는 게가 낫겠어. 어머머 이제 닭 다리는 여덟 개, 단체 급식용으로 딱! 이겠네. 고칼로리, 질 좋고 값싼 먹을거리가 남아도는 유토피아가 올 거야. 3초마다 한 명씩 굶어 죽는 지구판 코미디는 없어질 걸? 능구렁이만큼 큰 미꾸라지를 만들고 한 달 만에 다 자라는 연어도 길러 봐야지. 앞으로 회귀, 라는 명사는 철학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을 거야. 참, 딸기우유 초코릿우유를 직접 짤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젖소를 만나게 해준다고 어느 무지막지한 유전학자가 이빨을 깠다는군. 송아지가 단맛 나는 젖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미 소는 얼마나 어처구니 없어질까! 파란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었는데 웃기는 과거사가 되었다는군. 자줏빛 속에 팬지의 퍼런 웃음 한 방울 떨어뜨렸더니 살아도 못 살아, 시퍼렇게 울더래. 이번엔 하트무늬가 그려진 백합꽃도 나올거래. 에사키뿔노린재 등딱지에 붙은 노란색 심장이 낙인찍힌 꽃나발 말이야. 가슴 두근거리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대해도 좋아. 여기까진 예고편이야. 머지않아 이마에 뿔 달린 말, 앞다리로 싸우는 닭이 세상을 활개치고 날개 달린 사자견이 하늘을 지배할거래.
쉿! 베란다 화분에 열린 토마토가 드디어 빨간 쥐새끼를 임신했어. 육식을 싫어하는 둘째 아이에게 갈아 먹일 거야. (자기야, 남녀가 한 몸이라면 좋겠어. 주말마다 치르는 의무방어전에 너무 지쳤거든.) 유전자는 섞일수록 매콤하고 영리해지잖아. 웃기는 짬뽕처럼!
양해열 시집 / 『고수 』도서출판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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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열 : 2006년 계간 『애지』 시부분 신인상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