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공동체, 현실인가 신화인가
(Asian Community: Myth or Reality?)
박 광 주 (부산대학교 정치학)
1. 문제의 제기 - 왜 아시아인가
원래 '아시아'란 말은 유럽사람들이 우랄산맥 以東지역을 지리적으로 지칭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그렇다면 우랄산맥 이동지역은 이서지역 즉 유럽에 비해 어떤 뚜렷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사실상 그와 같은 공통점은 아시아인 자신들도 아직 제대로 지적해내기가 어렵다. 아시아라는 개념을 만들어 사용해온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아시아적 특성이란 '유럽적이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왔을 뿐이다. 유럽인들이 인식하는 아시아적 특성이란 따라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 즉 유럽인들의 관념속에 재구성된 아시아의 이메지(image)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최근세사에 있어서 그러한 아시아는 문화적 호기심의 대상을 넘어 제국주의적 침탈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이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무력으로 확인한 이후 유럽의 진출은 한층 강화되었다. 유럽의 제국주의적 진출은 아시아인들이 아시아의 공동 운명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유럽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띠었을뿐 자기 正體性에 대한 적극적 인식이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최근 유행되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이라는 개념 역시 유럽으로부터 왔다. 유럽이 전지구적 세력 확장을 추구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연안에 주목하게 됨으로써 이곳이 한 '지역'으로 성립되게 되었던 것이다. 유럽인들의 눈에 '對象化'됨으로써 비로소 구체적 개념이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유럽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오늘날까지 수동적으로 존재해왔던 아시아 또는 아시아 태평양이 갑자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지역으로 재인식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인가. 한국, 대만, 싱가폴, 홍콩등의 '신흥공업경제지역'(NIES)에 뒤이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지에서의 '新四小龍'의 등장은 동아시아를 가장 큰 성장 잠재력을 지닌 지역으로 주목받게 하였다. '현실사회주의'(real socialism)의 붕괴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경쟁을 경제적 경쟁이 대체하게 되는 세계화의 물결이 나타나게 되면서, 동아시아는 서구 선진국들이 가장 주목하는 市場이 되었다. 일찌기 아시아를 발견했던 서구가 20세기 말에 다시금 아시아를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전자가 서구의 문화적 우월성과 영토적 야심, 그리고 경제적 이윤 추구등에 의해 動機化된 것이었다면 후자는 경제적 동기에 전적으로 기초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세계적 중요성이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 의하여, 또한 그것이 서구에 의해서 인식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 이 두가지는 바로 오늘날의 아시아론이 갖는 한계를 말해준다. 최근 들어 급작스레 그 논의가 증폭되고 있는 아시아의 正體性이 여전히 경제적 관점에 의해 주로 논의되고 있다거나, 서구가 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언급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아시아인 자신들은 전혀 공통의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그러한 한계에서 생겨난 문제들이다.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은 "미국을 따라잡는 일본을 모델로 하여 일본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해 왔다." 마치 일본이 세계자본주의체제내에서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할 때 서구에 대한 兩價感情(ambivalence)을 지니고 강렬한 물질적 경제적 성장지향을 추구하였던 것처럼, 한국을 위시한 오늘날의 신흥공업국들은 일본에 대한 양가감정을 지닌채, "세계질서를 위계로 파악하여 그 수직적 질서를 불변 부동의 질서로서 전제하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그 질서 속에서 빨리 상승해 가는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경제성장에 총력을 기울이는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다. 그 행동양식이란, 대외적으로는 자기나라보다 후발이고 하위에 속하는 주변의 여러 나라와 민족을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민중과 약자를 무시하거나 지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흥공업국들의 그와 같은 속성은, 사카모토 요시카즈의 지적대로, 지구 규모의 평등화, 민주화의 모순을 오히려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동아시아 발전모델 또는 한국 모델이 '개발독재'를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한, 민주화를 위해 한국이나 대만의 민주화운동세력이 장기간에 걸쳐 치렀던 엄청난 희생은 무시되기 쉽다.
서구가 아시아를 단순한 지리적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으로 인식하기 시작함으로써 아시아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었다는 사실, 즉 아시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시아의 외부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충격이 서구로 부터 비서구로 밀려들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화의 담론은 본질적으로 서구적인 것으로서, 그와 같은 초국경적 활동을 통해 이익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자본, 기술, 정보를 가진 세력임을 감안한다면, 세계화를 거스를 힘을 전혀 갖지 못한 동아시아국가들은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서 경제제일주의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공동체의 형성에 대한 욕구가 아시아적 정체성의 내재적 성장결과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세계화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띠고 있다 보니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에 최우선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협조가 갈등적 경쟁보다는 더 낫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협조의 구체적 방안을 두고는 利害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가 실질적인 통상협의체로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는 점, 태평양공동체(the Pacific Community)냐 아시아공동체냐 -이는 구체적으로 APEC이냐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st Asia Economic Caucus:EAEC)냐의 선택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를 두고 나타나고 있는 異見,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ASEAN)의 주도에 의한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ia Europe Meeting: ASEM)의 탄생 등은 동아시아가 아직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내부적 합의를 갖지 못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아시아가 내적 필요성과 자각에 의해 스스로의 동질성과 가치를 추구하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딜릭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엉성하게 물리적인 지리적 용어가 지역의 모든 참여자들의 공존을 시사하는 양 오도하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아시아의 正體性이 아직도 유동적이고도 무정형적인 상태에 놓여 있긴 하나, 동북아국가들간, 동남아국가들간, 동북아와 동남아국가들간, 그리고 동아시아국가들과 태평양연안국가들 및 유럽국가들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아시아의 공동이익에 대한 인식이 점차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앙정부간 교류에 못지 않게 지방정부간, 그리고 비정부민간기구간의 교류 역시 다양한 문제영역에서 날로 증대됨으로써 그러한 경향성이 더욱 촉진되고 있다.
아시아 각국들간의 교류 즉 상호작용은 아시아적 가치관내지는 인식에 대한 자의식을 촉발시켜 공통의 정체성(identity)을 성장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즉 아시아공동체라는 제도의 구축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아시아국가들간의 "합의된 규범, 규칙 및 절차의 합의체"로서의 '레짐'(regime)을 형성하는 데있어서 그와 같은 상호작용은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교류의 반복적 증대는 아시아적 동질성에 대한 인식을 점차 분명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적 협력관계를 제도화 -금세기말 지역주의(regionalism)를 세계적 경향으로 확산시키는 데 촉매적 역할을 한 유럽연합(EU)의 경우에서 보듯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2. 아시아의 아시아화와 지역주의
최근 아시아 국가들 상호간의 증대된 유대와 협력은 아시아인들이 그들 자신의 문제 -정치, 안보, 경제등 여러 측면의- 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아시아의 아시아화'라고 불리울 수 있는 그와 같은 현상은 서구에 의한 아시아의 재발견이라는 의미에서의 '재아시아화'(reasianization)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후나바시가 아시아화라고 부르는 현상이 비록 재아시아화에 의해 촉발된 것은 분명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아시아의 자각은 이차대전이전까지의 저항적 인종주의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저항적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아시아민족주의가 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일방적 영향력 행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면, 아시아화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아시아의 자각은 서구와의 대등적 동반관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1961년에 창설된 동남아연합(the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 ASA)을 발전적으로 대체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 동남아지역에서의 평화와 안보를 진작시키고 경제, 사회, 문화발전 및 성장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폴, 그리고 태국등 5개국에 의해 1967년에 결성될 당시만 하더라도 아시아 지역주의는 域內外로부터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아시아에서의 지역주의가 본격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80년대말 호주와 미국의 주도에 의해 APEC이 결성되면서부터이다.
호주가 APEC결성에 주도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호주로부터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나가는 수출이 유럽으로 나가는 수출을 압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주가 ASEAN 국가들에게 수출하는 액수만하더라도 대미 또는 대유럽 수출액을 능가하는 실정이다. 후나바시가 적절히 지적하듯이 호주와 아시아와의 그와 같은경제관계는 호주의 의도적 지역정책탓이 아니라 아시아경제의 활력탓이다.
아시아경제의 활력은 이 지역내에서 다양한 차원에 걸친 국제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로간의 경제적 필요가 자연스럽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하위지역차원(low- subregional level)에서부터 하위지역차원(subregional level)과 지역차원(regional level), 그리고 초지역차원(supraregional level)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국제간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시아의 현실이다.
먼저 저하위지역협의체로는 '성장삼각지대'(growth triangle)가 있다.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의 조호르(Johor), 그리고 인도네시아 리아우섬의 바탐(Batam)을 연결하는 '시조리'(Sijori) 또는 동남아국가연합회원국들이 '남부성장삼각지대'(Southern Growth Triangle)라 부르는 것과 말레이시아 북서부해안지대의 4개 州와 남부 태국의 14개 省, 그리고 서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소재 2개 省을 연결하는 '북부성장삼각지대가 그것들이다.
시조리프로젝트는 1979년에 인도네시아의 연구기술부장관인 하비비에(B. J. Habibie)가 제안한 '풍선이론'에서부터 출발한다. 싱가포르라고 하는 풍선은 제한된 용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초과 용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안전판을 지녀야만 하고, 싱가포르에 인접한 리아우諸島가 그와 같은 안전판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가 안전판을 확보하는 대신 인접 지역의 '풍선'들도 경제적 팽창을 할 수 있다는 정합(positive sum)의 논리였다. 스스로의 성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자각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기까지 하비비에의 제안은 싱가포르내에서 그다지 진지한 고려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1990년 8월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가 리아우지역의 개발을 위한 양자간 협정을 체결하게 되자 인접한 조호르주정부도 중앙정부의 머뭇거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조호르와 싱가포르간의 경제적 연계를 모색하게 되었다.
시조리프로젝트는 싱가포르가 지닌 금융, 수송, 통신등의 하부구조와 전문관리기술에서의 이점과 조호르와 리아우의 값싼 토지와 노동력을 결합시킴으로써 서로가 이득을 보게 되었다. 싱가포르가 리아우 및 조호르와 각각 맺고 있는 경제적 연계에 비해 리아우와 조호르간의 경제적 연계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못함으로써 진정한 삼각관계로 성숙되지는 못했으나 시조리는 역내의 빈부지역이 상호 협력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조리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말레이시아 중앙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성장삼각지대를 추진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의 상업 및 항구도시 페낭(Penang)과 인도네시아의 관광산업지역 메단(Medan), 그리고 태국의 농업경제지역 푸켙(Phuket)을 잇는 북부성장삼각지대(Indonesia-Malaysia-Thailand Northern Triangle: IMT-GT)는 시조리프로젝트가 갖는 몇가지의 문제점, 즉 싱가포르와 조호르간의 관계가 야기하는 말레이시아 연방정부와 주정부간의 갈등, 조호르지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말레이시아내부의 지역간 소득 격차문제, 말레이시아 경제를 석권하고 있는 화교들이 시조리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라는 사실등을 해결하자는 데 근본 의도가 있다. 비록 싱가포르의 경제적 세확장이 인접국가들 특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바가 없진 않으나, 성장삼각지대 프로젝트가 아세안지역의 신흥공업국들에게 경제성장의 기회와 자극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될 수 없다.
이외에도 태국 북부지역과 중국의 윤난지방, 미얀마 북부지역, 그리고 라오스를 잇는 '황금의 사각지대'(Golden Quadrangle)는 문화적 언어적 유대를 전통적으로 지닌 지역으로서 최근 들어 국경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경제가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또한, 남부 필리핀의 민다나오, 인도네시아 술라외시섬의 마나도, 말레이시아 동부지역에 위치한 사바의 산다칸을 연결하는 방대한 동아시아성장지대(East Asia Growth Area)가 있다. 특히 이 구상은 이들 지역이 지리적으로 서로 넓게 흩어져있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민다나오를 주변의 경제성장 지역들과 연계시킬려고 하는 필리핀 정부에 의해 적극 지원되고 있다.
동북아지역에서도 저하위지역협의체 또는 협력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두만강개발계획, BESETO, 환황해경제권등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구체적인 두만강개발계획은 유엔개발계획(UNDP)의 후원하에 동북아 6개국이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그동안의 소강상태를 거쳐 최근에 와서 원래의 구상보다 축소된 형태로 활동이 재개되었다. BESETO는 北京과 서울 그리고 東京의 세 지방자치정부간의 협력 및 교류 활동이다. 1995년 2월에 세 지방정부의 수장들간에 협정이 체결된 이래 매년 고위 관련자들간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환황해경제권구상은 중국의 遼寧省과 山東省을 중심으로한 동해안지역과 한국의 서해안 개발지역, 그리고 일본의 九州 및 山口를 포함한 지역을 아우르는 경제협력체구상이다. 중국의 개혁 개방과 1992년의 한중국교수립이후 이들 역내국가들간의 경제교류가 더욱 용이하게 된 것이 이 구상의 전망을 밝게해주고 있다.
동북아의 저하위지역협의체는 동남아의 경우에 비해 활동이 더디거나 성과가 미미하다. 역내국가들간의 정치적, 안보적 경쟁내지는 적대관계가 그 주요 원인이다. 특히 동북아 지역협력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한국, 중국, 일본간의 긴밀하지 못한 유대는 주변국가들을 지역협력체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간의 대립, 중국과 일본의 패권경쟁, 일본의 경제적 군사적 지배가능성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경계 등이 한 중 일간의 긴밀한 협력을 어렵게 한다. 이들간의 경제협력은 당장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을뿐 장기적인 공동 목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협력을 제도화할 기구나 체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의 경제교류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이들 세나라간에 상호신뢰를 형성하는 문제이다.
중국과 대만, 그리고 홍콩-마카우를 중심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중화경제권(Chinese Economic Areas:CEA)은 공식적 협정이나 협의기구를 앞세운 제도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제관계의 실체이다. 중국이 주변국가들의 경제성장에 자극받아 1980년대에 들어와 급격한 개혁과 개방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해외 화교들의 투자가 급증하였고 중국 역시 대외투자를 추진함으로써 중화경제권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중국의 경제력이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성장을 계속할수록 그것이 역내에서 지니는 위상과 파급효과는 더욱 증대될 것이다. 중국경제의 급작스런 개방과 석유판매수입의 감소에 적응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통해 인도네시아가 외국자본의 투자조건을 자유화한다거나, 베트남이 중국의 선례를 쫓아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한 개방화를 시도함으로써 개별국가들간의 이념적, 정치적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하위지역주의의 수준에서는 동남아국가연합을 들 수 있다. 회원국가들간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동남아역내 국가들간의 경제적 협력과 안전보장 -캄보디아내전의 평화적 해결에 단일 목소리를 냄으로써 주도적 역할을 한 사례에서 보듯이-에서 성과를 보고 있을뿐만 아니라, 역외 국가들까지 포괄한 지역협력체제 -아세안확대외무장관회의(ASEAN Post-Ministerial Conference: ASEAN PMC)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에서 보듯이-를 형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유럽이나 중남미에 비해 지역주의적 의식이 희박하였던 아시아의 대내적 협력 필요성을 고취시켰다. 하위지역주의적 협의체임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아시아지역주의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全아시아지역차원에서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 협의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EAEC가 APEC내의 부분적 협의체로 기능을 하도록 1993년 7월의 아세안 외무장관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원래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st Asia Economic Group:EAEG)구성을 제의했던 마하티르의 이 타협안에 대한 불만과 한국과 일본의 소극적 태도, 그리고 미국과 호주등과 같은 역외국가들의 저항에 부딪혀 설립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EAEC -1990년에 마하티르가 리펑에게 제안할 당시에는 EAEG-는 EU와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의 등장으로 인한 경제블록화와 보호주의의 강화에 대한 아시아국가들의 일반적 두려움과, 그리고 중국을 동아시아차원의 경제협력체로 끌어들임으로써 동남아지역 화교들의 대중국투자 -이는 동남아국가들로부터 중국으로의 자본유출을 의미한다-속도를 완화시켜야할 동남아국가들의 필요성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한 방안으로서 제안되었다.
아세안 회원국들과 일본, 한국, 중국 - 대만과 홍콩도 처음에는 회원국으로 고려되었으나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는 제외되었다- 만을 회원국으로 하는 EAEC의 특징은 APEC의 역외 회원국들인 미국, 카나다, 호주 등이 회원국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EAEC가 유럽과 북미에서의 지역주의 강화에 대한 방어적 차원에서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회원국을 아시아 역내 국가들로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인 일본과 일본을 모방하면서도 이를 뛰어 넘을려는 한국, 이 두 주요 투자자들과 동남아로부터 투자자본 -특히 화교자본- 을 오히려 흡입하는 역투자자(disinvestor)로서의 중국을 아세안과 함께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음으로써 바깥의 지역주의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대외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이나 미국이 APEC이라는 초지역적 협의체를 이끄는 일방 북미지역의 지역적 협의체를 가동시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국가들은 역외국가들과의 협력체 -즉 APEC-를 구성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역내국가들끼리 협의체를 구성하는 데 까지 나아감으로써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초지역차원의 협의체로 들 수 있는 것에 APEC이 있다. 동남아국가들과 '세개의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국가들, 그리고 북미국가들과 중남미국가들 및 대양주국가들까지 포함된 APEC 은 이 지역의 증대하는 경제적 상호의존에 당면하여 노동, 자본, 상품의 교류에 대한 정보와 견해를 교환할 목적으로 12개국의 협의체로 1989년에 출범하였다. 그러나 회원가입, 투표권, 옵서버의 지위, 실무위원회의 구성등에 관한 규칙과 절차를 논의하는 데만 머물러 오다가 1993년 시애틀 정상회담을 계기로 94년 인도네시아의 보고르에서, 95년 일본의 오사카에서, 그리고 96년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매년 정상회담을 갖게 되었다. APEC이 이처럼이나마 활기를 띠게 된 것은 클린튼이 93년에 '신태평양공동체'(New Pacific Community)를 선언하고 대아시아정책을 강화하면서 부터이다.
APEC은 회원국들간의 다양성 때문에 일률적인 큰 틀을 짜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아세안회원국들은 APEC내의 선진국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그들의 이해관계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지않을까 처음부터 우려하였다. 각료급회의들의 의장직을 아세안회원국가들과 비아세안회원국가들간에 1년씩 번갈아 갖도록 한 것은 아세안의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처였다. 또한 그들의 우려는 APEC은 합의에 의해서만 의결을 할뿐 '강제적인 지시'를 채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1989년의 '쿠칭합의'(Kuching Consensus)로 나타났다. 그러나 1994년의 '보고르 선언'(Bogor Declaration)에서 2000년을 기점으로 선진국들은 10년이내에, 신흥공업국들은 15년이내 -싱가폴은 선진국들의 기준을 따르겠다고 공식 선언하였다- 에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개도국들은 20년이내에 여타 회원국들에 대해 무역장벽을 철폐할 것을 표방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쿠칭합의는 무너지게 되었다.
APEC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산적해 있다. 특히 경제자유화와 관련한 핵심적 과제중의 하나로서 비회원국들에 대해 어떤 대우를 할 것이냐하는 것이다. 비회원국들에게도 회원국들과 같은 최혜국(most-favored-nation:MFN)대우를 할 것이냐, 한다면 어떤 형태로 할 것이냐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 즉 무조건적인 최혜국대우를 하자는 주장과 이것이 '무임승차자'현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일시적이나마 조건부 최혜국대우를 하자는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직접적 수지계산을 따지는 구체적 호혜(specific reciprocity)냐, 일반적인 利益授受에 만족하는 느슨한 호혜(diffused reciprocity)냐를 두고 이견이 있는 것이다.
경제적 우선순위를 두고 선진국회원들과 비선진국회원들간에 나타나는 견해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장애요인이다. 개도국들은 생산성향상을 위해 기술이전을 늘리고, 노동력수입에 있어서 장벽을 낮추고, 경제원조를 증대시키는 것을 우선시한다. 이에 비해 선진국들은 비관세장벽, 지적소유권, 이민, 그리고 원조의 부담 등이 주관심사이다. 이러한 견해차는 APEC에서 그들의 이해관계가 선진국들에 의해 가려질 것이 아닌가라는 아세안국가들의 우려를 증폭시킨다.
APEC에서 선진국회원들 특히 미국의 일방적 영향력행사를 우려 -싱가폴을 예외로- 하는 개도국회원국가들인 ASEAN이 주도하여 역외국가들과의 대등한 국제협력관계를 형성할려는 초지역차원의 시도로서 아시아 유럽정상회의와 환태평양자유무역권, 환인도양지역협력회의등이 있다.
지역주의의 세계적 경향을 불러 일으킨 EU가 대서양중심의 교역이 점차 태평양중심의 교역으로 옮겨감에 따라 지속적으로 급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아시아시장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아시아국가들 역시 미국시장일변도로부터 EU시장을 포함한 시장다변화에 이해관계를 갖게 됨으로써 성사된 ASEM은 1996년 3월 방콕에서 제1차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이래 97년 2월 싱가폴에서 제1차 ASEM외무장관회의를 개최하여 아시아 유럽재단 -양지역간의 학술, 문화 및 인적교류를 목적으로 싱가폴이 제안 -을 발족시키고 98년의 제2차 정상회담에서 APEC의 저명인사그룹(Eminent Persons Group: EPG)처럼 아시아 유럽 비전그룹(Asia Europe Vision Group) - 회원국의 민간 저명인사들로 구성되어 아시아 유럽의 중장기 발전방향제시를 목적으로 한국이 제안-을 의제로 채택키로 합의하였다. 아직 출범초기이기 때문에 당장 가시적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개방적 지역주의를 내건 경제협력체를 지향하는 APEC에 비해서는 오히려 자유로운 입장에서 정치, 경제, 학술, 인적교류 등의 광범위한 과제에 대해 정부, 민 관, 민간등의 다차원에 걸친 협조체제로 발전될 가망성이 높다. 아시아 -APEC, ASEAN, 또는 미래의EAEC차원에서- 가 APEC에서 제외된 EU와 집단적인 자격으로 지역주의를 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기구이다.
환태평양 자유무역권은 ASEAN과 NAFTA, 그리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등으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El Mercado Com n del Sur:Mercosur) 및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제긴밀화협정(CER)을 아우르는 초지역적 경제협의체이다. 아직 구상단계이긴 하지만 그중 일부는 이미 실행중에 있기도 하다. 즉 아세안은 경제긴밀화협정을 통해 이미 독자적인 자유무역권을 형성하고 있는 호주 및 뉴질란드와 1995년 9월에 첫 경제각료회의를 열어 통관 기준 및 인증제도를 일치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아세안이 NAFTA, CER등과 함께 이미 APEC의 회원이지만 환태평양자유무역권이라는 차원에서 또다른 의사소통통로를 갖는 것은 뚜렷한 네 개의 경제권 -남미공동시장을 포함한- 이 각각 지닌 이해관계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협의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즉 동남아, 대양주, 북미 그리고 남미에 걸친 방대한 지역이지만 이들은 이미 각지역의 회원국가들사이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경제원칙을 합의해 두었기 때문에 이들 네 개의 합의를 서로 조정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문제해결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APEC은 구성원리가 환태평양자유무역권구상처럼 경제블록들간의 연계망구축에 있지 않고 회원국들이 개별적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원들중에는 ASEAN이나 NAFTA, 또는 CER처럼 집단적 이해관계를 지닌 경우도 있지만, 일본, 한국, 중국, 차이니즈 타이페이(대만)등의 동북아국가들이나 파푸아뉴기니, 그리고 가입이 논의되고 있는 페루나 러시아처럼 집단적 이해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APEC은 개방적 지역주의라는 '규범'에는 회원국들간의 동의를 얻었으나 총괄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나 '절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실행가능한 합의가 없는 '생성과정의 제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비해 환태평양자유무역권은 비록 회원국들중 상당부분이 다른 초지역적 협의기구에서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하더라도, 경제블록들의 연계망형성이라는 집단적 문제접근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도로 존재할 이유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APEC이나 NAFTA와 같은 기존의 지역협의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 즉 NAFTA에 아시아국가들이나 남미국가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APEC에 남미국가들이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비회원국들에 대한 배타성을 노정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한가지 방안이 되고 있다.
환인도양지역협력회의(Indian Ocean Association of Regional Cooperation:IOARC)는 아세안 신흥공업경제의 성공적인 경제개발 경험과 아프리카와 중동의 풍부한 자원, 인도와 중동의 거대한 시장, 그리고 인도의 풍부한 노동력을 결합시킴으로써 대서양과 태평양에 뒤이어 인도양 국가들의 경제적 도약을 추구하고자하는 시도이다. 냉전체제의 등장이후 오랫동안 침체상태에 놓여 있던 인도양 지역이 여타지역에서의 지역주의의 등장에 자극 받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등의 동아시아국가들과 인도, 남아공등이 주축이 된 새로운 경제협의체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1997년 3월 6일 모리셔스의 수도 포트루이스에서 동아시아 3개국과 인도, 스리랑카, 오만, 예멘,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남아공, 마타가스카르, 모리셔스, 그리고 호주등 인도양 연안 14개국의 외무장관들이 모여 환인도양경제협력회의 헌장을 채택함으로 정식 출범하였다.
이 지역 최대국가인 인도가 폐쇄적인 사회주의 경제정책으로부터 개방화를 선언하고 나섰다는 사실, 세계각국의 1천여개 회사가 진출해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자벨아리 자유무역지구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 및 인근 아프리카지역을 연계하는 중계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자극 받은 아부다비와 바레인 등지에서도 광역 물류거점과 자유무역지구의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 인도양 연안 각국에 거주하면서 지역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도교포들이 인도의 경제개방화에 따라 본국에대한 투자를 증대시키고 있는 사실 등이 환인도양경제권의 성장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1993년에 남아공의 피크 보타 당시 외무장관이 제안한 이래 4년간의 의견조정과정을 거쳐 갖 출범한 환인도경제협력회의는 정치 및 안보문제를 배제하고 회원국들간의 경제교류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하기로 하고 있지만, 여타 지역경제협의체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증대된 경제협력의 경험이 여타 부문에 있어서의 협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므로, 經濟主義와 경쟁적 협력(competition and cooperation:comperation)이라는 새로운 국제사회의 작동원리가 인도양 지역으로 까지 확대됨으로써 국제질서의 안정화에 기여하게 되리라고 기대된다. 특히 동아시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對태평양 대서양 교역에 덧붙여 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까지 교역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시장 다변화를 통한 시장
안정화와 성장을 기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환인도양경제권의 참여를 통해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outh Asian Association for Regional Cooperation: SAARC)회원국들과의 연계를 형성, 궁극적으로 남아시아를 전아시아적 협의체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듯이 아시아국가들간의 교류는 저하위지역-성장삼각지대나 중화경제권 등의 경우-에서, 하위지역 -아세안의 경우-에서, 그리고 초지역차원 -APEC, ASEM, 환태평양자유무역권, 환인도양지역협력회의등의 경우-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시아지역에 국한하여 동아시아전역을 포괄하는 지역차원의 협의체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간 협력관계를 통한 지역통합의 '레짐'이 정작 지역수준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지를 못한 것이다. 저하위지역, 하위지역, 그리고 초지역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역통합의 레짐을 여하히 지역수준에서 달성해내느냐 하는 것이 현재 동아시아의 당면과제이다. 여기에는 지역수준의 협의체 -EAEC- 구성에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 되고 있는 미국을 여하히 설득하느냐 하는 문제, 이를 위해 동아시아국가들, 특히 일본과 한국등의 동북아국가들이 지역수준협의체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합의를 어떻게 도출해내느냐 하는 문제, 이 두가지가 해결되어야만 한다.
3. 아시아적 가치와 아시아의 정체성
서구에 의한 아시아의 '재아시아화'와 이에 자극받아 나타난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화'는 모두 한가지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즉 동아시아에 있어서 20세기 후반기에 나타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아시아의 경제적 가치증대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금세기의 후반기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놀라운 경제성장의 비결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관찰자들과 아시아의 관찰자들 모두 서구의 "자유방임적" 경제 정책,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아시아적 특성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국가개입적 경제정책, 집단주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아시아사회의 공통적 특징으로 제시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들은 그와 같은 아시아적 특성의 근원을 아시아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에서 구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제시된 설명이 유교주의의 영향이다. 아시아 경제성장의 선두주자인 일본을 위시하여, 일본을 모델로한 동북아의 신흥공업국가들, 그리고 뒤늦게 경제성장의 대열에 뛰어 든 이후 놀랄만한 속도와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등이 한자문화권의 유교적 전통을 지닌 사회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과 동아시아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연결시키는 작업의 결정판은 버거(Peter L. Berger)의 '동아시아발전모델'론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크게 고무된 바 있는 버거에 의하면, 성취지향적 노동윤리, 집단주의, 높은 교육열, 엘리트주의등이 동아시아모델의 중요한 특성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의 높은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교육정책은 동서양의 많은 논자들에 의해 동아시아 경제성장의 핵심적 비결로 주목받고 있다. 교육에 대한 가치부여는 질적으로 우수한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베버가 일찌기 지적한 동양문화의 停滯性을 잘못된 것으로 비판하는 버거는 오늘날 아시아에서 번성하는 자본주의는 이 지역의 종교/윤리적 전통, 즉 유교윤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세지향적이고, 절제와 극기, 권위에 대한 존중, 가족적 가치존중, 그리고 특히 무엇보다도 교육을 중시하는 태도 등을 내용으로 하는 유교적 윤리는 내일의 풍요를 위해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아시아특유의 자본주의정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자본주의정신을 기독교윤리와 결부시킨 베버의 전통은 오늘날 경제성장과 문화/가치를 연결시켜 설명하려는 논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의 차이는 가치관, 관점, 이해관계, 습관, 역사관 등을 규정하는 문화적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문화결정론'적인 이들 견해에 의하면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아시아인들이 지닌 문화적 특성탓이다. 즉 남미인들의 상공업에 대한 경시태도가 남미의 경제적 불안정과 지체에 원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인들의 현세적이고 성취지향적 가치관은 일본을 위시한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가들의 경제 기적의 원인이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 그중에서도 특히 유교주의를 동북아의 신흥공업국가들의 경제적 성공을 뒤받침한 이념적 가치로 내세우는 논리는 실상 경제성장과 유교주의간의 엄격한 인과관계의 규명에 입각하고 있는 과학적 논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 유교주의적 국가들이 오랫동안 경제적 침체상태에 빠져 있었던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왜 전시대에 경제적 침체에 기여했던 유교주의가 갑자기 오늘날에 와서는 경제적 발전에 기여한단 말인가. 이점에서 볼 때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양문명과의 접합에 어떻게 성공하고 있는가 (또는 성공한듯이 보이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21세기 동아시아문명을 구상하는 데 있어 사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만일 유교적 가치에서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유교주의의 내재적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 헤겔이나 베버가 지적했던 '유교적 停滯性'이 어떻게 근대화과정에서 경제적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게 되었는가하는 변용과정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신흥공업국가들을 뒤쫓아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동남아국가들을 보면 불교문화 -태국, 미얀마-, 이슬람문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기독교문화 -필리핀- 등 다양하다. 슈마커(Schumacher)가 동남아의 불교국가들이 검소, 절제, 자연친화를 특징으로 하는 '불교경제'를 지녔다고 칭송한 바 있지만, 지금 이곳은 한국, 대만, 싱가폴, 홍콩등을 본받아 급속한 경제성장에 열중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구의 오리엔탈리스트들에 의해 "비합리적"이며, "비도덕적"이며, "비열한" 것으로 매도되어 온 이슬람문화는 오늘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근대화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필리핀의 기독교문화까지를 염두에 둔다면, 경제성장을 아시아의 한 특정한 문화적 전통 -즉 유교윤리- 과의 연관성속에서만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흔히 논의하듯이 유교문화나 한자문화권에서 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발상법이다. 우선 이것은 비유교적 전통을 지닌 동남아시아국가들과 인도를 위시한 남아시아국가들을 포용할 수 없게 만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또는 동북아시아국가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이다.
유교적 전통문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중국, 일본, 한국민들 사이에 있어 현저한 차이를 가져오고 있을뿐만 아니라, 오늘날 긍정적 가치로 내세울 수 있는 유교적 가치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 역시 분명하지 않다. 한예로 문화의 운명적 규정성을 주장한 李光耀가 내세울 수 있는 유교적 가치란 가족주의이거나 연장자에 대한 존경, 공동체적 집단주의 등인데, 서양의 개인주의에 입각한 공동체의식이나 가족주의 또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인본주의(humanism)보다 어떠한 특장점이 있는지 결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그가 말하는 유교적 가치란 아시아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가 되고 있는 개인주의를 '극단적'이라는 修辭롤 사용하여 왜곡하고, 권위주의에의 맹종을 '공동체적'이라고 오도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노박(Michael Novak)이 지적하듯이 '公民的 책임의식'에 기초한 공동체적 생활이야말로 서구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 특성중의 하나이다. "다양하고 솔직하며 우호적인 수많은 結社, 수많은 공동작업, 그리고 개방성과 쉽게 서로 사귀는 습관"의 생활화를 통해 서구 사회가 지닌 개인주의적 특성들 -즉 "개인적인 경제적 진취정신,""창조성," 그리고 "경쟁성"- 이 반사회적이 아닌 건설적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개인주의와 공동체의식은 서로 상보적인 것으로서 결코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적인 것이 아니다. 반개인주의적 공동체의식이란 실제에 있어 진정한 공동체의식 -맹목적 집단주의와 구분되는- 마저 파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이항대립적 모순은 소위 말하는 '아시아적 민주주의'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가주도의 경제정책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의 투입을 증대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에 의해 '아시아의 기적'을 이루는 데 성공한 이 지역의 정치지도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시아의 정치문화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그러나 박정희, 蔣介石, 마르코스, 李光耀 등 아시아의 지도자들이 주장했던 아시아의 문화에 적합한 아시아적 민주주의는 종종 권위주의적 개발독재체재가 지닌 스스로의 비민주적 정치관행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어 왔다. 이 같은 현실은 서구의 관찰자들로 하여금 아시아인들은 그들의 독특한 정치문화 -위계질서적 세계관, 개인적 자율성보다는 가족주의, 자유보다는 안정을 내용으로 하는- 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서구인들과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아시아인들에게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있을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아시아에서는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민주주의가 李光耀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바람직하지 않거나, 또는 서구의 많은 관찰자들이 보듯이 불가능한 것일까.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최근 경험은 아시아정치지도자들의 '저항'이나 서구관찰자들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민주주의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위주의 정치권력에 의한 경제성장과 권력강화의 동시추구가 근대화초기과정에서는 성공적인 듯이 보였지만, 산업화수준이 높아질수록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시민적 저항이 증대되면서 결국 탈권위주의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던 한국과 대만의 경험이 좋은 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간의 순기능적 관계에 대한 립셑(S. M. Lipset)의 가설이 비서구지역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 그와 같은 예는 아시아적 가치/문화를 민주주의의 가능성여부와 연결시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교주의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 않게 흔한 주장이 동서양을 정신과 물질로 대립시키는 논리이다. 서양문명과의 강제적 接變과 제국주의적 침탈에 즈음하여 일본과 인도에서는 아시아문명의 가능성과 더 나아가서는 위대성을 널리 외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의 아시아주의론이나 인도가 아시아 정신문명의 지도자라는 타고르의 이념이 그것이다.
다케우치는 서양이 지닌 유형의 물질적 힘에 대비한 동양의 심미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라고 하는 무형의 이념이 지닌 힘을 대비시켰다. 타고르는 인도나 동양의 문화는 정신적인 것으로서 영국이나 서구의 물질문명은 동양의 정신에 의해 더욱 고양될 수 있는 것이라는 논지를 폈다. 19세기의 역사적 전환기에 중국이나 일본 또는 조선에서 볼 수 있었던, '동양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결합시키자'는 주장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서양의 대비는 타고르의 동시대인인 베노이 쿠마르 사르카르의 "아시아인과 유럽인들은 모두 물질주의적이고 동시에 정신적이다"라는 한마디의 지적에 괴멸될 수밖에 없다. 사르카르가 "두 정신 사이의 차이라고 주장되는 것은 지난 세기 산업 혁명에 따라 인류의 일부가 놀라운 성공을 거둔 후 처음 이야기되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그것은 엄청나게 과장됐다"고 지적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인 자신이 그와 같은 과장에 부분적 책임이 있다는 그의 지적 역시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시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힘든 작업이다. 이제 겨우 아시아는 서구와 다른 데서 오는 '어떤 동질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어떤 동질성을 유교주의나 한자문화 등과 같은 전통적 특성, 또는 가족주의나 집단주의처럼 서양인의 눈에 우선 특징적으로 비치는 동양적 차별성으로 쉽게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설명은 동양이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이메지에 의해 스스로를 규정하는 오류, 즉 사이드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동양이 "스스로를 동양화시키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시아문화의 특성을 규정하는 일은 "우선 미시적인 차원에서 개별문화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한 전제없이 이루어지는 아시아문화에 대한 섣부른 일반화는 오히려 아시아인들 자신을 아시아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談論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서로의 차별성을 인정하는 위에서 아시아의 공통성을 발견하는 작업이 계속되어야만 한다.
아시아의 정체성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그리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성 변용되는 것이다. 문화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움직여나가는 실체이다. 서구의 경우를 보더라도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 대중들로하여금 물직적 행복에 대한 과도한 강조로부터 삶의 질에 대한 보다 큰 강조로 옮겨가게 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엘리트지향적(elite-directed)인 데로부터 엘리트도전적(elite-challenging)인 데로 옮겨가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는 급속한 사회변동과정에서 그와 같은 가치관의 변화 역시 크고 빠르게 나타난다. 문자 그대로 '전환기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이곳에서는 한 사회내에서도 세대간, 都農간, 지역간 -즉, 경제성장의 선도지역과 배후지역간- 가치관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유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현대 아시아사회의 문화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
흔히 서양에 비해 덜 물질적이고 보다 정신적이라고 하던 아시아가 서양을 모델로한 일본을 모델로 하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아시아의 가치내지는 문화에 대한 상투적 이해는 적실성이 없다. 미르달(Gunnar Myrdal)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동서양의 문헌이나 공식적 발언들속에 편재해 있는 '아시아적 가치,' 즉 아시아인들이 서구인들에 비해 더욱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이라든지, 내세적이며 이기심이 없고 부와 물질적 안락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가난을 잘 견디며 이를 오히려 미덕으로 여긴다든지, 배움에 대한 특별한 존경과 명상능력을 지니고 있다든지, 논리적이기 보다는 직관적이라는 등등의 말은 "상투어"일뿐이다.
아시아사회에는 서구의 기독교와는 다른 종교, 즉 유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등이 있으므로 이들이 아시아인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시아인들이 서구인들과는 다른 아시안인들만의 어떤 공통점에 대해 점차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면, 이는 이 지역에 독특한 전통 종교에 전적으로 기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통의 역사적 경험 -식민통치- 과 서양에 의해 오랫동안 동일체로 대상화되어왔다는 사실 -과거의 '동양화'와 최근의 '재아시아화'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전도상국가로서의 유사한 경험과 처지 탓이 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시아적 가치 또는 문화적 특성에 대한 인식은 외부적 자극 -즉 서구의 '재아시아화'- 과 이에 대한 대응 -즉 아시아의 '아시아화'- 과정에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다른 문화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대외적 배타성 -그와 같은 배타성은 오늘날과 같은 상호의존의 시대에 고립화를 자초할뿐이다- 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로서 지닌 공동운명에 대한 자각이라는 대내적 포괄성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해 역외국가들보다는 유사성이 강한 역내국가들끼리 먼저 돕는 다는 의미에서- 을 위해서 아시아의 정체성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4. 아시아공동체의 가능성과 한계
왜 아시아공동체가 필요한가? 그것이 세계화의 추세를 거스르는 폐쇄적 지역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아시아는 일본을 예외로 2차대전이후의 냉전체제하에서 소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등과 더불어 제삼세계의 일원으로서 선진국들의 원조대상지역이었다. 성공적인 경제성장에 걸맞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시아의 경제성장축 -신흥공업지역과 신신흥공업지역-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낙후지역과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해 경제성장을 꾀하는 역내 사회주의국가들과의 협력적 교류를 통해 아시아의 '선진국들'이 역내의 '후진국들'을 스스로 돌보는 책임을 다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아시아공동의 번영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의 번영과 안정에 일익을 담당하는 기회를 가져야한다. 아시아의 지속적 경제성장이 경쟁지역 -북미나 유럽- 의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는 것 -아시아상품의 시장점유는 자국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실업자 증대를 가져온다는 단순논리를 예로서 들 수 있다 -이 아니라, 오히려 전 지구적으로 경제성장의 상승적 효과(synergy effect)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제대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아시아공동체의 형성에 있어서 아세안의 경험은 좋은 선례가 된다. 아세안의 경험은 역내국가들간의 상이한 경제수준에도 불구하고 협력관계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출발당시 5개국의 회원국이 97년 미얀마와 라오스의 가입으로 9개국이 되었다. 미얀마의 일인당 국내총생산이 싱가포르와 약 1백배가까운 격차를 보이고 있으나 그동안 아세안이 회원국들간의 경제적 격차를 뛰어넘어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아세안의 경험은 경제적 낙후성으로 인해 배제되고 있는 남아시아국가들을 아시아역내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ARF는 특히 냉전체제를 특징지웠던 양자간 안보협력의 틀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종래의 관습을 깨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 방콕회의에서 당시 일본 외무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의 제안 -회원국들이 년간 방위백서를 발표할 것- 에 따라 군사관계의 투명성이 제고된 것이라거나, 중국을 포럼에 끌어들임으로써 南沙群島의 주권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이 과정에서 회원국들간의 신뢰형성조치(confidence-building measures: CBM)를 논의할 수 있게 된 것 등은 지역안보협력을 위해 새로운 관습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아세안이 아시아 지역주의의 선도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아시아공동체구상이 아세안의 주도국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Mahathir Mohamad)에게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마하티르가 주창하듯이 동아시아차원에서 全지역적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아세안의 경우보다 훨씬 어려움이 많다. 아시아지역에는 갈등적 요인이 많다.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오히려 군비경쟁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군비축소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지역에서의 군비경쟁은 오히려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그것은 증명된다. 특히 일본의 군사대국화가능성과 중국의 군비증강은 주변국들에게 위협적일 수도 있다. 유럽의 안보협의회(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처럼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갖지 못한 아시아에서는 南沙群島(Spratly Islands)와 釣魚島에서처럼 영토분쟁의 가능성도 많으며, 그 해결이 군사적 힘의 과시에 의존 할 가능성 역시 높다. 싱가폴-말레이시아간의 협력적 긴장관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 같은 회교국가에서 화교들의 경제적 성장이 가져오는 인종갈등 -이는 '중화경제권'의 성장과 더불어 더욱 악화될 소지가 많다- 역시 갈등의 요인들이다. 인종적 긴장과 사회적 불안정, 높은 인플레와 인구성장율, 지역간 계층간의 높은 소득격차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아시아 사회는, 특히 新신흥공업경제지역의 경우, 전형적인 전환기 사회(transitioanal society)로서의 불안정을 노정하고 있다.
지역내 국가들간의 결속이나 협력이 미약하다는 것 역시 아시아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유럽연합에 비해서 현저한 특징이다. 유럽이 일찌기 EC를 결성하고 이를 발전시켜 하나의 유럽공동체 -즉 '유럽연합'(EU)- 로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기독교 문화, 역사적 경험,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이후의 공동안보에 대한 필요성 등 공동체형성의 내적 유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유럽의회의 실질적 가동이나 유럽역사에 대한 공동편찬작업등을 통해 유럽은 하나의 공동체로 이미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국가들간에는 문화적, 역사적, 안보적 공통성이 결여되어 있다. 불교, 유교, 회교, 기독교등이 각각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전통역사속에서 아시아국가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를 못했을뿐만 아니라, 영토분쟁을 위시한 정치적 갈등이 대체로 관련 당사자국들에 국한된 것들이어서 동아시아 전체적 차원에서의 공동체적 통합에 대한 필요성이 충분히 축적되어 오지를 못했던 것이 이제까지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정치적 협력을 위한 작업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경제적 협력작업보다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EAEC와 같은 경제협력체를 통해 협력의 습관을 먼저 쌓아나가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동북아국가들은 역외국가들과의 관계에 비해 역내국가들간의 관계가 더욱 소원하다. 흔히 동북아지역은 한자문화권인 동시에 유교문화권이라고 하여 문화적 동질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구인들의 눈에는 중국인이나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들을 외견상 서로 구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유교라는 공통의 정신가치로 이 지역 국민들의 생활방식이나 행태를 일반화하기가 매우 어려울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은 한자를 공통으로 사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소통할 공통의 언어를 옛부터 결여하고 있었다. 중등 및 고등교육에서 영어 등의 서구어는 반드시 교과목에 들어가 있지만 동북아시아의 현대어는 거의 관심밖에 있다. 일반주민은 물론이고 지식인 사이에 있어서도 동북아시아 언어의 상호보급은 아짖껏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 결과 아시아 이웃 나라의 민중생활이라든가 현대문화에 대한 관심이 서구의 그것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과거의 쇄국시대에 비해 그다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 - 정치, 군사,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방식의 측면에 있어서까지- 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됨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정치적 관계에 있어서는 역내의 어떤 국가들과 보다도 서로 소흘하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가 매우 깊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과 매우 대조적이다. 과거의 식민통치에 대한 청산되지 못한 기억이 양국간의 원할한 정치적 관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일본이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정상국가'(normal state)가 되고자 하는 당연한 열망을 아시아 각국 특히 한국과 중국은 군사대국으로의 변화로 인식하는 경계심이 강하다. 인접국가들의 이와 같은 경계심이야 말로 일본이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정치 군사적 역할과 지위를 갖춘 '정상국가'로서 아시아의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데 결정적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아시아지역에 대한 식민통치의 유산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가 있다. 식민통치의 과거를 피해당사자국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만한 수준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 일본이 아직 성공하지 못한 탓이다. 과거의 납득할만한 반성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된 위에서 일본이 정상국가의 지위를 갖는 것은 아시아공동체의 안정된 구축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될 것이다.
아시아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역내국가들간의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걸림돌은 미국의 비우호적 태도이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한 EAEC가 독자적 협의체로 기능하는 것이 어렵다. 아시아지역에 대해 미국이 지니고 있는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 탓이다. 즉 아시아국가들이 미국과 맺고 있는 쌍무적인 안보협력체제나, 미국시장에의 경제적 의존은 미국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제약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최근 개정된 미일안보조약으로 인해 일본이 자국의 군사력을 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동북아 지역에서의 안전보장 특히 대중국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갖는 균형자/조정자의 역할을 일본은 무시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이류국가"로 남지 않고 급속한 경제재건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는 일류국가로 성장한 이래 나타난 대미무역흑자는 미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입장을 더욱 조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미 동남아를 일본의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일본이 마하티르가 일본을 리더로 하는 EAEC를 제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EAEC가 円경제권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예스'도 '노'도 하지 않고 있는 데서 보는 바와 같다.
미국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대일, 대아시아 무역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APEC을 이용하여 아시아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시장의 개방을 두고 미국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도 '수퍼301조'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데서도 보듯이 보호주의와 일방주의(unilateralism)는 미국의 대외정책 경향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이 애써 구축해 놓은 개방적 세계경제체제 즉 WTO를 미국이 앞장서서 무너뜨리는 일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안보의존과 경제의존을 빌미로 미국이 아시아시장의 일방적 개방을 요구한다면 다자간 협력체제로서의 APEC역시 명분을 잃게 된다.
미국이 주창하는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 구상을 태평양권을 통제하려는 강국들의 시도라고 보는 부정적 입장도 없지 않다. "부모는 일본인과 미국인으로 추정되며 산파는 오스트렐리아 사람인 아기"라고 보는 것이다. 아세안이 유럽, 서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와의 관계를 심화시켜가는 것을 목도한 일본이 태평양 공동체라는 발상을 통해 "선수를 쳐서 아세안을 자신의 금렵구로 삼으려" 든다는 견해마져 있다. 이러한 불신과 의혹이 존재하는 한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가 역내 국가들간의 호혜평등의 원칙에 의한 협력체로 제도화되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아세안의 일체성을 더 중시하는 동남아 국가들과, 상호 이질적 요소들을 그대로 둔채 북미, 大洋洲, 그리고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태평양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주도국 미국과 일본의 생각이 서로 엇갈리는 한 아시아를 모두 어우르는 공동체 형성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공동체구상은 역내국가들을 배제한 채 역외국가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는 이상한 집단이 되고말기 때문이다.
1993년의 '신태평양공동체'선언을 계기로 그동안의 소극적인 입장으로부터 적극적인 대아시아정책으로 선회한 미국은 APEC회원국들간의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일방으로 1994년에 북미자유무역지대를 새롭게 설정하였다. '경제전쟁'의 시대에 국가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초지역적 협력관계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자신이 보여준 것이다. NAFTA의 창설로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는 기존의 미주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s of the America)와 더불어 복수의 지역차원의 경제협의체가 북미와 중남미에 각각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런점에서 본다면, 동아시아국가들이 APEC이라는 초지역적 협의체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역내국가들만으로 구성된 全地域的 협의체 -즉 EAEC-를 갖는 것은 당연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하위지역협의체 -동아시아의 일부인 동남아에 국한된다는 의미에서- 인 ASEAN을 확장하여 동아시아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를 갖는 것은 세계화의 조류에도 부응하는 일이다. 국제관계는 다차원에 걸친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상위차원의 협의체가 하위차원의 협의체의 필요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상보적일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전지역적 기구의 창설과 병행하여 동북아국가들만의 협의체 구성도 적극 모색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EAEC를 포괄하는 범아시아적 협력기구의 창설마저도 궁극적으로는 필요하다.
다양한 차원의 협의체는 각 차원마다 협상의 이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간 상보적이다. 차원이 서로 다른 APEC과 EAEC를 서로 배타적 선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EAEC가 결성됨으로써 동아시아국가들이 APEC을 탈퇴하겠다는 것이 아님을 특히 미국과 호주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은 일반적인 국제관계의 관행과도 배치된다. 예컨데, 아세안확대외무장관회의와 APEC이 동시에 존재하며, 아세안의 경우만 하더라도 아세안 워싱턴 위원회(the ASEAN Washington Committee: AWC), 경제조정협의회(the Economic Coordinating Committee: ECC), 미 아세안경제기술협의회(the US-ASEAN Council for Business and Technology), 그리고 아세안 미 이니시아티브(the ASEAN- US Initiative)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관련 당사자들간의 대화를 지속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모든 국제관계는 상호 연결되고, 중첩적인 의사소통구조를 지니고 있다. EAEC가 회원국의 자격을 아시아국가들로만 한정한다고 하여 이것이 배타적, 폐쇄적 지역주의로 한계지워질 것이라고 하는 비판은 사실상 정당한 것이 아니다.
APEC이 아직까지 느슨한 협의체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기되는 EAEC구상은 이 지역에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미국이나 새롭게 아시아국가의 정체성을 키워나가고 있는 호주에게 있어서는 자칫 위험한 발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APEC이 1989년에 발족한 이래 지금까지 왜 느슨한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었는가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경제적 협력관계를 토대로 하여 정치 군사적 협의체로까지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사정의 중요한 원인은 역내국가들을 함께 묶을 틀도 없는 채 이질적인 역외 국가들 -북미, 중남미, 오세아니아의- 과의 동반관계를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하위지역의 수준에서 역내국가들끼리의 경제협력이 정치 군사적 협력으로까지 발전한 ASEAN의 경우나 지역수준의 협의체가 경제적 협력은 물론 정치 군사적 협력까지도 이룩해내고 있는 EU의 경우에서 보듯이 -바로 이점이 미국으로 하여금 다차원에 걸친 협의체를 동시에 운영토록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질성을 가진 구성원들끼리의 협의체 구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만일 EAEC가 구성됨으로써 동아시아국가들간의 협력관계가 공고하게 된다면 이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역외국가들과의 협의체인 APEC 역시 보다 분명한 정체성과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다양한 차원의 국제협력은 보다 높은 차원의 국제협력을 대체하거나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완내지는 강화시켜주는 경향이 있다. 경제자유화는 소규모로 이루어질 때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낮은 지역차원에서의 경제협력경험은 국제적인 다자간 대화와 타협의 습관을 형성시켜 보다 높은 수준의 지역경제통합을 이루어내는 데 기여한다. 즉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의 지역자율성(local autonomy)을 향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보다 높은 차원의 국제협력을 위한 제도형성의 기반을 조성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지역내의 상이한 정치, 군사안보, 경제가 초래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신중하게 조정하는 협력경험을 보다 적은 규모에서 쌓음으로써, 기술, 노동력, 자본, 시장규모 등의 면에서 현격한 상이성을 보이고 있는 국가들간의 경제자유화에 대한 바람직한 처방을 도출해낼 수 있는 학습을 할 수 있다.
또한,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비우호적인 세력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고 하는 어느정도 근거 있는 중국의 우려와, 일본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방위부담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주변국들에게 의구심과 두려움을 가져다줄 지 모르는 딜레마, 이 두가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지역차원의 협의체가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을 아시아의 지역적 틀속에 통합함으로써 아시아지역의 문제를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계기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모든 역내 국가들이 정책의 우선을 두고 있는 경제협력의 제도화로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군사적 의견조정과 문화교류협력등을 병행하여 추진함으로써 다차원에 걸친 신뢰망과 안전판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EAEC는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APEC의 결함을 보충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이익에 도움을 준다. 우선 첫째, 미국이 없는 곳에서 아시아국가들끼리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미국의 관심사항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도모할 수 있고, 둘째, 일본과의 교역에서 무역적자를 경험하고 있으며 일본으로부터의 보다 많은 기술이전을 원하고 있는 아시아국가들이 EAEC의 틀속에서 일본과의 교역조건개선이나 기술이전증대를 구할 수가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아시아와의 교역부담을 줄일 수 있을뿐만 아니라 -아시아가 미국으로의 수출을 줄이고 일본으로의 수출을 늘임으로써- 일본의 경제개방화를 촉진시킬 수도 있는 이중적 효과가 있다. 그리고 셋째로는 중국이 EAEC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면 APEC에서도 보다 생산적인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협력을 통한 경제 블록형성은 무역자유화를 내건 WTO체제하에서 이제 세계적 경향이 되고 있다. 이런 경향하에서 각국은 다양한 지역협의체와 가능한 한 많은 관련을 맺으려고 한다. 상호의존이 갈수록 심화되는 세계경제하에서 특정한 지역에 국한한 배타적 지역주의에 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오늘날의 지역주의는 결코 폐쇄적 지역주의에 머무를 수 없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아시아국가들은 태평양공동체냐, 아시아공동체냐의 선택을 두고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아시아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논을 모아야 한다. 이때 아시아공동체는 EAEC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태로 하여 보다 폭넓게 아시아 전역을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화가 지역내 경제성장의 선두주자인 동북아국가들과 이를 모델로 하여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동남아국가들, 그리고 최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여 경제성장이 한창인 중국과 베트남에 국한됨으로써, 아시아의 또다른 구성원인 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가 서구의 침탈을 당하고 있던 제국주의의 시대에 '아시아의 어머니'를 자처하며 아시아주의의 중심에 섰던 인도가 아시아 지역주의의 형성과정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아의 정체성을 건설하는 데에 치명적 결함이다. 인도를 위시한 남아시아는 미르달(Gunnar Myrdal)이 지적하고 있듯이 근대화의 역동성이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다. 비록 이차대전이후의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이 일본위주로 이루어지고, 미국의 정책적 관심이 서유럽과 동시에 냉전의 최전방지역인 동북아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아시아의 여타지역보다 동아시아의 정치경제가 더욱 중요시되어오긴 하였지만, 남아시아 역시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근대화작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어 왔다.
아시아의 지역주의가 남아시아를 포괄하지 못하고 '동아시아담론'의 차원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아시아의 성장가능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한계지우는 일이다. 이점에서 최근 일부의 동남아국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환인도양경제협력회의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연결함으로써 아시아지역주의를 본궤도에서 추진할 수 있게하는 의미있는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5. 결론
어떤 지역 -아메리카든, 아프리카든, 유럽이든간에- 이든 그것이 단순한 지리적 실체로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서 역사속에서 존재하는 한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말하는 '想像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가 된다. 민족주의가 실체로서의 민족 그 자체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대내 외적 계기를 통해 의식적 자각이 일어남으로써만, 다시 말해서 민족에 대한 의미부여가 '만들어짐'으로써만 생겨나고, 민족주의적 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실체로서의 민족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지역 역시 그러하다. 지역의 정체성이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주어짐으로써 그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가 자리잡게 된다.
아메리카나 유럽, 소위 말하는 선진지역은 그와 같은 의미부여가 내부적 자각에 의해 형성되었다. 헬레니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문명이 터를 잡은 서구는 줄곳 스스로를 세계사의 주역으로 인식해왔다. 그와 같은 중심의식은 19세기 제국주의의 시대에 비서구지역의 여러곳에서 실제로 확인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중화사상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 대한 인식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중화사상이 대상으로 보았던 지역은 중국과 그 변방국가들을 포괄하는 것으로서 매우 협소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역내의 국가들이 평등하게 공유하는 의식이라기 보다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심-주변의 인식이었으므로 확대된 공동체의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중국이 '종이 호랑이'로 판명된 이래 중화세계는 와해되었고, 일본은 이 과정에서 가장 극단적인 이탈자가 되었다. 즉 일본은 脫亞入歐를 통해 전통적인 中華世界라는 공동체로부터 완전한 이탈을 기도하였다. 일본은 西歐接變이후에 획득한 "서구적" 힘으로 중국이 무너져 내린 그곳에서 과거의 中華世界보다 더 확장된 공간에 자신이 중심이 되는 中和世界 -"大東亞共榮圈"- 를 세우고자 하였다.
中華世界의 경우에 있어서 보다 더 철저한 중심-주변의 위계질서에 입각한 中和世界는 "모든 동아시아국가/민족들의 공동번영"을 바깥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약소 국가/민족을 철저하게 지배하려는 -조선인의 창씨개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것이었다. "공영권"으로 위장된 패권주의는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아시아를 형성하는 데 오히려 저해 요인이 되었고, 이는 전후에 있어서까지 아시아가 공동체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지장이 되고 있다.
내부적인 자각에 의한 아시아의식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중에 아시아는 서구에 의해 재인식되게 되었다. 사이드가 말하는 '동양화'에 의해서, 다시 말하면 외부(서구)의 상상에 의해 형성되어 왔던 지역이 다시금 그 외부의 상상에 의해 그 의미가 재구성되게 된 것이다. 물론 1980년대 후반기에 나타난 이 지역에 대한 서구의 재인식은 상상을 뒷받침할만한 실체적 진실 -즉 경제성장- 에 상당부분 기초한 것이긴 하지만, 아시아가 여전히 객체화된채로 남아 있는 한에 있어서는, 19세기 東洋化의 흔적이 존속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을 문화결정론적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그러한 흔적은 발견된다.
아시아가 서구의 '재아시아화'에 자극받아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뒤늦게나마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태평양공동체'냐 '아시아공동체'냐를 두고 아시아국가들간에 견해가 엇갈리고 있고, 그와 같은 주저함이 이 지역에 경제적, 안보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간여탓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아시아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아시아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일찍이 스스로의 힘으로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한 유럽이 "미국의 기술과 자본의 도전"에 위협을 느껴 지역협력체 -EU- 를 만들려고 했을 때도 미국은 이것이 '요새화된 유럽'(Fortress Europe)이 될 것으로 우려하여 반대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 -이는 미국의 입장을 유럽에서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하는 영국의 반대로 표명되었다- 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지역공동체의식에 의해 극복되었다.
지역공동체의식을 발전시켜 온 역사적 경험이 없는 아시아가 그들만의 지역협력체 -EAEC-를 만드는 데 있어서 외부적 간섭에 취약한 것은 당연하다. 미국을 설득하기 이전에 아시아국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과 일본을 위시한 동북아국가들 자신이 먼저 아시아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를 설득할 필요성이 있다. 역내국가들간의 경제발전수준이 다양한 아시아가 스스로 돕는 것은 그동안 역외 선진국들의 원조를 받아왔던 아시아가 경제성장에 즈음하여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미국에게 있어서도 自國 시장의 대아시아개방의 부담과 아시아방위부담을 경감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나친 영향력 행사가 미국과 아시아국가들간에 불필요한 긴장과 반목을 초래하는 것은 피차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갈수록 증대해 가는 세계화의 시대에 그 같은 갈등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말하는 일본론에 이어 '아니'라고 하는 중국론이 등장하고, '아니'라고 하는 아시아론까지 등장하도록 사태가 흘러가는 것은 이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아시아공동체구상을 무시한채 '신태평양공동체'를 강조하는 가운데 열렸던 APEC 마닐라 정상회담이 국제적 연대에 기초한 민간의 강력한 반아펙운동에 부딪친 것 역시 심상치 않다. 미국에 대한 '아니'나 反아펙운동은 아시아가 역외 선진국들과의 경제 자유화/개방화를 의논하기 전단계에서 역내국가들끼리 문제해결을 의논할 기회가 마련된다면 대체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점에서, 아시아공동체구상을 폐쇄적 지역주의가 될 우려가 있다하여 반대하는 것이 근거없는 기우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AEC가 역외 국가인 자신을 소외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호주나 자신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경쟁국인 일본(또는 중국)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비대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미국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는 이러한 反EAEC 명분은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우선 논리적으로 말해서, EAEC의 대안으로서 APEC이 표방하는 규범이 '개방적 지역주의'인데, 개방적 지역주의란 그자체가 상호모순적 개념(oxymoron)이다. 지역주의란 그 자체가 대내지향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역주의가 개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상호의존이 날로 증가하는 세계화추세탓이다. 어떤 지역도 폐쇄적인채로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다른 지역과의 경쟁적 협력(comperation)에 나서기 전에 역내국가들끼리의 협조를 통해 대외적 경쟁력을 높일 목적으로 '개방적 지역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EAEC 역시 이러한 생존의 원칙에서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EAEC와 APEC은 代案的 관계가 아닌 相補的 관계에 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아시아공동체를 형성할 경우에 있어서 호주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근래에 와서 호주는 대서양국가들과의 교역보다 태평양연안 아시아국가들과의 교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가 되었다. 호주의 아시아지역에 대한 경제적 관심은 따라서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호주의 '아시아화'는 市場의 자연스런 요청탓인 것이다. EAEC에 대해 가장 반대적 입장에 있는 국가가 미국다음으로 호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주의 아시아화에 대한 국내적 비판 역시 만만치 않다. 핸선(Pauline Hanson)이 이끄는 '一民黨' (One Nation Party)의 갑작스런 浮上이 그 예이다. 국내의 일부에서 강력하게 제기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의 접근을 추구하는 호주를 아시아국가들이 충분히 배려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호주가 準회원국이상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게 함으로써 EAEC가 결코 호주에 대한 배타적 입장에 있지 않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아시아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기초로서 EAEC가 갖는 한계성을 극복하는 문제이다. 즉 한때 아시아주의를 주도했던 인도를 위시한 남(또는 서남) 아시아가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동아시아담론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국가들의 협의체가 성사된다면,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 지역의 국가들까지 포용함으로써 아시아공동체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의 일부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환인도양경제협력회의는 이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아시아공동체는 역내 국가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풍부한 자원으로 한 새로운 공통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할 때 비로소 全아시아인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자각과 필요성에 의해 '상상'해내는 아시아공동체는 완결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